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크라이나 남부 오데사에서 2026년 10월9일(현지시각) 발생한 러시아의 드론공격으로 트럭들이 불길에 휩싸여 있다. <연합뉴스> |
2022년 2월 전쟁이 발발하면서 전 세계가 떠들썩했지만, 4년이 넘도록 전선이 정체된 것처럼 보여 세인의 관심은 점차 식어갔다. 더구나 올해 2월 미국-이란 전쟁이라는 새로운 빅 뉴스가 등장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멀리 유럽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우리와 무관할 수 없다. 특히 한국-러시아 관계를 고려한다면 주의 깊게 추이를 살펴야 한다. 러시아는 현대자동차 등 우리 기업들이 오랫동안 공을 들여온 지역이며, 국제정치적 가치가 매우 크다. 러시아와 앙숙인 유럽과 달리, 우리는 한-러 관계의 복원을 준비해야 한다.
여기에 북한의 우크라이나 파병은 북-러 관계 강화로 이어졌고 북한은 이를 계기로 군사적, 경제적 지원을 얻고 있다. 한-러 관계가 멀어지면서 북-러 관계가 가까워진다면 한반도 정세에 좋을 게 없다. 러시아도 한-러 관계 복원을 바라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보여왔다.
물론 국내 정치권과 여론, 언론은 지금도 ‘러시아는 영토 야욕으로 민주국가 우크라니아를 침공했다’는 서사가 지배하고 있다. 미국과 서유럽 주류 정치권의 태도를 그대로 이어받았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를 타격하면 기뻐하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되받아치면 민간인 피해 소식을 키운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진짜 ‘원인’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동진 정책이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전쟁을 피하려 여러 차례 노력했다는 사실은 국내 주류 언론에 등장하지 않는다. 이번 전쟁의 본질을 둘러싼 논의는 깊은 토론이 필요한 만큼 일단 접어두자. 대신 당장 주목할 대목이 있다. 이번 전쟁은 어떻게 끝날까. 누가 이길까. 전쟁 뒤 국제질서는 어떻게 형성될까.
물론 이번 전쟁이 당장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전쟁의 양상이 바뀌고 있음을 놓치면 곤란하다. 대규모 정전으로 수도 키이우가 수시로 마비되고 있을 뿐 아니라 흑해 연안의 오데사 항구가 사실상 닫히면서 물류에 중대한 차질이 빚어졌다. 미국은 발을 빼고 있고, 유럽은 지원할 돈이 말라간다. 이제 ‘전쟁 이후’를 살펴볼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 셈이다.
| ▲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비즈니스 센터가 2026년 9월23일(현지시각) 러시아 드론공격으로 파괴된 뒤 검은 연기에 휩싸여 있다. <연합뉴스> |
율리아 멘델(Iuliia Mendel , 40)은 지난 9월15일(현지시각) 영국 매체 스펙테이터을 통해 ‘젤렌스키의 전략은 국가적 자살’(Zelensky’s strategy is national suicide)이라는 제목의 장문의 글을 공개했다. 그는 젤렌스키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19년부터 2021년까지 젤렌스키의 공보비서관 겸 대변인으로 일했다. 전쟁 발발 당시에는 현직에서 물러난 상태였으며, 현재 미국에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2024년까지 이번 전쟁을 강력하게 지지했으나, 2025년부터 회의를 갖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이번 글에서 전쟁의 승패에 머물지 않고 우크라이나가 현재 ‘국가적 자살’로 나아가고 있다고 단정한다. 지도에서 사라지는 건 아니고, 국가 기능이 마비된 잔존국가(rump state)가 될 것이라 주장했다. 근거로 다섯 가지를 들었다.
첫째, 우크라이나는 현재 인구 재앙에 직면해 있다. 이 나라는 1991년 소련 해체로 독립국이 됐을 때 대략 5200만 명의 인구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현재 인구는 2000만~2500만 명으로 반토막이 났다. 더구나 남아 있는 인구의 절반이 노인이다.
