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8일(현지시각) 네덜란드 아른험 인근 라인강이 더위로 인해 수위가 낮아져 강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극심한 폭염에 불타는 유럽에서 주요 하천의 수위가 낮아지고 수온이 위험 수준까지 오르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유럽의 하천들은 물류망 역할과 원자력 발전소에 냉각수를 공급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계속 유량이 줄고 수온이 오르면 물류가 끊긴 상태에서 정전까지 발생하는 복합 위기가 찾아올 가능성이 커지는 모양새다.
◆ 극한 폭염에 말라붙은 라인강
17일 주요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서유럽에서 발생한 극한 폭염 영향에 프랑스, 독일 등 주요국들의 물류망과 발전소들이 마비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블룸버그는 지난 13일(현지시각) 서유럽 국가들이 핵심 물류망으로 사용하는 라인강의 수위가 수십 년 만의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다고 보도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서쪽에 위치한 라인강 수운 거점 카우브를 기준으로 보면 강 수위가 1미터 아래로 하락했다.
블룸버그가 종합한 독일 연방 정부 데이터에 따르면 카우브 인근 강 수위가 7월에 이 정도까지 떨어진 것은 1990년 이후 36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서유럽 국가들은 스위스에서부터 네덜란드 로테르담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수운망을 라인강을 통해 이용하고 있다. 라인강 수운망을 통해 독일과 프랑스 등에서 생산된 석탄, 화학 제품, 철광석 등이 운송된다.
수운중개업체 리버레이크는 블룸버그를 통해 "수위 하락으로 현재 상류 라인강 목적지까지 운송할 수 있는 물동량은 극히 제한적이며 의미있는 상황 개선이 전망되지 않고 있다"며 "카우브에서 상류로 향하는 바지선의 최대 허용 화물용량은 약 460톤인데 이는 정상 수준의 약 5분의 1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블룸버그는 독일 내 석탄발전소들이 라인강 수운에 석탄 공급을 의존하기 때문에 정전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 ▲ 지난달 23일(현지시각) 프랑스 골페치 원자력 발전소 모습. <연합뉴스> |
◆ 끓어오르는 강물에 원전 냉각수 공급도 차질
프랑스에서는 수온 상승으로 원전 운영이 어려워지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13일(현지시각) 가디언은 프랑스가 극한 폭염으로 정전 위기를 겪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프랑스 전역에 위치한 하천의 수온이 이례적으로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각지에 위치한 강들은 프랑스가 사용하는 전력의 약 80%를 생산하는 원전들에 냉각수를 공급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문제는 강의 수온이 지나치게 높아지게 되면 환경 영향 문제 때문에 원전을 냉각시킬 용도로 강물을 끌어오는 것이 불가능해진다는 점이다.
실제로 프랑스전력공사(EDF)는 이번 달 초에 강 수온이 위험 수준에 근접하자 골페치 원전의 원자로 하나를 일시적으로 가동 중단했다.
14일(현지시각)에는 강 수온 문제로 노장-쉬르센 원전의 가동도 일부 제한하기로 했다.
문제는 강 수온을 높이고 있는 기온이 내려갈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가디언은 유럽 각국 기상청들이 제시한 발표들을 종합해보면 극한 폭염이 7월 넷째 주까지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영국 기상예보업체 '메트데스크'의 테오 구사로프 워터리스크 전문가는 가디언을 통해 "유럽 대부분 지역에서 평균 이상의 기온, 평균 이하의 강수량이 겹치면서 강, 생태계, 에너지 기반 시설 전반에 대한 압력이 가중되고 있다"며 "이례적으로 따뜻해진 강물은 에어컨 가동으로 냉각 수요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도 전력 생산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에어컨 보급 주장에 정전 위기는 더 가까워져
전력 공급 차질 우려에도 불구하고 유럽의 정치인들은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가 증가하는 것을 막으려면 에어컨을 대폭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할 코보스크 유럽의회 폴란드 의원은 유로뉴스를 통해 "공장과 가정 모두에 필요한 에어컨의 수와 용량을 가까운 미래에 반드시 늘려야 한다"며 "이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강조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유럽 내 가구당 에어컨 보급률은 약 20%에 불과하다. 기후가 온화해 에어컨의 필요성이 낮았던 데다 주요 대도시에 오래된 건물이 많아 문화재와 도시 미관을 보호하기 위한 규제로 인해 에어컨 설치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유럽 각국의 정치인들이 에어컨 규제를 완화해 설치를 전면적으로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장 뤽 크뤼케 벨기에 기후부 장관도 유로뉴스와 인터뷰에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여야 하는 것은 맞지만 우리는 변화한 기후에도 적응해야 한다"며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건강, 경제, 일상생활, 복지, 생물다양성에도 심각한 영향이 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미래 영향을 고려하면 건물 내 강물 순환 시스템, 도시 녹지화, 히트펌프 등 지속가능한 냉방 대안이 포함된 '그린딜' 전략을 계속 추진하는 것이 해결책이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시아란 커프 유럽 녹색당 공동의장은 유로뉴스를 통해 "유럽은 지금 선택에 직면해 있다"며 "미래에 사람들의 안전을 지켜줄 그린딜 조치를 약화시킬 것인지 아니면 강화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