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Is ?] 김태영 전국은행연합회 회장

최석철 기자
2018-02-07 12: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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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건
  • 기타
  • 어록
  • ▲ 김태영 전국은행연합회 회장.


    ◆ 생애

    김태영은 전국은행연합회장이다. 40년 가까이 농협에서 일한 '농협맨'으로 평사원으로 입사해 부회장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로 꼽힌다.

    1953년 3월27일 부산에서 태어나 영남상업고등학교와 명지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1971년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주산 특기생으로 농협중앙회에 입사한 뒤 1981년 중앙회 금융부 금융계획 과장을 시작으로 대부분의 경력을 신용사업부문에서 보냈다.

    수신부장, 금융기획부장, 기획실장 등을 거치며 농협중앙회에서 대표적 금융 전문가로 자리잡았다. 

    농협중앙회 신용대표이사에서  물러났다가 복귀해 농협중앙회 부회장으로 근무했다.

    은행의 수익성을 끌어올리기 위해 금융규제를 개선되도록 목소리를 높이는 것과 동시에 은행권에서 불거진 '채용비리 의혹'을 딛고 신뢰를 확보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 경영활동의 공과

    △은행연합회장 선출
    2017년 12월 전국은행연합회 회장에 선출됐다.

    정치권 영향력이 큰 농협조직에서 일한 경력을 살려 은행업계 의견을 잘 대변할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문재인 대통령과 같은 부신 출신이라는 점과 19대 대선에서 문재인 대선캠프의 금융경제위원회 공동 부위원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던 만큼 문재인 정부와 소통이 원활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됐다.

    은행연합회장 후보에 오를 때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의 추천을 받아 이경섭 NH농협은행장이 추천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 전 위원장과 김태영은 농협금융지주에서 함께 근무한 인연이 있다. 

    2013년 6월 임 전 위원장은 NH농협금융지주 회장에 올랐는데 임 전 위원장이 취임하기 전날 김태영이 농협중앙회 전무이사(부회장)로 복귀했다.

    임 전 위원장이 농협 조직의 특성을 잘 파악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도움을 주면서 친분이 두터워진 것으로 전해졌다. 

    ▲ (왼쪽부터)임종룡 당시 NH농협금융지주 회장과 김태영 당시 농협중앙회 부회장이 2013년 6월11일 서울 중구 농협중앙회 본점에서 열린 임 당시 회장 취임식에서 꽃다발을 주고받은 뒤 악수하고 있다.<뉴시스>

    △농협중앙회 신용부문 대표이사 시절
    2008년 농협중앙회 신용부문 대표이사로 당시 신용부문 기획실장이었던 김태영이 깜짝 발탁됐다.

    지역본부장이나 임원을 거치지 않은 기획실장(부장급)을 신용대표 후보로 발탁한 만큼 농협중앙회에서 파격적 인사라는 평가가 나왔다.

    1급 직원이 대표이사로 승진·발탁된 것은 농협 역사상 두 번째로 매우 드문 일이었다. 1급 직원이 대표이사로 발탁된 기존 사례는 2000년 노의현 당시 농업경제부문 대표이사가 유일했다.

    최원병 당시 농업중앙회 회장이 농협 금융사업의 세대교체와 변화를 위해 김태영을 중용한 것으로 관측됐다.

    김태영은 2008년 신용부문 대표에 오른 뒤 신용부문에서 별탈없이 일을 추진해 외부에서 무난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신용부문대표를 맡아 인맥이나 파벌에 휩쓸리지 않고 온화하고 합리적 리더십을 발휘하면서 농협조직 내부뿐 아니라 금융당국과 소통도 활발하게 이뤄지는 데 기여했다.

    2010년 7월 임기 2년 연임에 성공한 뒤부터 농협금융지주사 설립에 힘썼다.

    농협중앙회는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을 중앙회에서 분리해 각각 지주회사 체제로 만드는 방안을 추진했는데 김태영은 금융과 농협조직의 특성을 두루 알고 있는 경험을 바탕으로 2012년 3월 농협금융지주가 안정적으로 출범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는 평가를 받았다.

    △농협중앙회의 프라이빗뱅킹사업 기반 닦아
    농협중앙회 PB(프라이빗뱅킹)사업의 기반을 닦은 인물로 꼽힌다.

    2005년 수신부장으로 일하면서 농협중앙회 PB사업의 기반이라 할 수 있는 PB영업 전담팀을 만들었고 PB 인력양성 프로그램인 ‘PB전문가 교육과정’도 처음 도입했다. 

    주요 권역별로 PB영업점을 늘려갔고 이를 바탕으로 2007년 4월 농협중앙회 PB센터 1호점인 ‘강남PB센터’를 열었다. 

