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Is ?]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대표이사 회장

김현정 기자
2018-10-23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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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대표이사 회장.


    ◆ 생애

    박찬구는 금호석유화학 대표이사 회장이다.

    금호석유화학을 중심으로 금호아시아나그룹에서 독립했다. 형인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오랫동안 법적 다툼을 이어왔으나 화해하고 각자 경영에 전념하고 있다.

    1948년 8월13일 광주에서 박인천 금호아시아나그룹 창업주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미국 아이오와대학교 통계학과를 졸업하고 금호실업 이사로 그룹에 발을 들여놓았다.

    금호석유화학 대표이사 부회장을 역임하고 금호아시아나그룹 화학부문 회장에 올랐다. 박삼구 회장과 경영권을 두고 다투는 과정에서 이사회에서 해임됐다가 채권단의 중재로 다시 복귀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에서 금호석유화학그룹을 계열분리해 현재는 독립경영을 하고 있다.

    통계학과 출신답게 꼼꼼하며 직원들과 의사소통을 중요시한다.

    ◆ 경영활동의 공과

    △ 금호석유화학 실적 개선
    금호석유화학은 2018년 실적을 크게 개선하며 2011년 이후 처음으로 영업이익 5천억 원 돌파가 예상된다.

    금호석유화학은 2018년 1분기와 2분기 연속 1천억 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냈다. 주력 제품인 페놀유도체업황이 크게 개선되며 전체 이익을 견인했다.

    수년 동안 금호석유화학은 부진을 면치 못했다. 주력사업인 합성고무 시황이 침체된 탓이었다. 

    금호석유화학은 2011년 8390억 원 규모의 영업이익을 거둔 뒤 2012년부터 영업이익이 1천억 원대 중반에 그쳤다. 

    박찬구는 주력사업의 기초 체력을 다지는 가운데 주력 사업과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는 융합사업을 모색했다. 

    금호석유화학은 2017년 들어 합성고무 시황이 개선되고 페놀유도체(BPA)사업의 이익폭이 크게 증가함에 따라 영업이익 2626억 원을 올렸다. 

    △울산 고무공장 NB라텍스 생산능력 증설
    박찬구는 금호석유화학의 글로벌 1위 ‘NB라텍스’ 지위를 공고히 하기 위해 울산 고무공장 NB라텍스 생산능력 증설을 결정했다. 

    NB라텍스는 얇고 가볍지만 쉽게 파손되지 않는 의료용 장갑의 원료로 주로 쓰인다. 산업용·조리용 등으로도 활용된다. 

    금호석유화학은 2018년 6월 울산고무공장 NB라텍스 생산능력을 기존 연간 40만 톤에서 55만 톤으로 확대하는 증설에 들어갔다.

    금호석유화학은 2019년 1분기 말 증설 완료를 목표로 하고 있다.  

    금호석유화학은 2016년에 NB라텍스의 연간 생산능력을 20만 톤에서 40만 톤으로 확대했다. 금호석유화학은 라텍스장갑의 글로벌 수요가 지속적으로 확대될 것으로 파악하고 울산 고무공장의 15만 톤을 추가로 늘리기로 했다. 

    현재 NB라텍스 제품의 주요 경쟁사로는 말레이시아의 신토머(Synthomer), 대만의 난텍스(Nantex) 등이 있다. 이들은 연간 20만 톤 안팎의 생산능력을 보유한 것으로 추산된다.

    ▲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이 2015년 1월9일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석유화학업계 CEO 간담회 및 2015년 신년인사회'에 참석했다.

    △금호타이어 인수설 부인
    박찬구는 금호타이어 인수전이 펼쳐질 때 인수에 관심이 없다는 뜻을 명확하게 했다.

    그는 2017년 12월21일 오전 서울시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한국석유화학협회 이사회 및 임시총회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금호타이어 인수설’을 놓고 “생각도 안 해봤다. 총알(자금)도 없다”고 일축했다.
      
    금호석유화학은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방식으로 금호타이어 경영권을 인수하겠다고 KDB산업은행에 제안한 대기업 후보 가운데 한 곳으로 이름이 오르내렸다.

    금호석유화학은 금호아시아나그룹으로부터 분리되기 전에 금호타이어 지분을 들고 있었다. 이른바 ‘옛 사주 책임론’으로 금호타이어 인수전의 입찰에 참여할 자격조차 얻지 못했다.

    하지만 옛 금호아시아나그룹 오너 일가라는 점에서 책임경영을 할 수 있는 적임자라는 명분을 들어 금호타이어 인수에 나설 가능성이 불거졌다.

    그러나 박찬구가 직접 나서서 인수할 의사도 없고 여력도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히며 선을 그었다.

    박찬구는 금호석유화학의 2018년 실적이 크게 개선되기 힘들다는 점을 들며 금호타이어를 인수할 상황이 아님을 내비쳤다.

    박 회장은 “2018년 실적은 2017년 수준일 것”이라며 “고무업황이 2017년에도 역시 좋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실적이 큰 폭으로 개선되긴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금호타이어는 2018년 4월 중국 더블스타에 매각됐다. 더블스타는 금호타이어의 6463억 원 규모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해 금호타이어 지분 45%를 확보해 최대주주가 됐다.

    ▲ 금호석유화학 실적

    △금호타이어에 금호 상표권 영구사용 허락
    박찬구는 금호타이어가 금호 상표권을 영구적으로 사용하도록 허락했다.

    박찬구는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과 2017년 10월 만나 금호타이어의 경영 정상화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기로 합의하면서 금호타이어가 금호 상표권을 영구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허락했다.

    금호석유화학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의 금호산업과 금호 상표권을 사실상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다.

    박찬구는 금호타이어의 경영 정상화가 지역경제 안정과 일자리 유지, ‘금호’ 브랜드의 유지와 발전에도 보탬이 된다는 점에 공감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찬구는 금호석유화학이 향후 가능한 모든 방법을 마련해 금호타이어 경영 정상화 작업을 지원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또 금호타이어 생산공정을 안정화하고 생산 효율을 높이기 위해 합성고무 등 원재료를 제때 공급하는 데도 힘을 쏟기로 했다.

    이에 더해 금호타이어 타이어성능을 끌어 올리기 위해 금호타이어와 공동으로 연구개발도 진행하기로 했다.

    △계열분리 통해 완전히 남남으로
    박찬구는 금호석유화학에서 독자경영을 하다가 계열분리를 통해 금호아시아나그룹과 갈라졌다.

    박찬구는 대우건설 인수 등과 관련해 박삼구 회장과 이견을 나타내며 사이가 멀어졌다. 2015년 11월 금호석유화학과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계열 분리를 통해 갈라섰다.

    금호아시나그룹에서 금호석유화학 계열사들이 완전히 제외되면서 계열 분리가 완료됐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2015년 10월 대기업집단 소속회사 변동 현황’에 따르면 금호석유화학, 금호피앤피화학, 금호미쓰이화학 등 금호석유화학그룹 8개 계열사가 금호아시아나그룹에서 제외됐다.

    2018년 8월 현재 금호석유화학그룹에 11개 계열사가 소속돼 있다. 박찬구는 금호석유화학, 금호미쓰이화학, 금호폴리켐, 금호티앤엘 등 4개 계열사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 비전과 과제

    ▲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이 2011년 2월9일 여수산업단지에 합성고무의 하나인 고합성부타디엔고무(HBR)를 생산하는 제2공장 준공식에 참석한 뒤 공장을 둘러보고 있다. 

    박찬구는 2019년 독립경영 10주년이 다가오는 상황 속에서 새 성장동력 발굴에 주력하고 있다. 

    박찬구는 2020년까지 ‘세계 1등 제품’ 20개를 보유한, 매출 20조 원 규모의 ‘글로벌 리딩 화학그룹’으로 거듭난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금호석유화학그룹이 말하는 세계 1등 제품은 세계시장 점유율 5% 이상이면서 5위 안의 시장 지위를 가지는 제품을 말한다.

    금호석유화학그룹은 2018년 10월까지 금호석유화학, 금호피앤비화학 등 11개 계열사를 통해 세계 1등 제품 16개를 확보하는 성과를 올렸다.

    박찬구는 2020년 비전을 위해 2018년 경영방침을 ‘딥 체인지(근원적 변화)’로 정하고 재도약의 원년으로 삼았다.

