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이 국내 유통업계 최초로 매출 40조 원 시대를 열었다. 김 의장의 눈은 이제 '글로벌'을 향하고 있다. <그래픽 씨저널> |
[씨저널] “CBEC(크로스보더 이커머스)가 국내 이커머스 사업자의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삼정KPMG 경제연구원에서 발간한 ‘성숙기에 접어든 이커머스 시장의 현주소와 도전 과제’ 보고서의 한 대목이다.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이 다시 한 번 국내 유통업계의 기록을 새로 썼다. 2024년 기준 연매출 41조 원을 돌파하며 국내 유통업계 최초로 ‘40조 시대’를 연 것이다.
영업이익 역시 6천억 원을 넘기면서 ‘규모 있는 성장’에 더해 ‘수익성’까지 확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커머스 사업뿐 아니라, 쿠팡이츠(배달), 쿠팡플레이(콘텐츠) 등 사업 다각화도 본격 궤도에 올라있다.
그러나 이런 성공에도 불구하고
김범석 의장의 시선은 ‘한계’에 향해 있다. ‘왜 쿠팡은 확장을 멈추지 않는가’라는 질문 뒤에는, 한국 내수시장이라는 구조적 제약에 대한 고민이 자리잡고 있다.
◆ 한국에서 잘나가도 불안한 이유, ‘내수 시장의 한계’
쿠팡의 핵심은 로켓배송을 중심으로 한 이커머스 사업이다. 쿠팡은 자체적으로 구축한 물류 인프라를 기반으로 빠른 배송과 직관적 사용자 경험을 앞세워 한국 이커머스 시장을 빠르게 장악했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온라인 쇼핑 이용률이 높은 국가 중 하나이며, 모바일 결제 등에 대한 수요와 인프라도 갖춰져있다. 이런 한국 시장의 특수성은 쿠팡이 빠르게 성장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문제는 ‘지속 가능성’이다. 인구 5천만 명 수준의 제한된 시장 규모, 포화 상태에 가까운 경쟁 구조는 쿠팡의 장기적 성장에 커다란 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신사업, 쿠팡이츠와 쿠팡플레이 역시 로켓와우 회원 유지를 위한 보완재 성격이 강하다. 쿠팡의 본질이 이커머스인 이상, 내수만으로는 장기적 확장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 글로벌 확장의 기반은 대만, 성과도 가시권 들어왔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김범석 의장은 가장 처음 일본을 선택했다. 하지만 시범적으로 시작한 이른바 ‘퀵커머스’ 모델은 편의점 위주 소비 습관이 정착돼있는 일본에서는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했고, 결국 쿠팡은 일본 시장 진출 2년 만에 철수를 결정했다.
일본 다음으로
김범석 의장이 낙점한 곳이 바로 대만이다. 쿠팡은 현재 대만에서 두 곳의 물류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2024년에는 유료 멤버십 ‘로켓와우’를 출시하고 본격적으로 한국과 똑같은 사업 모델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쿠팡의 대만 사업은 순항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만 내에서 쿠팡 앱 다운로드 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쿠팡Inc의 2024년 4분기 실적 발표에 따르면 대만 로켓배송의 순매출은 전분기(3분기)와 비교해 23% 증가했다.
김범석 의장은 대만에서 한국의 성공이 재현되고 있는 이유로 이른바 ‘한국 플레이북’의 작동을 꼽았다. 물류 네트워크 기반 로켓배송, 유료회원제, 직관적인 UI와 UX 등이 바로 그것이다.
김 의장은 2024년 4분기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한국에서 만들어낸 플레이북이 성공적으로 적용된 대표 사례가 대만”이라고 말했다.
◆ 왜 대만인가, 쿠팡 모델에 최적화된 시장 구조
쿠팡의 로켓배송 모델은 물류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물리적 조건이 뒷받침 돼야 한다. 핵심은 좁은 국토, 높은 인구 밀도, 수도권 중심의 소비구조다.
이런 지점에서 대만은 한국과 유사한 시장 특성을 지니고 있다. 수도 타이베이를 중심으로 인구가 밀집되어있고, 영문 위키피디아 집계 기준 인구밀도는 세계 17위인 한국보다 7계단이나 높은 세계 10위다.
온라인 쇼핑과 전자결제에 익숙한 디지털 소비자층이 형성돼 있다는 것 역시 한국과 비슷하다. 그야말로 쿠팡에게 대만은 ‘두 번째 한국’인 셈이다.
▲ 대만은 쿠팡이 한국의 성공모델을 이식하기에 가장 알맞은 시장으로 꼽힌다. <그래픽 씨저널> |
◆ 다음 타깃은 어디인가, ‘좁고 빠른’ 시장에 집중될 가능성
쿠팡의 글로벌 전략은 문어발식 확장보다는 ‘선택과 집중’의 형태로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플랫폼’보다 ‘물류’에 방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물류 인프라를 구축하기 쉬운 국가에 우선적으로 집중하는 것이 리스크도 적고 사업 성장에도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살펴보면 쿠팡 물류 사업의 다음 후보지 역시 동남아시아 주요 도시국가들이 될 가능성이 높다.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필리핀, 베트남, 태국 등은 대만이나 한국처럼 도시의 인구밀도가 매우 높고 온라인 쇼핑 및 모바일 결제가 빠르게 보급되고 있다. 아직 아마존 등 글로벌 플랫폼이 시장을 완전히 점유하지 못하고 있기도 하다.
일본 등 소위 선진국 시장을 쿠팡이 아예 놓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일본에서의 실패 사례를 거울삼아 대만이나 동남아시아 시장과는 다른 전략을 펼 가능성이 높다.
쿠팡은 2025년 1월14일 일본 미나토구에서 ‘쿠팡이츠’ 사업의 시범 운영을 시작했다. 막대한 돈이 들어가는 물류 사업이 아니라, 플랫폼 사업으로 일본 시장을 다시 뚫어보겠다는 것이다.
물류업계의 한 관계자는 “대규모 물류센터를 짓는 데 들어가는 막대한 자금, 사용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할인과 이벤트 등 쿠팡의 사업에는 ‘계획된 적자’ 구간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쿠팡의 대만 사업도 초기 적자를 감수하며 확장하고, 이후 그 확장을 기반으로 수익을 내는 구조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윤휘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