    또 ‘농협’ 브랜드 대신 새로운 PB브랜드인 ‘로얄로드(Royal Road)’를 내걸어 차별화를 두기도 했다. 

    ▲ 김태영 은행연합회 회장이 2017년 12월1일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관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있다.<은행연합회>

    ◆ 비전과 과제

    은행들의 낮은 수익성을 개선하기 위해 각종 금융규제를 풀어내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은행의 신탁업 진출과 증권사의 초대형 종합금융투자사업자(IB) 지정과 같은 굵직한 금융정책과 관련해 은행권의 목소리를 적극 대변해 은행권의 먹거리를 지켜내야 한다.

    김태영은 4차산업혁명에 발맞춰 은행권의 디지털 금융기반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정보공유, 클라우드컴퓨팅(인터넷저장시스템)과 관련한 규제의 완화 등이 필요하다면 이를 정부에 적극적으로 건의하기로 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와 유럽중앙은행(ECB) 등 주요국 중앙은행뿐 아니라 한국은행도 기준금리를 점차 올리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은 만큼 가계부채 연착륙을 위해 정부 및 다른 금융권과 협력해야할 필요성도 높다.

    가계부채 규모가 1400조 원을 넘은 만큼 시중금리 상승으로 가계대출의 건전성이 악화되면 고스란히 은행권이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있다.

    금융감독원의 채용비리 검사에서 우리은행뿐 아니라 다른 은행 5곳에서도 채용비리 정황이 포착되면서 논란이 확대되고 있다.

    금감원이 은행연합회를 중심으로 은행권 채용절차 관련 모범사례 규준을 마련하기로 한 만큼 은행권의 신뢰 회복을 위한 계기로 만들기 위해 힘쓸 것으로 보인다.

    ◆ 평가

    1971년 농협중앙회에 입사한 뒤 2014년까지 40년 가까이 농협에서 일하면서 농협의 특징을 잘 파악하고 있는 ‘농협맨’으로 꼽힌다.

    농협중앙회에 평사원으로 입사해 부회장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로도 유명하다.

    1971년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주산 특기생으로 농협중앙회에 입사한 뒤 1981년 중앙회 금융부 금융계획 과장을 시작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신용사업부문에서 보냈다. 

    농협대학 출신들이 농협중앙회에서 ‘주류’로 꼽혔던 만큼 명지대학교 경영학과 출신인 김태영은 ‘비주류’로 분류됐다.

    ‘간부 등용문’이라 불리는 ‘교육부문’에서 일한 경험이 없다는 점도 불리한 여건이었다. 농협중앙회에서 ‘교육부문’은 고위 임원급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할 핵심요직으로 불린다. 

    하지만 그는 주변의 예상을 깨고 2008년 7월 농협중앙회 신용대표 자리까지 올라 2012년 농협의 신경분리까지 진두지휘하면서 최원병 당시 농협중앙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 유통, 금융 등 여러 업무를 다루고 있는 농협조직의 특성에도 불구하고 신용부문에서 줄곧 일해오면서 농협에서 찾기 쉽지 않은 ‘금융 전문가’로 꼽힌다. 

    직원들은 김태영을 꼼꼼하게 일처리를 하는 ‘워커홀릭’으로 평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유의 친화력을 보여  동종업계는 물론 정·관계에도 인적 네트워크를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태영이 인맥이나 파벌을 만들지 않고 온화하고 합리적 성격을 갖고 있어 조직 안팎에서 신망이 높다는 점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 김태영 당시 농협중앙회 부회장이 2014년 6월18일 서울 중구 충정로 농협중앙회 중회의실에서 열린 농업경쟁력제고를 위한 '소비자패널 구축 업무 협약식'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뉴시스>

    ◆ 사건/사고

    △농협중앙회 전산망 장애
    2011년 4월11일 농협중앙회 금융전산망이 마비되면서 체크카드 거래와 신용카드 현금서비스, 대출 등 금융거래가 이뤄지지 않았다.

    농협중앙회는 여러차례 복구를 완료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잇달아 약속이 지켜지지 못하면서 5월 중순까지 한달여 넘게 전산장애가 나타났다.

    이재관 당시 농협중앙회 전무이사는 금융전산망 마비사태에 책임을 지고 사직서를 제출했다.

    최원병 당시 농협중앙회 회장과 당시 신용부문 대표이사였던 김태영에게도 책임론이 제기됐지만 이들은 전산장애는 IT부문의 문제인 만큼 농협중앙회 회장과 신용부문과 별개의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금감원은 농협중앙회 전산망 마비사태와 관련해 특별검사를 실시하고 농협중앙회의 주요 경영진이었던 최 당시 회장과 김태영, 이재관 당시 전무를 대상으로 감독책임을 조사했다.