    박찬구는 앞으로 고기능성 타이어의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주력부문인 합성고무 제품(SSBR, SBR 등)을 놓고 전방산업과 연구 및 판매 교류를 지속하고 있다. 합성고무 제품의 다양한 활용 방안도 금호석유화학 중앙연구소의 핵심 과제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또 NB라텍스의 생산능력도 세계 최대 수준으로 확대하고 있다. 금호석유화학은 기존 라텍스 제품인 ‘KNL 830’보다 약 10% 이상 향상된 인장강도와 높은 물성 안정성을 가진 ‘KNL 834’를 2018년 6월 새로 개발한 데 이어 생산성을 높여 수익을 증대할 수 있는 추가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 밖에 디스플레이 접착제 ‘실란트’사업부문은 향후 플렉서블(Flexible) 디스플레이시장 확대에 대비해 투명레진, 블랙레진 등으로 제품을 다각화하고 있다. 

    전남 여수에 위치한 여수에너지에서 설비 출력을 높이면서도 전력을 효율적으로 절감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 평가

    ▲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이 2011년 7월13일 헌혈버스를 제작할 수 있는 2억3천만 원을 대한적십자사에 기부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대한적십자사>

    통계학을 전공한 재무전문가 출신답게 수치에 밝고 꼼꼼하다.

    '의사소통’과 ‘의견 조율’을 기업의 운명과 비견할 정도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품질을 강조해 연구개발에 힘쓰고 있다. 박찬구는 대내외 경기침체에 따른 경영위기 속에서도 평소 "우리의 희망은 연구소"라고 말하며 시장을 선도할 기술 개발을 강조해 왔다.

    박찬구는 창사 이래 처음으로 2011년 2월 기자간담회를 개최할 만큼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간담회에서도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고 한두 마디만 간단히 한다. 자리를 같이한 김성채 금호석유 사장 등에게 발언하도록 해 배려심이 깊다는 평가도 받았다.

    2016년 경제계 신년인사회에도 참석해 평소의 성품대로 대기업 오너이면서도 책상에서 떨어진 구석에서 조용히 행사를 지켜봤다.

    취미는 바둑과 골프다. 바둑은 부친 박인천 금호그룹 창업주에게 직접 배웠다고 한다. 골프도 좋아하는데 2004년 10월24일 아시아나CC 동코스 11번홀(파3)에서 홀인원을 기록한 적도 있다.

    박찬구는 2012년 딸 박주형 금호석유화학 상무에게 현금을 증여해 금호석유화학의 지분을 취득하도록 했다. 이는 선대로부터 내려온 공동경영합의인 ‘남자에게만 상속한다’는 원칙을 깬 것이다.

    박인천 금호그룹 창업주는 ‘여러 사람이 관여하면 분란의 가능성이 있어 상속은 남자에게만 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금호그룹은 이를 창업주의 유훈으로 여기며 70년 가까이 이 원칙을 지켜왔다.

    그러나 박찬구는 평소 능력이 있으면 딸도 경영에 참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 상무는 2018년 현재 금호석유화학 지분 0.82%를 보유하고 있다.

    ◆ 사건사고

    ▲ 회사 자금 횡령 등의 혐의로 영장이 청구된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왼쪽 두번째)이 2011년 12월6일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하기 전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아시아나 노조, 박찬구에 협조 요청
    아시아나항공 직원연대와 노동조합은 2018년 7월25일 성명서를 내고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일선에서 물러나고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에게 미래를 위한 협조 요청을 하라”고 요구했다.

    아시아나항공 직원들은 7월 아시아나 기내식 대란이 촉발된 이후 집회를 통해 박삼구 회장과 경영진에 책임을 묻고 퇴진을 촉구해왔다. 

    7월1일 아시아나항공 국제선 항공편이 기내식을 제때 공급받지 못하면서 출발이 줄줄이 지연되는 등 운항에 차질이 빚어졌다. 당시 기내식 공급 지연에 따른 심리적 압박을 받아 기내식 납품 업체 대표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사건이 일파만파 커지면서 박삼구 회장의 갑횡포와 비리 의혹을 고발하는 집회가 이어졌다. 

    아시아나항공 노조는 6개월 안에 만기가 돌아오는 2조 원 규모의 채권으로 아시아나항공에 유동성 위기가 심각한 점을 들며 박삼구 회장의 퇴진과 함께 박찬구의 협조를 요청했다.

    △‘금호’ 둘러싼 상표권 분쟁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박찬구 형제 사이에 ‘금호’ 상표권 분쟁이 대법원까지 이어지고 있다.

    금호산업은 금호석유화학을 상대로 낸 상표권 이전 등록 등 청구소송을 제기했고 2015년 8월 1심에서 패소했다.

    금호산업은 “금호 상표는 1972년 설립된 지주회사 금호실업이 최초로 사용한 뒤 현재의 금호산업에 이르기까지 30년이 넘도록 계속해 출원, 등록, 관리해 오면서 법적 정통성을 승계해 왔다”며 “금호석유화학이 이 상표 지분을 이전해야 한다”고 소송을 냈다.

    2015년 8월 1심 재판부는 “양측의 상표 사용 계약은 금호석유화학이 이 상표 지분의 상당 부분을 이전받은 이후에 체결됐고 금호석유화학에 상표 지분이 이전되기 전 금호산업이 상표의 권리자임을 인정할 아무런 문서도 작성된 게 없다”고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바로 항소장을 접수했다.

    2018년 3월 2심에서도 금호산업이 졌다. 2심 재판부 역시 “금호아시아나가 금호 상표권의 권리자라는 점을 인정할 아무런 문서도 작성된 바 없다”며  금호석유화학의 손을 들어줬다.

    이에 따라 일단 금호석유화학은 기존과 마찬가지로 ‘금호’ 상표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게 됐다.

    금호산업은 금호석유화학을 상대로 한 상고장을 제출했다.

    △형 박삼구 회장과 깜짝 화해 발표
    박찬구는 형인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사이가 틀어지면서 7년여 동안 ‘형제 갈등’을 이어갔으나 2016년 8월 극적으로 화해했다.

    금호석유화학은 2016년 8월 아시아나항공 이사진을 서울남부지검에 형사 고소한 ‘아시아나항공 이사 등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사건과 박삼구 회장, 기옥 전 금호석유화학 사장을 상대로 서울고등법원에 항소한 ‘CP 부당지원 손해배상 청구 소송’ 등 2건을 포함한 관련 사건을 모두 취하했다.

    금호석유화학은 당시 “글로벌 경제상황과 경쟁여건의 불확실성, 불안이 더욱 높아지고 있고 산업별 구조조정의 압박을 받는 상황 속에서 국내 많은 기업이 생사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며 “생사의 갈림길 앞에서 소송이 무의미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형제가 진행하고 있던 상표권 소송도 금호석유화학과 금호아시아나 양측이 원만하게 조정하기로 합의했다.

    박삼구 회장은 2015년 말 금호산업을 되찾으며 금호아시아나그룹을 사실상 재건한 뒤 박찬구와 화해 의지를 드러내 왔다. 그는 2016년 1월 기자들과 만나 "어차피 나이도 먹었고 (동생과)화해하도록 더 노력하겠다"며 "화해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업계는 형제가 단순히 법적 다툼을 끝냈을 뿐 진정한 화해는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박찬구와 박삼구 회장 형제는 2006년 대우건설 인수와 2008년 대한통운 인수 과정에서 사이가 틀어지기 시작했다. 당시 박찬구는 대우건설과 대한통운 인수를 반대했지만 박삼구 회장은 이를 추진했다.

    박찬구는 형제경영의 원칙이 훼손됐다고 판단해 분리 경영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그는 금호산업 지분을 매각하고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사들였다.

    둘의 관계는 점점 나빠져 결국 2009년 7월 박삼구 회장은 박찬구를 금호석유화학 대표이사에서 해임하고 스스로도 물러났다.

    박찬구는 2010년 2월 채권단이 금호석유화학의 분리 경영을 결정해 2010년 3월부터 금호석유화학 회장으로 복귀했다.

    △금호석유화학, 박삼구 회장 배임 혐의로 고발
    금호석유화학은 2015년 6월 박삼구 회장 때문에 회사가 손해를 입었다며 박삼구 회장을 배임 혐의로 고발했다.

    2009년 12월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가 워크아웃을 신청했을 때 금호석유화학이 두 회사의 워크아웃 신청 당일과 다음날 두 회사가 발행한 기업어음을 사들였기 때문이다.

