[Who Is ?] 문희상 국회의장

김디모데 기자
2019-01-04 10: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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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문희상 국회의장.


    ◆ 생애

    문희상은 20대 국회 하반기 국회의장이다. 

    국회가 다당체제로 여야의 협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에 국회가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이끌어 가야 한다.

    1945년 음력 3월3일 경기도 의정부에서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고 행정고시에 합격했지만 민주화운동 이력으로 임용을 받지 못했다. 

    학교법인 경해학원의 이사장을 역임했고 숭문당이라는 서점을 차려 운영했다. 

    서점을 운영하며 통일 문제와 관련해 여러 전문가와 의견을 교류하다가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발탁돼 정치에 입문했다. 

    6선 국회의원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첫 대통령 비서실장을 맡았고 비상대책위원장을 국회 한 회기에 두 번이나 하는 기록도 세웠다. 

    우락부락한 외모에 숨겨진 뛰어난 갈등조정 능력으로 ‘여의도 포청천’, ‘겉은 장비, 속은 조조’ 같은 다양한 별명이 붙어있다. 

    ◆ 활동의 공과

    △여야 협치 노력
    문희상은 국회 의정활동이 진전될 수 있도록 여야를 독려해 협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문희상은 2019년 1월3일 기자간담회에서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협치”라며 "협치는 국민의 명령이고 20대 국회의 숙명”이라며 협치를 재차 강조했다.

    협치의 기본은 만남이라며 하루도 빠짐없이 여야 의원들을 만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문희상은 국회의장에 오른 뒤 국회의장-원내대표, 국회의장-5당대표, 국회의장-5선이상 여야 중진의원 모임 등 정례회동 자리를 마련하며 협치의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후반기 20대 국회는 좀처럼 성과를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다. 정기국회 예산 심사부터 선거제도 개편 요구와 맞물리면서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법정시한을 넘겼다. 그러자 문희상이 정부 예산안을 그대로 본회의에 상정하는 일도 있었다.

    결국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합의로 예산안이 통과됐으나 다른 정당들의 비판이 쏟아졌다. 

    문희상은 문재인 대통령과 2018년 12월14일 전격 회동을 통해 선거제 개편 합의의 마중물이 됐다. 하지만 정치개혁특위의 선거제 개편 논의는 여전히 지지부진하게 이뤄졌다.

    이밖에 국정감사 때 논란이 된 유치원3법은 자유한국당의 반대로 결국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이 됐다. 음주운전자 처벌을 강화하는 윤창호법, 위험의 외주화를 막는 김용균법 등의 입법 성과를 냈기는 했으나 국민의 희생이 수반됐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문희상은 2019년 1월2일 시무식에서 “촛불혁명의 염원을 제도적으로 마무리 지어야 하는데 개혁입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며 국회를 성토했다. 그는 “국회는 국회다워야 하는데 쓸데없는 말싸움만 한다”며 “임기 중에 국회 신뢰도를 1%라도 올리겠다고 했는데 더 떨어져 허무하다”고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북한과 입법부 교류 증진 노력
    문희상은 북한과 국회회담을 추진하고 김정은 국방위원장의 방문 때 국회 연설 등을 위해 노력한다.

    문희상은 2019년 1월3일 기자간담회에서 남북 국회회담을 위해 최태복 북한 최고인민회의 의장과 친서를 주고받았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한 구체적 계획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그는 “남북 정상회담이 세 번이나 열렸는데 국회 회담을 잘못 열면 (남북관계를) 촉진하는게 아니라 방해할 가능성이 있다”며 “서두르거나 재촉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문희상은 2018년 12월12일 외신기자간담회에서 “우리나라 대통령도 평양에서 15만명 군중 앞에서 연설했다”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답방해 국회에서 연설한다고 하면 국회의장으로서 최선을 다해 연설할 기회가 생기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희상은 2018년 9월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 방문에는 동행하지 않았다. 임종석 비서실장이 9월10일 기자회견을 통해 정치인 특별수행단을 발표했는데 문희상도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문희상은 기자회견 후 2시간도 되지 않아 거절 의사를 밝혔다.

    이를 놓고 청와대의 공개초청이 예의에 어긋났기에 문희상이 거절했다는 말이 나왔다. 그러나 문희장은 추후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청와대가 국회 대표에게 예우를 갖춰 요청을 했다”면서 삼권분립 원칙이 있는데 입법부 수장이 대통령을 수행하는 모양새가 돼 거절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회의장으로 선출
    문희상은 2018년 7월13일 국회의장을 선출하는 투표에서 총투표수 275표 가운데 259표를 얻어 당선됐다. 

    국회법에 따라 탈당해 무소속이 됐으며 20대 국회가 끝나는 2020년 5월까지 국회의장을 수행하게 된다.

    원내 2당인 자유한국당의 이주영 부의장, 3당인 바른미래당의 주승용 부의장까지 선임되며 국회 의장단이 구성됐다.

    이에 따라 5월29일 20대 국회 전반기 국회가 종료된 지 45일 만에 입법부 공백 사태가 해소됐다.

    문희상은 수락 연설에서 "국회는 민주주의의 꽃이며 최후의 보루"라며 "대결과 갈등에 빠져서 국회를 무력화하고 민생을 외면한다면 국민이 선거와 혁명을 통해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당부했다. 

    문희상은 5월16일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의원총회에서 총투표 참석자 116표(무효 2표) 가운데 67표를 얻어 47표를 얻은 박병석 의원을 꺾고 국회의장 후보로 선출됐다. 

    통상 국회의장은 의석수가 가장 많은 원내 제1당에서 선출된다. 

    문희상은 후보로 선출될 때 더불어민주당 20대 국회의원 가운데 최고령인 73세였다. 20대 전반기 국회의장 후보 경선에서 정세균 전 의장에게 패했는데 재수 끝에 국회의장이 됐다.
     
    △대통령 특사로 일본 방문
    문희상은 2017년 5월18일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만나 문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했다. 

    문희상은 이 방문을 놓고 ‘똥 싸놓은 거 치우러 가는 심정’이었다고 표현했다. 엉망진창으로 망가진 외교를 다시 복원하겠다는 일념으로 일정에 임했다고 한다. 

    문희상은 2017년 5월20일 김포공항에서 취재진을 만나 위안부 합의 문제를 놓고 “미래지향적으로 슬기롭게 극복하는 데 의견 합의를 봤다”며 “대한민국 국민이 정서적으로 위안부 합의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전달했고 일본도 이를 이해한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문희상을 본 일본인들은 포털사이트 댓글을 통해 “협상을 한다더니 야쿠자 오야붕(두목)이 왔다” 등의 평가를 남기기도 했다. 

    문희상은 2004~2008년 한일의원연맹 회장을 지냈다. 일본어를 공부하며 적극적으로 의원 외교에 나섰고 일본 총리를 지낸 모시 요시로 일본측 회장 등 일본 정계 인물들과 인맥을 두텁게 쌓았다.  

    △6선 국회의원
    문희상은 6선 의원으로 7선인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이어 여권 내 두 번째로 선수가 많은 의원이다.

    1988년 13대 총선 때 김대중 총재의 평화민주당 후보로 경기도 의정부시에서 처음 출마했으나 김문원 신민주공화당 후보에게 밀려 낙선했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해 38.7%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그러나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출마한 1996년 15대 총선에서 홍문종 신한국당 후보에게 밀려 한 번 더 고배를 마셨다.

    이후 2000년 16대 총선부터 2004년 17대 총선, 2008년 18대 총선, 2012년 19대 총선, 2016년 20대 총선까지 내리 당선됐다.

    탈당 전력이 없음에도 민주당계 정당의 개편이 잦았기에 새천년민주당, 열린우리당, 통합민주당, 민주통합당, 더불어민주당 등 매번 다른 정당 이름으로 출마했다.

    득표율은 2004년 17대 총선 때 52.12%로 가장 높았다. 이후 계속 내림세로 20대 총선 때는 42.84%까지 떨어지며 2위인 새누리당 후보와 격차가 5%포인트도 나지 않았다.

