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미국 정부의 중국 인공지능 반도체 수출 규제와 관련해 비판의 목소리를 더욱 키우고 있다. 중국 화웨이의 기술 추격에 더 속도가 붙을 가능성을 우려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
[비즈니스포스트]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미국 정부의 인공지능(AI) 반도체 중국 수출 규제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한층 더 높이며 미국이 받게 될 역풍을 경고했다.
엔비디아가 당장 중국 고객사 수요를 놓치는 것을 넘어 화웨이를 비롯한 현지 기업에 중장기적으로 기술 경쟁력과 시장 주도권을 빼앗길 수 있다는 두려움이 반영되어 있다.
증권사 번스타인 연구원은 7일 미국 CNBC와 인터뷰에서 “엔비디아가 중국에서 사업을 할 수 없게 된다면 관련 시장 전체가 화웨이에 넘어가고 말 것”이라고 말했다.
해당 연구원은 “젠슨 황 CEO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며 그의 의견에 100% 동의한다고 덧붙였다.
젠슨 황은 앞서 CNBC를 통해 중국의 거대한 인공지능 시장에서 성장 기회를 놓친다면 엔비디아뿐 아니라 미국 경제와 기업들이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 인공지능 시장이 2~3년 안에 500억 달러(약 70조 원)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며 이는 미국에도 상당한 매출과 세금, 일자리 창출 기회를 불러올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엔비디아를 비롯한 미국 기업들이 중국의 인공지능 산업 성장에 기회를 잡아 반도체와 서버를 비롯한 주요 제품을 수출한다면 큰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의미다.
젠슨 황의 발언은 미국 정부의 정책 변화를 유도하기 위한 목적을 두고 있다. 트럼프 정부가 최근 엔비디아 인공지능 반도체의 중국 수출을 사실상 전면 금지했기 때문이다.
현재 엔비디아 실적에서 중국 고객사들의 인공지능 반도체 수요가 차지하는 비중은 적지 않다. 이번 분기에만 미국의 규제로 55억 달러(약 7조7천억 원)의 손해를 예측할 정도다.
트럼프 정부는 미국의 고성능 반도체를 활용하는 중국 기업들이 인공지능 기술 발전에 뛰어난 성과를 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 수출 규제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규제 조치는 바이든 정부에서도 이어져 왔고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 양당의 지지를 받는다.
젠슨 황이 엔비디아 반도체 중국 수출 제재조치 완화와 관련해 미국 정부와 양당 정치인들을 모두 설득하는 일은 자연히 어려운 과제일 수밖에 없다.
그는 미국 정부의 계속된 반도체 및 기술 규제 강화가 오히려 화웨이를 비롯한 중국 기업의 자체 기술력 강화를 자극하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주장을 펼쳐 왔다.
다만 이는 중국 정부에서 미국의 규제 완화를 요구하는 논리와 상당 부분 일치해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 화웨이 '어센드' 인공지능 반도체 기반 서버 홍보용 이미지. |
중국 정부 입장을 반영하는 관영매체 글로벌타임스는 젠슨 황의 이번 발언이 나온 뒤에도 논평을 내고 “미국의 반도체 규제는 근시안적”이라며 “핵심 기술 분야에서 중국의 발전을 이끄는 데 불과한 시도가 될 수 있다”고 전했다.
젠슨 황이 자칫하면 엔비디아 반도체 수요를 놓치지 않기 위해 중국 정부의 편에 서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처지에 놓인 셈이다.
그러나 최근 화웨이 인공지능 반도체가 실제로 엔비디아를 따라잡을 만큼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는 정황이 파악되며 젠슨 황의 주장에 다소 힘이 실릴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화웨이는 자국 내 핵심 고객사를 대상으로 차세대 인공지능 반도체 ‘어센드910D’ 공급을 타진하기 위한 테스트를 진행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어센드910D는 엔비디아 인공지능 반도체 주력 상품이던 ‘H100’과 필적하거나 이를 뛰어넘는 성능을 구현하겠다는 목표를 두고 개발되는 제품이다.
화웨이는 미국 정부가 엔비디아 인공지능 반도체에 중국 수출 규제를 적용한 뒤로 신제품 개발 및 상용화에 더욱 속도를 내고 있다.
알리바바와 텐센트, 바이트댄스 등 현지 빅테크 고객사들이 엔비디아 인공지능 반도체를 대체할 수 있는 제품을 자국에서 사들이려는 수요가 급증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화웨이는 자국 파운드리 업체 SMIC의 기술 부족에 따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직접 반도체를 제조하는 방안도 추진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결국 미국의 대중국 규제가 화웨이의 기술 발전을 자극하고 있다는 젠슨 황의 주장도 단순히 엔비디아의 단기적 실적 타격을 우려한 발언에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엔비디아 인공지능 반도체는 아직 화웨이를 비롯한 중국 기업의 제품과 비교해 뛰어난 성능을 보이고 있다.
미국 정부가 젠슨 황의 의견을 받아들여 수출 규제를 완화하고 중국에 엔비디아 제품 판매를 허가한다면 화웨이가 현지 고객사 수요를 확보하기는 자연히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다만 중국 ‘딥시크’를 비롯한 인공지능 기술 발전 속도에 충격을 받은 미국 정부와 정치권에서 엔비디아 반도체 공급을 다시 허가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리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미국 양당 의원들은 우선 엔비디아 인공지능 반도체가 중국으로 우회수출되는 일을 막도록 하는 새 법안을 준비하며 규제를 한층 더 강화하는 쪽에 무게를 싣고 있다.
자연히 이러한 대응 방향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젠슨 황의 목소리도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젠슨 황은 “미국의 국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정책이라면 적극 지지할 의사가 있다”면서도 “미국의 인공지능 기술을 전 세계에 수출해 선보여야 할 때”라고 말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