    박찬구는 “워크아웃을 신청한 상황에서 기업어음을 발행해 계열사에 매입하게 한 것은 배임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금호석유화학은 박삼구 회장 등을 상대로 ‘기업어음 거래에 따른 배임행위에 따른 손해배상금 103억 원을 지급하라’며 민사소송도 제기했다.

    그러나 서울중앙지검은 2016년 1월 이 사건을 무혐의 처분했다.

    금호석유화학은 “박삼구 회장의 배임 혐의를 재수사해달라”고 항고했다. 금호석유화학은 또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의 기업어음 발행 시기에 이미 변제능력을 상실했고 기업어음을 통한 자금지원 시 위법적 방법을 동원했음에도 검찰이 제대로 판단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형제간 장기간 법적 다툼
    박찬구와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두 사람은 여러 건의 송사를 이어갔다. 크고 작은 건수만 10건에 이른다.

    박찬구는 2014년 2월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주식거래와 횡령, 배임 혐의로 재판을 받았으나 배임 관련 일부만 유죄로 인정돼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받았다. 금호석유화학 측은 검찰 수사의 배후로 박삼구 회장을 의심했다.

    2014년 2월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박찬구의 운전기사를 고소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박찬구의 운전기사가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보안용역직원을 사주해 비서실에서 문건을 빼돌렸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운전기사는 1심과 2심에서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재판부는 운전기사가 보안용역직원에 86만 원 상당의 식사 등을 제공했으나 이 부분을 놓고 대가성을 단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2010년 초 금호산업의 워크아웃으로 기업어음 대금을 지급받지 못하자 금호피앤비화학은 2013년 5월 금호산업을 대상으로 어음금 청구 소송을 내기도 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계열 분리되기 이전인 2009년 말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계열사인 금호피앤비화학에게 90억 원과 30억 원 규모의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 기업어음을 매입하도록 했다. 

    2015년 10월 금호산업이 워크아웃 직전 금호피앤비화학에 발행한 기업어음 대금 90억 원과 이자 30억 원 등 120억 원을 갚으면서 금호석유화학 측에서 관련 소송을 취하했다.

    박찬구는 2009년 6월 미공개 내부정보를 통해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대우건설을 매각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미리 파악하고 보유한 금호산업 주식 262만 주(보유 주식 가운데 88%)를 집중적으로 매도해 102억 원의 손실을 회피한 혐의로 기소됐다.

    또 2008년 11월부터 2011년 1월까지 금호피앤비화학과 공모해 모두 23회에 걸쳐 아들에게 모두 107억5천만 원을 대여하도록 한 혐의(배임), 제품 납품대금 명목으로 31억9880만 원 상당의 금호석유화학 이름의 전자어음을 발행하고 지급한 혐의(횡령) 등도 추가됐다.

    △아시아나항공 2대주주 권한 행사하며 갈등 심화
    박찬구는 박삼구 회장의 아시아나항공 사내이사 선임에 반대해 형제간 사이가 더 벌어졌다.

    2014년 3월 27일 열린 아시아나항공 주주총회를 앞두고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박삼구 회장의 이사 선임안과 금호산업 지분 매각을 추진했다.

    금호석유화학은 이에 반대했다. 박찬구는 박삼구 회장이 아시아나항공의 사내이사로 선임되면 기업가치가 계속 훼손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찬구는 변호사 3명을 주주총회 현장에 보냈다. 이들은 박삼구 회장의 사내이사 선임을 놓고 반대 의사를 밝혔다. 또 아시아나항공이 상호출자제한 해소를 위해 실시한 총수익맞교환(TRS) 방식의 금호산업 주식 매각은 아시아나항공에 손실을 끼치는 배임행위라고 주장했다. 박삼구 회장은 박찬구의 반대에도 아시아나항공의 사내이사로 선임됐다.

    금호석유화학은 같은 해 4월 "주총 당시 출석한 주주와 주식 수를 확인하지 않았고, 이사 선임 안건에 대해 우리를 비롯한 일부 주주가 반대 의사를 표시했음에도 표결에 부치지 않는 등 각종 절차적 하자로 이 결의는 부존재 사유가 있다"며 주주총회 결의 부존재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5년 6월 재판부는 금호석유화학이 아시아나항공을 상대로 낸 주주총회 결의 부존재 확인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아시아나항공 소액주주, 주주대표 소송 제기
    박찬구는 박삼구 회장, 아시아나항공 전현직 이사 9명과 함께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휘말렸다. 경제개혁연대 등 아시아나항공 소액주주들은 2014년 모두 247억6천만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이들은 2009년 12월 금호산업이 워크아웃 신청한 뒤 발행한 기업어음을 투자가치가 없는데도 아시아나항공이 이를 사들여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고 주장했다. 또 2006년 회사가 유류할증료 담합 조사를 받을 때 감독 업무를 소홀히 해 207억 원의 과징금을 경감받지 못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2016년 2월 선고 공판에서 이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 경력

    ▲ 박찬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화학부문 회장(왼쪽 세번째)과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왼쪽 네번째)이 2007년 9월7일 임직원들과 함께 서울 강서구 오쇠동 아시아나항공 본사에서 그룹의 5백 년 아름다운 기업을 기원하는 팽나무를 식수하고 있다. 

    1976년 한국합성고무에 입사했다.

    1978년 1월 금호실업 이사로 근무했다.

    1982년 5월 금호건설 상무로 자리를 옮겼다.

    1984년 1월 금호석유화학 대표이사 부사장에 올랐으며 1988년 2월까지 재직했다.

    1989년 3월 금호몬산토 대표이사 사장을 거쳐 금호그룹 회장부속실 사장, 금호그룹 비전경영실 사장 등을 지냈다.

    1996년 금호석유화학 대표이사 사장으로 재직했다.

    2000년 3월부터 2001년 12월까지 금호미쓰이화학 대표이사 사장, 2000년 9월부터 2000년 12월까지 금호케미칼 대표이사 사장을 같이 맡았다.

    2004년 1월 금호석유화학 대표이사 부회장에 올랐다.

    2006년 11월 금호아시아나그룹 화학부문 회장에 올랐다.

    2009년 7월 그룹 경영문제로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갈등을 빚고 회장에서 물러났다.

    2010년 3월 금호석유화학 대표이사 회장으로 경영에 복귀해 금호아시아나그룹과 선을 그으며 독자적 경영활동을 펼치고 있다. 

    2010년 5월에서 2011년 4월까지 세계합성고무생산자협회(IISRP) 회장을 맡았다.

    2015년 11월 금호석유화학그룹을 계열분리하고 동일인에 지정됐다.

    ◆ 학력

    1967년 광주 제일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67년 미국 아이오와주립대학교 통계학과에 입학해 1972년 졸업했다.

    2009년 아이오와주립대학교 명예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 가족관계

    ▲ 2005년 7월10일 서울시 광륜사에서 열린 고 박성용 금호아시아나 명예회장의 49재에서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부회장 등 유족들이 고인의 명복을 빌고 있다.

    아버지는 박인천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창업주, 어머니는 이순정씨다. 4남3녀 가운데 4남이다. 

    첫째 형인 박성용씨는 예일대 경제학 박사과정 졸업 뒤 박정희 정부에서 청와대 경제담당보좌관을 지냈다. 이후 서강대 교수로 재직하다 제2대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예술의전당 이사장 등을 역임했으며 2005년 사망했다.

    둘째 형인 박정구씨는 제3대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광주상공회의소 회장을 지냈으며 2002년 사망했다.

    셋째 형은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으로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과 한국프로골프협회장 등을 지냈다.

    남동생 박종구씨는 교육과학기술부 제2차관을 거쳐 아주대 교육대학원 교수, 한국폴리텍대학 이사장을 역임했고 현재 초당대학교 총장을 맡고 있다.

    첫째 누나 박경애씨는 배영환 삼화고속 회장의 부인이며 둘째 누나 박강자씨는 금호미술관 관장과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부이사장을 맡고 있다.

    여동생 박현주씨는 임창욱 대상그룹 명예회장과 결혼했다. 상암커뮤니케이션즈 부회장과 대상홀딩스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박찬구는 부인 위진영씨와 사이에서 1남1녀를 두고 있다. 위씨는 위창남 전 경남투자금융 사장의 딸이다.

    장남 박준경씨는 고려대학교에서 환경생태공학을 전공하고 금호석유화학에 입사해 상무로 근무하고 있다.