    △‘개작두 리더십’ 보여주며 포청천으로 자리매김
    문희상은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군기반장 역할을 하며 흔들리는 당을 다잡았다.

    그는 2014년 9월 김한길 안철수 공동대표에 이어 박영선 원내대표까지 물러난 상황에서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다. 새정치민주연합 지지율은 10%대로 창당 이후 최저였다.

    문희상은 소통과 철저한 중립성 유지를 통해 당내 기강을 세웠다. 문희상이 위원장을 맡기 전과 후에 달라진 점을 놓고 당의 중심이 잡히고 질서가 생겼다는 말도 나왔다. 

    문희상은 위원장을 맡을 당시 ‘버릇없는 초재선 의원들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 규율을 지키지 않으면 개작두로 치겠다’는 등의 강경한 발언을 쏟아냈다. 이 발언 뒤 초재선 의원들이 중구난방식 주장을 하는 사례가 크게 줄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등 여당과도 비교적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세월호특별법 입법과 예산안 법정시한 내 처리 등의 성과를 거뒀다.

    2015년 2월 새정치민주연합 전당대회에서 문재인 대표가 당선되면서 문희상은 비대위원장을 내려놓았다. 비대위체제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지지율은 20%대까지 회복됐다.

    ◆ 비전과 과제

    문희상은 다당체제로 이뤄진 20대 국회를 이끌어 입법 성과를 내야 한다.

    특히 20대 국회에서 각종 민생입법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국회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많다. 문희상은 2019년 1월3일 “선제적으로 민생입법에 매진하는 국회가 되도록 혼신의 힘 다하겠다”고 의지를 나타냈다.

    이를 위해 문희상은 여야 협치에 매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문희상은 원내대표 정례회동, 당대표 정례회동 등을 주재하면서 협치를 고도해 나가고 있다.

    또한 법안을 심사할 상임위원회 소위원회를 복수화하고 2주에 한번 개최하는 방안을 내놓는 등 입법기능 활성화를 도모한다.

    선거제도 개편 합의도 이끌어 내야 한다. 문희상은 선거가 없는 2019년이 개헌과 선거제도 개편 등을 이뤄낼 좋은 기회라고 보고 있다.

    국회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등 선거제도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정치개혁특별위원회는 2019년 1월20일까지 합의안을 마련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지역구와 비례의원 비율, 의원 정수 등을 놓고 시각 차이가 커 합의안을 도출하는 과정에서 진통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문희상은 선거제도 개편의 대원칙은 득표율에 비례한 의석이라고 전제해 이러한 틀 안에서 합의를 종용할 것으로 보인다.

    국회를 향한 신뢰를 회복하는 일도 과제다. 문희상은 국회 특수활동비를 폐지하고 의원 해외출장의 사전 심사와 사후 보고를 강화하는 등 의정활동의 투명성을 높이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2018년 11월 리얼미터의 국가사회기관 신뢰도 여론조사 결과 국회는 고작 1.8%의 신뢰도로 최하위를 보였다. 대통령(21.3%)과 시민단체(10.9%)는 물론 경찰(2.7%), 검찰(2.0%)에 모두 뒤졌다.

    문희상은 2019년 1월2일 시무식에서 “국민의 신뢰를 잃으면 국회는 국회가 아니다"라며 “금년에는 국회가 제 역할을 다하여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 평가

    ▲ 문희상 국회의장(가운데), 정세균 전 의장(오른쪽), 안민석 문화체육관광위원장이 2018년 12월7일 국회에서 열린 크리스마스트리 점등식에서 산타모자를 쓰고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온건하고 합리적 성향을 갖추고 있다. 정치권의 대표적 의회주의자이자 개헌론자이기도 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의해 정치권에 입문해 현역 정치인 중 얼마 남지 않은 동교동계에 속한다. 동시에 노무현 정부에서 초대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내 친노계의 큰형으로도 여겨진다.

    문희상은 1979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교동 사저에서 김 전 대통령을 처음으로 만났다. 당시 서점을 운영하면서 여러 통일 전문가들과 의견을 교류하다가 김 전 대통령까지 알게 됐다. 문희상은 김 전 대통령을 정치 스승으로 꼽는다.

    ‘겉은 장비, 속은 조조’라는 별명이 있다. 뛰어난 지략가인데 겉모습은 장수처럼 우락부락한 데서 붙여진 별명이다. “외모만 보면 자유한국당”이라는 말도 듣는다. 

    문재인 정부에서 일본 특사로 일본을 방문했을 때 일본인들은 SNS에서 “한국 도깨비가 왔다, 한국에도 야쿠자가 있다”는 등 외모를 놓고 여러 평가를 내놓았다. 

    문희상도 이런 점을 잘 알고 있어 공식석상에서 외모를 소재로 한 유머를 자주 한다. 새정치민주연합 비대위원장 시절에 박근혜 대통령과 정의화 국회의장이 문희상의 역량을 추켜세우자 “역량보다는 내가 비대해서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국회의장 후보에 당선된 뒤에는 “애초에 얼굴 큰 사람 뽑자, 몸무게 많이 나가는 사람 뽑자 했으면 걱정을 덜 했을 것이다. 쓸데없이 얼굴만 큰, 부덕하고 불민하기 짝이 없는 이 사람을 뽑아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원로급 다선 의원 가운데 지역구를 옮기지 않은 몇 안 되는 의원이다. 한 지역구 최다선으로 보면 현역 최다선인 8선의 서청원 의원, 7선 김무성 의원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의정부에서 대대로 살아온 지역 유지 집안으로 지역 주민들의 뿌리 깊은 지지가 바탕이 된 것으로 여겨진다.

    종교는 천주교다. 세례명은 ‘바오로’다. 불교집안에서 태어났으나 민주화운동을 하다 투옥돼 서인석 신부를 만나 영세를 받았다. 서 신부의 세례명도 바오로였다. 감옥에서 물이 있는 유일한 곳이 화장실이라 똥물로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취미는 서예다. 1985년 만들어진 전현직 국회의원들의 서예모임 ‘국회 서도회’에 2005년부터 참여하면서 시작됐다. 

    어린 시절 영특한 모범생이었다. 양주국민학교 시절 6년 연속 개근과 6년 연속 반장을 했다. 경복중고 시절에는 1년 동안 평균 97점을 받기도 했다. 초중고 3개 과정에서 연속으로 학생회장을 지냈다.

    대학 졸업 후 행정고시에 합격했으나 학생운동 경력 때문에 임용에 탈락했고 보안사 사찰대상 384번으로 사찰을 당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취업이 원활치 않아 사업을 하게 됐다.

    호는 정흥(正興). 개명 전 이름이 문정흥이었다. 1973년 군 제대 후 장사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는데 원래 이름을 더럽히지 않겠다고 생각해 개명을 결정했다. 어머니가 당대 저명한 작명가 김봉수씨를 찾아가 재벌이 될 수 있는 이름이라며 희상을 받아왔다고 한다.

    정치인이 된 후에는 서예가 청암 고강 선생이 태산같이 백성을 사랑하라는 뜻에서 ‘산민’이라는 호를 지어줬다.

    의정부시 최초의 대형 서점이자 의정부의 명소인 숭문당의 창업주다. 문희상은 임금이 신하들과 정사와 학문을 논하던 창경궁의 건물에서 이름을 따와 1973년 숭문당을 설립했다. 

    문희상은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밤낮없이 서점에서 일한 결과 10년 동안 10억 원을 버는 게 목표였는데 7년 만에 목표를 달성했다고 말했다. 서점에서 번 돈은 정치 입문 후 세무조사 등 탄압을 받아 대부분 날렸다고 한다.

    2018년 11월에는 한국서점조합연합회가 연 2018 서점의날 기념식에서 전국 서점 경영주들이 뽑은 자랑스러운 서점인 상을 받았다.

