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Is ?] 김현종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

임주연 기자
2018-08-14 08: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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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김현종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


    ◆ 생애

    김현종은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다.

    1959년 9월27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미국에서 학교를 다녔으며 컬럼비아대학교 로스쿨에서 법무 박사학위(JD)를 받고 뉴욕주 변호사 자격증을 받았다.

    미국 대형 로펌에서 일하다 귀국해 홍익대학교 무역학과 조교수로 일했다.

    통상 전문가로 외교통상부에 영입돼 고문 변호사, 통상전문관, 통상교섭조정관을 지냈고 노무현 정부에서 통상교섭본부장을 맡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주도했다.

    유엔대사를 역임한 뒤 공직에서 물러나 삼성전자 사장, 한국외대 교수를 지냈으며 문재인정부의 첫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에 다시 발탁됐다. 한국 최고의 통상 협상 전문가로 한미 FTA 개정 등 통상현안을 풀어갈 적임자로 꼽혔다. 

    두둑한 배짱으로 협상에서 좀처럼 주도권을 넘겨주지 않는 카리스마를 지녔다는 평가를 받는다. 

    ◆ 활동의 공과

    △미국의 자동차 232조 조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18년 5월 한국과 유럽, 일본 등을 겨냥해 수입차에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무역확장법 232조를 적용해 수입차에 최고 25%의 관세를 부과하는 것이다. 

    미국은 자동차 수입이 미국의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되는지, 관셉 부과가 정당한지를 검토하고 있다. 미국 상무부는 2018년 7월19일에도 워싱턴DC의 상무부 강당에서 공청회를 열고 ‘수입자동차 관세’를 놓고 업계 의견을 수렴했다.

    한국 정부는 한국이 미국의 핵심 안보동맹국이자 신뢰할 만한 교역 상대이므로 미국 국가 안보에 위협을 주지 않는다고 강조하고 있다. 또한 자동차 무역수지 적자를 줄이기 위한 차원에서 한미 FTA를 개정한 상황에서 추가 관세를 부과하면 한미 FTA 혜택을 근본적으로 훼손할 여지가 있다고도 본다. 

    △한미 FTA 개정 협상
    김현종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이끈 장본인으로서 한미 FTA 개정 테이블에 다시 앉게 됐다. 미국 트럼프 정부는 한미FTA 개정을 원하고 있어 2017년 7월 한미 FTA 공동위원회 특별회기 개최를 요청했다.

    한국과 미국은 2017년 8월22일에 한미 FTA 공동위원회 특별회기 1차를 열었다. 당시 양측은 한미 FTA의 효과와 미국 무역적자의 원인, FTA 재개정 필요성에 상호 이견이 존재함을 확인했다. 이 회기에서는 어떤 합의에도 이르지 못했다.

    미국은 한미 FTA 이후 미국의 상품수지 적자가 2배로 늘어난 점을 문제 제기하고 한미 FTA의 개정 또는 수정을 통해 이를 시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한국은 한미 FTA를 현행대로 유지하는 게 좋다는 태도를 보였다. 한미 FTA 효과에 대한 조사·분석·평가가 선행돼야 한다는 점, 어떠한 결정도 상호 호혜성의 원칙 하에 양측 간 합의로 이루어져야 된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한국과 미국은 2017년 한미 FTA 공동위원회 특별회기 2차, 2018년 1월에 1~2차 개정 협상, 2018년 3월 3차 개정 협상을 하면서 합의를 마쳤다.

    개정 협상에서 한국은 미국의 철강 관세 면제국가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며 불확실성을 완화했다. 농산물 개방이나 자동차 부품 사용 의무화 등의 이슈도 방어했다. 

    다만 자동차부문에서는 자동차 안전기준 인정 범위 확대, 픽업트럭 관세 철폐 기간 연장 등 미국 측의 자동차 관련 관심사항이 반영됐다. 

    산업부에 따르면 2018년 7월 한미 FTA는 분야별 문안을 놓고 진행된 협의를 사실상 완료했다. 양국 영향 평가와 일부 기술적 사항을 놓고 협의를 진행한 뒤 9월에 서명식을 열기로 했다. 

    △미국 세탁기·태양광 세이프가드 발동
    한국은 2018년 5월15일 미국이 세탁기·태양광 수출품에 부과한 세이프가드(수입제한) 조치를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다. 

    미국은 2018년 1월 수입세탁기를 놓고 세이프가드를 발동했다. 미국 가전업체인 월풀이 한국산 제품을 수입해 미국 산업에 심각한 피해를 줬다고 제소한 데 따른 것이다. 

    하지만 김현종은 월풀의 제소가 미국 산업의 시장 점유율이나 이윤 부분에서 피해를 줬다고 보기 어렵다고 민관에 설명했고 WTO의 제소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다만 11월이면 WTO의 분쟁해결기구 상소위원 7명 가운데 3명만 남는다. 3명까지 상소위원이 줄면 상소기구가 사실상 제대로 된 기능을 하기 힘들다는 판단이 나온다. 

    정부는 이를 두고 국제사회와 공조해 상소위원 선임을 위한 164개 회원국들의 의견을 모으고자 하고 있다.  

    ▲ 김현종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오른쪽에서 두번째)이 미국 워싱턴 DC 무역대표부에서 열린 '제2차 한미 FTA 공동위원회 특별회기'에 참석해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 등과 함께 양국 FTA 현안을 논의하고 있다.

    △두번째 통상교섭본부장 임명
    2017년 7월30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에 임명됐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경제통상분야 전문가로서 주요 교역국과 FTA 체결 업무를 수행하면서 쌓은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당면한 통상 현안들을 차질없이 해결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종 발탁에 여당은 물론 야당에서도 긍정적 반응이 나왔다.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이 상충하는 상황에서 김 신임 본부장의 임명은 전문성과 국익을 고려한 합리적이고 실리 중심의 인선”이라고 평가했다.

    정용기 자유한국당 원내수석대변인은 “김 신임 본부장은 자타가 인정하는 통상교섭분야 전문가”라며 “경험과 전문성을 살려 한미 FTA 개정협상 준비를 철저히 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종철 바른정당 대변인은 “현 시점에서 충분한 역할을 할 것으로 여겨진다”고 기대했다.

    김현종은 8월4일 취임식에서 “통상교섭본부 직원 모두가 전략가가 되기를 원한다”며 “우리가 예측 가능하게 행동하기를 원하는 건 협상 상대방뿐으로 수동적이고 수세적 골키퍼 정신은 당장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계무역기구(WTO) 상소기구 위원 선출
    2016년 5월 장승화 전 WTO 상소기구 위원이 미국의 반대로 연임에 실패하자 정부는 후임으로 김현종을 추천했다.

    WTO 상소기구는 국제통상법분야의 최고 심판기관으로 국제통상과 WTO 협정의 전문지식을 보유하고 정부로부터 독립되며 회원국을 다양하게 대표하는 위원들로 구성된다. 위원 숫자는 7명인데 미국과 유럽연합(EU)이 관행적으로 1석씩 유지하고 있고 나머지 5자리를 지역·선진-개도국 사이 안배에 따라 뽑는다. 

    장 전 위원의 공석에 김현종을 포함 중국 2명, 일본, 호주, 대만, 네팔 각 1명 등 모두 7명이 입후보했다. 김현종은 10월8~26일 동안 스위스, 벨기에, 미국 등을 방문해 WTO 인터뷰와 선거운동 활동을 벌였다.

    김현종은 WTO 사무국 근무와 통상교섭본부장, 유엔대사 역임 등의 경험을 바탕으로 차별화된 자질을 피력했고 정부도 재외공관을 통한 지지 확보, 주요국 통상장관과 통상당국 접촉 등으로 지원에 나섰다.

    결국 2016년 11월23일 WTO 분쟁해결기구 정례회의에서 상소기구 위원에 공식 임명됐다. 상소기구 위원은 WTO 분쟁의 최고 판단자로서 전문성과 권위를 인정받는 직위로 우리나라에서 상소기구 위원이 연속 배출된 것은 통상분야의 쾌거로 여겨졌다. 

    ▲ 기자들에게 둘러 싸인 김현종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

    △정치 출사표
    2016년 2월18일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했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의 영입인사 1호라서 더욱 주목받았다.

    김현종은 입당 인사에서 “‘경제와 외교안보 글로벌 2.0’시대를 열고 있는 대한민국은 정치도 이 시대에 맞는 정치인이 필요할 것”이라며 “글로벌 진출 2.0시대를 정치인으로서 국민여러분과 함께 하겠다”고 밝혔다.

    김현종은 20대 총선에서 인천 계양갑 예비후보로 출마했다. 김현종은 “제 능력과 네트워크로 이 지역을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봤다”고 설명했다.

    김현종은 마찬가지로 정치신인인 유동수 후보와 경선에서 맞붙었다. 한미 FTA의 주역이었던 김현종의 우세를 점치는 사람도 있었으나 30년 동안 이 지역에서 공인회계사로 활동하고 인천도시공사 상임감사, 송영길 전 인천시장 후원회 등을 지내며 지역기반을 다진 유동수 후보에게 밀렸다. 공천 심사 결과는 유동수 66.85%, 김현종 43.15%였다.

    김현종은 경선 탈락 후 블로그에 “짧은 시간이었지만 계양 주민 여러분들과 함께했던 소중한 시간에 감사드린다”며 “공정하고 당당한 경쟁을 함께 한 유동수 후보께 축하드리고 본선에서 꼭 승리하시기를 바란다”는 인사를 남겼다.

    △삼성전자 애플 특허소송 관여
    2009년 3월 삼성전자 글로벌법무담당 사장에 영입돼 해외특허, 반덤핑 등 해외 법무와 지적재산 관련 업무를 총괄하게 됐다.