    장녀 박주형씨는 1980년생으로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 특수교육학과를 나와 2010년 대우인터내셔널(현 포스코대우)에 입사했다. 그 뒤 금호석유화학으로 자리를 옮겨 상무로 근무하고 있다.

    ◆ 상훈

    2000년 3월 철탑산업훈장을 받았다. 같은 해 산업재해 예방 대통령상을 받았으며 환경친화와 안전 초일류 기업과 품질경영 우수 50대 기업으로 선정됐다.

    2005년 11월 무역의날 기념식에서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2010년 9월 이웃돕기 유공자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2012년 제2회 기후변화 그랜드 리더스 어워드 기업부문에 선정됐다.‘ 기후변화 그랜드 리더스 어워드’는 기후변화센터가 한 해 동안 기후변화 대응에 앞장선 정부, 기업, 시민사회의 파트너십을 통해 각계의 역량과 지혜를 모으고자 노력하는 개인과 기관들을 대상으로 주는 상으로 2011년 처음 제정됐다.

    ◆ 기타

    2018년 상반기 보수로 급여 12억1700만 원, 상여금 23억5800만 원 등 모두 35억7600만 원을 받았다. 

    박찬구는 금호석유화학 보통주 204만 주를 보유하고 있다. 지분율은 6.69%로 조카 박철완 금호석유화학 상무(10.0%), 장남 박준경 금호석유화학 상무(7.17%)에 이어 개인주주 가운데 세 번째로 높다.

    ◆ 어록

    ▲  금호석유화학은 2010년 9월8일 중국 랴오닝성 선양에서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오른쪽에서 세번째) 등이 참석한 가운데 건자재 공장 준공식을 하고 있다.<금호석유화학>

    “2018년 경영방침을 ‘딥 체인지’로 정했다. 불확실성에 도전하면서 회사의 가치를 높이고 더 높이 성장하기 위해 새로운 가능성을 확보할 것이다. 회사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해 고객 수요 및 환경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고 각 사업장의 안전과 환경 관리체계를 강화하겠다.” (2018/03/16, 금호석유화학 2018년 정기주주총회에서)

    “2017년 경영방침을 ‘액트(ACT) 2017’로 정했다. 낡은 타성을 버리고(Cut), 위기를 기회로 바꿔(Change), 세계 최고를 만드는(Create) 것을 지금 바로 실행하자는 의미를 담았다.” (2017/03/17, 금호석유화학 2017년 정기주주총회에서)

    “나도 이제 지쳤고 더 이상 싸우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계열분리도 다 된 상황에서 서로 각자 잘 경영하면 된다. 더 이상 치고받고 할 필요도 없지 않겠나 해서 마음 터놓고 해버렸다."

    "오해할 것 없다. 나도 편하게 살고 싶어서 마음을 풀었다. 강자가 자비를 베풀라고 하지 않느냐. 그쪽(박삼구 회장)은 아직 재무구조도 약하고 해야 할 일이 많아 내가 강자니깐 베풀어주는 식으로 했다.” 

    “때가 되면 (박삼구 회장과) 만나게 될 것이다. 아직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2016/08/12, 형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화해한 뒤 아시아경제와 인터뷰에서)

    “그럼 다시 금호아시아나그룹 계열사가 되는데 뭐 하러 하겠느냐. (타이어 사업은)형의 영역이다. 그쪽은 발을 담그지 않겠다.” (2016/08/12, 형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화해한 뒤 아시아경제와 인터뷰에서 금호아시아나그룹의 금호타이어 인수를 도울 의사가 있느냐는 질문을 받자)

    “아시아나항공이 금호터미널을 2700억 원이라는 헐값에 매각한 것은 법인과 주주가 아닌 박삼구 회장 개인을 위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문제를 지적한 것은 소액주주들을 대신해 아시아나항공 경영을 잘해 달라는 경고다. 무엇을 얻겠다는 게 아니다.” (2016/06/07, 머니투데이와 인터뷰에서 금호기업의 금호터미널 인수합병을 반대하고 나선 이유에 대해)

    “금호석유화학은 아시아나항공의 설립 주주로 지난 28년 동안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형제갈등 모습을 보이면서도 주주 행동에 나선 것은 회사가 더 이상 나빠지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정도경영을 할 수 있도록 견제하는 것이 목적이다. 우리가 경영 감시자로 활동하기에 아시아나항공이 그나마 이 정도로 버티고 있다고 생각한다.” (2016/06/07, 머니투데이와 인터뷰에서 아시아나항공의 경영상황에 대해 평가해달라는 질문에)

    “갈등의 발단은 형인 박삼구 회장이 제공했다. 화해를 원하면 원인 제공자가 직접 오면 될 일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해서 이들만 불편하게 하는 건 잘못됐다.” (2016/06/07, 머니투데이와 인터뷰에서 형인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화해 가능성을 묻자)

    “아버지가 만든 상표권을 함께 사용하는 것이 문제 될 수 없으며 비용을 모두 지급했는데 어떻게 우리 것이 아니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2016/06/07, 머니투데이와 인터뷰에서 상표권 소송에 대해 언급하며)

    “경영을 잘하기 위해선 모든 업무를 다 해봐야 하고 회사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애정을 쏟을 수 있는 사람이 향후 경영을 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딸의 지분율이 아직 낮은데 책임 경영을 강화하기 위해 지분을 늘리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2016/06/07, 머니투데이와 인터뷰에서, 경영 후계구도에 대해)

    “투명경영을 통해 오랫동안 지속 가능한 기업이 될 수 있도록 만들 것이다. 이게 나를 위해서도 편하다. 지난해 직원들의 비리문제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했을 때도 감추지 않고 회사가 적극적으로 수사기관에 고발하고 협조했다. 투명하게 경영하겠다는 의지를 주주들이나 임직원들이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2016/06/07,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석유화학은 올해로 45년 됐다. 금호가는 70년이지만 우리는 45년이다.” (2016/01/07, 기자들이 올해가 금호그룹 창립 70주년인데 같이 할지 묻자)

    “생각해 봐야지.” (2016/01/07, 기자들이 박삼구 회장과 화해를 묻자)

    “우리가 금호석유화학그룹으로 출범하는 올해는 공교롭게도 금호그룹이 70주년을 맞는 해이기도 하다. 70년간 우리는 금호그룹이 있어 태어날 수 있었고 또한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금호그룹’이었기에 할 수 없었던 것들도 많았다. 과거 우리를 성장시켰던 것들은 더 이상 미래를 담보하지 못한다.”

    “우리는 과감히 옛 방식과 결별해야 한다. 새로운 길을 떠나야 하는 시간이다. 그 길에서 실패를 겪는다 해도 이겨내서 후대에 물려 줄 정신이나 가치를 남긴다면 그것이야말로 금호를 계승발전시키는 진정한 유산일 것이다.”

    (‘남에게 진실되게 살아라’라는 창업주의 가르침을 언급하며) “반평생, 40년을 금호인으로 살아온 저로써는 아직도 그 뜻을 다 헤아리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말씀이 금호석유화학그룹의 새로운 창업에 단단한 디딤돌이 되어줄 것이라 믿는다.” (2016/01, 신년사에서)

    “금산공장은 금호석유화학과 상해 일지승이 15년여 동안 쌓아온 신뢰와 믿음을 바탕으로 합작사의 제2의 도약과 발전을 위해 추진한 프로젝트다. 이번 준공을 통해 금호석유화학이 양국의 경제발전에 더욱 크게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2015/10/22, 중국 상해시에서 열림 중국 합작사 상해금호일련소료유한공사의 금산 공장 준공식에서)

    “최근 종영한 드라마 미생에서 '바둑판 위에 의미 없는 돌이란 없어'란 대사가 화제였다고 들었다. 이제까지 우리의 경험과 성과를 하나하나의 바둑돌처럼 소중하게 아끼고 단단하게 뭉쳐서 어떠한 위협에도 깨지지 않는 집처럼 위기를 극복하자. 바둑을 두는 사람들은 대국이 끝난 다음 반드시 '복기(復碁)'를 한다. 자기가 두었던 수를 기억해 그대로 다시 벌여놓는 것은 돌 하나하나에 가치를 두며 처음부터 끝까지 '최선의 수'를 놓기 때문이다. 여러분도 앞으로 매사에 한수 한수 '최선의 수'를 놓아주길 바란다.” (2015/01, 신년사에서)

    “각자의 길을 가야 하는 마당에 형과 소모적 갈등보다 금호석유화학을 잘 이끌어가는 게 더 중요하다.” (2014/02/01, 1심 선고 뒤 아시아경제와 인터뷰에서)

    “세계 최대의 생산능력과 기술력에 안주할 것인지 아니면 이를 발판으로 삼아 한 단계 도약할 것인지는 당연하게 의지해 온 과거의 관례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가에 달렸다.” (2014 신년사에서)

    “나는 회사에 지금과 같은 천문학적 손실을 입혔으면 반드시 책임지고 물러났을 것이다. 당신은 무책임한 사람이다.” (2009, 이사회 해임 당시)
  • ◆ 경영활동의 공과

    △ 금호석유화학 실적 개선
    금호석유화학은 2018년 실적을 크게 개선하며 2011년 이후 처음으로 영업이익 5천억 원 돌파가 예상된다.