    문희상은 비서실장 시절 문재인 민정수석 선임에 반대했다. 그는 “사슴 같은 눈망울을 지닌 백면서생이 맡을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문재인 민정수석은 문희상의 매제인 이상업 치안정감이 차기 경찰청장으로 거론되자 “비서실장 매제가 경찰청장이 되면 국민이 납득하겠느냐”고 반대했다. 문희상은 내심 불편했지만 마땅히 대꾸할 수 없었다고 한다.

    문희상은 2017년 19대 대선을 앞두고 “문재인 후보는 깨끗해야 한다는 강박을 지니고 산다”며 “고구마라는 별명이 말해주듯 미스터 도덕이라고 보면 된다”고 평가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를 놓고는 “문 후보가 휴머니스트라면 안 후보는 인텔리”라며 “요즘 깡이 많이 생겼지만 아직 학습하는 단계에 있어 새정치를 하는 건지 아마추어인지 헷갈린다”고 말했다.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는 대통령감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문희상은 “보수당에서 드물게 자질과 역량을 고루 갖춘 정치인”이라면서도 “지금은 그의 시대가 아니며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사건사고

    △국회 특수활동비 논란
    문희상은 '쌈짓돈' 논란이 제기돼 온 국회 특수활동비를 폐지했다.

    2019년도 국회 예산에 특수활동비는 10억 원이 편성됐다. 2017년 82억 원, 2018년 63억 원에서 크게 감소했다.

    문희상은 2018년 7월 국회의장 취임 후 기자간담회에서 “국회 특수활동비를 폐지하거나 획기적으로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에서 특수활동비 폐지에 반대하며 특수활동비를 유지하되 영수증을 증빙해 양성화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여론이 악화하자 문희상은 8월13일 여야3당 원내대표 회의를 주재해 특수활동비를 폐지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8월16일 유인태 국회 사무처장은 교섭단체 및 상임위원회 운영지원비, 국외활동 장도비, 목적이 불분명한 식사비 등 특수활동비 본연의 성격에 맞지 않는 집행을 모두 폐지한다고 발표했다. 또 특수활동비 집행과 관련한 정보공개 청구를 수용하기로 했다.

    다만 국회의장단 몫의 외교·안보·통상과 관련한 특수활동비는 남기기로 해 논란이 남았다. 이와 관련해 문희상은 특수활동비 100% 폐지를 지시했는데 유인태 사무처장이 꼭 필요한 경비가 있다고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사무처는 2018년 12월14일 특수활동비 집행내역을 공개했다. 7월 시민단체가 집행내역을 공개하라고 제기한 소송에서 패소한 데 따른 것이다. 국회는 소송 결과에 불복해 항소했으나 11월 항소를 취하했다.

    △처남 취업 청탁 논란
    문희상은 대한항공에 처남의 취업을 청탁했다는 논란이 불거져 곤혹을 치렀다.

    2014년 12월 문희상의 처남 김승수씨가 문희상 부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 1심 판결문 내용이 알려졌다. 

    김씨는 문희상 부부가 제3자에게 돈을 빌리면서 그의 명의로 돼있는 서울 시흥동 건물과 땅을 넘기는 내용의 매매계약서를 담보로 주고 돈을 갚지 않아 소유권을 잃었다며 소송을 냈다. 

    소송 과정에서 문희상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에게 김씨의 취업을 부탁했다고 김씨는 폭로했다. 김씨는 미국 소재 브리지웨어하우스의 컨설턴트로서 2012년까지 8년 동안 일을 하지 않고도 급여로 8억여 원을 받았다고 한다. 

    문희상은 2014년 12월20일 “정치 역정 중 단 한 번도 부끄러운 일이 없었다”면서 “결과적으로 저 때문에 처남이 특혜를 입었다면 이 또한 제 부덕의 소치”라고 공식 사과했다.

    그러나 한 보수단체가 문희상을 공직자윤리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검찰은 2016년 7월8일에 처남 취업 청탁건과 관련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검찰은 “당시 대한항공이 청탁으로 얻은 이익이 확인되지 않은 점과 부동산을 문희상의 부인이 어머니를 위해 마련한 것이기에 김씨의 전제가 성립하기 힘든 점이 있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희상은 이와 관련해 “한마디로 사필귀정”이라며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기 전까지는 억울하게 죄인이 될 수밖에 없다. 어떻게 보면 법으로 사람을 괴롭히는 것이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재발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승수씨는 이에 굴하지 않고 2018년 1월16일 여의도 자유한국당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미국 브리지웨어하우스로부터 받았던 편지를 공개하며 “국회의장이 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문희상은 “정치적 목적이 있는 것 같다”며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 경력

    ▲ 노무현 대통령과 문희상 비서실장(오른쪽)이 2003년 7월11일 청와대에서 수석보좌관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1970년 해군본부 법제담당관으로 근무했다.

    1973년 숭문당을 설립해 대표를 맡았다.

    1976년 학교법인 경해학원 이사장을 맡았다. 

    1980년 민주연합청년동지회(여연청) 초대회장을 지냈다. 

    1982년 숭문상가·삼정식품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1985년 한국청년회의소(JC) 중앙회장을 지냈다. 

    1992년 14대 총선에 당선되면서 직업 정치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93년 민주당 대표 비서실장을 지냈다.

    1998년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에 발탁됐다.

    1999년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으로 일했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이 됐다.

    2003년 제26대 대통령비서실장이 됐다.

    2004년에 제17대 국회의원에 올랐다.

    2005년 열린우리당 의장을 맡았다.

    2008년에 제18대 국회의원으로 선출됐다.

    2008년에 국회 부의장을 맡았다.

    2012년에 제19대 국회의원에 올랐다.

    2013년 민주통합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으로 일했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이 됐다.

    2018년 7월13일 20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으로 뽑혔다.

    ◆ 학력

    1957년 양주초등학교(현 중앙초등학교)를 졸업했다. 

    1960년 경복중학교를 졸업했다.

    1963년 경복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68년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 가족관계

    철도직 공무원이었던 문흥모씨와 이정희씨 슬하 2남3녀 중 장남이다. 

    야구인 김영조씨의 딸인 김양수씨가 부인이다. 장남 문석균, 장녀 문수현, 차녀 문지현을 두고 있다.

    문희상은 문인숙씨와 가야금 연주가 문재숙씨를 동생으로 두고 있다. 문재숙씨의 딸인 가야금 연주가 이슬기씨와 배우 이하늬씨가 조카다. 

     ◆ 상훈 

    2003년 2월 황조근정훈장을 받았다.

    2005년 11월 청조근정훈장을 받았다.

    ◆ 기타

    촛불혁명 이후부터 글을 쓰기 시작해 2017년 3월22일에 ‘대통령, 우리가 알아야 할 대통령의 모든 것’이라는 책을 냈다. 대통령이 탄생하는 과정부터 국정 운영과 퇴임 이후의 자세, 갖춰야 할 덕목까지 적어 놨다. 

    ‘국민의 정부의 개혁방향과 과제’(1999) ‘생각을 바꾸면 세상이 바뀐다’(2000), ‘문희상이 띄우는 희망메세지 동행’(2007), ‘문희상이 띄우는 희망메세지 동행2’(2011) 등의 저서가 있다.

    해군 중위로 병역을 마쳤다.

    2018년 3월 국회 공직자윤리위원회가 공개한 국회의원 재산 변동사항에 따르면 1억8700만 원의 재산을 보유해 전체 의원 중 다섯 번째로 재산이 적었다.

    본인과 장남 명의로 경기도 의정부 주택과 대지 등 33억 원의 부동산, 1억 원의 예금, 1억5천억 원의 유가증권 등을 보유했으나 장남의 채무가 33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아산 주식 249주를 보유하고 있다.

