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90단 이상의 3D낸드 메모리반도체를 양산한다고 발표하자마자 경쟁사인 도시바메모리와 웨스턴디지털이 96단 공정 개발에 성공했다고 밝히며 견제에 나섰다.

삼성전자는 낸드플래시시장에서 오랫 동안 기술 우위를 지켜왔는데 앞으로는 이를 낙관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 3D낸드에서 도시바메모리와 웨스턴디지털에 바짝 쫓겨

▲ 진교영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사장.


도시바메모리는 20일 보도자료를 내고 96단 3D낸드 개발에 성공해 9월부터 고객사에 샘플 공급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대량 양산은 내년부터 예정됐다.

96단 3D낸드는 기존의 최신 공정이던 64단 또는 72단 3D낸드보다 더 여러 겹으로 반도체 소자를 쌓아 낸드플래시 저장장치의 성능과 전력 효율, 생산성을 모두 크게 높일 수 있는 기술이다.

도시바메모리는 10일 삼성전자가 90단 이상의 3D낸드를 세계 최초로 개발해 양산을 시작했다고 밝힌 지 약 열흘만에 96단 제품 개발 성과를 발표했다.

세계 낸드플래시 1위 업체인 삼성전자에 기술 주도권을 완전히 빼앗기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인 것으로 해석된다. 

도시바메모리는 미국 웨스턴디지털과 낸드플래시 기술을 공동으로 개발하고 생산한다. 삼성전자가 세계 2,3위 낸드플래시업체로 이뤄진 동맹군의 도전에 직면하게 된 셈이다.

웨스턴디지털도 도시바와 동시에 96단 3D낸드 개발 소식을 알리는 보도자료를 냈다.

웨스턴디지털은 "세계 최고 수준의 원가 경쟁력과 기술을 갖춘 새 낸드플래시 기술로 도시바메모리와 힘을 합쳐 모바일과 서버 등 다양한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도시바메모리와 웨스턴디지털은 64단 3D낸드의 개발과 대량 양산을 삼성전자보다 1년 반 정도 늦게 시작했다. 일본 도시바가 지난해 경영난으로 도시바메모리 지분 매각을 추진하면서 사업 운영에 차질을 빚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까지 64단 3D낸드의 기술 우위를 앞세워 낸드플래시시장에서 지배력을 확대하며 반도체사업에서 실적을 크게 늘리는 성과를 봤다.

하지만 도시바메모리와 웨스턴디지털의 기술 추격 속도가 이전보다 훨씬 빨라지면서 삼성전자가 90단 이상의 낸드플래시로 기술 우위를 장기간 지켜내기 어렵게 됐다.

경쟁사인 SK하이닉스 역시 올해 안에 96단 3D낸드 기술을 개발해 내년부터 양산한다는 계획을 세워뒀고 미국 마이크론도 이미 96단 3D낸드를 고객사에 공급하며 시제품 형태로 공개했다.

삼성전자는 낸드플래시 공급 과잉에 대응해 96단 3D낸드에 공격적 증설 투자를 자제하고 기존의 낸드플래시 생산라인을 전환해 활용하는 다소 소극적 전략을 쓰고 있다.

내년부터 글로벌 경쟁사들이 일제히 예정대로 96단 3D낸드 양산을 시작한다면 삼성전자가 낸드플래시시장에서 점유율과 기술력 선두를 지켜내기 훨씬 어려워질 공산이 크다.
 
삼성전자, 3D낸드에서 도시바메모리와 웨스턴디지털에 바짝 쫓겨

▲ 도시바메모리와 웨스턴디지털의 96단 3D낸드 이미지.


도시바메모리와 웨스턴디지털이 삼성전자의 TLC(트리플레벨셀) 방식보다 앞선 QLC(쿼드레벨셀) 방식으로 96단 3D낸드 기술을 개발한 점도 위협적이다.

QLC 기반 낸드플래시는 반도체 소자의 공간 효율을 TLC보다 높일 수 있어 고용량 저장장치의 원가 절감에 유리하다.

삼성전자 역시 90단 이상의 3D낸드를 현재 TLC 방식으로 생산하고 있지만 QLC 기반 제품 개발을 차기 과제로 두고 연구개발을 지속하고 있다.

결국 도시바메모리와 웨스턴디지털이 QLC 기반의 96단 3D낸드 양산에 앞서 나가면서 삼성전자가 낸드플래시시장에서 오랫동안 지켜 오던 기술력 우위마저 내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TLC와 QLC방식은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QLC가 반드시 더 앞선 공정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활용처를 다양화하는 측면에서 QLC까지 3D낸드 개발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