    금호석유화학은 2018년 1분기와 2분기 연속 1천억 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냈다. 주력 제품인 페놀유도체업황이 크게 개선되며 전체 이익을 견인했다.

    수년 동안 금호석유화학은 부진을 면치 못했다. 주력사업인 합성고무 시황이 침체된 탓이었다. 

    금호석유화학은 2011년 8390억 원 규모의 영업이익을 거둔 뒤 2012년부터 영업이익이 1천억 원대 중반에 그쳤다. 

    박찬구는 주력사업의 기초 체력을 다지는 가운데 주력 사업과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는 융합사업을 모색했다. 

    금호석유화학은 2017년 들어 합성고무 시황이 개선되고 페놀유도체(BPA)사업의 이익폭이 크게 증가함에 따라 영업이익 2626억 원을 올렸다. 

    △울산 고무공장 NB라텍스 생산능력 증설
    박찬구는 금호석유화학의 글로벌 1위 ‘NB라텍스’ 지위를 공고히 하기 위해 울산 고무공장 NB라텍스 생산능력 증설을 결정했다. 

    NB라텍스는 얇고 가볍지만 쉽게 파손되지 않는 의료용 장갑의 원료로 주로 쓰인다. 산업용·조리용 등으로도 활용된다. 

    금호석유화학은 2018년 6월 울산고무공장 NB라텍스 생산능력을 기존 연간 40만 톤에서 55만 톤으로 확대하는 증설에 들어갔다.

    금호석유화학은 2019년 1분기 말 증설 완료를 목표로 하고 있다.  

    금호석유화학은 2016년에 NB라텍스의 연간 생산능력을 20만 톤에서 40만 톤으로 확대했다. 금호석유화학은 라텍스장갑의 글로벌 수요가 지속적으로 확대될 것으로 파악하고 울산 고무공장의 15만 톤을 추가로 늘리기로 했다. 

    현재 NB라텍스 제품의 주요 경쟁사로는 말레이시아의 신토머(Synthomer), 대만의 난텍스(Nantex) 등이 있다. 이들은 연간 20만 톤 안팎의 생산능력을 보유한 것으로 추산된다.

    ▲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이 2015년 1월9일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석유화학업계 CEO 간담회 및 2015년 신년인사회'에 참석했다.

    △금호타이어 인수설 부인
    박찬구는 금호타이어 인수전이 펼쳐질 때 인수에 관심이 없다는 뜻을 명확하게 했다.

    그는 2017년 12월21일 오전 서울시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한국석유화학협회 이사회 및 임시총회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금호타이어 인수설’을 놓고 “생각도 안 해봤다. 총알(자금)도 없다”고 일축했다.
      
    금호석유화학은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방식으로 금호타이어 경영권을 인수하겠다고 KDB산업은행에 제안한 대기업 후보 가운데 한 곳으로 이름이 오르내렸다.

    금호석유화학은 금호아시아나그룹으로부터 분리되기 전에 금호타이어 지분을 들고 있었다. 이른바 ‘옛 사주 책임론’으로 금호타이어 인수전의 입찰에 참여할 자격조차 얻지 못했다.

    하지만 옛 금호아시아나그룹 오너 일가라는 점에서 책임경영을 할 수 있는 적임자라는 명분을 들어 금호타이어 인수에 나설 가능성이 불거졌다.

    그러나 박찬구가 직접 나서서 인수할 의사도 없고 여력도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히며 선을 그었다.

    박찬구는 금호석유화학의 2018년 실적이 크게 개선되기 힘들다는 점을 들며 금호타이어를 인수할 상황이 아님을 내비쳤다.

    박 회장은 “2018년 실적은 2017년 수준일 것”이라며 “고무업황이 2017년에도 역시 좋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실적이 큰 폭으로 개선되긴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금호타이어는 2018년 4월 중국 더블스타에 매각됐다. 더블스타는 금호타이어의 6463억 원 규모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해 금호타이어 지분 45%를 확보해 최대주주가 됐다.

    ▲ 금호석유화학 실적

    △금호타이어에 금호 상표권 영구사용 허락
    박찬구는 금호타이어가 금호 상표권을 영구적으로 사용하도록 허락했다.

    박찬구는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과 2017년 10월 만나 금호타이어의 경영 정상화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기로 합의하면서 금호타이어가 금호 상표권을 영구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허락했다.

    금호석유화학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의 금호산업과 금호 상표권을 사실상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다.

    박찬구는 금호타이어의 경영 정상화가 지역경제 안정과 일자리 유지, ‘금호’ 브랜드의 유지와 발전에도 보탬이 된다는 점에 공감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찬구는 금호석유화학이 향후 가능한 모든 방법을 마련해 금호타이어 경영 정상화 작업을 지원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또 금호타이어 생산공정을 안정화하고 생산 효율을 높이기 위해 합성고무 등 원재료를 제때 공급하는 데도 힘을 쏟기로 했다.

    이에 더해 금호타이어 타이어성능을 끌어 올리기 위해 금호타이어와 공동으로 연구개발도 진행하기로 했다.

    △계열분리 통해 완전히 남남으로
    박찬구는 금호석유화학에서 독자경영을 하다가 계열분리를 통해 금호아시아나그룹과 갈라졌다.

    박찬구는 대우건설 인수 등과 관련해 박삼구 회장과 이견을 나타내며 사이가 멀어졌다. 2015년 11월 금호석유화학과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계열 분리를 통해 갈라섰다.

    금호아시나그룹에서 금호석유화학 계열사들이 완전히 제외되면서 계열 분리가 완료됐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2015년 10월 대기업집단 소속회사 변동 현황’에 따르면 금호석유화학, 금호피앤피화학, 금호미쓰이화학 등 금호석유화학그룹 8개 계열사가 금호아시아나그룹에서 제외됐다.

    2018년 8월 현재 금호석유화학그룹에 11개 계열사가 소속돼 있다. 박찬구는 금호석유화학, 금호미쓰이화학, 금호폴리켐, 금호티앤엘 등 4개 계열사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 ◆ 비전과 과제

    ▲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이 2011년 2월9일 여수산업단지에 합성고무의 하나인 고합성부타디엔고무(HBR)를 생산하는 제2공장 준공식에 참석한 뒤 공장을 둘러보고 있다. 

    박찬구는 2019년 독립경영 10주년이 다가오는 상황 속에서 새 성장동력 발굴에 주력하고 있다. 

    박찬구는 2020년까지 ‘세계 1등 제품’ 20개를 보유한, 매출 20조 원 규모의 ‘글로벌 리딩 화학그룹’으로 거듭난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금호석유화학그룹이 말하는 세계 1등 제품은 세계시장 점유율 5% 이상이면서 5위 안의 시장 지위를 가지는 제품을 말한다.

    금호석유화학그룹은 2018년 10월까지 금호석유화학, 금호피앤비화학 등 11개 계열사를 통해 세계 1등 제품 16개를 확보하는 성과를 올렸다.

    박찬구는 2020년 비전을 위해 2018년 경영방침을 ‘딥 체인지(근원적 변화)’로 정하고 재도약의 원년으로 삼았다.

    박찬구는 앞으로 고기능성 타이어의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주력부문인 합성고무 제품(SSBR, SBR 등)을 놓고 전방산업과 연구 및 판매 교류를 지속하고 있다. 합성고무 제품의 다양한 활용 방안도 금호석유화학 중앙연구소의 핵심 과제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또 NB라텍스의 생산능력도 세계 최대 수준으로 확대하고 있다. 금호석유화학은 기존 라텍스 제품인 ‘KNL 830’보다 약 10% 이상 향상된 인장강도와 높은 물성 안정성을 가진 ‘KNL 834’를 2018년 6월 새로 개발한 데 이어 생산성을 높여 수익을 증대할 수 있는 추가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 밖에 디스플레이 접착제 ‘실란트’사업부문은 향후 플렉서블(Flexible) 디스플레이시장 확대에 대비해 투명레진, 블랙레진 등으로 제품을 다각화하고 있다. 