     ◆ 어록

    “국민의 정부는 시작부터 최악의 경제였지만, IMF를 신속하게 극복할 수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님의 눈물어린 취임사로 상징되는 국민 공감을 통해, 국민을 설득하고 고통을 분담하며 마음을 모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통즉불통 불통즉통(通卽不痛 不通卽痛)이다. 한국 경제의 현주소를 국민에게 정확히 알리며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 (2019/01/03, 기자간담회)

    “2019년은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실현하는 중대 기로가 될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의 거대한 물결 속에서 민생경제의 성패를 가늠하는 1년이 될 것이다. 2019년은 그야말로 중대 분수령의 해다. 대한민국 역사의 전환점이 될 것이다.” (2018/12/31, 2019년 신년사)

    “혼밥하슈?” (2018/12/27, 청와대 오찬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청와대는 야당이 비판하더라도 국민의 편에 서서 할 일을 뚜벅뚜벅 해야 하고, 여당은 야당을 욕하기만 할 게 아니라 모든 책임을 내가 진다는 자세여야 한다. 야당은 야당다워야 하지만, 중요한 것은 반대를 위한 반대, 막말로 비판을 해대면 국민이 짜증을 낸다.” (2018/10/29, 여야 원내대표 정례회동에서)

    “국회는 원래 싸움하는 곳이다. 민주주의는 다양성의 원칙이다. 자기의 주장이 아닌 대변하는 사람의 주장을 마음놓고 떠들고 얘기를 해며 싸우는 장소다. 문제는 품격 낮은 말 싸움을 하는 것이다. 서로 상대방을 헐뜯고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면 국회의 권위가 무너지면서 신뢰도 같이 무너진다. 우리 스스로가 품격을 높이려고 해서 말도 조심하고 역지사지 하면 국민의 신뢰도 가는 것이다.” (2018/10/19, SBS라디오 주영진의 뉴스브리핑)

    “김대중 대통령 당선 이후, ‘덤’이라고 생각했던 삶이었습니다. 그랬던 제가 대통령 비서실장, 당 대표, 국회부의장을 거쳐 지금 국회의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아버님께서 하늘에서 보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래 참 잘했다’는 아버지의 칭찬이 그리운 날입니다. 더 노력하겠습니다. 한반도의 평화, 국민의 삶, 대한민국의 번영 그리고 제가 나고 자라서 뼈를 묻을 의정부의 발전을 위해 전력투구하겠습니다. 초심을 잃지 않고 신명을 바쳐 일하겠습니다. 언제나 자랑스러운 아들로 아버님 앞에 설 수 있도록 후회 없이 살겠습니다.” (2018/09/29, 부친 장산 문흥모 선생 탄신 100주년 추모식 추모사)

    “하해불택세류(河海不擇細流)(강과 바다는 개울물도 마다하지 않는다). 협치 꼭 이루어서 사람사는 세상 만들겠다.” (2018/07/31, 경남 김해 봉하마을 노무현 대통령 묘소를 참배하며)

    “민주당도 폭망했다가 살아났다. 보수도 새로운 기수가 나타날 것이다. 보수의 진짜 가치는 ‘희생과 헌신’이다. 이게 제대로 실천되면 누군가 새로운 깃발을 들고 그 아래 뭉칠 때가 반드시 온다.” (2018/06/17,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6.13 지방선거 결과와 관련해)

    “국회는 민주주의의 끝이자 최후의 보루다. 국회가 펄펄 살아 있을 때 민주주의도 살고 정치도 살았고 (반대로) 국회가 해산되고 힘을 못 쓸 때 민주주의가 죽고 정치도 죽었다. 국민은 격조 있는 국회를 원한다. 신뢰가 살아있는 국회, 국민의 존경을 받는 국회를 만들고 싶다.” (2018/05/16, 국회의장 후보 경선에서 당선 소감을 밝히며)

    “(문재인 정부의 1년은) 기적이다. 참으로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점수로 매기자 하면 A+다.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은 모두 감성적 리더십이 있다. 차이는 노 대통령은 가슴이 뜨겁고 문 대통령은 가슴이 따뜻하다. 한 분은 로맨티스트고 한 분은 휴머니스트다.” (2018/05/10, YTN라디오 ‘김호성의 출발 새아침’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의 첫 1년이 적폐청산에 방점이 있었다면 2년 차에는 적폐청산의 제도화에 초점을 둬야 한다. 적폐청산이 인적청산으로 비치게 되면 국민의 피로감이 누적돼 개혁 동력의 상실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문재인 정부는 너무도 잘했다. 특히 안보 영역이 가장 미숙할 것으로 보였으나 지금은 가장 모범적인 사례가 됐다.” (2018/05/09, 대선승리 1주년 맞은 날 보도자료에서)

    "정치가의 길, 정객의 길은 종이 한 장 차이다. 그러나 다음 선거만 생각하는가, 다음 세대를 생각하는가는 엄청난 차이다." (2016/05/10, 초선의원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저는 김대중 사람이다. 아무리 제가 부인을 한다 해도 부인될 수 없는 사실이다. 예전에 어느 월간지에서는 저를 이야기하면서 "이마에 김대중이라고 쓰여 있다"고 표현하더라.” (2016/02/11, 문희상 블로그에서)

    “한국정치가 잘되기 위해선 ‘청청여여야야언언(靑靑與與野野言言)’이어야 한다. ‘청와대는 청와대다워야 하고, 여당은 여당다워야 하고, 야당은 야당다워야 하고, 언론은 언론다워야 한다’는 것이다.” (2014/10/30,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장일 당시 교섭단체연설에서)

    “개작두가 효과를 봤다. (싸우지 않는 정치의) 제1공로자는 개작두다. 그동안 쓸데없이 많이 싸워서 국민이 지겨워했던 것이다.” (2015/02/05,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장 고별 기자간담회에서)

    “요즘 초재선 의원 가운데 막 나가는 의원이 많다.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 정당은 규율이 생명이다. 해당 행위자는 개작두로 치겠다.”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장을 맡고 사석에서)

    “내가 남은 여력이 있다면 쓰레질이라도 하고 빗질이라도 하겠다.” (2014/09/18, 새정치민주연합의 새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추대됐을 때 회의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대한민국 헌법의 최고 가치라면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민생경제 발전과 사회적 약자 배려를 위한 복지완성은 국가존재이유다. 선별적이냐 보편적이냐는 양자택일적 논의로 끌고 갈 것이 아니라 먼 미래를 내다본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 구조를 이룰 수 있는 복지설계가 필요한 시점이다.” (2011/04/12, 보편적 복지 논쟁과 관련해)

    “노 전 대통령을 못 지키고 이렇게 떠나보낸 내 자신에 대한 분노, 무섭고 잔인한 이 시대에 대한 분노가 들끓어 오른다. 한없이 후회스럽고 부끄럽고 부끄럽다. 다시는 비겁한 침묵으로 반칙과 특권에 희생되는 제2의 노무현을 만들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을 한다. 이것이 결코 끝이 아니고 패배가 아닐 것이다.” (2009/06/01,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후 홈페이지에 올린 글)

    “대결과 대립의 마이너스 정치가 아니라 국민 대통합과 상생의 플러스 정치, 새로운 정치가 등장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보수세력만이 지켜갈 수 있다는 식 자체가 독선이자 오만이다. 약자 보호를 좌파나 진보로 몰아붙이는 것 역시 옳지 않다. 이제는 편가르기식의 극단적인 이분법적 사고와의 결별이 필요하다.” (2008/05/26, 민주당 당선자 워크숍)

    “우리가 뭉쳐있어야 우리를 믿고 모든 반한나라 세력이 들어올 수 있는 것인데 분열신당으로 갈기갈기 쪼개져 있으면 누가 우릴 믿고 들어오겠느냐. 그래도 아직은 우리가 여당이고 원내 제1당이다. 사분오열 지리멸렬의 최악의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서는 안되고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 한다.” (2007/01/24,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탈당 사태를 놓고)

    “당과 청와대가 조건없이 만나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해야 한다. 당청관계에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자세는 매우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당청이 무조건 똑같은 생각을 갖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한다는 것은 민주주의가 확립된 세상에서 바람직하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다.” (2006/11/30,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

    “만감이 교차한다. 의원총회가 열리면 늘 맨 뒤에만 앉아 있었는데 이렇게 앞에 나와 있으니까 내자리 같지 않아 좌불안석이다. 내가 3선짼데 의총에서 발언하는 게 오늘이 처음이다. 나는 재주가 메주라 발언을 잘 못하는데 의장이 되니까 무슨 회의만 하면 꼭 모두발언이라는 걸 해야된다고 해서 아주 난감하다.” (2005/04/06, 열린우리당 의장 취임 후 첫 의원총회에서)
     
  • ◆ 활동의 공과

    △여야 협치 노력
    문희상은 국회 의정활동이 진전될 수 있도록 여야를 독려해 협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문희상은 2019년 1월3일 기자간담회에서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협치”라며 "협치는 국민의 명령이고 20대 국회의 숙명”이라며 협치를 재차 강조했다.