    삼성전자는 “글로벌 시장을 규제하는 법과 제도가 수시로 변하고 있어 이에 적절히 대처하지 않으면 시장에서 생존하기 어렵다”며 “김 사장은 뛰어난 법무 실무가인 동시에 기업의 생존과 미래 전략을 이끌고 나갈 전략가로서의 능력과 자질이 검증된 인물로 글로벌 기업 삼성전자가 특허경영을 강화해 나가는 데 핵심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현종은 2011년 4월부터 벌어진 애플과 특허소송을 이끌었다. 애플이 먼저 미국 캘리포니아 법원에서 삼성전자에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하자 삼성은 이에 반소하는 등 두 회사가 세계에서 특허전쟁을 벌였는데 김현종이 맞불전략을 주장한데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김현종은 애플과 특허 분쟁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2011년 12월31일 삼성전자를 퇴직했다. 삼성전자 퇴직 예우 규정에 따라 3년 임기의 상담역으로 활동할 수 있으나 이를 거절했다.

    재직 중이던 2011년 11월 대형 로펌으로 이적설이 나오기도 했으나 삼성전자는 이를 부인했다. 삼성 퇴직 이후에도 로펌으로 가지 않았다.

    △유엔대사 활동
    2007년 8월 제21대 유엔대사에 임명됐다. 당시 한미 FTA를 성공적으로 타결했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평가와 함께 본인의 의사가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통상 전문가인 만큼 다자외교·안보분야에 취약해 유엔대사에 적합하지 않다는 비판을 받았다. 역할을 고려하면 차라리 제네바 대사에 적합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박남춘 청와대 인사수석은 “한미 FTA의 성공적 추진에 크게 기여했고 미국 정.재계나 유엔 산하 각종 국제기구 등에 지인이 많고 국제사회의 인지도가 높은 점을 감안해 유엔대표부 대사직에 발탁했다”고 설명했다.

    박 수석은 또 “국제규범으로 움직이는 유엔 기구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법률에 대한 소양과 능력”이라며 “변호사 출신인 김 본부장의 '리걸(legal) 마인드'를 감안했고, APEC 등에서 정부 대표로서 다자외교 활동을 열심히 하는 등 여러 요인을 감안해 유엔대사로 손색이 없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2007년 10월 53개 아시아 회원국가로 구성된 유엔 아주그룹 의장에 선임됐다. 아주그룹 회의를 주재하는 것은 물론 안전보장이사회 등 유엔 주요기관과 산하기관 등의 선거에서 회원국 사이 입후보를 조정하고 각종 회의에서 아주 지역 뜻을 대변하는 역할을 맡았다.

    2008년 1월에는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부의장에 선출됐다. 경제사회이사회는 개발과 인권 등 경제사회 문제 전반을 관할하는 유엔 주요 기관으로 김현종은 장 마르크 호샤이트 룩셈부르크 대사 등 3명과 함께 1년 동안 부의장으로 활동하게 됐다.

    2008년 5월 유엔대사에서 귀임했다.

    △참여정부 통상교섭조정관 통상교섭본부장
    2003년 대통령직인수위에서 통상현안 브리핑을 하면서 노무현 대통령의 눈에 들어 참여정부 통상부문을 사실상 주도적으로 이끌게 됐다.

    참여정부 출범 직후인 2003년 5월 통상교섭조정관으로 발탁됐다. 노 대통령의 깊은 신임을 받으면서 FTA 추진 로드맵을 만들었고 사실상 FTA 추진의 전권을 부여받았다. 그래서 개방형 공무원 채용과 한미FTA기획단 신설 등 인사와 조직개편 권한까지도 행사할 수 있었다.

    2004년 7월 통상교섭조정관이 된지 1년3개월 만에 장관급인 통상교섭본부장까지 초고속으로 승진해 40대의 젊은 나이로 통상부문의 사령탑이 됐다.

    정찬용 청와대 인사수석은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45세의 젊은 나이지만 통상법을 공부했고 4년간 세계무역기구(WTO)의 수석고문변호사를 역임했으며 지난해부터 통상교섭조정관으로 대외협상 업무를 차질없이 수행해 조직 내외에서 좋은 평가를 얻었다”고 설명했다.

    통상교섭본부장으로 재직하면서 아세안, EU, 캐나다, 인도 등 동시다발적 대형 FTA를 추진하면서 한국 자유무역 지도를 확대하는 토대를 마련했다.

    2006년 2월3일 한미 FTA 협상을 발족했다. 한미 FTA는 쌀·쇠고기 등 농축산물 문제, 자동차 ·섬유 등 제조업 문제, 스크린쿼터 등 문화예술 문제, 개성공단 생산품 지위 등 외교안보 문제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쉽지 않은 과제로 여겨졌다. 김현종은 “궁극적으로 한미 FTA가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확신을 갖고 추진한다”고 밝혔다.

    협상 만료 시한이 닷새 남은 2007년 3월26일부터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카란 바티아 미국 무역대표부 부대표와 '끝장 협상'에 들어갔다. 마지막날인 31일 양쪽은 4월2일 새벽 1시까지 협상 연장에 합의하며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끝까지 첨예한 공방을 주고받았다.

    결국 2007년 4월2일 한미 FTA 협상을 타결했다. 김현종은 국회 보고에서 한미 FTA에 이면합의가 없으며 재협상도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나 미국의 요구로 추가 협상이 진행돼 7월1일에야 서명이 이뤄졌다. 이후 한미 FTA는 2010년 한 차례 더 추가협상을 거쳤다.

    2007년 5월6일 한EU FTA 협상 출범을 공식 선언했다. 8월 김종훈 한미 FTA 협상 수석대표에게 통상교섭본부장 자리를 넘기고 유엔대사로 임명받았다.
     
    ◆ 비전과 과제

    ▲ 김현종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서울 종로구 한국무역보험공사에서 열린 미국의 수입 세탁기·태양광 세이프가드 조치와 관련한 민관대책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김현종은 견조한 수출 성장을 통해 수출이 일자리와 소득 증대로 이어지는 선순환구조를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 

    수출 실적은 2018년 7월에 역대 2위 수준을 기록하는 등 견조한 증가세가 이어지고 있다. 김현종은 2018년 하반기에도 수출 증가세를 유지하기 위해 상반기 말에 수출금융 특별 프로그램 가동 및 신산업 육성, 수출지원체계 강화 등 4가지 방안을 마련했다.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는 2022년까지 일본을 제치고 세계 수출 4위에 오르겠다는 목표를 담은 ‘신통상정책’ 초안을 2018년 4월 발표했다.

    한국은 보호무역주의 기조 및 미국과 중국의 무역갈등이 심화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김현종은 이 상황을 한국의 수출구조를 바꾸는 계기로 만들고자 한다.

    현재 자원은 중동, 핵심기술은 일본에 의존하면서 중국과 미국시장에 기대온 수출구조를 두고 변화를 꾀하고 있다. G2 국가인 미국과 중국의 수출 의존도를 낮추고 신흥국가로 시장을 다변화하는 신남방정책과 신북방정책을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김현종은 수출시장 다변화를 꾀하고 있다. 이를 위해 인도와 관계를 4강(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수준으로 격상하겠다는 뜻을 보였다. 인도 외에도 아세안과 메르코수르(남미공동시장) 등 신흥국으로 수출 확대를 힘쓰고 있다. 

    김현종은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에 따른 손실을 기술 혁신으로 돌파하려는 의지도 있다. 

    통상 마찰에도 수출 기조가 흔들림 없을 정도로 새로운 수출 상품과 서비스를 창출하기 위한 창업 등을 지원하고 있다. 2018년 4월에는 현대자동차 환경기술연구소를 직접 방문해 자율주행차를 시승하고 자율주행차 및 수소차 관련 개발 전략과 국제협력방안 등을 논의하기도 했다.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대통령에게 남북 FTA 추진을 건의한 적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베를린 선언을 통해 한반도 신경제구상을 밝히면서 남북 경제공동체를 언급해 향후 남북관계가 개선되면 남북 FTA 추진 가능성이 떠오른다.

    ◆ 평가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부터 깊은 신임을 받았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 노 전 대통령의 편애를 받는다는 시각까지 나왔고 그만큼 적도 많아져 FTA 정책을 마음대로 추진한다는 비판도 적지 않게 받았다.

    2003년 미국보다 EU와 FTA를 먼저 추진했으나 EU쪽에서 한국은 FTA를 한 적이 없어 FTA를 모르지 않느냐며 부정적 뜻을 나타내자 미국으로 선회했다고 한다.

    김현종은 한미 FTA를 먼저 추진해야 다른 국가와 FTA를 할 때 전략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설 수 있다고 판단해 정부를 설득했고 한미 FTA를 추진하게 됐다. 이후 한미 FTA 협상 진행 도중 EU가 FTA를 맺자는 제안을 하자 “할 수 없다. 지금은 약혼자(미국)가 있다”며 퇴짜를 놓기도 했다.

    외부 출신 인사로 통상교섭본부장에 영입돼 ‘공무원의 적’이라고 할 정도로 관료들과 사이는 썩 좋지 않았던 편이다. 강한 소신에서 비롯된 독선적 성격도 공무원들 사이에서 배척당한 원인으로 지목됐다.

    유엔대사로 내정됐을 때에도 외교통상부 안에서 고위 외교관이 맡아 온 유엔대사에 비외교관 출신이 임명된 데 외교안보적 역할에 취약할 수 있다며 비판적 시각이 많았다. 송민순 당시 외교부 장관은 자리를 걸고 이를 막겠다며 불만을 나타냈고 외교부는 물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도 관계가 원활하지 않다는 말이 나돌기도 했다.

    김현종은 저서 ‘김현종, 한미 FTA를 말하다’에서 “외교부는 외무고시에 합격한 사람들이 기수별로 승진하면서 배타적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몇몇 고위 관료들은 본인이 통상업무를 한 번도 안 해본 데 대한 자긍심마저 있었다. 마치 강화도조약 체결 당시 조선 관료들이 보인 태도와 흡사했다”고 공무원 조직을 강하게 비판했다.