    전남 여수에 위치한 여수에너지에서 설비 출력을 높이면서도 전력을 효율적으로 절감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 ◆ 평가

    ▲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이 2011년 7월13일 헌혈버스를 제작할 수 있는 2억3천만 원을 대한적십자사에 기부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대한적십자사>

    통계학을 전공한 재무전문가 출신답게 수치에 밝고 꼼꼼하다.

    '의사소통’과 ‘의견 조율’을 기업의 운명과 비견할 정도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품질을 강조해 연구개발에 힘쓰고 있다. 박찬구는 대내외 경기침체에 따른 경영위기 속에서도 평소 "우리의 희망은 연구소"라고 말하며 시장을 선도할 기술 개발을 강조해 왔다.

    박찬구는 창사 이래 처음으로 2011년 2월 기자간담회를 개최할 만큼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간담회에서도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고 한두 마디만 간단히 한다. 자리를 같이한 김성채 금호석유 사장 등에게 발언하도록 해 배려심이 깊다는 평가도 받았다.

    2016년 경제계 신년인사회에도 참석해 평소의 성품대로 대기업 오너이면서도 책상에서 떨어진 구석에서 조용히 행사를 지켜봤다.

    취미는 바둑과 골프다. 바둑은 부친 박인천 금호그룹 창업주에게 직접 배웠다고 한다. 골프도 좋아하는데 2004년 10월24일 아시아나CC 동코스 11번홀(파3)에서 홀인원을 기록한 적도 있다.

    박찬구는 2012년 딸 박주형 금호석유화학 상무에게 현금을 증여해 금호석유화학의 지분을 취득하도록 했다. 이는 선대로부터 내려온 공동경영합의인 ‘남자에게만 상속한다’는 원칙을 깬 것이다.

    박인천 금호그룹 창업주는 ‘여러 사람이 관여하면 분란의 가능성이 있어 상속은 남자에게만 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금호그룹은 이를 창업주의 유훈으로 여기며 70년 가까이 이 원칙을 지켜왔다.

    그러나 박찬구는 평소 능력이 있으면 딸도 경영에 참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 상무는 2018년 현재 금호석유화학 지분 0.82%를 보유하고 있다.

    ◆ 사건사고

    ▲ 회사 자금 횡령 등의 혐의로 영장이 청구된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왼쪽 두번째)이 2011년 12월6일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하기 전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아시아나 노조, 박찬구에 협조 요청
    아시아나항공 직원연대와 노동조합은 2018년 7월25일 성명서를 내고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일선에서 물러나고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에게 미래를 위한 협조 요청을 하라”고 요구했다.

    아시아나항공 직원들은 7월 아시아나 기내식 대란이 촉발된 이후 집회를 통해 박삼구 회장과 경영진에 책임을 묻고 퇴진을 촉구해왔다. 

    7월1일 아시아나항공 국제선 항공편이 기내식을 제때 공급받지 못하면서 출발이 줄줄이 지연되는 등 운항에 차질이 빚어졌다. 당시 기내식 공급 지연에 따른 심리적 압박을 받아 기내식 납품 업체 대표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사건이 일파만파 커지면서 박삼구 회장의 갑횡포와 비리 의혹을 고발하는 집회가 이어졌다. 

    아시아나항공 노조는 6개월 안에 만기가 돌아오는 2조 원 규모의 채권으로 아시아나항공에 유동성 위기가 심각한 점을 들며 박삼구 회장의 퇴진과 함께 박찬구의 협조를 요청했다.

    △‘금호’ 둘러싼 상표권 분쟁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박찬구 형제 사이에 ‘금호’ 상표권 분쟁이 대법원까지 이어지고 있다.

    금호산업은 금호석유화학을 상대로 낸 상표권 이전 등록 등 청구소송을 제기했고 2015년 8월 1심에서 패소했다.

    금호산업은 “금호 상표는 1972년 설립된 지주회사 금호실업이 최초로 사용한 뒤 현재의 금호산업에 이르기까지 30년이 넘도록 계속해 출원, 등록, 관리해 오면서 법적 정통성을 승계해 왔다”며 “금호석유화학이 이 상표 지분을 이전해야 한다”고 소송을 냈다.

    2015년 8월 1심 재판부는 “양측의 상표 사용 계약은 금호석유화학이 이 상표 지분의 상당 부분을 이전받은 이후에 체결됐고 금호석유화학에 상표 지분이 이전되기 전 금호산업이 상표의 권리자임을 인정할 아무런 문서도 작성된 게 없다”고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바로 항소장을 접수했다.

    2018년 3월 2심에서도 금호산업이 졌다. 2심 재판부 역시 “금호아시아나가 금호 상표권의 권리자라는 점을 인정할 아무런 문서도 작성된 바 없다”며  금호석유화학의 손을 들어줬다.

    이에 따라 일단 금호석유화학은 기존과 마찬가지로 ‘금호’ 상표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게 됐다.

    금호산업은 금호석유화학을 상대로 한 상고장을 제출했다.

    △형 박삼구 회장과 깜짝 화해 발표
    박찬구는 형인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사이가 틀어지면서 7년여 동안 ‘형제 갈등’을 이어갔으나 2016년 8월 극적으로 화해했다.

    금호석유화학은 2016년 8월 아시아나항공 이사진을 서울남부지검에 형사 고소한 ‘아시아나항공 이사 등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사건과 박삼구 회장, 기옥 전 금호석유화학 사장을 상대로 서울고등법원에 항소한 ‘CP 부당지원 손해배상 청구 소송’ 등 2건을 포함한 관련 사건을 모두 취하했다.

    금호석유화학은 당시 “글로벌 경제상황과 경쟁여건의 불확실성, 불안이 더욱 높아지고 있고 산업별 구조조정의 압박을 받는 상황 속에서 국내 많은 기업이 생사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며 “생사의 갈림길 앞에서 소송이 무의미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형제가 진행하고 있던 상표권 소송도 금호석유화학과 금호아시아나 양측이 원만하게 조정하기로 합의했다.

    박삼구 회장은 2015년 말 금호산업을 되찾으며 금호아시아나그룹을 사실상 재건한 뒤 박찬구와 화해 의지를 드러내 왔다. 그는 2016년 1월 기자들과 만나 "어차피 나이도 먹었고 (동생과)화해하도록 더 노력하겠다"며 "화해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업계는 형제가 단순히 법적 다툼을 끝냈을 뿐 진정한 화해는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박찬구와 박삼구 회장 형제는 2006년 대우건설 인수와 2008년 대한통운 인수 과정에서 사이가 틀어지기 시작했다. 당시 박찬구는 대우건설과 대한통운 인수를 반대했지만 박삼구 회장은 이를 추진했다.

    박찬구는 형제경영의 원칙이 훼손됐다고 판단해 분리 경영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그는 금호산업 지분을 매각하고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사들였다.

    둘의 관계는 점점 나빠져 결국 2009년 7월 박삼구 회장은 박찬구를 금호석유화학 대표이사에서 해임하고 스스로도 물러났다.

    박찬구는 2010년 2월 채권단이 금호석유화학의 분리 경영을 결정해 2010년 3월부터 금호석유화학 회장으로 복귀했다.

    △금호석유화학, 박삼구 회장 배임 혐의로 고발
    금호석유화학은 2015년 6월 박삼구 회장 때문에 회사가 손해를 입었다며 박삼구 회장을 배임 혐의로 고발했다.

    2009년 12월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가 워크아웃을 신청했을 때 금호석유화학이 두 회사의 워크아웃 신청 당일과 다음날 두 회사가 발행한 기업어음을 사들였기 때문이다.

    박찬구는 “워크아웃을 신청한 상황에서 기업어음을 발행해 계열사에 매입하게 한 것은 배임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금호석유화학은 박삼구 회장 등을 상대로 ‘기업어음 거래에 따른 배임행위에 따른 손해배상금 103억 원을 지급하라’며 민사소송도 제기했다.

    그러나 서울중앙지검은 2016년 1월 이 사건을 무혐의 처분했다.