우크라이나는 현재 병력 자원이 고갈돼 길에서 젊은이들을 마구 잡아가고 있음은 외신도 확인하고 있는 바이다. 전쟁으로 인한 사상자 규모를 두고 양쪽은 극단적으로 엇갈린 주장을 내놓지만, 우크라이나 쪽의 병력 부족은 양지의 사실이다. 인구가 없는 나라에 미래는 없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둘째, 이 나라가 직면하고 있는 경제적 재앙이다. 러시아는 현재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전선에 머물지 않고 서부 후방의 경제기반시설을 체계적으로 파괴하고 있다. 특히 에너지 시설과 물류 시설에 집중하고 있다. 경제가 돌아가지 않으면서 현재 서방의 원조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현재 우크라이나의 국가부채 규모는 국내총생산(GDP)의 110% 수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셋째, 이 나라는 영토 재앙에 빠져 있다. 우크라이나는 이미 영토의 20%를 러시아에 잃었다. 전황을 살펴볼 때 이를 되찾을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더구나 이렇게 상실한 지역은 자원과 공업시설이 몰려 있다. 전쟁 전에 GDP의 25%, 제조업의 30%가 거기서 나왔다. 아, 인구의 25%도 거기 있었다.
불길한 소식은 하나 더 있다. 러시아는 앞으로 전쟁이 계속되면 오데사 항구를 먹으려 한다. 그곳을 빼앗기면 우크라이나는 내륙국가로 찌그러든다. 이는 또 다른 경제적 재앙이 될 것이다. 전쟁 전에 흑해를 통한 수출입이 경제의 큰 몫을 차지했는데, 그길이 끊어질 수도 있다.
넷째, 이럴 때 당연히 나타나는 정치적 재앙이다. 멘델은 전쟁이 수년간 이어지면서 우크라이나의 민주주의가 체계적으로 파괴됐다고 진단한다. 야당 탄압은 당연해졌고, 표현의 자유는 사라졌다. 전쟁이 끝나더라도 회복이 쉽지 않을 것이다. 특히, 집권층을 중심으로 대규모 부패 구조가 자리를 잡았다는 사실은 서구 언론도 부인하지 못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2022년 전쟁 발발 이전에도 엘리트층의 부패는 아주 유명했다.
마지막으로 우크라이나의 안보 재앙을 꼽았다. 우크라이나는 현재도 안보를 위해 NATO 가입을 추진하고 있다. NATO 가입이 안 된다면 미국의 안전 보장이라도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와 관련해 멘델은 우크라이나의 NAVO 가입은 완전히 불가능하다고 못박고 있다. 미국은 물론이고 유럽도 앞으로 안전보장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 내다봤다. 한마디로 홀로 나라를 지켜야 한다. 그런데 거기 홀로 선 우크라이나는 인구와 영토, 경제력이 이미 반토막 이상이 나있다.
물론 멘델의 주장이 모두 틀렸을 수 있다. 미국과 유럽이 총력을 다해 지원하고, 우크라이나 병사들이 천재적 전술로 무장하고 용맹하게 전선으로 향할 수도 있다. 러시아는 현재 전쟁경제 체제로 매년 3%대의 경제 성장을 누리고 있지만 아프가니스탄 전쟁(1979~1989년) 때처럼 속으로 골병이 들어 쓰러질지도 모른다.
다만 많은 전문가들은 이번 전쟁이 협상을 통해 마무리될 가능성은 없다고 바라본다. 서방의 ‘러시아 공포’가 너무나 크다. 2028년 목표의 서유럽 재무장 때까지 우크라이나가 버텨주길 바라는 사람들도 많다. 이에 다수는 이번 전쟁이 결국 전장에서 결정될 것으로 바라본다. 그렇다고 해도 지금 우리가 전쟁 이후를 준비해야 한다는 과제는 없어지지 않는다. 안우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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