    자타가 공인하는 협상의 전문가다. 한미FTA를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 어디서도 그의 협상 능력 자체에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WTO 등 국제활동을 하면서 쌓은 폭넓은 통상 인맥과 과감성, 결단력 등이 탁월하며 협상에 임해서는 좀처럼 주도권을 넘겨주지 않는 카리스마도 갖추고 있다.

    심지어 한미 FTA를 놓고 오롯이 김현종 개인의 협상능력으로 일궈낸 성과라고 평가하는 의견도 있다. 미국 변호사로 활동해 법률감각도 뛰어나 삼성전자에서 해외법무담당으로 영입했으며 WTO 상소위원까지 지냈다.

    황두연 전 통상교섭본부장은 “통상업무의 지속성과 전문성을 감안할 때 김 본부장의 발탁은 매우 적절한 인사”라며 “통상교섭본부장에겐 협상장에서 상황 판단력과 직결되는 통상 전문지식, 그리고 토론·설득·끼어들기·화제 전환 등을 능란하게 주도하는 언어능력이 무엇보다 요긴한데 김 본부장은 둘 다 출중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통상교섭본부 비상근 자문관을 역임한 정인교 인하대 교수는 김현종이 "명확한 논리, 두둑한 배짱, 해박한 법률지식, 치밀한 분석자료를 바탕으로 협상에서 강한 설득력을 발휘하는 ‘터프가이’"라고 평가했다.

    서울에서 태어나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미국과 한국, 일본 등을 오가다가 14세 때부터 혼자 미국에서 기숙학교를 다녔다. 그러나 부친의 신념에 따라 집에서는 한국어만 사용했고 방학마다 나이에 맞게 국어와 국사 교과서를 공부해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을 갖추게 됐다고 한다.

    변호사 시절 민변 회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 김현종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서울 종로구 무역보험공사에서 열린 ‘민관합동 수출투자 대책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 사건/사고

    △정의당의 교체 요구 직면
    정의당은 2017년 10월에 정부의 한미 FTA 개정 협상 태도를 놓고 김현종의 교체를 촉구했다. 

    정의당은 여차하면 우리 정부도 한미 FTA 개정이 아닌 폐기를 주장할 수 있어야 하는데 김현종이 그런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고 봤다. 

    미국은 한미 FTA를 놓고 막무가내 전략으로 폐기까지 거론하기도 했다. 

    정의당은 이런 점을 감안해 정부가 김현종을 대신해 철저하게 국익을 대변할 사람에게 사령탑을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폐기를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은 김현종의 시각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WTO 상소위원 포기 논란
    문재인 정부 출범 후 2017년 7월 신설 직위인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에 임명되면서 WTO 상소위원에서 물러나게 되자 3년 넘게 남은 임기를 포기하는 것은 아깝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더욱이 일본, 호주, 대만, 네팔 등 다른 나라 후보와 치열한 경쟁 끝에 얻은 자리를 금방 비우게 돼 다시 그 자리를 우리나라가 차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또한 상소기구 위원이 사퇴한 뒤 90일 동안 정부직을 맡지 못하도록 한 WTO 규정도 있어 통상교섭본부장 임명에 절차상 문제도 제기됐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는 “이 규정의 취지는 해당 위원이 맡은 소송사건을 같은 기간에 마무리하게 하기 위한 것으로 소송을 더 맡지 않으면 문제가 없다”며 “김 본부장은 이미 맡은 소송 업무를 다 마무리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WTO는 2017년 8월3일 김현종의 사직서가 수리됐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친기업 논란
    한미 FTA 협상을 하면서 삼성과 현대 등 대기업의 이익을 대변한 반면 농민 등 사회적 약자에 불리하게 협상을 진행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민주노총은 2017년 7월26일 통상교섭본부장 내정소식이 전해지자 진보네트워크센터 등 시민단체는 “김현종은 FTA 협상을 주도하며 대기업의 이익을 위해 국내 공공정책을 말살한 인물”이라고 반대성명을 냈다.

    공직에서 물러난 뒤 대기업에 취업한 것도 논란거리다. 그는 2009년 공직에서 물러난 지 1년도 안돼 삼성전자 해외법무담당 사장으로 영입되면서 공직자윤리법 위반 여부가 논란이 됐다. 공직자윤리법이 4급 이상 공무원이면 퇴직 전 5년 이내에 맡았던 업무와 관련된 사기업에 2년 동안 취업할 수 없다고 규정했기 때문이다.

    당시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김현종 전 대사가 한국에서 보기드문 국제통상 전문가라는 점은 분명하다”면서도 “전 통상교섭본부장으로 한미 FTA를 주도한 그의 삼성전자 취업이 공직자윤리법에 어긋나는 것인지 공직자윤리위원회에서 따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한미 FTA가 아직 살아있는 변수라는 점에서 김 전 대사는 한미 정부 모두에서 FTA와 관련해 상당한 정보 접근력과 인적 네트워크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며 “삼성이 한미 FTA와 관련해 가장 영향력 있는 로비스트를 영입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공직자윤리위원회는 업무 관련성이 없다고 판단해 취업을 허용했다. 김 교수는 공직자윤리법의 허술한 규정을 재검토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김용철 변호사는 저서 ‘삼성을 생각한다’에서 “김 전 본부장이 삼성 사장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공직자윤리법에 저촉된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삼성도 정부도 개의치 않았다”며 “김현종은 첫 사장단 회의에서 ‘기업 이익을 지키는 게 나라의 이익을 지키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통상교섭본부장 시절 대기업에만 유리한 정책을 밀어붙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친미 성향 논란
    미국에서 학교생활을 하고 대형로펌에서 근무한 경력과 국제주의·자유주의·개방주의적 성향 때문에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 활동한다는 의혹을 많이 받았다. 한미 FTA 협상 초기에는 ‘미국 대 미국의 협상’이라는 말까지 나왔을 정도다.

    2011년 위키리크스는 2006년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미국대사가 작성한 외교전문을 공개했는데 여기에 김현종이 버시바우 대사에게 전화를 걸어 한국 정부의 약제비 적정화 방안을 발표 전에 미리 알렸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김현종은 유시민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이 미국이 반대한 약제비 적정화 방안을 추진한 것을 두고 “미국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죽도록 싸웠다(fighting like hell)”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그가 국익이 아닌 미국의 이익을 대변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김현종이 2016년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했을 때도 장하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김현종은 2016년 3월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국제무대에서 상대국과 협상할 때는 국익을 챙기는 것이 최대 목표”라며 “목표 달성을 위해 허위정보를 흘릴 수도 있다”고 해명했다.

    그는 “미국이 의약품 최저 가격을 보장해달라고 했을 때 최선을 다했지만 관철되지 않았다고 포기하라는 차원에서 강조한 것”이라며 “그래서 미국이 그 요구를 포기하고 결과에서 우리 국익을 보호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2017년 통상교섭본부장에 임명되자 민주노총과 정의당 등이 또다시 위키리크스의 폭로를 거론하며 반대 의사를 나타냈다.

    2011년 5월에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 외교통상부에 한미 FTA 협상 과정에서 미국이 보낸 한국 전문직 비자 쿼터와 관련한 서한을 공개하라는 소송을 냈다.

    이 서한은 미국 측이 한국인 신청자의 비자 발급에 협조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외교통상부는 해당 서한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재판 결과 김현종이 서한을 보관해 온 사실이 밝혀지면서 중요 외교 관련 서한을 개인적으로 보관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 경력

    ▲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김현종 전 통상교섭본부장이 입당원서를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에게 제출하고 있다.

    1985년 미국 밀뱅크트위드 법률사무소, 1986년 미국 스캐든압스 법률사무소 변호사로 일했다.

    1989년 귀국해 김신유 법률사무소에서 근무했다. 1993년 홍익대학교 경영대학 무역학과 조교수로 채용됐다.

    1995년 5월 외무부 고문변호사에 위촉되면서 정부와 인연을 맺었다. 1998년 7월부터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 통상전문관으로 활동했다.

    1999년부터 2003년까지 세계무역기구(WTO)에서 동양인 최초이자 최연소 법률자문관으로 활동했다.

    2003년 5월 외교통상부 통상교섭조정관으로 영입됐다. 2004년 7월 제3대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에 임명됐다.

    2005년 11월 아시아 태평양경제협력체 합동각료회의 공동의장에 올랐다. 같은해 12월에는 제6차 세계무역기구 한국 수석대표가 됐다.

    2007년 8월 주유엔대사로 임명받았다. 같은해 10월 유엔 아주그룹 의장에 선출됐다. 이듬해 1월에는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부의장을 맡았다.

    2008년 5월 유엔대사에서 귀임했고 2009년 3월 삼성전자 해외법무담당 사장으로 영입돼 2011년 12월까지 근무했다.

    2015년 3월 한국외국어대 LT(Language&Trade)학부 교수에 임용됐다.

    2016년 2월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해 20대 총선에서 인천 계양갑 출마에 도전했으나 당내 경선에서 고배를 마셨다.

    2017년 7월30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에 지명돼 8월4일 취임했다.

    ◆ 학력

    미국 윌브램앤맨슨 아카데미에서 중고등학교 과정을 마쳤다. 2005년 11월 부산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차 방한한 조시 부시 미국 대통령이 출신 고교를 물어보자 “각하가 나온 학교보다 좋은 곳을 나왔다”고 대답해 웃음을 이끌어 냈다.

    1981년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국제정치학 학사학위를 받고 1982년 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5년 컬럼비아대학교 로스쿨에서 법무박사(JD)를 취득했다.
     
    ◆ 가족관계

    우루과이·노르웨이 대사를 지낸 김병연 전 코리아헤럴드내외경제신문 회장과 최정심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고 남동생과 여동생이 한명씩 있다. 여동생은 김미형 아시아나항공 고문이다.

    강금진씨와 사이에 민상, 지상 두 아들을 두고 있다.

