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녹십자가 20년 넘게 개발한 탄저백신이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녹십자와 질병관리청은 생화학 테러 대응 의약품으로 탄저백신을 공동으로 개발했다. 현재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탄저백신이 국산화된다면 정부의 필수 비축 수요 덕분에 녹십자의 안정적 매출 확보가 가능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 녹십자가 질병관리청과 공동개발한 탄저백신이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
4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녹십자와 질병관리청이 공동 개발한 탄저백신 'GC1109'이 올해 안으로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를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해당 백신은 방어항원(PA) 단백질을 주성분으로 개발한 세계 최초 재조합 단백질 탄저백신이다. 기존 세균 배양 백신의 문제점인 잔존 탄저균 독소인자에 의한 부작용 유발 가능성을 개선한 것이 특징이다.
질병청은 2023년 10월말 식약처에 GC1109 품목허가 승인을 신청했다. 생물학적 제제가 식약처 승인을 받기까지 약 1년이 걸리는 점을 감안할 때 연내 승인이 유력하다고 볼 수 있다.
녹십자는 이미 탄저백신 생산 시설을 갖추고 있다. 허가를 받는 즉시 생산할 수 있어 2025년부터는 녹십자 매출에 탄저백신 매출이 반영될 것으로 전망된다.
탄저균은 열악한 환경에서 장기간 생존 가능하며 공기 중 살포가 용이한 특징이 있어 테러에 생물학 무기로 악용될 가능성이 높다.
탄저균은 치명률도 높다. 백신의 효과성과 안전성을 확인하기 위한 임상3상도 동물실험으로 대체 진행했을 정도다. 탄저포자는 2001년 911테러가 일어난 지 한 달 뒤 미국 전역에 우편물을 통한 생물테러에 사용돼 22명을 감염시켰고 이 가운데 5명이 사망했다.
높은 치사율로 인해 탄저백신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된다.
미국에서는 탄저균 노출 위험이 있는 지역에 배치되는 군인에게 필수로 백신 접종을 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생물테러 방지 차원에서 탄저백신을 비축하고 있지만 아직 국산화된 백신이 없어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질병청 주도로 1997년 백신 국산화를 준비한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는 탄저백신 국산화를 위해 1997년 개발에 착수했고 녹십자는 2002년 개발에 참여했다.
▲ 녹십자가 질병관리청과 공동개발한 탄저백신 'GC1109'(사진).<질병관리청> |
국내에 비축된 탄저백신은 미국 제약사 ‘이머전트’에서 만든 '바이오트락스’로 알려졌다. 바이오트락스는 1970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탄저균 노출 전 예방에 효과가 있는 백신 바이오트락스를 승인받았다.
다만 바이오트락스는 한 병(10회 복용분)당 약 900달러에 달하며, 최소 5회 접종이 필요해 경제적 부담이 크다. 이번 탄저 백신 국산화가 더 중요한 이유다.
탄저병은 주로 동물에서 발생하고 탄저균에 감염된 동물과 접촉하는 인간도 감염될 수 있다. 이같은 특성 때문에 주로 군인, 특정 직업군(축산업 종사자, 실험실 및 연구원, 테러 대응 요원), 또는 지역적으로 탄저 노출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에게 사용된다.
투여 대상이 한정적이기 때문에 상업적 수익이 크지 않을 가능성이 있지만 녹십자로서는 안정적인 국가 비축 수요를 기대해 볼 수 있다.
최근 북한으로부터 오물풍선 테러가 지속되고 있는 만큼 이를 방지하기 위한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 오물풍선은 대부분 생활 쓰레기였지만 앞으로 탄저균과 천연두 등과 같은 생물학전 무기가 담길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주영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도 10월 복지위 국정감사에서 계속되는 북한의 오물풍선에 커지고 있는 국민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해 탄저 백신 비축률을 늘릴 필요성이 있다는 뜻을 보이기도 했다.
탄저백신을 국산화한 나라는 미국과 영국뿐이며 이번 식약처 승인을 받으면 한국이 3번째가 된다.
녹십자 관계자는 “현재 탄저 백신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며 "매출은 어느 정도 보장되어 있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국책 사업인 만큼 탄저백신의 예상 매출 규모나 수익 구조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김민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