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반도체기업 인텔이 공정기술 발전에 차질을 겪던 상황에서 갑작스런 CEO 교체로 더 큰 위기에 직면해 경쟁력을 유지하기 쉽지 않은 처지에 놓였다.

이에 따라 퀄컴과 AMD 등 인텔을 바짝 추격하고 있는 시스템반도체기업들과 반도체 위탁생산 및 차세대 메모리반도체에서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는 삼성전자가 성장의 기회를 맞을 수도 있다.
 
인텔 CEO 교체로 엎친 데 덮친 격, 삼성전자에게 성장의 기회

▲ 브라이언 크르자니크 전 인텔 CEO.


월스트리트저널은 25일 "인텔의 계속된 '헛발질'이 경쟁 반도체기업들의 추격에 도움을 주고 있다"며 "차기 CEO가 인텔의 시장 우위를 지켜내기 쉽지 않은 환경에 놓일 것"이라고 보도했다.

브라이언 크르자니크 전 인텔 CEO는 회사 규정을 어기고 다른 직원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는 이유로 최근 갑작스럽게 사임이 결정됐다. 2013년 CEO에 오른 뒤 약 5년만이다.

인텔 CEO를 교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전부터 주주들 사이에서 힘을 얻었던 만큼 이번 사임의 배경에 인텔이 경쟁력 확보에 고전해온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분석이 고개를 들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인텔은 크르자니크 CEO체제에서 반도체 신공정 도입과 출시일정에 계속 차질을 겪어 왔다"며 "반도체 경쟁에서 뒤처지며 큰 손해를 보고 있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인텔은 기존 주력사업이던 PC와 서버용 반도체의 수요가 침체되자 모바일 반도체와 통신칩, 인공지능 반도체 등 신사업에 잇따라 도전했다. 하지만 모두 눈에 띄는 성과를 보지 못했다.

인텔이 10나노 반도체 미세공정기술 개발에 차질을 겪으며 도입 시기가 계획보다 2년 가까이 늦춰지고 있는 점도 인텔의 경쟁력을 의심하는 시선에 무게를 싣는다.

그동안 인텔은 절대적 기술우위와 영향력을 자랑하는 시스템반도체기업으로 전 세계에서 명성을 떨쳐 왔는데 앞으로 이런 위치를 계속 지켜낼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인텔이 지난해 24년 만에 처음으로 전 세계 반도체매출 1위 자리를 삼성전자에 내준 것이 상징적 사건으로 평가된다. 인텔이 반도체시장을 주도하던 시대가 끝자락에 가까워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메모리반도체 호황에 힘입어 인텔 실적을 뛰어넘는 성과를 냈는데 인텔이 경쟁력 확보에 고전해 다른 시스템반도체기업들에 추격을 허용하면서 새로운 성장기회도 맞고 있다.

인텔에 가장 위협적 경쟁사로 꼽히는 퀄컴과 AMD에 삼성전자가 모두 반도체 위탁생산과 차세대 메모리반도체 등 분야에서 긴밀한 협력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시장조사기관 IBS를 인용해 "인텔은 반도체 설계 기술력이 발전한 퀄컴과 AMD의 위협에 직면하고 있다"며 "매출에 큰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퀄컴과 AMD는 인텔과 서버용 반도체, CPU 등 사업분야에서 경쟁하고 있다. 이들은 기술격차를 극복하기 위해 인텔보다 앞선 삼성전자의 반도체 미세공정기술을 활용하거나 차세대 메모리를 적용해 구동성능을 높이는 전략을 쓰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말 퀄컴이 최초로 개발한 서버용 반도체 '센트릭2400'을 10나노 2세대 공정으로 위탁생산하고 있다. AMD도 이전부터 삼성전자의 위탁생산 공정기술을 활용해 왔다.

인텔은 10나노 공정 기반 서버용 CPU를 2020년~2021년에 출시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퀄컴과 AMD가 삼성전자의 10나노 공정을 기반으로 한 반도체를 앞세워 추격에 속도를 낼 수 있다.
 
인텔 CEO 교체로 엎친 데 덮친 격, 삼성전자에게 성장의 기회

▲ 김기남 삼성전자 DS부문 대표이사 사장.


AMD는 인텔과 경쟁을 노려 내놓은 고성능 서버용 반도체 '에픽' 시리즈에 삼성전자의 차세대 메모리인 HBM(고대역)2 D램을 탑재해 내놓고 있다. HBM D램은 일반 D램보다 성능이 대폭 개선됐는데 가격도 훨씬 높아 삼성전자의 수익성에 기여하는 폭이 크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AMD의 서버용 반도체 출시행사에서 "서버 고객사들에 최적의 솔루션을 제공하기 위해 AMD와 삼성전자는 앞으로도 계속 협력할 것"이라는 발표를 내놓은 적도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인텔은 계속된 문제에 직면하며 경쟁 반도체기업들의 추격에 사실상 문을 열어주고 있다"며 "PC와 서버용 반도체시장에서 독주체제를 지키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인텔을 추격하는 경쟁기업들의 입지가 커질 수록 삼성전자도 수혜를 볼 공산이 크다.

인텔은 올해 초 불거진 CPU 보안 결함 사태도 아직 완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당시 인텔이 출시한 대부분의 CPU에 심각한 설계상 보안 결함이 발견되며 논란이 일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