    ◆ 상훈

    2009년 황조근정훈장을 받았다.

    ◆ 기타 

    대학원을 마치고 로펌 근무 도중 귀국해 1986년 11월15일부터 1987년 5월16일까지 석사장교로 복무했다. 

    2010년 한미FTA 협상 과정과 세계 통상 흐름 등을 담은 ‘김현종, 한미 FTA를 말하다’(홍성사)를 펴냈다.

    ◆ 어록

    “과거 한미FTA를 두고 다소 다른 입장에 서 있었지만 늘 존경했다는 걸 이제서야 늦게나마 밝힌다. 고인은 우리 국민들에게 커다란 유산을 남겨주고 갔다. 저와는 다른 삶을 살아오셨지만 저는 고인을 진심으로 존경해왔다. 앞일을 몰라 고맙고 감사드린다는 말씀 한 번 더 못드린 것이 아쉽다.” (2018/07/27, 페이스북에서 노회찬 전 정의당 의원을 추모하며)

    “미국과 중국의 무역갈등을 봤을 때 시장 콘텐츠를 다양화하고 수출을 다변화하는 일이 굉장히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인도와 관계를 4강 수준으로 격상하려고 한다. 문재인 정부는 미국과 중국 등 G2와 관련한 위험을 줄이기 위해 인도와 관계를 4강 수준에 버금가게 높이고 새로운 협력관계를 구축하겠다.” (2018/07/09,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5월까지 수출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하는 등 수출 증가세가 이어져 연말까지 수출 상승 기조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조업일수 감소와 선박수출 기저효과 등으로 6월 수출이 주춤하고 있다는 점에 경각심을 지녀야 한다. 견조한 수출 성장을 통해 수출이 일자리와 소득 증대로 이어지는 선순환구조를 만드는 데 노력해야 한다.” (2018/06/26, ‘민관 합동 수출투자 대책회의’를 열고)

    “4차산업혁명에 따라 국경 간 전자상거래와 빅데이터의 국가 간 이동, 스마트 기기 등에 따른 세계 가치사슬(GVC, 글로벌 밸류체인)의 변화 등 새로운 통상이슈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 (2018/04/26, 경기 용인의 현대자동차 환경기술연구소를 찾아)

    “2010년 이후 일본은 연 평균 2.3%, 우리는 연 평균 5.9%씩 수출이 늘어나고 있다. 신통상전략을 통해 수출 증가율을 6.6%까지 높여 2022년에는 일본을 추월하겠다.” (2018/04/05,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미자유무역협정(FTA)과 미국 무역확장법 232조 철강 관세를 두고 미국과 원칙적 합의와 원칙적 타결을 이뤘다. 다만 아직 실무 차원에서 몇 가지 기술적 이슈가 남아있는데 곧 해결될 것이라 믿는다.” (2018/03/25, 미국과 협상을 마치고 귀국하면서 인천국제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

    “한중미FTA를 통해 한국과 중미 사이에 더욱 포괄적 전략적 파트너십을 형성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2018/02/21, 중미 5개국 통상장관과 한/중미FTA 정식서명식에서)

    “미국의 세이프가드를 3월에 제소하겠다. 애초 2월 제소하려고 했지만 미국과 보상협상 절차 등이 진행되고 있어 조금 늦어졌다. WTO의 권리를 모두 행사하는 동시에 대체 수출시장을 찾고 국내 기업이 애로사항을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2018/02/12,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반덤핑규제와 세이프가드 등 조치가 보호무역주의 실현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들이 힘을 모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2018/01/28,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

    “정부는 국익 수호를 위해 보호무역주의에 적극 대응할 계획을 세웠다.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상 보장된 권리를 적극 행사해 미국의 부당한 조치를 WTO에 제소하겠다.” (2018/01/23, 한국무역보험공사에서 열린 민관대책회의에서)

    “(한미FTA 개정협상과 관련해) 이제 막 시작했지만 순탄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나쁜 협상 결과보다는 협상을 타결하지 않는 게 낫다는 각오로 협상에 임하겠다. 국익 극대화와 이익균형 달성을 목표로 통상당국의 역량을 집중하겠다.” (2018/01/08,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안정적 수출 증가세를 유지하려면 수출품목 다변화와 시장 다변화가 시급하다. 동남아, 유라시아, 아프리카 국가의 수요가 높은 투자개발형 프로젝트 수주 선진화를 추진하겠다.” (2017/10/19, ‘해외 프로젝트 수주 선진화 세미나’에 참석해)

    “농업은 우리에게 매우 어려운 것이고 농업을 건드리는 순간 우리 역시 미국의 제일 민감한 부분을 말할 수밖에 없다. 협상 과정에서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농업을 언급할 수 있지만 우리는 수용할 수 없다는 뜻을 확실히 미국 측에 전달했다.” (2017/10/13,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첫 협상이기 때문에 당당하게 협상에 임하겠다.”(2017/08/22, 한미FTA 공동위원회 특별회기에 앞서)

    “어떠한 협상에서도 가장 중요한 기본원칙은 이익의 균형이다.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유리한 협상은 가능하지도 않고 유지될 수도 없다. 앞으로 우리는 우리의 주요 교역 파트너들과 새로운 이익의 균형을 찾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경주해 나갈 것이다.” (2017/08/04, 통상교섭본부장 취임사) 

    ▲ 김현종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오른쪽)이 캐나다 외무부 회의실에서 크리스티아 프릴랜드 캐나다 외무부 장관을 만나 미국의 무역확장법 232조 등 주요 통상현안과 양국 교역 및 투자 확대방안 등에 관해 의견을 교환했다. <산업통상자원부>

    “우리가 명심해야 할 점은 주둔비용 분담 증대 협상에서 열강에 대한 의존도를 낮출 수 있는 반대급부를 반드시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정상회담에서 합의하지 않았지만 한·미 FTA를 재-재협상할 때 우리 협상가들은 한·미 FTA가 결렬된다고 하더라도 소비자에게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농산물은 캐나다·유럽연합(EU)·호주산 등에 의해 대체 가능하다는 점을 직시하고 차근차근 대응할 준비를 해 나가야 할 것이다.” (2017/07/04, 중앙일보 칼럼)

    “FTA를 체결하는 과거 통상정책 전략이 원교근공이었다면 이제는 성동격서 전략을 이행하면서 지정학과 에너지 이슈를 무역 관련 이슈와 융합해 우리 국익을 지켜야 한다. 우리 국민을 결집시키는 계기라는 계량화되지 않는 혜택을 얻을 수 있다면 한·미 FTA의 재-재협상을 하지 않는 것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2017/05/09, 중앙일보 칼럼)

    “우리가 동북아와 한반도의 미래에 대한 전략을 미국과 논의하려면 북핵 문제와 중국의 부상에 대한 전략이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남북 간의 지속적 대화와 시장경제에 기반한 꾸준한 교류 및 일관된 남북 경제협력으로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작업을 해놨어야 한다.” (2017/03/14, 중앙일보 칼럼)

    “우리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이후 317억 달러를 미국에 투자해 1만8530개의 일자리를 창출했고 미국의 대한국 서비스 무역흑자가 100억 달러로 증가했으며 78억 달러어치의 무기를 수입했음을 강조해야 한다. 보호무역주의와 포퓰리즘의 득세로 틀이 바뀌었는데 기존의 예측 가능한 대응 방식으로는 백전백패다.” (2017/01/16, 중앙일보 칼럼)

    “가장 열악한 상황이 저를 정치에 입문하게 하는 결정적 동기를 부여했다. 제 깊은 곳으로부터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있다!”는 단호한 음성이 들렸다. 더 늦기 전에 정계, 재계, 국민 모두가 힘을 모아 비상체제로 돌입해야 한다. 수출시장을 확대하고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이제는 지역과 전략 위주로 체결하는 메가FTA를 주도하고, 우리 자유무역구와 중국 자유무역구를 상호 개방해 금융, 의료 서비스 등이 진출해야 한다.“ (2016/02/18, 더불어민주당 입당인사)

    “냉정한 국제질서에서 특히 실시간으로 지형이 변하는 동북아 지역에서 협상가들은 치밀한 전략과 전술을 가지고 '신(新)조선책략'을 구사하는 중국에 대비해야 한다. 경험이 많은 우리 협상가들이 좋은 결과를 내겠지만 이들에게 힘을 실어 주기 위해서는 마감일을 언급하는 것은 금기이며 언제든지 깰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 (2014/11/06, 동아일보 칼럼)

    “국민들이 안전에 대한 선진기준을 기업과 정부에 지속적으로 요구해야 한다. 정부와 기업의 위기관리 준비와 대응은 국민의 눈높이에 맞출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필요하다면 세금을 인상해서라도 국민들의 안정된 삶을 지탱할 사회적 안전망을 확충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치개혁이 선행돼야 한다. 한국 사회는 압축성장을 한 결과 곳곳에 부족함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 가장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입할 필요가 있다.” (2014/04/22, 동아일보 칼럼)

    “2007년 미국과 FTA 협상을 마무리 짓고 난 후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평양방문을 준비하고 있던 노무현 대통령에게 남북 FTA 추진을 건의했다. 그 당시 상황에서 6조5천억 달러의 가치로 평가되는 북한의 천연자원을 활용하는 것을 포함해 남북 FTA 추진은 분명히 고려할만한 사안이었다.” (2011/06/13, 서울-워싱턴포럼 세미나)

    “EU는 세계 최대 경제국이자 중국에 이어 우리나라의 제2의 수출시장이다. 특히 자동차와 섬유, 전자 등 우리나라의 주요 수출품에 대한 관세 수준이 높아 FTA가 체결되면 가시적 성과를 얻을 수 있다. 한·EU FTA가 체결되면 한국은 유럽, 아시아, 미국, 동아시아를 연결하는 FTA 허브로 자리잡을 수 있다.” (2007/05/06, EU와 자유무역협정 협상 개시를 선언하며)

    “한미 FTA는 상품뿐 아니라 투자와 서비스, 경쟁 등 무역관련 분야를 총망라해 북미자유무역협정 이후 세계 최대의 FTA가 됐다. 양국의 경제규모를 합치면 EU, NAFTA에 이어 세계 3위에 해당한다. 향후 FTA가 성공적으로 발효되면 FTA 체결 경쟁에서 매우 유리한 고지를 선점케 된다.” (2007/04/02, 한미FTA 타결 직후 기자회견)
  • ◆ 활동의 공과

    △미국의 자동차 232조 조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18년 5월 한국과 유럽, 일본 등을 겨냥해 수입차에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무역확장법 232조를 적용해 수입차에 최고 25%의 관세를 부과하는 것이다. 