    협치의 기본은 만남이라며 하루도 빠짐없이 여야 의원들을 만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문희상은 국회의장에 오른 뒤 국회의장-원내대표, 국회의장-5당대표, 국회의장-5선이상 여야 중진의원 모임 등 정례회동 자리를 마련하며 협치의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후반기 20대 국회는 좀처럼 성과를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다. 정기국회 예산 심사부터 선거제도 개편 요구와 맞물리면서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법정시한을 넘겼다. 그러자 문희상이 정부 예산안을 그대로 본회의에 상정하는 일도 있었다.

    결국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합의로 예산안이 통과됐으나 다른 정당들의 비판이 쏟아졌다. 

    문희상은 문재인 대통령과 2018년 12월14일 전격 회동을 통해 선거제 개편 합의의 마중물이 됐다. 하지만 정치개혁특위의 선거제 개편 논의는 여전히 지지부진하게 이뤄졌다.

    이밖에 국정감사 때 논란이 된 유치원3법은 자유한국당의 반대로 결국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이 됐다. 음주운전자 처벌을 강화하는 윤창호법, 위험의 외주화를 막는 김용균법 등의 입법 성과를 냈기는 했으나 국민의 희생이 수반됐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문희상은 2019년 1월2일 시무식에서 “촛불혁명의 염원을 제도적으로 마무리 지어야 하는데 개혁입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며 국회를 성토했다. 그는 “국회는 국회다워야 하는데 쓸데없는 말싸움만 한다”며 “임기 중에 국회 신뢰도를 1%라도 올리겠다고 했는데 더 떨어져 허무하다”고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북한과 입법부 교류 증진 노력
    문희상은 북한과 국회회담을 추진하고 김정은 국방위원장의 방문 때 국회 연설 등을 위해 노력한다.

    문희상은 2019년 1월3일 기자간담회에서 남북 국회회담을 위해 최태복 북한 최고인민회의 의장과 친서를 주고받았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한 구체적 계획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그는 “남북 정상회담이 세 번이나 열렸는데 국회 회담을 잘못 열면 (남북관계를) 촉진하는게 아니라 방해할 가능성이 있다”며 “서두르거나 재촉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문희상은 2018년 12월12일 외신기자간담회에서 “우리나라 대통령도 평양에서 15만명 군중 앞에서 연설했다”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답방해 국회에서 연설한다고 하면 국회의장으로서 최선을 다해 연설할 기회가 생기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희상은 2018년 9월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 방문에는 동행하지 않았다. 임종석 비서실장이 9월10일 기자회견을 통해 정치인 특별수행단을 발표했는데 문희상도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문희상은 기자회견 후 2시간도 되지 않아 거절 의사를 밝혔다.

    이를 놓고 청와대의 공개초청이 예의에 어긋났기에 문희상이 거절했다는 말이 나왔다. 그러나 문희장은 추후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청와대가 국회 대표에게 예우를 갖춰 요청을 했다”면서 삼권분립 원칙이 있는데 입법부 수장이 대통령을 수행하는 모양새가 돼 거절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회의장으로 선출
    문희상은 2018년 7월13일 국회의장을 선출하는 투표에서 총투표수 275표 가운데 259표를 얻어 당선됐다. 

    국회법에 따라 탈당해 무소속이 됐으며 20대 국회가 끝나는 2020년 5월까지 국회의장을 수행하게 된다.

    원내 2당인 자유한국당의 이주영 부의장, 3당인 바른미래당의 주승용 부의장까지 선임되며 국회 의장단이 구성됐다.

    이에 따라 5월29일 20대 국회 전반기 국회가 종료된 지 45일 만에 입법부 공백 사태가 해소됐다.

    문희상은 수락 연설에서 "국회는 민주주의의 꽃이며 최후의 보루"라며 "대결과 갈등에 빠져서 국회를 무력화하고 민생을 외면한다면 국민이 선거와 혁명을 통해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당부했다. 

    문희상은 5월16일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의원총회에서 총투표 참석자 116표(무효 2표) 가운데 67표를 얻어 47표를 얻은 박병석 의원을 꺾고 국회의장 후보로 선출됐다. 

    통상 국회의장은 의석수가 가장 많은 원내 제1당에서 선출된다. 

    문희상은 후보로 선출될 때 더불어민주당 20대 국회의원 가운데 최고령인 73세였다. 20대 전반기 국회의장 후보 경선에서 정세균 전 의장에게 패했는데 재수 끝에 국회의장이 됐다.
     
    △대통령 특사로 일본 방문
    문희상은 2017년 5월18일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만나 문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했다. 

    문희상은 이 방문을 놓고 ‘똥 싸놓은 거 치우러 가는 심정’이었다고 표현했다. 엉망진창으로 망가진 외교를 다시 복원하겠다는 일념으로 일정에 임했다고 한다. 

    문희상은 2017년 5월20일 김포공항에서 취재진을 만나 위안부 합의 문제를 놓고 “미래지향적으로 슬기롭게 극복하는 데 의견 합의를 봤다”며 “대한민국 국민이 정서적으로 위안부 합의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전달했고 일본도 이를 이해한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문희상을 본 일본인들은 포털사이트 댓글을 통해 “협상을 한다더니 야쿠자 오야붕(두목)이 왔다” 등의 평가를 남기기도 했다. 

    문희상은 2004~2008년 한일의원연맹 회장을 지냈다. 일본어를 공부하며 적극적으로 의원 외교에 나섰고 일본 총리를 지낸 모시 요시로 일본측 회장 등 일본 정계 인물들과 인맥을 두텁게 쌓았다.  

    △6선 국회의원
    문희상은 6선 의원으로 7선인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이어 여권 내 두 번째로 선수가 많은 의원이다.

    1988년 13대 총선 때 김대중 총재의 평화민주당 후보로 경기도 의정부시에서 처음 출마했으나 김문원 신민주공화당 후보에게 밀려 낙선했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해 38.7%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그러나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출마한 1996년 15대 총선에서 홍문종 신한국당 후보에게 밀려 한 번 더 고배를 마셨다.

    이후 2000년 16대 총선부터 2004년 17대 총선, 2008년 18대 총선, 2012년 19대 총선, 2016년 20대 총선까지 내리 당선됐다.

    탈당 전력이 없음에도 민주당계 정당의 개편이 잦았기에 새천년민주당, 열린우리당, 통합민주당, 민주통합당, 더불어민주당 등 매번 다른 정당 이름으로 출마했다.

    득표율은 2004년 17대 총선 때 52.12%로 가장 높았다. 이후 계속 내림세로 20대 총선 때는 42.84%까지 떨어지며 2위인 새누리당 후보와 격차가 5%포인트도 나지 않았다.

    △‘개작두 리더십’ 보여주며 포청천으로 자리매김
    문희상은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군기반장 역할을 하며 흔들리는 당을 다잡았다.

    그는 2014년 9월 김한길 안철수 공동대표에 이어 박영선 원내대표까지 물러난 상황에서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다. 새정치민주연합 지지율은 10%대로 창당 이후 최저였다.

