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엔비디아가 HBM을 비롯한 메모리반도체 가격 상승에도 수익성 악화를 감수하고 물량 확보에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엔비디아 데이터서버용 GPU 제품 홍보용 사진. <엔비디아. |
[비즈니스포스트] 엔비디아가 메모리반도체 원가 상승분을 인공지능(AI) 반도체 고객사에 전가하는 대신 수익성 악화를 감수하는 쪽으로 전략을 수립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서버용 D램과 고대역폭 메모리(HBM)의 수요 감소나 가격 인하 압박에 부담을 안게 될 가능성은 낮아졌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27일(현지시각) 월스트리트저널 계열 투자전문지 배런스는 “엔비디아는 내년에도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해 메모리반도체 물량을 적극 확보하는 전략을 쓸 것”이라고 보도했다.
엔비디아는 26일 자체 회계연도 2분기(5~7월) 실적 발표에서 메모리반도체의 가격 상승을 근거로 매출총이익률을 비롯한 수익성 전망치를 다소 낮춰 내놓았다.
인공지능 반도체 기반 서버용 제품의 판매가를 인상하기로 했지만 원가 상승분을 모두 상쇄하기는 역부족인 것으로 분석된다.
배런스는 엔비디아가 메모리반도체 가격 인상을 고객사에 모두 전가하는 대신 상당 부분을 직접 부담하는 방향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투자기관 스티펠의 분석을 전했다.
루벤 로이 스티펠 연구원은 “엔비디아가 일부 제품의 공급가를 높이기로 했지만 모든 라인업에 걸쳐 광범위한 가격 인상은 이뤄지지 않았다”며 “경영진은 상당 부분을 회사에서 부담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진단했다.
이는 메모리반도체 가격 상승 때문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의 공급 물량이 줄어들 수 있다는 시장의 우려를 낮추는 요인으로 평가됐다.
배런스는 엔비디아가 공급망 관련된 계약 규모를 자체 회계연도 1분기 기준 1190억 달러(약 164조 원)에서 2790억 달러(약 385조 원)로 두 배 넘게 늘렸다는 점도 근거로 제시했다.
이는 대부분 메모리반도체 구매 계약으로 추정되는 만큼 엔비디아가 가격 인상에도 적극적으로 물량을 확보하고 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투자기관 윌리엄블레어의 세바스티앙 나지 연구원은 엔비디아의 공급망 계약 가운데 절반 이상의 금액이 메모리반도체와 관련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나지 연구원은 “메모리반도체 수요가 여전히 공급을 크게 웃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 등 기업에 긍정적 신호”라고 덧붙였다.
삼성전자도 고대역폭 메모리 등 주요 부품을 공급하는 핵심 협력사인 만큼 엔비디아가 반도체 가격 인상에도 적극적으로 물량을 확보한다면 수혜를 볼 공산이 크다.
| ▲ SK하이닉스 고대역폭 메모리(HBM) 기술 홍보용 이미지. < SK하이닉스 > |
엔비디아의 회계연도 2분기 영업이익은 637억3400만 달러(약 88조 원)로 지난 회계연도 2분기와 비교해 124%가량 증가했다.
막대한 현금을 메모리반도체 구매에 활용해 인공지능 반도체 경쟁사들보다 먼저 물량을 선점하며 공급 부족 사태가 장기화될 가능성에 대응하는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엔비디아가 메모리반도체 가운데 주로 HBM 재고를 충분히 확보하기 위해 협력사들과 구매 약정을 늘리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이 공급하는 HBM은 인공지능 반도체의 성능 한계를 끌어올리는 데 필수 부품인 만큼 엔비디아의 경쟁력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HBM 공급이 최근 1년 가까이 수요를 크게 밑도는 상황이 이어져 오면서 엔비디아가 물량을 선점하는 데 속도를 내는 것이라는 분석도 이어졌다.
다만 월스트리트저널은 중장기 관점에서 볼 때 엔비디아의 대규모 구매 약정이 재무 리스크로 돌아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반도체 공급이 부족한 시기에는 장기 구매 약정이 효과적 수단으로 쓰일 수 있지만 업황이 나빠지면 이미 체결한 계약이 손실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과거 ‘닷컴버블 붕괴’ 시기에 네트워크 인프라 기업이 사전에 계약된 구매 물량을 이행하며 재고가 늘어 큰 손해를 본 사례를 예시로 들었다.
결국 인공지능 시장이 침체되면 엔비디아는 반도체 판매량이 줄어드는 데 이어 메모리 협력사에 지불해야 할 자금 부담도 커지며 이중고를 겪을 것이라는 분석이 이어졌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엔비디아의 메모리반도체 공급망 선점은 당장 성장 속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손실을 키우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월스트리트저널은 당장 엔비디아의 인공지능 반도체 수요는 여전히 강한 것으로 파악된다며 빅테크 기업들이 공격적 수준의 데이터센터 등 인프라 투자 계획을 유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