    미국은 자동차 수입이 미국의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되는지, 관셉 부과가 정당한지를 검토하고 있다. 미국 상무부는 2018년 7월19일에도 워싱턴DC의 상무부 강당에서 공청회를 열고 ‘수입자동차 관세’를 놓고 업계 의견을 수렴했다.

    한국 정부는 한국이 미국의 핵심 안보동맹국이자 신뢰할 만한 교역 상대이므로 미국 국가 안보에 위협을 주지 않는다고 강조하고 있다. 또한 자동차 무역수지 적자를 줄이기 위한 차원에서 한미 FTA를 개정한 상황에서 추가 관세를 부과하면 한미 FTA 혜택을 근본적으로 훼손할 여지가 있다고도 본다. 

    △한미 FTA 개정 협상
    김현종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이끈 장본인으로서 한미 FTA 개정 테이블에 다시 앉게 됐다. 미국 트럼프 정부는 한미FTA 개정을 원하고 있어 2017년 7월 한미 FTA 공동위원회 특별회기 개최를 요청했다.

    한국과 미국은 2017년 8월22일에 한미 FTA 공동위원회 특별회기 1차를 열었다. 당시 양측은 한미 FTA의 효과와 미국 무역적자의 원인, FTA 재개정 필요성에 상호 이견이 존재함을 확인했다. 이 회기에서는 어떤 합의에도 이르지 못했다.

    미국은 한미 FTA 이후 미국의 상품수지 적자가 2배로 늘어난 점을 문제 제기하고 한미 FTA의 개정 또는 수정을 통해 이를 시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한국은 한미 FTA를 현행대로 유지하는 게 좋다는 태도를 보였다. 한미 FTA 효과에 대한 조사·분석·평가가 선행돼야 한다는 점, 어떠한 결정도 상호 호혜성의 원칙 하에 양측 간 합의로 이루어져야 된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한국과 미국은 2017년 한미 FTA 공동위원회 특별회기 2차, 2018년 1월에 1~2차 개정 협상, 2018년 3월 3차 개정 협상을 하면서 합의를 마쳤다.

    개정 협상에서 한국은 미국의 철강 관세 면제국가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며 불확실성을 완화했다. 농산물 개방이나 자동차 부품 사용 의무화 등의 이슈도 방어했다. 

    다만 자동차부문에서는 자동차 안전기준 인정 범위 확대, 픽업트럭 관세 철폐 기간 연장 등 미국 측의 자동차 관련 관심사항이 반영됐다. 

    산업부에 따르면 2018년 7월 한미 FTA는 분야별 문안을 놓고 진행된 협의를 사실상 완료했다. 양국 영향 평가와 일부 기술적 사항을 놓고 협의를 진행한 뒤 9월에 서명식을 열기로 했다. 

    △미국 세탁기·태양광 세이프가드 발동
    한국은 2018년 5월15일 미국이 세탁기·태양광 수출품에 부과한 세이프가드(수입제한) 조치를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다. 

    미국은 2018년 1월 수입세탁기를 놓고 세이프가드를 발동했다. 미국 가전업체인 월풀이 한국산 제품을 수입해 미국 산업에 심각한 피해를 줬다고 제소한 데 따른 것이다. 

    하지만 김현종은 월풀의 제소가 미국 산업의 시장 점유율이나 이윤 부분에서 피해를 줬다고 보기 어렵다고 민관에 설명했고 WTO의 제소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다만 11월이면 WTO의 분쟁해결기구 상소위원 7명 가운데 3명만 남는다. 3명까지 상소위원이 줄면 상소기구가 사실상 제대로 된 기능을 하기 힘들다는 판단이 나온다. 

    정부는 이를 두고 국제사회와 공조해 상소위원 선임을 위한 164개 회원국들의 의견을 모으고자 하고 있다.  

    ▲ 김현종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오른쪽에서 두번째)이 미국 워싱턴 DC 무역대표부에서 열린 '제2차 한미 FTA 공동위원회 특별회기'에 참석해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 등과 함께 양국 FTA 현안을 논의하고 있다.

    △두번째 통상교섭본부장 임명
    2017년 7월30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에 임명됐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경제통상분야 전문가로서 주요 교역국과 FTA 체결 업무를 수행하면서 쌓은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당면한 통상 현안들을 차질없이 해결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종 발탁에 여당은 물론 야당에서도 긍정적 반응이 나왔다.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이 상충하는 상황에서 김 신임 본부장의 임명은 전문성과 국익을 고려한 합리적이고 실리 중심의 인선”이라고 평가했다.

    정용기 자유한국당 원내수석대변인은 “김 신임 본부장은 자타가 인정하는 통상교섭분야 전문가”라며 “경험과 전문성을 살려 한미 FTA 개정협상 준비를 철저히 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종철 바른정당 대변인은 “현 시점에서 충분한 역할을 할 것으로 여겨진다”고 기대했다.

    김현종은 8월4일 취임식에서 “통상교섭본부 직원 모두가 전략가가 되기를 원한다”며 “우리가 예측 가능하게 행동하기를 원하는 건 협상 상대방뿐으로 수동적이고 수세적 골키퍼 정신은 당장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계무역기구(WTO) 상소기구 위원 선출
    2016년 5월 장승화 전 WTO 상소기구 위원이 미국의 반대로 연임에 실패하자 정부는 후임으로 김현종을 추천했다.

    WTO 상소기구는 국제통상법분야의 최고 심판기관으로 국제통상과 WTO 협정의 전문지식을 보유하고 정부로부터 독립되며 회원국을 다양하게 대표하는 위원들로 구성된다. 위원 숫자는 7명인데 미국과 유럽연합(EU)이 관행적으로 1석씩 유지하고 있고 나머지 5자리를 지역·선진-개도국 사이 안배에 따라 뽑는다. 

    장 전 위원의 공석에 김현종을 포함 중국 2명, 일본, 호주, 대만, 네팔 각 1명 등 모두 7명이 입후보했다. 김현종은 10월8~26일 동안 스위스, 벨기에, 미국 등을 방문해 WTO 인터뷰와 선거운동 활동을 벌였다.

    김현종은 WTO 사무국 근무와 통상교섭본부장, 유엔대사 역임 등의 경험을 바탕으로 차별화된 자질을 피력했고 정부도 재외공관을 통한 지지 확보, 주요국 통상장관과 통상당국 접촉 등으로 지원에 나섰다.

    결국 2016년 11월23일 WTO 분쟁해결기구 정례회의에서 상소기구 위원에 공식 임명됐다. 상소기구 위원은 WTO 분쟁의 최고 판단자로서 전문성과 권위를 인정받는 직위로 우리나라에서 상소기구 위원이 연속 배출된 것은 통상분야의 쾌거로 여겨졌다. 

    ▲ 기자들에게 둘러 싸인 김현종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

    △정치 출사표
    2016년 2월18일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했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의 영입인사 1호라서 더욱 주목받았다.

    김현종은 입당 인사에서 “‘경제와 외교안보 글로벌 2.0’시대를 열고 있는 대한민국은 정치도 이 시대에 맞는 정치인이 필요할 것”이라며 “글로벌 진출 2.0시대를 정치인으로서 국민여러분과 함께 하겠다”고 밝혔다.

    김현종은 20대 총선에서 인천 계양갑 예비후보로 출마했다. 김현종은 “제 능력과 네트워크로 이 지역을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봤다”고 설명했다.

    김현종은 마찬가지로 정치신인인 유동수 후보와 경선에서 맞붙었다. 한미 FTA의 주역이었던 김현종의 우세를 점치는 사람도 있었으나 30년 동안 이 지역에서 공인회계사로 활동하고 인천도시공사 상임감사, 송영길 전 인천시장 후원회 등을 지내며 지역기반을 다진 유동수 후보에게 밀렸다. 공천 심사 결과는 유동수 66.85%, 김현종 43.15%였다.

    김현종은 경선 탈락 후 블로그에 “짧은 시간이었지만 계양 주민 여러분들과 함께했던 소중한 시간에 감사드린다”며 “공정하고 당당한 경쟁을 함께 한 유동수 후보께 축하드리고 본선에서 꼭 승리하시기를 바란다”는 인사를 남겼다.

    △삼성전자 애플 특허소송 관여
    2009년 3월 삼성전자 글로벌법무담당 사장에 영입돼 해외특허, 반덤핑 등 해외 법무와 지적재산 관련 업무를 총괄하게 됐다.

    삼성전자는 “글로벌 시장을 규제하는 법과 제도가 수시로 변하고 있어 이에 적절히 대처하지 않으면 시장에서 생존하기 어렵다”며 “김 사장은 뛰어난 법무 실무가인 동시에 기업의 생존과 미래 전략을 이끌고 나갈 전략가로서의 능력과 자질이 검증된 인물로 글로벌 기업 삼성전자가 특허경영을 강화해 나가는 데 핵심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현종은 2011년 4월부터 벌어진 애플과 특허소송을 이끌었다. 애플이 먼저 미국 캘리포니아 법원에서 삼성전자에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하자 삼성은 이에 반소하는 등 두 회사가 세계에서 특허전쟁을 벌였는데 김현종이 맞불전략을 주장한데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김현종은 애플과 특허 분쟁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2011년 12월31일 삼성전자를 퇴직했다. 삼성전자 퇴직 예우 규정에 따라 3년 임기의 상담역으로 활동할 수 있으나 이를 거절했다.