    문희상은 소통과 철저한 중립성 유지를 통해 당내 기강을 세웠다. 문희상이 위원장을 맡기 전과 후에 달라진 점을 놓고 당의 중심이 잡히고 질서가 생겼다는 말도 나왔다. 

    문희상은 위원장을 맡을 당시 ‘버릇없는 초재선 의원들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 규율을 지키지 않으면 개작두로 치겠다’는 등의 강경한 발언을 쏟아냈다. 이 발언 뒤 초재선 의원들이 중구난방식 주장을 하는 사례가 크게 줄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등 여당과도 비교적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세월호특별법 입법과 예산안 법정시한 내 처리 등의 성과를 거뒀다.

    2015년 2월 새정치민주연합 전당대회에서 문재인 대표가 당선되면서 문희상은 비대위원장을 내려놓았다. 비대위체제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지지율은 20%대까지 회복됐다.

  • ◆ 비전과 과제

    문희상은 다당체제로 이뤄진 20대 국회를 이끌어 입법 성과를 내야 한다.

    특히 20대 국회에서 각종 민생입법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국회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많다. 문희상은 2019년 1월3일 “선제적으로 민생입법에 매진하는 국회가 되도록 혼신의 힘 다하겠다”고 의지를 나타냈다.

    이를 위해 문희상은 여야 협치에 매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문희상은 원내대표 정례회동, 당대표 정례회동 등을 주재하면서 협치를 고도해 나가고 있다.

    또한 법안을 심사할 상임위원회 소위원회를 복수화하고 2주에 한번 개최하는 방안을 내놓는 등 입법기능 활성화를 도모한다.

    선거제도 개편 합의도 이끌어 내야 한다. 문희상은 선거가 없는 2019년이 개헌과 선거제도 개편 등을 이뤄낼 좋은 기회라고 보고 있다.

    국회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등 선거제도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정치개혁특별위원회는 2019년 1월20일까지 합의안을 마련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지역구와 비례의원 비율, 의원 정수 등을 놓고 시각 차이가 커 합의안을 도출하는 과정에서 진통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문희상은 선거제도 개편의 대원칙은 득표율에 비례한 의석이라고 전제해 이러한 틀 안에서 합의를 종용할 것으로 보인다.

    국회를 향한 신뢰를 회복하는 일도 과제다. 문희상은 국회 특수활동비를 폐지하고 의원 해외출장의 사전 심사와 사후 보고를 강화하는 등 의정활동의 투명성을 높이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2018년 11월 리얼미터의 국가사회기관 신뢰도 여론조사 결과 국회는 고작 1.8%의 신뢰도로 최하위를 보였다. 대통령(21.3%)과 시민단체(10.9%)는 물론 경찰(2.7%), 검찰(2.0%)에 모두 뒤졌다.

    문희상은 2019년 1월2일 시무식에서 “국민의 신뢰를 잃으면 국회는 국회가 아니다"라며 “금년에는 국회가 제 역할을 다하여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 ◆ 평가

    ▲ 문희상 국회의장(가운데), 정세균 전 의장(오른쪽), 안민석 문화체육관광위원장이 2018년 12월7일 국회에서 열린 크리스마스트리 점등식에서 산타모자를 쓰고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온건하고 합리적 성향을 갖추고 있다. 정치권의 대표적 의회주의자이자 개헌론자이기도 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의해 정치권에 입문해 현역 정치인 중 얼마 남지 않은 동교동계에 속한다. 동시에 노무현 정부에서 초대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내 친노계의 큰형으로도 여겨진다.

    문희상은 1979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교동 사저에서 김 전 대통령을 처음으로 만났다. 당시 서점을 운영하면서 여러 통일 전문가들과 의견을 교류하다가 김 전 대통령까지 알게 됐다. 문희상은 김 전 대통령을 정치 스승으로 꼽는다.

    ‘겉은 장비, 속은 조조’라는 별명이 있다. 뛰어난 지략가인데 겉모습은 장수처럼 우락부락한 데서 붙여진 별명이다. “외모만 보면 자유한국당”이라는 말도 듣는다. 

    문재인 정부에서 일본 특사로 일본을 방문했을 때 일본인들은 SNS에서 “한국 도깨비가 왔다, 한국에도 야쿠자가 있다”는 등 외모를 놓고 여러 평가를 내놓았다. 

    문희상도 이런 점을 잘 알고 있어 공식석상에서 외모를 소재로 한 유머를 자주 한다. 새정치민주연합 비대위원장 시절에 박근혜 대통령과 정의화 국회의장이 문희상의 역량을 추켜세우자 “역량보다는 내가 비대해서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국회의장 후보에 당선된 뒤에는 “애초에 얼굴 큰 사람 뽑자, 몸무게 많이 나가는 사람 뽑자 했으면 걱정을 덜 했을 것이다. 쓸데없이 얼굴만 큰, 부덕하고 불민하기 짝이 없는 이 사람을 뽑아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원로급 다선 의원 가운데 지역구를 옮기지 않은 몇 안 되는 의원이다. 한 지역구 최다선으로 보면 현역 최다선인 8선의 서청원 의원, 7선 김무성 의원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의정부에서 대대로 살아온 지역 유지 집안으로 지역 주민들의 뿌리 깊은 지지가 바탕이 된 것으로 여겨진다.

    종교는 천주교다. 세례명은 ‘바오로’다. 불교집안에서 태어났으나 민주화운동을 하다 투옥돼 서인석 신부를 만나 영세를 받았다. 서 신부의 세례명도 바오로였다. 감옥에서 물이 있는 유일한 곳이 화장실이라 똥물로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취미는 서예다. 1985년 만들어진 전현직 국회의원들의 서예모임 ‘국회 서도회’에 2005년부터 참여하면서 시작됐다. 

    어린 시절 영특한 모범생이었다. 양주국민학교 시절 6년 연속 개근과 6년 연속 반장을 했다. 경복중고 시절에는 1년 동안 평균 97점을 받기도 했다. 초중고 3개 과정에서 연속으로 학생회장을 지냈다.

    대학 졸업 후 행정고시에 합격했으나 학생운동 경력 때문에 임용에 탈락했고 보안사 사찰대상 384번으로 사찰을 당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취업이 원활치 않아 사업을 하게 됐다.

    호는 정흥(正興). 개명 전 이름이 문정흥이었다. 1973년 군 제대 후 장사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는데 원래 이름을 더럽히지 않겠다고 생각해 개명을 결정했다. 어머니가 당대 저명한 작명가 김봉수씨를 찾아가 재벌이 될 수 있는 이름이라며 희상을 받아왔다고 한다.

    정치인이 된 후에는 서예가 청암 고강 선생이 태산같이 백성을 사랑하라는 뜻에서 ‘산민’이라는 호를 지어줬다.

    의정부시 최초의 대형 서점이자 의정부의 명소인 숭문당의 창업주다. 문희상은 임금이 신하들과 정사와 학문을 논하던 창경궁의 건물에서 이름을 따와 1973년 숭문당을 설립했다. 

    문희상은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밤낮없이 서점에서 일한 결과 10년 동안 10억 원을 버는 게 목표였는데 7년 만에 목표를 달성했다고 말했다. 서점에서 번 돈은 정치 입문 후 세무조사 등 탄압을 받아 대부분 날렸다고 한다.

    2018년 11월에는 한국서점조합연합회가 연 2018 서점의날 기념식에서 전국 서점 경영주들이 뽑은 자랑스러운 서점인 상을 받았다.

    문희상은 비서실장 시절 문재인 민정수석 선임에 반대했다. 그는 “사슴 같은 눈망울을 지닌 백면서생이 맡을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문재인 민정수석은 문희상의 매제인 이상업 치안정감이 차기 경찰청장으로 거론되자 “비서실장 매제가 경찰청장이 되면 국민이 납득하겠느냐”고 반대했다. 문희상은 내심 불편했지만 마땅히 대꾸할 수 없었다고 한다.