    금호석유화학은 “박삼구 회장의 배임 혐의를 재수사해달라”고 항고했다. 금호석유화학은 또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의 기업어음 발행 시기에 이미 변제능력을 상실했고 기업어음을 통한 자금지원 시 위법적 방법을 동원했음에도 검찰이 제대로 판단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형제간 장기간 법적 다툼
    박찬구와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두 사람은 여러 건의 송사를 이어갔다. 크고 작은 건수만 10건에 이른다.

    박찬구는 2014년 2월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주식거래와 횡령, 배임 혐의로 재판을 받았으나 배임 관련 일부만 유죄로 인정돼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받았다. 금호석유화학 측은 검찰 수사의 배후로 박삼구 회장을 의심했다.

    2014년 2월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박찬구의 운전기사를 고소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박찬구의 운전기사가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보안용역직원을 사주해 비서실에서 문건을 빼돌렸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운전기사는 1심과 2심에서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재판부는 운전기사가 보안용역직원에 86만 원 상당의 식사 등을 제공했으나 이 부분을 놓고 대가성을 단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2010년 초 금호산업의 워크아웃으로 기업어음 대금을 지급받지 못하자 금호피앤비화학은 2013년 5월 금호산업을 대상으로 어음금 청구 소송을 내기도 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계열 분리되기 이전인 2009년 말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계열사인 금호피앤비화학에게 90억 원과 30억 원 규모의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 기업어음을 매입하도록 했다. 

    2015년 10월 금호산업이 워크아웃 직전 금호피앤비화학에 발행한 기업어음 대금 90억 원과 이자 30억 원 등 120억 원을 갚으면서 금호석유화학 측에서 관련 소송을 취하했다.

    박찬구는 2009년 6월 미공개 내부정보를 통해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대우건설을 매각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미리 파악하고 보유한 금호산업 주식 262만 주(보유 주식 가운데 88%)를 집중적으로 매도해 102억 원의 손실을 회피한 혐의로 기소됐다.

    또 2008년 11월부터 2011년 1월까지 금호피앤비화학과 공모해 모두 23회에 걸쳐 아들에게 모두 107억5천만 원을 대여하도록 한 혐의(배임), 제품 납품대금 명목으로 31억9880만 원 상당의 금호석유화학 이름의 전자어음을 발행하고 지급한 혐의(횡령) 등도 추가됐다.

    △아시아나항공 2대주주 권한 행사하며 갈등 심화
    박찬구는 박삼구 회장의 아시아나항공 사내이사 선임에 반대해 형제간 사이가 더 벌어졌다.

    2014년 3월 27일 열린 아시아나항공 주주총회를 앞두고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박삼구 회장의 이사 선임안과 금호산업 지분 매각을 추진했다.

    금호석유화학은 이에 반대했다. 박찬구는 박삼구 회장이 아시아나항공의 사내이사로 선임되면 기업가치가 계속 훼손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찬구는 변호사 3명을 주주총회 현장에 보냈다. 이들은 박삼구 회장의 사내이사 선임을 놓고 반대 의사를 밝혔다. 또 아시아나항공이 상호출자제한 해소를 위해 실시한 총수익맞교환(TRS) 방식의 금호산업 주식 매각은 아시아나항공에 손실을 끼치는 배임행위라고 주장했다. 박삼구 회장은 박찬구의 반대에도 아시아나항공의 사내이사로 선임됐다.

    금호석유화학은 같은 해 4월 "주총 당시 출석한 주주와 주식 수를 확인하지 않았고, 이사 선임 안건에 대해 우리를 비롯한 일부 주주가 반대 의사를 표시했음에도 표결에 부치지 않는 등 각종 절차적 하자로 이 결의는 부존재 사유가 있다"며 주주총회 결의 부존재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5년 6월 재판부는 금호석유화학이 아시아나항공을 상대로 낸 주주총회 결의 부존재 확인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아시아나항공 소액주주, 주주대표 소송 제기
    박찬구는 박삼구 회장, 아시아나항공 전현직 이사 9명과 함께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휘말렸다. 경제개혁연대 등 아시아나항공 소액주주들은 2014년 모두 247억6천만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이들은 2009년 12월 금호산업이 워크아웃 신청한 뒤 발행한 기업어음을 투자가치가 없는데도 아시아나항공이 이를 사들여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고 주장했다. 또 2006년 회사가 유류할증료 담합 조사를 받을 때 감독 업무를 소홀히 해 207억 원의 과징금을 경감받지 못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2016년 2월 선고 공판에서 이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 ◆ 경력

    ▲ 박찬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화학부문 회장(왼쪽 세번째)과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왼쪽 네번째)이 2007년 9월7일 임직원들과 함께 서울 강서구 오쇠동 아시아나항공 본사에서 그룹의 5백 년 아름다운 기업을 기원하는 팽나무를 식수하고 있다. 

    1976년 한국합성고무에 입사했다.

    1978년 1월 금호실업 이사로 근무했다.

    1982년 5월 금호건설 상무로 자리를 옮겼다.

    1984년 1월 금호석유화학 대표이사 부사장에 올랐으며 1988년 2월까지 재직했다.

    1989년 3월 금호몬산토 대표이사 사장을 거쳐 금호그룹 회장부속실 사장, 금호그룹 비전경영실 사장 등을 지냈다.

    1996년 금호석유화학 대표이사 사장으로 재직했다.

    2000년 3월부터 2001년 12월까지 금호미쓰이화학 대표이사 사장, 2000년 9월부터 2000년 12월까지 금호케미칼 대표이사 사장을 같이 맡았다.

    2004년 1월 금호석유화학 대표이사 부회장에 올랐다.

    2006년 11월 금호아시아나그룹 화학부문 회장에 올랐다.

    2009년 7월 그룹 경영문제로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갈등을 빚고 회장에서 물러났다.

    2010년 3월 금호석유화학 대표이사 회장으로 경영에 복귀해 금호아시아나그룹과 선을 그으며 독자적 경영활동을 펼치고 있다. 

    2010년 5월에서 2011년 4월까지 세계합성고무생산자협회(IISRP) 회장을 맡았다.

    2015년 11월 금호석유화학그룹을 계열분리하고 동일인에 지정됐다.

    ◆ 학력

    1967년 광주 제일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67년 미국 아이오와주립대학교 통계학과에 입학해 1972년 졸업했다.

    2009년 아이오와주립대학교 명예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 가족관계

    ▲ 2005년 7월10일 서울시 광륜사에서 열린 고 박성용 금호아시아나 명예회장의 49재에서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부회장 등 유족들이 고인의 명복을 빌고 있다.

    아버지는 박인천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창업주, 어머니는 이순정씨다. 4남3녀 가운데 4남이다. 

    첫째 형인 박성용씨는 예일대 경제학 박사과정 졸업 뒤 박정희 정부에서 청와대 경제담당보좌관을 지냈다. 이후 서강대 교수로 재직하다 제2대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예술의전당 이사장 등을 역임했으며 2005년 사망했다.

    둘째 형인 박정구씨는 제3대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광주상공회의소 회장을 지냈으며 2002년 사망했다.

    셋째 형은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으로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과 한국프로골프협회장 등을 지냈다.

    남동생 박종구씨는 교육과학기술부 제2차관을 거쳐 아주대 교육대학원 교수, 한국폴리텍대학 이사장을 역임했고 현재 초당대학교 총장을 맡고 있다.

    첫째 누나 박경애씨는 배영환 삼화고속 회장의 부인이며 둘째 누나 박강자씨는 금호미술관 관장과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부이사장을 맡고 있다.

    여동생 박현주씨는 임창욱 대상그룹 명예회장과 결혼했다. 상암커뮤니케이션즈 부회장과 대상홀딩스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박찬구는 부인 위진영씨와 사이에서 1남1녀를 두고 있다. 위씨는 위창남 전 경남투자금융 사장의 딸이다.

    장남 박준경씨는 고려대학교에서 환경생태공학을 전공하고 금호석유화학에 입사해 상무로 근무하고 있다.

    장녀 박주형씨는 1980년생으로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 특수교육학과를 나와 2010년 대우인터내셔널(현 포스코대우)에 입사했다. 그 뒤 금호석유화학으로 자리를 옮겨 상무로 근무하고 있다.

    ◆ 상훈

    2000년 3월 철탑산업훈장을 받았다. 같은 해 산업재해 예방 대통령상을 받았으며 환경친화와 안전 초일류 기업과 품질경영 우수 50대 기업으로 선정됐다.