    재직 중이던 2011년 11월 대형 로펌으로 이적설이 나오기도 했으나 삼성전자는 이를 부인했다. 삼성 퇴직 이후에도 로펌으로 가지 않았다.

    △유엔대사 활동
    2007년 8월 제21대 유엔대사에 임명됐다. 당시 한미 FTA를 성공적으로 타결했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평가와 함께 본인의 의사가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통상 전문가인 만큼 다자외교·안보분야에 취약해 유엔대사에 적합하지 않다는 비판을 받았다. 역할을 고려하면 차라리 제네바 대사에 적합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박남춘 청와대 인사수석은 “한미 FTA의 성공적 추진에 크게 기여했고 미국 정.재계나 유엔 산하 각종 국제기구 등에 지인이 많고 국제사회의 인지도가 높은 점을 감안해 유엔대표부 대사직에 발탁했다”고 설명했다.

    박 수석은 또 “국제규범으로 움직이는 유엔 기구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법률에 대한 소양과 능력”이라며 “변호사 출신인 김 본부장의 '리걸(legal) 마인드'를 감안했고, APEC 등에서 정부 대표로서 다자외교 활동을 열심히 하는 등 여러 요인을 감안해 유엔대사로 손색이 없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2007년 10월 53개 아시아 회원국가로 구성된 유엔 아주그룹 의장에 선임됐다. 아주그룹 회의를 주재하는 것은 물론 안전보장이사회 등 유엔 주요기관과 산하기관 등의 선거에서 회원국 사이 입후보를 조정하고 각종 회의에서 아주 지역 뜻을 대변하는 역할을 맡았다.

    2008년 1월에는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부의장에 선출됐다. 경제사회이사회는 개발과 인권 등 경제사회 문제 전반을 관할하는 유엔 주요 기관으로 김현종은 장 마르크 호샤이트 룩셈부르크 대사 등 3명과 함께 1년 동안 부의장으로 활동하게 됐다.

    2008년 5월 유엔대사에서 귀임했다.

    △참여정부 통상교섭조정관 통상교섭본부장
    2003년 대통령직인수위에서 통상현안 브리핑을 하면서 노무현 대통령의 눈에 들어 참여정부 통상부문을 사실상 주도적으로 이끌게 됐다.

    참여정부 출범 직후인 2003년 5월 통상교섭조정관으로 발탁됐다. 노 대통령의 깊은 신임을 받으면서 FTA 추진 로드맵을 만들었고 사실상 FTA 추진의 전권을 부여받았다. 그래서 개방형 공무원 채용과 한미FTA기획단 신설 등 인사와 조직개편 권한까지도 행사할 수 있었다.

    2004년 7월 통상교섭조정관이 된지 1년3개월 만에 장관급인 통상교섭본부장까지 초고속으로 승진해 40대의 젊은 나이로 통상부문의 사령탑이 됐다.

    정찬용 청와대 인사수석은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45세의 젊은 나이지만 통상법을 공부했고 4년간 세계무역기구(WTO)의 수석고문변호사를 역임했으며 지난해부터 통상교섭조정관으로 대외협상 업무를 차질없이 수행해 조직 내외에서 좋은 평가를 얻었다”고 설명했다.

    통상교섭본부장으로 재직하면서 아세안, EU, 캐나다, 인도 등 동시다발적 대형 FTA를 추진하면서 한국 자유무역 지도를 확대하는 토대를 마련했다.

    2006년 2월3일 한미 FTA 협상을 발족했다. 한미 FTA는 쌀·쇠고기 등 농축산물 문제, 자동차 ·섬유 등 제조업 문제, 스크린쿼터 등 문화예술 문제, 개성공단 생산품 지위 등 외교안보 문제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쉽지 않은 과제로 여겨졌다. 김현종은 “궁극적으로 한미 FTA가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확신을 갖고 추진한다”고 밝혔다.

    협상 만료 시한이 닷새 남은 2007년 3월26일부터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카란 바티아 미국 무역대표부 부대표와 '끝장 협상'에 들어갔다. 마지막날인 31일 양쪽은 4월2일 새벽 1시까지 협상 연장에 합의하며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끝까지 첨예한 공방을 주고받았다.

    결국 2007년 4월2일 한미 FTA 협상을 타결했다. 김현종은 국회 보고에서 한미 FTA에 이면합의가 없으며 재협상도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나 미국의 요구로 추가 협상이 진행돼 7월1일에야 서명이 이뤄졌다. 이후 한미 FTA는 2010년 한 차례 더 추가협상을 거쳤다.

    2007년 5월6일 한EU FTA 협상 출범을 공식 선언했다. 8월 김종훈 한미 FTA 협상 수석대표에게 통상교섭본부장 자리를 넘기고 유엔대사로 임명받았다.
     
  • ◆ 비전과 과제

    ▲ 김현종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서울 종로구 한국무역보험공사에서 열린 미국의 수입 세탁기·태양광 세이프가드 조치와 관련한 민관대책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김현종은 견조한 수출 성장을 통해 수출이 일자리와 소득 증대로 이어지는 선순환구조를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 

    수출 실적은 2018년 7월에 역대 2위 수준을 기록하는 등 견조한 증가세가 이어지고 있다. 김현종은 2018년 하반기에도 수출 증가세를 유지하기 위해 상반기 말에 수출금융 특별 프로그램 가동 및 신산업 육성, 수출지원체계 강화 등 4가지 방안을 마련했다.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는 2022년까지 일본을 제치고 세계 수출 4위에 오르겠다는 목표를 담은 ‘신통상정책’ 초안을 2018년 4월 발표했다.

    한국은 보호무역주의 기조 및 미국과 중국의 무역갈등이 심화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김현종은 이 상황을 한국의 수출구조를 바꾸는 계기로 만들고자 한다.

    현재 자원은 중동, 핵심기술은 일본에 의존하면서 중국과 미국시장에 기대온 수출구조를 두고 변화를 꾀하고 있다. G2 국가인 미국과 중국의 수출 의존도를 낮추고 신흥국가로 시장을 다변화하는 신남방정책과 신북방정책을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김현종은 수출시장 다변화를 꾀하고 있다. 이를 위해 인도와 관계를 4강(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수준으로 격상하겠다는 뜻을 보였다. 인도 외에도 아세안과 메르코수르(남미공동시장) 등 신흥국으로 수출 확대를 힘쓰고 있다. 

    김현종은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에 따른 손실을 기술 혁신으로 돌파하려는 의지도 있다. 

    통상 마찰에도 수출 기조가 흔들림 없을 정도로 새로운 수출 상품과 서비스를 창출하기 위한 창업 등을 지원하고 있다. 2018년 4월에는 현대자동차 환경기술연구소를 직접 방문해 자율주행차를 시승하고 자율주행차 및 수소차 관련 개발 전략과 국제협력방안 등을 논의하기도 했다.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대통령에게 남북 FTA 추진을 건의한 적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베를린 선언을 통해 한반도 신경제구상을 밝히면서 남북 경제공동체를 언급해 향후 남북관계가 개선되면 남북 FTA 추진 가능성이 떠오른다.

  • ◆ 평가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부터 깊은 신임을 받았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 노 전 대통령의 편애를 받는다는 시각까지 나왔고 그만큼 적도 많아져 FTA 정책을 마음대로 추진한다는 비판도 적지 않게 받았다.

    2003년 미국보다 EU와 FTA를 먼저 추진했으나 EU쪽에서 한국은 FTA를 한 적이 없어 FTA를 모르지 않느냐며 부정적 뜻을 나타내자 미국으로 선회했다고 한다.

    김현종은 한미 FTA를 먼저 추진해야 다른 국가와 FTA를 할 때 전략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설 수 있다고 판단해 정부를 설득했고 한미 FTA를 추진하게 됐다. 이후 한미 FTA 협상 진행 도중 EU가 FTA를 맺자는 제안을 하자 “할 수 없다. 지금은 약혼자(미국)가 있다”며 퇴짜를 놓기도 했다.

    외부 출신 인사로 통상교섭본부장에 영입돼 ‘공무원의 적’이라고 할 정도로 관료들과 사이는 썩 좋지 않았던 편이다. 강한 소신에서 비롯된 독선적 성격도 공무원들 사이에서 배척당한 원인으로 지목됐다.

    유엔대사로 내정됐을 때에도 외교통상부 안에서 고위 외교관이 맡아 온 유엔대사에 비외교관 출신이 임명된 데 외교안보적 역할에 취약할 수 있다며 비판적 시각이 많았다. 송민순 당시 외교부 장관은 자리를 걸고 이를 막겠다며 불만을 나타냈고 외교부는 물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도 관계가 원활하지 않다는 말이 나돌기도 했다.

    김현종은 저서 ‘김현종, 한미 FTA를 말하다’에서 “외교부는 외무고시에 합격한 사람들이 기수별로 승진하면서 배타적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몇몇 고위 관료들은 본인이 통상업무를 한 번도 안 해본 데 대한 자긍심마저 있었다. 마치 강화도조약 체결 당시 조선 관료들이 보인 태도와 흡사했다”고 공무원 조직을 강하게 비판했다.

    자타가 공인하는 협상의 전문가다. 한미FTA를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 어디서도 그의 협상 능력 자체에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WTO 등 국제활동을 하면서 쌓은 폭넓은 통상 인맥과 과감성, 결단력 등이 탁월하며 협상에 임해서는 좀처럼 주도권을 넘겨주지 않는 카리스마도 갖추고 있다.