    문희상은 2017년 19대 대선을 앞두고 “문재인 후보는 깨끗해야 한다는 강박을 지니고 산다”며 “고구마라는 별명이 말해주듯 미스터 도덕이라고 보면 된다”고 평가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를 놓고는 “문 후보가 휴머니스트라면 안 후보는 인텔리”라며 “요즘 깡이 많이 생겼지만 아직 학습하는 단계에 있어 새정치를 하는 건지 아마추어인지 헷갈린다”고 말했다.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는 대통령감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문희상은 “보수당에서 드물게 자질과 역량을 고루 갖춘 정치인”이라면서도 “지금은 그의 시대가 아니며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사건사고

    △국회 특수활동비 논란
    문희상은 '쌈짓돈' 논란이 제기돼 온 국회 특수활동비를 폐지했다.

    2019년도 국회 예산에 특수활동비는 10억 원이 편성됐다. 2017년 82억 원, 2018년 63억 원에서 크게 감소했다.

    문희상은 2018년 7월 국회의장 취임 후 기자간담회에서 “국회 특수활동비를 폐지하거나 획기적으로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에서 특수활동비 폐지에 반대하며 특수활동비를 유지하되 영수증을 증빙해 양성화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여론이 악화하자 문희상은 8월13일 여야3당 원내대표 회의를 주재해 특수활동비를 폐지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8월16일 유인태 국회 사무처장은 교섭단체 및 상임위원회 운영지원비, 국외활동 장도비, 목적이 불분명한 식사비 등 특수활동비 본연의 성격에 맞지 않는 집행을 모두 폐지한다고 발표했다. 또 특수활동비 집행과 관련한 정보공개 청구를 수용하기로 했다.

    다만 국회의장단 몫의 외교·안보·통상과 관련한 특수활동비는 남기기로 해 논란이 남았다. 이와 관련해 문희상은 특수활동비 100% 폐지를 지시했는데 유인태 사무처장이 꼭 필요한 경비가 있다고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사무처는 2018년 12월14일 특수활동비 집행내역을 공개했다. 7월 시민단체가 집행내역을 공개하라고 제기한 소송에서 패소한 데 따른 것이다. 국회는 소송 결과에 불복해 항소했으나 11월 항소를 취하했다.

    △처남 취업 청탁 논란
    문희상은 대한항공에 처남의 취업을 청탁했다는 논란이 불거져 곤혹을 치렀다.

    2014년 12월 문희상의 처남 김승수씨가 문희상 부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 1심 판결문 내용이 알려졌다. 

    김씨는 문희상 부부가 제3자에게 돈을 빌리면서 그의 명의로 돼있는 서울 시흥동 건물과 땅을 넘기는 내용의 매매계약서를 담보로 주고 돈을 갚지 않아 소유권을 잃었다며 소송을 냈다. 

    소송 과정에서 문희상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에게 김씨의 취업을 부탁했다고 김씨는 폭로했다. 김씨는 미국 소재 브리지웨어하우스의 컨설턴트로서 2012년까지 8년 동안 일을 하지 않고도 급여로 8억여 원을 받았다고 한다. 

    문희상은 2014년 12월20일 “정치 역정 중 단 한 번도 부끄러운 일이 없었다”면서 “결과적으로 저 때문에 처남이 특혜를 입었다면 이 또한 제 부덕의 소치”라고 공식 사과했다.

    그러나 한 보수단체가 문희상을 공직자윤리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검찰은 2016년 7월8일에 처남 취업 청탁건과 관련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검찰은 “당시 대한항공이 청탁으로 얻은 이익이 확인되지 않은 점과 부동산을 문희상의 부인이 어머니를 위해 마련한 것이기에 김씨의 전제가 성립하기 힘든 점이 있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희상은 이와 관련해 “한마디로 사필귀정”이라며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기 전까지는 억울하게 죄인이 될 수밖에 없다. 어떻게 보면 법으로 사람을 괴롭히는 것이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재발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승수씨는 이에 굴하지 않고 2018년 1월16일 여의도 자유한국당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미국 브리지웨어하우스로부터 받았던 편지를 공개하며 “국회의장이 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문희상은 “정치적 목적이 있는 것 같다”며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 ◆ 경력

    ▲ 노무현 대통령과 문희상 비서실장(오른쪽)이 2003년 7월11일 청와대에서 수석보좌관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1970년 해군본부 법제담당관으로 근무했다.

    1973년 숭문당을 설립해 대표를 맡았다.

    1976년 학교법인 경해학원 이사장을 맡았다. 

    1980년 민주연합청년동지회(여연청) 초대회장을 지냈다. 

    1982년 숭문상가·삼정식품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1985년 한국청년회의소(JC) 중앙회장을 지냈다. 

    1992년 14대 총선에 당선되면서 직업 정치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93년 민주당 대표 비서실장을 지냈다.

    1998년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에 발탁됐다.

    1999년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으로 일했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이 됐다.

    2003년 제26대 대통령비서실장이 됐다.

    2004년에 제17대 국회의원에 올랐다.

    2005년 열린우리당 의장을 맡았다.

    2008년에 제18대 국회의원으로 선출됐다.

    2008년에 국회 부의장을 맡았다.

    2012년에 제19대 국회의원에 올랐다.

    2013년 민주통합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으로 일했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이 됐다.

    2018년 7월13일 20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으로 뽑혔다.

    ◆ 학력

    1957년 양주초등학교(현 중앙초등학교)를 졸업했다. 

    1960년 경복중학교를 졸업했다.

    1963년 경복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68년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 가족관계

    철도직 공무원이었던 문흥모씨와 이정희씨 슬하 2남3녀 중 장남이다. 

    야구인 김영조씨의 딸인 김양수씨가 부인이다. 장남 문석균, 장녀 문수현, 차녀 문지현을 두고 있다.

    문희상은 문인숙씨와 가야금 연주가 문재숙씨를 동생으로 두고 있다. 문재숙씨의 딸인 가야금 연주가 이슬기씨와 배우 이하늬씨가 조카다. 

      ◆ 상훈 

    2003년 2월 황조근정훈장을 받았다.

    2005년 11월 청조근정훈장을 받았다.

    ◆ 기타

    촛불혁명 이후부터 글을 쓰기 시작해 2017년 3월22일에 ‘대통령, 우리가 알아야 할 대통령의 모든 것’이라는 책을 냈다. 대통령이 탄생하는 과정부터 국정 운영과 퇴임 이후의 자세, 갖춰야 할 덕목까지 적어 놨다. 

    ‘국민의 정부의 개혁방향과 과제’(1999) ‘생각을 바꾸면 세상이 바뀐다’(2000), ‘문희상이 띄우는 희망메세지 동행’(2007), ‘문희상이 띄우는 희망메세지 동행2’(2011) 등의 저서가 있다.

    해군 중위로 병역을 마쳤다.

    2018년 3월 국회 공직자윤리위원회가 공개한 국회의원 재산 변동사항에 따르면 1억8700만 원의 재산을 보유해 전체 의원 중 다섯 번째로 재산이 적었다.

    본인과 장남 명의로 경기도 의정부 주택과 대지 등 33억 원의 부동산, 1억 원의 예금, 1억5천억 원의 유가증권 등을 보유했으나 장남의 채무가 33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아산 주식 249주를 보유하고 있다.

