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반도체 미세공정 신기술을 활용해 고성능 시스템반도체를 위탁생산하며 PC용 프로세서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채비를 갖추고 있다.

PC용 프로세서에서 장기간 독점에 가까운 체제를 구축하고 있던 인텔을 강력하게 위협하며 삼성전자가 반도체사업에서 새 성장동력을 확보할 가능성이 열렸다.
 
삼성전자, 미세공정으로 PC용 프로세서 위탁생산해 인텔과 맞선다

▲ 정은승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 사장.


전자전문매체 지디넷은 6일 "삼성전자가 ARM과 손을 잡고 모바일 반도체의 성능 한계를 뛰어넘으려 하고 있다"며 "스마트폰을 넘어 노트북시장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보도했다.

삼성전자는 공식 뉴스룸을 통해 영국 반도체 설계기업 ARM과 협력을 맺고 3GHz(기가헤르츠)급 이상의 구동성능을 갖춘 반도체를 위탁생산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ARM은 모바일 프로세서의 기본 설계 기반을 제공하는 기업이다. 퀄컴과 애플, 삼성전자 등 주요 반도체기업은 ARM의 설계를 응용해 자체적으로 모바일 프로세서를 개발한다.

ARM이 삼성전자의 7나노와 5나노 공정에 맞춰 개발하는 새 설계기반 '코어텍스A76'은 이론적으로 고성능 PC에 사용되는 인텔의 i7 시리즈 CPU와 견줄 만한 성능을 갖출 수 있다.

그동안 ARM의 설계를 기반으로 한 반도체는 최대 구동성능이 2GHz대에 그쳤지만 삼성전자의 미세공정 신기술을 통해 단기간에 성능을 인텔의 프로세서와 맞설 정도로 끌어올리게 된 것이다.

삼성전자는 내년부터 EUV(극자외선) 공정을 세계 최초로 도입해 7나노와 5나노 미세공정을 상용화한다. 반도체 위탁생산 미세공정은 숫자가 낮아질수록 반도체 성능 향상에 효과가 크다.

인텔은 시스템반도체 설계 기술력에서 경쟁사들을 크게 앞서고 있지만 아직 10나노 공정 도입에도 고전할 정도로 미세공정과 양산 기술 발전에 삼성전자보다 크게 뒤처지고 있다.

삼성전자와 ARM의 협력이 시스템반도체분야 최고 기업으로 평가받던 인텔을 위협할 만한 잠재력을 갖추게 된 셈이다.

ARM의 설계 기반을 활용하는 퀄컴 등 반도체기업은 그동안 모바일 프로세서에만 집중해왔기 때문에 PC용 프로세서 전문기업인 인텔과 경쟁할 일이 없었다.

하지만 퀄컴이 올해부터 '스냅드래곤' 시리즈 프로세서를 PC용으로 개발해 노트북 제조사에 공급하고 PC용 프로세서시장으로 영역을 확대하면서 인텔과 새 경쟁구도가 만들어지고 있다.

중국 레노버와 미국 HP, 대만 에이수스 등 세계 노트북 상위기업들이 이미 차기 신제품에 인텔 대신 퀄컴의 프로세서 탑재를 확정했다.

경제전문지 비즈니스인사이더에 따르면 애플도 이른 시일에 맥북 등 PC에 사용되는 프로세서를 인텔에서 받는 대신 아이폰과 같이 자체 개발한 반도체로 대체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퀄컴과 애플이 차기 PC용 프로세서를 개발하려면 성능을 대폭 높일 수 있는 ARM의 새 설계기반을 도입할 가능성이 높다. 자연히 삼성전자가 이들 제품의 위탁생산을 맡을 공산이 크다.

삼성전자가 위탁생산사업에서 모바일용 반도체뿐 아니라 PC용 반도체까지 새로 영역을 확대하면서 잠재적 고객사 기반을 늘리고 성장동력을 확보할 기회가 열린 것이다.

시장조사기관 무어인사이츠는 지디넷을 통해 "ARM이 도입하는 새 반도체 설계기반은 모바일이 아닌 PC시장을 노리고 있다는 점에서 엄청난 변화가 될 수도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삼성전자, 미세공정으로 PC용 프로세서 위탁생산해 인텔과 맞선다

▲ ARM의 코어텍스A76 설계 기반(아키텍쳐) 안내.


삼성전자가 고객사의 반도체를 위탁생산할 뿐 아니라 ARM의 설계 기반을 활용하는 자체 모바일 프로세서 '엑시노스'를 앞세워 직접 PC용 프로세서를 개발하고 출시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인텔이 수십 년 동안 사실상 독점에 가까운 지배력을 유지하고 있던 PC용 프로세서시장에서 경쟁사들의 거센 공세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ARM은 홈페이지를 통해 삼성전자가 반도체 위탁생산에 도입한 EUV공정이 "반도체업계를 뒤바꿀 만한 중요한 기술"이라며 높은 기대를 보였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위탁생산 최대 경쟁사인 대만 TSMC보다 훨씬 앞서 EUV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는데 이를 통해 ARM과 협력을 강화하고 고객사를 확대하기 유리한 위치에 놓인 것이다.

ARM의 새 설계 기반을 활용하고 삼성전자가 위탁생산하는 프로세서는 내년 출시되는 스마트폰과 노트북에 탑재될 것으로 예상된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