    심지어 한미 FTA를 놓고 오롯이 김현종 개인의 협상능력으로 일궈낸 성과라고 평가하는 의견도 있다. 미국 변호사로 활동해 법률감각도 뛰어나 삼성전자에서 해외법무담당으로 영입했으며 WTO 상소위원까지 지냈다.

    황두연 전 통상교섭본부장은 “통상업무의 지속성과 전문성을 감안할 때 김 본부장의 발탁은 매우 적절한 인사”라며 “통상교섭본부장에겐 협상장에서 상황 판단력과 직결되는 통상 전문지식, 그리고 토론·설득·끼어들기·화제 전환 등을 능란하게 주도하는 언어능력이 무엇보다 요긴한데 김 본부장은 둘 다 출중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통상교섭본부 비상근 자문관을 역임한 정인교 인하대 교수는 김현종이 "명확한 논리, 두둑한 배짱, 해박한 법률지식, 치밀한 분석자료를 바탕으로 협상에서 강한 설득력을 발휘하는 ‘터프가이’"라고 평가했다.

    서울에서 태어나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미국과 한국, 일본 등을 오가다가 14세 때부터 혼자 미국에서 기숙학교를 다녔다. 그러나 부친의 신념에 따라 집에서는 한국어만 사용했고 방학마다 나이에 맞게 국어와 국사 교과서를 공부해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을 갖추게 됐다고 한다.

    변호사 시절 민변 회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 김현종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서울 종로구 무역보험공사에서 열린 ‘민관합동 수출투자 대책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 사건/사고

    △정의당의 교체 요구 직면
    정의당은 2017년 10월에 정부의 한미 FTA 개정 협상 태도를 놓고 김현종의 교체를 촉구했다. 

    정의당은 여차하면 우리 정부도 한미 FTA 개정이 아닌 폐기를 주장할 수 있어야 하는데 김현종이 그런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고 봤다. 

    미국은 한미 FTA를 놓고 막무가내 전략으로 폐기까지 거론하기도 했다. 

    정의당은 이런 점을 감안해 정부가 김현종을 대신해 철저하게 국익을 대변할 사람에게 사령탑을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폐기를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은 김현종의 시각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WTO 상소위원 포기 논란
    문재인 정부 출범 후 2017년 7월 신설 직위인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에 임명되면서 WTO 상소위원에서 물러나게 되자 3년 넘게 남은 임기를 포기하는 것은 아깝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더욱이 일본, 호주, 대만, 네팔 등 다른 나라 후보와 치열한 경쟁 끝에 얻은 자리를 금방 비우게 돼 다시 그 자리를 우리나라가 차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또한 상소기구 위원이 사퇴한 뒤 90일 동안 정부직을 맡지 못하도록 한 WTO 규정도 있어 통상교섭본부장 임명에 절차상 문제도 제기됐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는 “이 규정의 취지는 해당 위원이 맡은 소송사건을 같은 기간에 마무리하게 하기 위한 것으로 소송을 더 맡지 않으면 문제가 없다”며 “김 본부장은 이미 맡은 소송 업무를 다 마무리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WTO는 2017년 8월3일 김현종의 사직서가 수리됐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친기업 논란
    한미 FTA 협상을 하면서 삼성과 현대 등 대기업의 이익을 대변한 반면 농민 등 사회적 약자에 불리하게 협상을 진행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민주노총은 2017년 7월26일 통상교섭본부장 내정소식이 전해지자 진보네트워크센터 등 시민단체는 “김현종은 FTA 협상을 주도하며 대기업의 이익을 위해 국내 공공정책을 말살한 인물”이라고 반대성명을 냈다.

    공직에서 물러난 뒤 대기업에 취업한 것도 논란거리다. 그는 2009년 공직에서 물러난 지 1년도 안돼 삼성전자 해외법무담당 사장으로 영입되면서 공직자윤리법 위반 여부가 논란이 됐다. 공직자윤리법이 4급 이상 공무원이면 퇴직 전 5년 이내에 맡았던 업무와 관련된 사기업에 2년 동안 취업할 수 없다고 규정했기 때문이다.

    당시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김현종 전 대사가 한국에서 보기드문 국제통상 전문가라는 점은 분명하다”면서도 “전 통상교섭본부장으로 한미 FTA를 주도한 그의 삼성전자 취업이 공직자윤리법에 어긋나는 것인지 공직자윤리위원회에서 따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한미 FTA가 아직 살아있는 변수라는 점에서 김 전 대사는 한미 정부 모두에서 FTA와 관련해 상당한 정보 접근력과 인적 네트워크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며 “삼성이 한미 FTA와 관련해 가장 영향력 있는 로비스트를 영입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공직자윤리위원회는 업무 관련성이 없다고 판단해 취업을 허용했다. 김 교수는 공직자윤리법의 허술한 규정을 재검토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김용철 변호사는 저서 ‘삼성을 생각한다’에서 “김 전 본부장이 삼성 사장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공직자윤리법에 저촉된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삼성도 정부도 개의치 않았다”며 “김현종은 첫 사장단 회의에서 ‘기업 이익을 지키는 게 나라의 이익을 지키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통상교섭본부장 시절 대기업에만 유리한 정책을 밀어붙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친미 성향 논란
    미국에서 학교생활을 하고 대형로펌에서 근무한 경력과 국제주의·자유주의·개방주의적 성향 때문에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 활동한다는 의혹을 많이 받았다. 한미 FTA 협상 초기에는 ‘미국 대 미국의 협상’이라는 말까지 나왔을 정도다.

    2011년 위키리크스는 2006년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미국대사가 작성한 외교전문을 공개했는데 여기에 김현종이 버시바우 대사에게 전화를 걸어 한국 정부의 약제비 적정화 방안을 발표 전에 미리 알렸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김현종은 유시민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이 미국이 반대한 약제비 적정화 방안을 추진한 것을 두고 “미국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죽도록 싸웠다(fighting like hell)”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그가 국익이 아닌 미국의 이익을 대변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김현종이 2016년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했을 때도 장하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김현종은 2016년 3월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국제무대에서 상대국과 협상할 때는 국익을 챙기는 것이 최대 목표”라며 “목표 달성을 위해 허위정보를 흘릴 수도 있다”고 해명했다.

    그는 “미국이 의약품 최저 가격을 보장해달라고 했을 때 최선을 다했지만 관철되지 않았다고 포기하라는 차원에서 강조한 것”이라며 “그래서 미국이 그 요구를 포기하고 결과에서 우리 국익을 보호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2017년 통상교섭본부장에 임명되자 민주노총과 정의당 등이 또다시 위키리크스의 폭로를 거론하며 반대 의사를 나타냈다.

    2011년 5월에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 외교통상부에 한미 FTA 협상 과정에서 미국이 보낸 한국 전문직 비자 쿼터와 관련한 서한을 공개하라는 소송을 냈다.

    이 서한은 미국 측이 한국인 신청자의 비자 발급에 협조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외교통상부는 해당 서한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재판 결과 김현종이 서한을 보관해 온 사실이 밝혀지면서 중요 외교 관련 서한을 개인적으로 보관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 ◆ 경력

    ▲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김현종 전 통상교섭본부장이 입당원서를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에게 제출하고 있다.

    1985년 미국 밀뱅크트위드 법률사무소, 1986년 미국 스캐든압스 법률사무소 변호사로 일했다.

    1989년 귀국해 김신유 법률사무소에서 근무했다. 1993년 홍익대학교 경영대학 무역학과 조교수로 채용됐다.

    1995년 5월 외무부 고문변호사에 위촉되면서 정부와 인연을 맺었다. 1998년 7월부터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 통상전문관으로 활동했다.

    1999년부터 2003년까지 세계무역기구(WTO)에서 동양인 최초이자 최연소 법률자문관으로 활동했다.

    2003년 5월 외교통상부 통상교섭조정관으로 영입됐다. 2004년 7월 제3대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에 임명됐다.

    2005년 11월 아시아 태평양경제협력체 합동각료회의 공동의장에 올랐다. 같은해 12월에는 제6차 세계무역기구 한국 수석대표가 됐다.

    2007년 8월 주유엔대사로 임명받았다. 같은해 10월 유엔 아주그룹 의장에 선출됐다. 이듬해 1월에는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부의장을 맡았다.

    2008년 5월 유엔대사에서 귀임했고 2009년 3월 삼성전자 해외법무담당 사장으로 영입돼 2011년 12월까지 근무했다.

    2015년 3월 한국외국어대 LT(Language&Trade)학부 교수에 임용됐다.

    2016년 2월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해 20대 총선에서 인천 계양갑 출마에 도전했으나 당내 경선에서 고배를 마셨다.

    2017년 7월30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에 지명돼 8월4일 취임했다.

    ◆ 학력

    미국 윌브램앤맨슨 아카데미에서 중고등학교 과정을 마쳤다. 2005년 11월 부산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차 방한한 조시 부시 미국 대통령이 출신 고교를 물어보자 “각하가 나온 학교보다 좋은 곳을 나왔다”고 대답해 웃음을 이끌어 냈다.

    1981년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국제정치학 학사학위를 받고 1982년 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5년 컬럼비아대학교 로스쿨에서 법무박사(JD)를 취득했다.
     
    ◆ 가족관계

    우루과이·노르웨이 대사를 지낸 김병연 전 코리아헤럴드내외경제신문 회장과 최정심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고 남동생과 여동생이 한명씩 있다. 여동생은 김미형 아시아나항공 고문이다.

    강금진씨와 사이에 민상, 지상 두 아들을 두고 있다.

    ◆ 상훈

    2009년 황조근정훈장을 받았다.

    ◆ 기타 

    대학원을 마치고 로펌 근무 도중 귀국해 1986년 11월15일부터 1987년 5월16일까지 석사장교로 복무했다. 

    2010년 한미FTA 협상 과정과 세계 통상 흐름 등을 담은 ‘김현종, 한미 FTA를 말하다’(홍성사)를 펴냈다.