    2005년 11월 무역의날 기념식에서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2010년 9월 이웃돕기 유공자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2012년 제2회 기후변화 그랜드 리더스 어워드 기업부문에 선정됐다.‘ 기후변화 그랜드 리더스 어워드’는 기후변화센터가 한 해 동안 기후변화 대응에 앞장선 정부, 기업, 시민사회의 파트너십을 통해 각계의 역량과 지혜를 모으고자 노력하는 개인과 기관들을 대상으로 주는 상으로 2011년 처음 제정됐다.

    ◆ 기타

    2018년 상반기 보수로 급여 12억1700만 원, 상여금 23억5800만 원 등 모두 35억7600만 원을 받았다. 

    박찬구는 금호석유화학 보통주 204만 주를 보유하고 있다. 지분율은 6.69%로 조카 박철완 금호석유화학 상무(10.0%), 장남 박준경 금호석유화학 상무(7.17%)에 이어 개인주주 가운데 세 번째로 높다.

  • ◆ 어록

    ▲  금호석유화학은 2010년 9월8일 중국 랴오닝성 선양에서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오른쪽에서 세번째) 등이 참석한 가운데 건자재 공장 준공식을 하고 있다.<금호석유화학>

    “2018년 경영방침을 ‘딥 체인지’로 정했다. 불확실성에 도전하면서 회사의 가치를 높이고 더 높이 성장하기 위해 새로운 가능성을 확보할 것이다. 회사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해 고객 수요 및 환경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고 각 사업장의 안전과 환경 관리체계를 강화하겠다.” (2018/03/16, 금호석유화학 2018년 정기주주총회에서)

    “2017년 경영방침을 ‘액트(ACT) 2017’로 정했다. 낡은 타성을 버리고(Cut), 위기를 기회로 바꿔(Change), 세계 최고를 만드는(Create) 것을 지금 바로 실행하자는 의미를 담았다.” (2017/03/17, 금호석유화학 2017년 정기주주총회에서)

    “나도 이제 지쳤고 더 이상 싸우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계열분리도 다 된 상황에서 서로 각자 잘 경영하면 된다. 더 이상 치고받고 할 필요도 없지 않겠나 해서 마음 터놓고 해버렸다."

    "오해할 것 없다. 나도 편하게 살고 싶어서 마음을 풀었다. 강자가 자비를 베풀라고 하지 않느냐. 그쪽(박삼구 회장)은 아직 재무구조도 약하고 해야 할 일이 많아 내가 강자니깐 베풀어주는 식으로 했다.” 

    “때가 되면 (박삼구 회장과) 만나게 될 것이다. 아직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2016/08/12, 형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화해한 뒤 아시아경제와 인터뷰에서)

    “그럼 다시 금호아시아나그룹 계열사가 되는데 뭐 하러 하겠느냐. (타이어 사업은)형의 영역이다. 그쪽은 발을 담그지 않겠다.” (2016/08/12, 형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화해한 뒤 아시아경제와 인터뷰에서 금호아시아나그룹의 금호타이어 인수를 도울 의사가 있느냐는 질문을 받자)

    “아시아나항공이 금호터미널을 2700억 원이라는 헐값에 매각한 것은 법인과 주주가 아닌 박삼구 회장 개인을 위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문제를 지적한 것은 소액주주들을 대신해 아시아나항공 경영을 잘해 달라는 경고다. 무엇을 얻겠다는 게 아니다.” (2016/06/07, 머니투데이와 인터뷰에서 금호기업의 금호터미널 인수합병을 반대하고 나선 이유에 대해)

    “금호석유화학은 아시아나항공의 설립 주주로 지난 28년 동안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형제갈등 모습을 보이면서도 주주 행동에 나선 것은 회사가 더 이상 나빠지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정도경영을 할 수 있도록 견제하는 것이 목적이다. 우리가 경영 감시자로 활동하기에 아시아나항공이 그나마 이 정도로 버티고 있다고 생각한다.” (2016/06/07, 머니투데이와 인터뷰에서 아시아나항공의 경영상황에 대해 평가해달라는 질문에)

    “갈등의 발단은 형인 박삼구 회장이 제공했다. 화해를 원하면 원인 제공자가 직접 오면 될 일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해서 이들만 불편하게 하는 건 잘못됐다.” (2016/06/07, 머니투데이와 인터뷰에서 형인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화해 가능성을 묻자)

    “아버지가 만든 상표권을 함께 사용하는 것이 문제 될 수 없으며 비용을 모두 지급했는데 어떻게 우리 것이 아니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2016/06/07, 머니투데이와 인터뷰에서 상표권 소송에 대해 언급하며)

    “경영을 잘하기 위해선 모든 업무를 다 해봐야 하고 회사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애정을 쏟을 수 있는 사람이 향후 경영을 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딸의 지분율이 아직 낮은데 책임 경영을 강화하기 위해 지분을 늘리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2016/06/07, 머니투데이와 인터뷰에서, 경영 후계구도에 대해)

    “투명경영을 통해 오랫동안 지속 가능한 기업이 될 수 있도록 만들 것이다. 이게 나를 위해서도 편하다. 지난해 직원들의 비리문제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했을 때도 감추지 않고 회사가 적극적으로 수사기관에 고발하고 협조했다. 투명하게 경영하겠다는 의지를 주주들이나 임직원들이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2016/06/07,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석유화학은 올해로 45년 됐다. 금호가는 70년이지만 우리는 45년이다.” (2016/01/07, 기자들이 올해가 금호그룹 창립 70주년인데 같이 할지 묻자)

    “생각해 봐야지.” (2016/01/07, 기자들이 박삼구 회장과 화해를 묻자)

    “우리가 금호석유화학그룹으로 출범하는 올해는 공교롭게도 금호그룹이 70주년을 맞는 해이기도 하다. 70년간 우리는 금호그룹이 있어 태어날 수 있었고 또한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금호그룹’이었기에 할 수 없었던 것들도 많았다. 과거 우리를 성장시켰던 것들은 더 이상 미래를 담보하지 못한다.”

    “우리는 과감히 옛 방식과 결별해야 한다. 새로운 길을 떠나야 하는 시간이다. 그 길에서 실패를 겪는다 해도 이겨내서 후대에 물려 줄 정신이나 가치를 남긴다면 그것이야말로 금호를 계승발전시키는 진정한 유산일 것이다.”

    (‘남에게 진실되게 살아라’라는 창업주의 가르침을 언급하며) “반평생, 40년을 금호인으로 살아온 저로써는 아직도 그 뜻을 다 헤아리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말씀이 금호석유화학그룹의 새로운 창업에 단단한 디딤돌이 되어줄 것이라 믿는다.” (2016/01, 신년사에서)

    “금산공장은 금호석유화학과 상해 일지승이 15년여 동안 쌓아온 신뢰와 믿음을 바탕으로 합작사의 제2의 도약과 발전을 위해 추진한 프로젝트다. 이번 준공을 통해 금호석유화학이 양국의 경제발전에 더욱 크게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2015/10/22, 중국 상해시에서 열림 중국 합작사 상해금호일련소료유한공사의 금산 공장 준공식에서)

    “최근 종영한 드라마 미생에서 '바둑판 위에 의미 없는 돌이란 없어'란 대사가 화제였다고 들었다. 이제까지 우리의 경험과 성과를 하나하나의 바둑돌처럼 소중하게 아끼고 단단하게 뭉쳐서 어떠한 위협에도 깨지지 않는 집처럼 위기를 극복하자. 바둑을 두는 사람들은 대국이 끝난 다음 반드시 '복기(復碁)'를 한다. 자기가 두었던 수를 기억해 그대로 다시 벌여놓는 것은 돌 하나하나에 가치를 두며 처음부터 끝까지 '최선의 수'를 놓기 때문이다. 여러분도 앞으로 매사에 한수 한수 '최선의 수'를 놓아주길 바란다.” (2015/01, 신년사에서)

    “각자의 길을 가야 하는 마당에 형과 소모적 갈등보다 금호석유화학을 잘 이끌어가는 게 더 중요하다.” (2014/02/01, 1심 선고 뒤 아시아경제와 인터뷰에서)

    “세계 최대의 생산능력과 기술력에 안주할 것인지 아니면 이를 발판으로 삼아 한 단계 도약할 것인지는 당연하게 의지해 온 과거의 관례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가에 달렸다.” (2014 신년사에서)

    “나는 회사에 지금과 같은 천문학적 손실을 입혔으면 반드시 책임지고 물러났을 것이다. 당신은 무책임한 사람이다.” (2009, 이사회 해임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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