     
  • ◆ 어록

    “국민의 정부는 시작부터 최악의 경제였지만, IMF를 신속하게 극복할 수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님의 눈물어린 취임사로 상징되는 국민 공감을 통해, 국민을 설득하고 고통을 분담하며 마음을 모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통즉불통 불통즉통(通卽不痛 不通卽痛)이다. 한국 경제의 현주소를 국민에게 정확히 알리며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 (2019/01/03, 기자간담회)

    “2019년은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실현하는 중대 기로가 될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의 거대한 물결 속에서 민생경제의 성패를 가늠하는 1년이 될 것이다. 2019년은 그야말로 중대 분수령의 해다. 대한민국 역사의 전환점이 될 것이다.” (2018/12/31, 2019년 신년사)

    “혼밥하슈?” (2018/12/27, 청와대 오찬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청와대는 야당이 비판하더라도 국민의 편에 서서 할 일을 뚜벅뚜벅 해야 하고, 여당은 야당을 욕하기만 할 게 아니라 모든 책임을 내가 진다는 자세여야 한다. 야당은 야당다워야 하지만, 중요한 것은 반대를 위한 반대, 막말로 비판을 해대면 국민이 짜증을 낸다.” (2018/10/29, 여야 원내대표 정례회동에서)

    “국회는 원래 싸움하는 곳이다. 민주주의는 다양성의 원칙이다. 자기의 주장이 아닌 대변하는 사람의 주장을 마음놓고 떠들고 얘기를 해며 싸우는 장소다. 문제는 품격 낮은 말 싸움을 하는 것이다. 서로 상대방을 헐뜯고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면 국회의 권위가 무너지면서 신뢰도 같이 무너진다. 우리 스스로가 품격을 높이려고 해서 말도 조심하고 역지사지 하면 국민의 신뢰도 가는 것이다.” (2018/10/19, SBS라디오 주영진의 뉴스브리핑)

    “김대중 대통령 당선 이후, ‘덤’이라고 생각했던 삶이었습니다. 그랬던 제가 대통령 비서실장, 당 대표, 국회부의장을 거쳐 지금 국회의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아버님께서 하늘에서 보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래 참 잘했다’는 아버지의 칭찬이 그리운 날입니다. 더 노력하겠습니다. 한반도의 평화, 국민의 삶, 대한민국의 번영 그리고 제가 나고 자라서 뼈를 묻을 의정부의 발전을 위해 전력투구하겠습니다. 초심을 잃지 않고 신명을 바쳐 일하겠습니다. 언제나 자랑스러운 아들로 아버님 앞에 설 수 있도록 후회 없이 살겠습니다.” (2018/09/29, 부친 장산 문흥모 선생 탄신 100주년 추모식 추모사)

    “하해불택세류(河海不擇細流)(강과 바다는 개울물도 마다하지 않는다). 협치 꼭 이루어서 사람사는 세상 만들겠다.” (2018/07/31, 경남 김해 봉하마을 노무현 대통령 묘소를 참배하며)

    “민주당도 폭망했다가 살아났다. 보수도 새로운 기수가 나타날 것이다. 보수의 진짜 가치는 ‘희생과 헌신’이다. 이게 제대로 실천되면 누군가 새로운 깃발을 들고 그 아래 뭉칠 때가 반드시 온다.” (2018/06/17,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6.13 지방선거 결과와 관련해)

    “국회는 민주주의의 끝이자 최후의 보루다. 국회가 펄펄 살아 있을 때 민주주의도 살고 정치도 살았고 (반대로) 국회가 해산되고 힘을 못 쓸 때 민주주의가 죽고 정치도 죽었다. 국민은 격조 있는 국회를 원한다. 신뢰가 살아있는 국회, 국민의 존경을 받는 국회를 만들고 싶다.” (2018/05/16, 국회의장 후보 경선에서 당선 소감을 밝히며)

    “(문재인 정부의 1년은) 기적이다. 참으로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점수로 매기자 하면 A+다.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은 모두 감성적 리더십이 있다. 차이는 노 대통령은 가슴이 뜨겁고 문 대통령은 가슴이 따뜻하다. 한 분은 로맨티스트고 한 분은 휴머니스트다.” (2018/05/10, YTN라디오 ‘김호성의 출발 새아침’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의 첫 1년이 적폐청산에 방점이 있었다면 2년 차에는 적폐청산의 제도화에 초점을 둬야 한다. 적폐청산이 인적청산으로 비치게 되면 국민의 피로감이 누적돼 개혁 동력의 상실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문재인 정부는 너무도 잘했다. 특히 안보 영역이 가장 미숙할 것으로 보였으나 지금은 가장 모범적인 사례가 됐다.” (2018/05/09, 대선승리 1주년 맞은 날 보도자료에서)

    "정치가의 길, 정객의 길은 종이 한 장 차이다. 그러나 다음 선거만 생각하는가, 다음 세대를 생각하는가는 엄청난 차이다." (2016/05/10, 초선의원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저는 김대중 사람이다. 아무리 제가 부인을 한다 해도 부인될 수 없는 사실이다. 예전에 어느 월간지에서는 저를 이야기하면서 "이마에 김대중이라고 쓰여 있다"고 표현하더라.” (2016/02/11, 문희상 블로그에서)

    “한국정치가 잘되기 위해선 ‘청청여여야야언언(靑靑與與野野言言)’이어야 한다. ‘청와대는 청와대다워야 하고, 여당은 여당다워야 하고, 야당은 야당다워야 하고, 언론은 언론다워야 한다’는 것이다.” (2014/10/30,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장일 당시 교섭단체연설에서)

    “개작두가 효과를 봤다. (싸우지 않는 정치의) 제1공로자는 개작두다. 그동안 쓸데없이 많이 싸워서 국민이 지겨워했던 것이다.” (2015/02/05,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장 고별 기자간담회에서)

    “요즘 초재선 의원 가운데 막 나가는 의원이 많다.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 정당은 규율이 생명이다. 해당 행위자는 개작두로 치겠다.”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장을 맡고 사석에서)

    “내가 남은 여력이 있다면 쓰레질이라도 하고 빗질이라도 하겠다.” (2014/09/18, 새정치민주연합의 새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추대됐을 때 회의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대한민국 헌법의 최고 가치라면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민생경제 발전과 사회적 약자 배려를 위한 복지완성은 국가존재이유다. 선별적이냐 보편적이냐는 양자택일적 논의로 끌고 갈 것이 아니라 먼 미래를 내다본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 구조를 이룰 수 있는 복지설계가 필요한 시점이다.” (2011/04/12, 보편적 복지 논쟁과 관련해)

    “노 전 대통령을 못 지키고 이렇게 떠나보낸 내 자신에 대한 분노, 무섭고 잔인한 이 시대에 대한 분노가 들끓어 오른다. 한없이 후회스럽고 부끄럽고 부끄럽다. 다시는 비겁한 침묵으로 반칙과 특권에 희생되는 제2의 노무현을 만들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을 한다. 이것이 결코 끝이 아니고 패배가 아닐 것이다.” (2009/06/01,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후 홈페이지에 올린 글)

    “대결과 대립의 마이너스 정치가 아니라 국민 대통합과 상생의 플러스 정치, 새로운 정치가 등장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보수세력만이 지켜갈 수 있다는 식 자체가 독선이자 오만이다. 약자 보호를 좌파나 진보로 몰아붙이는 것 역시 옳지 않다. 이제는 편가르기식의 극단적인 이분법적 사고와의 결별이 필요하다.” (2008/05/26, 민주당 당선자 워크숍)

    “우리가 뭉쳐있어야 우리를 믿고 모든 반한나라 세력이 들어올 수 있는 것인데 분열신당으로 갈기갈기 쪼개져 있으면 누가 우릴 믿고 들어오겠느냐. 그래도 아직은 우리가 여당이고 원내 제1당이다. 사분오열 지리멸렬의 최악의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서는 안되고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 한다.” (2007/01/24,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탈당 사태를 놓고)

    “당과 청와대가 조건없이 만나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해야 한다. 당청관계에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자세는 매우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당청이 무조건 똑같은 생각을 갖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한다는 것은 민주주의가 확립된 세상에서 바람직하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다.” (2006/11/30,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

    “만감이 교차한다. 의원총회가 열리면 늘 맨 뒤에만 앉아 있었는데 이렇게 앞에 나와 있으니까 내자리 같지 않아 좌불안석이다. 내가 3선짼데 의총에서 발언하는 게 오늘이 처음이다. 나는 재주가 메주라 발언을 잘 못하는데 의장이 되니까 무슨 회의만 하면 꼭 모두발언이라는 걸 해야된다고 해서 아주 난감하다.” (2005/04/06, 열린우리당 의장 취임 후 첫 의원총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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