  • ◆ 어록

    “과거 한미FTA를 두고 다소 다른 입장에 서 있었지만 늘 존경했다는 걸 이제서야 늦게나마 밝힌다. 고인은 우리 국민들에게 커다란 유산을 남겨주고 갔다. 저와는 다른 삶을 살아오셨지만 저는 고인을 진심으로 존경해왔다. 앞일을 몰라 고맙고 감사드린다는 말씀 한 번 더 못드린 것이 아쉽다.” (2018/07/27, 페이스북에서 노회찬 전 정의당 의원을 추모하며)

    “미국과 중국의 무역갈등을 봤을 때 시장 콘텐츠를 다양화하고 수출을 다변화하는 일이 굉장히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인도와 관계를 4강 수준으로 격상하려고 한다. 문재인 정부는 미국과 중국 등 G2와 관련한 위험을 줄이기 위해 인도와 관계를 4강 수준에 버금가게 높이고 새로운 협력관계를 구축하겠다.” (2018/07/09,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5월까지 수출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하는 등 수출 증가세가 이어져 연말까지 수출 상승 기조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조업일수 감소와 선박수출 기저효과 등으로 6월 수출이 주춤하고 있다는 점에 경각심을 지녀야 한다. 견조한 수출 성장을 통해 수출이 일자리와 소득 증대로 이어지는 선순환구조를 만드는 데 노력해야 한다.” (2018/06/26, ‘민관 합동 수출투자 대책회의’를 열고)

    “4차산업혁명에 따라 국경 간 전자상거래와 빅데이터의 국가 간 이동, 스마트 기기 등에 따른 세계 가치사슬(GVC, 글로벌 밸류체인)의 변화 등 새로운 통상이슈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 (2018/04/26, 경기 용인의 현대자동차 환경기술연구소를 찾아)

    “2010년 이후 일본은 연 평균 2.3%, 우리는 연 평균 5.9%씩 수출이 늘어나고 있다. 신통상전략을 통해 수출 증가율을 6.6%까지 높여 2022년에는 일본을 추월하겠다.” (2018/04/05,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미자유무역협정(FTA)과 미국 무역확장법 232조 철강 관세를 두고 미국과 원칙적 합의와 원칙적 타결을 이뤘다. 다만 아직 실무 차원에서 몇 가지 기술적 이슈가 남아있는데 곧 해결될 것이라 믿는다.” (2018/03/25, 미국과 협상을 마치고 귀국하면서 인천국제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

    “한중미FTA를 통해 한국과 중미 사이에 더욱 포괄적 전략적 파트너십을 형성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2018/02/21, 중미 5개국 통상장관과 한/중미FTA 정식서명식에서)

    “미국의 세이프가드를 3월에 제소하겠다. 애초 2월 제소하려고 했지만 미국과 보상협상 절차 등이 진행되고 있어 조금 늦어졌다. WTO의 권리를 모두 행사하는 동시에 대체 수출시장을 찾고 국내 기업이 애로사항을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2018/02/12,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반덤핑규제와 세이프가드 등 조치가 보호무역주의 실현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들이 힘을 모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2018/01/28,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

    “정부는 국익 수호를 위해 보호무역주의에 적극 대응할 계획을 세웠다.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상 보장된 권리를 적극 행사해 미국의 부당한 조치를 WTO에 제소하겠다.” (2018/01/23, 한국무역보험공사에서 열린 민관대책회의에서)

    “(한미FTA 개정협상과 관련해) 이제 막 시작했지만 순탄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나쁜 협상 결과보다는 협상을 타결하지 않는 게 낫다는 각오로 협상에 임하겠다. 국익 극대화와 이익균형 달성을 목표로 통상당국의 역량을 집중하겠다.” (2018/01/08,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안정적 수출 증가세를 유지하려면 수출품목 다변화와 시장 다변화가 시급하다. 동남아, 유라시아, 아프리카 국가의 수요가 높은 투자개발형 프로젝트 수주 선진화를 추진하겠다.” (2017/10/19, ‘해외 프로젝트 수주 선진화 세미나’에 참석해)

    “농업은 우리에게 매우 어려운 것이고 농업을 건드리는 순간 우리 역시 미국의 제일 민감한 부분을 말할 수밖에 없다. 협상 과정에서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농업을 언급할 수 있지만 우리는 수용할 수 없다는 뜻을 확실히 미국 측에 전달했다.” (2017/10/13,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첫 협상이기 때문에 당당하게 협상에 임하겠다.”(2017/08/22, 한미FTA 공동위원회 특별회기에 앞서)

    “어떠한 협상에서도 가장 중요한 기본원칙은 이익의 균형이다.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유리한 협상은 가능하지도 않고 유지될 수도 없다. 앞으로 우리는 우리의 주요 교역 파트너들과 새로운 이익의 균형을 찾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경주해 나갈 것이다.” (2017/08/04, 통상교섭본부장 취임사) 

    ▲ 김현종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오른쪽)이 캐나다 외무부 회의실에서 크리스티아 프릴랜드 캐나다 외무부 장관을 만나 미국의 무역확장법 232조 등 주요 통상현안과 양국 교역 및 투자 확대방안 등에 관해 의견을 교환했다. <산업통상자원부>

    “우리가 명심해야 할 점은 주둔비용 분담 증대 협상에서 열강에 대한 의존도를 낮출 수 있는 반대급부를 반드시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정상회담에서 합의하지 않았지만 한·미 FTA를 재-재협상할 때 우리 협상가들은 한·미 FTA가 결렬된다고 하더라도 소비자에게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농산물은 캐나다·유럽연합(EU)·호주산 등에 의해 대체 가능하다는 점을 직시하고 차근차근 대응할 준비를 해 나가야 할 것이다.” (2017/07/04, 중앙일보 칼럼)

    “FTA를 체결하는 과거 통상정책 전략이 원교근공이었다면 이제는 성동격서 전략을 이행하면서 지정학과 에너지 이슈를 무역 관련 이슈와 융합해 우리 국익을 지켜야 한다. 우리 국민을 결집시키는 계기라는 계량화되지 않는 혜택을 얻을 수 있다면 한·미 FTA의 재-재협상을 하지 않는 것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2017/05/09, 중앙일보 칼럼)

    “우리가 동북아와 한반도의 미래에 대한 전략을 미국과 논의하려면 북핵 문제와 중국의 부상에 대한 전략이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남북 간의 지속적 대화와 시장경제에 기반한 꾸준한 교류 및 일관된 남북 경제협력으로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작업을 해놨어야 한다.” (2017/03/14, 중앙일보 칼럼)

    “우리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이후 317억 달러를 미국에 투자해 1만8530개의 일자리를 창출했고 미국의 대한국 서비스 무역흑자가 100억 달러로 증가했으며 78억 달러어치의 무기를 수입했음을 강조해야 한다. 보호무역주의와 포퓰리즘의 득세로 틀이 바뀌었는데 기존의 예측 가능한 대응 방식으로는 백전백패다.” (2017/01/16, 중앙일보 칼럼)

    “가장 열악한 상황이 저를 정치에 입문하게 하는 결정적 동기를 부여했다. 제 깊은 곳으로부터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있다!”는 단호한 음성이 들렸다. 더 늦기 전에 정계, 재계, 국민 모두가 힘을 모아 비상체제로 돌입해야 한다. 수출시장을 확대하고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이제는 지역과 전략 위주로 체결하는 메가FTA를 주도하고, 우리 자유무역구와 중국 자유무역구를 상호 개방해 금융, 의료 서비스 등이 진출해야 한다.“ (2016/02/18, 더불어민주당 입당인사)

    “냉정한 국제질서에서 특히 실시간으로 지형이 변하는 동북아 지역에서 협상가들은 치밀한 전략과 전술을 가지고 '신(新)조선책략'을 구사하는 중국에 대비해야 한다. 경험이 많은 우리 협상가들이 좋은 결과를 내겠지만 이들에게 힘을 실어 주기 위해서는 마감일을 언급하는 것은 금기이며 언제든지 깰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 (2014/11/06, 동아일보 칼럼)

    “국민들이 안전에 대한 선진기준을 기업과 정부에 지속적으로 요구해야 한다. 정부와 기업의 위기관리 준비와 대응은 국민의 눈높이에 맞출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필요하다면 세금을 인상해서라도 국민들의 안정된 삶을 지탱할 사회적 안전망을 확충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치개혁이 선행돼야 한다. 한국 사회는 압축성장을 한 결과 곳곳에 부족함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 가장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입할 필요가 있다.” (2014/04/22, 동아일보 칼럼)

    “2007년 미국과 FTA 협상을 마무리 짓고 난 후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평양방문을 준비하고 있던 노무현 대통령에게 남북 FTA 추진을 건의했다. 그 당시 상황에서 6조5천억 달러의 가치로 평가되는 북한의 천연자원을 활용하는 것을 포함해 남북 FTA 추진은 분명히 고려할만한 사안이었다.” (2011/06/13, 서울-워싱턴포럼 세미나)

    “EU는 세계 최대 경제국이자 중국에 이어 우리나라의 제2의 수출시장이다. 특히 자동차와 섬유, 전자 등 우리나라의 주요 수출품에 대한 관세 수준이 높아 FTA가 체결되면 가시적 성과를 얻을 수 있다. 한·EU FTA가 체결되면 한국은 유럽, 아시아, 미국, 동아시아를 연결하는 FTA 허브로 자리잡을 수 있다.” (2007/05/06, EU와 자유무역협정 협상 개시를 선언하며)

    “한미 FTA는 상품뿐 아니라 투자와 서비스, 경쟁 등 무역관련 분야를 총망라해 북미자유무역협정 이후 세계 최대의 FTA가 됐다. 양국의 경제규모를 합치면 EU, NAFTA에 이어 세계 3위에 해당한다. 향후 FTA가 성공적으로 발효되면 FTA 체결 경쟁에서 매우 유리한 고지를 선점케 된다.” (2007/04/02, 한미FTA 타결 직후 기자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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