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법 개정안으로 일감몰아주기 규제기업 376곳으로 강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이 24일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독점규제와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 전면개정안 입법예고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공정거래위원회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이 되는 기업 수가 기존 231개에서 607개로 대폭 늘어난다.

대기업집단에 속한 공익법인이 계열사에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금지되며 공정거래법을 위반한 사업자에게 부과하는 과징금을 현재의 2배로 인상해 법 집행의 실효성을 높인다.

공정위는 26일 보도자료를 내고 “변화하는 경제환경과 공정경제, 혁신성장 등 시대적 요구를 반영하기 위해 ‘독점 규제와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 전부개정안을 마련해 24일 입법예고했다”고 밝혔다.

공정거래법은 1980년에 제정된 뒤 27차례에 걸쳐 일부 수정됐지만 전면 개정이 시도되는 것은 법 제정 이후 38년 만에 처음이다.

김상조 공정위 위원장은 2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고도 성장기에 제정한 공정거래법 규제 틀로는 변화한 경제여건과 공정경제와 혁신성장 등 시대적 요구를 반영하기에 한계가 있다”고 법 개정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이번 전면 개정안은 민간 전문가들로 구성된 특별위원회의 논의 결과를 토대로 학계와 국회, 재계 등의 의견을 반영해 마련됐다.

개정안은 큰 틀에서 △법 집행 체계 개편 △대기업집단시책 개편 △혁신성장 생태계 구축 △법집행 투명성 강화 등 네 분야로 구성됐다.

◆ 법 집행체계 개편

공정위는 형사 제재와 관련해 엄정한 형사 집행이 필요한 부분과 형벌부과 필요성이 낮은 부분을 구분하기로 했다.

공정위의 전속고발권은 폐지된다. 가격과 입찰담합 등 위법성이 중대하고 소비자에게 큰 피해가 돌아가는 ‘경성담합’(담합의 90% 이상) 행위를 인지하면 누구나 검찰에 고발할 수 있게 된다.

다만 전속고발제를 폐지하면 자진신고가 줄어들거나 중복 조사에 따라 기업들의 부담이 가중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자진신고 활성화방안과 중복 조사 해소방안 등 보완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법 위반 여부를 판단하는 데 경쟁 제한성 분석이 필요해 법 체계상 형벌을 내리는 것이 부적절한 기업결합 및 일부 불공정거래행위 등에 대한 형벌은 삭제한다.

대기업의 갑횡포 행위 등 불공정거래행위의 피해자가 신고나 처분을 거치지 않고 법원에 곧바로 행위중지를 청구할 수 있는 ‘사인의 금지 청구제’도 도입한다.

공정위는 “피해자가 공정거래위원회의 신고나 처분을 기다리지 않고도 위법행위의 중지를 청구할 수 있어 피해자들을 구제하는 실질적 수단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행정제제의 실효성을 강화하기 위해 공정거래법 위반 시 부과되는 과징금 상한은 일률적으로 2배 상향된다. 

현행 과징금 부과 기준은 법 위반을 억제하는 데 부족한 수준이라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공정위는 담합과 관련해 기존 법 위반 금액의 10%인 과징금을 20%로 늘리기로 했다. 시장지배력남용(3%→6%), 불공정거래행위(2%→4%) 등의 과징금 처분 기준도 모두 높아졌다.

◆ 기업집단법제 개선

기업집단법제와 관련해 공정위는 ‘경직적 사전규제 탈피’와 ‘과잉규제 지양’, ‘다양한 부처와 법률 수단의 협업체계 구축’을 목표로 삼았다.

대기업들이 대기업집단에 소속된 공익법인을 통해 계열사 의결권을 행사하는 행위는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공정위는 “대기업집단 소속 공익법인은 현행 공정거래법상 별도의 규제를 받지 않아 공익법인으로서 세금 혜택을 받으면서 총수일가의 지배력 확대나 사익 편취 수단으로 이용한다는 우려가 제기됐다”고 의결권 행사를 금지한 이유를 설명했다.

공익법인이 보유한 계열사 지분의 의결권 행사를 금지하되 상장 계열사에 한해 특수관계인의 지분을 합산해 15% 한도까지는 예외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한다.

법 시행 이후 2년 동안 예외기간을 두되 그 이후에는 3년에 걸쳐(30%→25%→20%→15%) 단계적으로 의결권 행사 비율을 축소하도록 했다.

금융회사와 보험회사가 다른 계열사의 지분을 보유했을 때 추가적으로 의결권을 제한(금융·보험사 단독 5% 규제 방안)하는 방안은 규제실익이 크지 않다고 보고 현행 기준(15%)을 유지한다. 다만 적대적 인수합병 방어와 무관한 계열사간 합병은 예외적 의결권 행사사유에서 제외된다. 

순환출자 문제와 관련해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으로 새로 지정되는 기업집단에 한해 기존 순환출자에 대한 의결권을 제한하기로 했다.

지주회사가 필수적으로 보유해야 할 자회사와 손자회사 지분율 요건은 상향됐다. 상장회사 지분율은 현행 20%에서 30%로 높아지며 비상장회사에 대한 지분율도 기존 40%에서 50%로 상향한다.

총수일가의 사익 편취와 관련한 일감 몰아주기 기준도 강화된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 기업의 기준을 상장·비상장 여부와 관련 없이 총수일가가 지분 20% 이상을 보유한 기업으로 명시하기로 했다. 현재는 상장회사 30%, 비상장회사 20%로 이원화되어 있다.

총수일가가 지분 20% 이상을 보유한 기업이 50% 이상의 지분을 보유한 자회사들도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에 올려 일감 몰아주기 규제의 실효성을 높이기로 했다.

◆ 혁신성장 생태계 구축

개정안에는 4차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한 규정도 담겼다.

대기업이 벤처지주회사를 설립하기 쉽도록 자회사 지분 보유 비율을 지분 보유 특례 등을 적용해 완화하기로 했다.

성장잠재력이 큰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을 거액에 인수하더라도 기업결합 신고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 문제를 시정하기 위해 자산총액·매출액이 신고 기준(300억원)보다 낮아도 인수가액이 크면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하도록 했다.

‘정보 교환행위’와 관련한 담합 규율체계도 보완한다. 최근 담합이 가격에 대한 명시적 합의 없이 정보 교환을 매개로 암묵적으로 이뤄지는 점을 감안해 경쟁 행위를 실질적으로 제한할 수 있는 행위를 금지하기로 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분석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산하 기관인 한국공정거래조정원이 연구 업무를 할 수 있는 근거도 개정안에 담겼다.

◆ 법집행 투명성 강화

공정거래위원회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투명성 강화방안도 개정안에 포함됐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조사한 사건의 처분을 결정하는 9인 전원회의 위원 가운데 비상임위원 4명을 상임위원으로 바꿔 책임성을 높인다. 4명은 대한변호사협회와 대한상공회의소, 중소기업중앙회, 소비자단체협의회가 각각 추천하는 민간 전문가로 채운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 권한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사건 처분 시효를 최장 12년에서 7년으로 단축한다.

공정거래위원회 사무처의 심사보고서가 위원회에 상정된 후에는 현장조사나 피심인 진술 청취도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현재 고시에 규정된 변호인 조력권, 피조사자 진술권은 법률에 담아 공정거래위원회 조사를 받는 이들의 방어권을 높인다. [비즈니스포스트 이규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