    같은해 10월 금감원은 농협중앙회에 기관경고를 내리고 농협중앙회 IT부문 본부장 및 임직원 20여 명에게 정직을 포함한 중징계를 결정했다.

    다만 최 전 회장과 김태영은 징계대상에서 제외됐다. 금감원은 관련 법규를 검토했지만 이들을 징계할 법적 근거를 찾지 못했다.

    당시 금감원 관계자는 “농협중앙회의 IT부문은 신용 부문과 분리 운영되고 농협중앙회장도 법적으로 IT사업부문에 대해선 책임을 지지 않는다”며 “여러 번 검토해봤지만 징계를 내릴 수 없다는 것이 결론”이라고 말했다.

    △NH농협금융지주 회장 경쟁
    2012년 3월 농협금융지주 출범을 앞두고 당시 농협중앙회 임원들은 농협 사업구조개편에 따른 변화와 혁신의 일환으로 모두 사의를 표명했다. 

    신충식 당시 농협중앙회 전무이사(부회장)와 이덕수 당시 농업경제부문 대표이사, 남성우 당시 축산경제부문 대표이사에 이어 당시 신용부문 대표이사였던 김태영도 자리에서 물러났다.

    김태영은 농협금융지주 회장과 농협은행장 가운데 한 자리를 맡을 유력한 후보로 거명됐지만 신충식 전 전무이사에게 자리를 내줬다.

    새로 출범한 농협금융지주 수장자리를 놓고 권태신 전 국무총리실장과 이철휘 전 자산관리공사 사장 등이 회장 후보로 떠오르면서 ‘낙하산 인사’ 논란이 거세지자 신충식 전 전무이사가 지주 회장과 은행장을 겸임해 논란을 잠재웠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당시 신 회장은 같은해 6월 지주 회장에서 물러나고 은행장만 맡겠다고 밝혔다. 신 회장은 “금융지주와 은행은 분리 운영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겸직에 한계가 많다”고 말했다.

    김태영은 다시 농협금융지주 회장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지만 출범 초기 ‘외풍’을 막아줄 외부인사가 회장을 맡아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쏠리면서 멀어졌다.

    같은해 7월 당시 농협금융지주 2대 회장에 신동규 전 은행연합회장이 선임됐다.

    그런데 2013년 5월 신동규 당시 회장이 취임한 지 1년도 지나지 않아 회장에서 물러나면서 김태영은 또 다시 지주 회장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다.

    신동규 당시 회장은 “농협금융은 제갈량이 와도 안 되는 조직”이라는 말을 남기고 스스로 물러났다.

    2013년 6월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이 2대 농협금융지주 회장에 오르자 김태영은 농협중앙회 부회장으로 농협에 복귀한 뒤 2014년 말에 임기 6개월을 남기고 스스로 물러났다.  

    ▲ 김태영 당시 농협중앙회 신용부문 대표이사(오른쪽)가 2012년 1월17일 설 명절을 앞두고 서울 중구 농협중앙회 VIP식당에 교남동 독거노인들을 초청한 ‘사랑의 떡국 나눔’ 봉사활동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어르신들에게 떡국을 대접하고 있다.<뉴시스>

    △NH농협은행 부실책임
    2016년에 NH농협은행 부실을 일으킨 장본인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김태영이 2008년부터 2012년까지 농협중앙회 신용부문 대표이사로 일하면서 추진한 무리한 투자가 수년 후 농협은행의 부실을 불러왔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뒤 시중은행들은 조선업과 관련된 여신규모를 줄이고 있었는데 농협은행은 오히려 조선업 여신을 늘렸다.

    농협은행이 부실하게 된 주요한 요인으로 꼽히는 STX조선해양 여신도 이 때 이뤄졌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기 직전인 2008년 6월 농협중앙회 신용부문의 STX조선해양 RG(지급보증)는 2조1650억원 규모였는데 2010년 4월에 2조2310억 원까지 늘었다.
     
    2016년 농협은행은 STX조선해양이 파산신청을 하면서 대규모 충당금을 적립하게 되면서 큰 피해를 봤다.

    김태영과 강덕수 STX그룹 전 회장이 명지대학교 동문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농협 안팎에서 더욱 논란이 거세지기도 했다.

    ◆ 경력

    1971년 농협중앙회에 입사해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1981년 농협중앙회 금융부 금융계획과장으로 일했다.

    1992년 농협중앙회 일본사무소 차장으로 근무했다.

    1996년 농협중앙회 비서실 비서역을 맡았다.

    1997년 농협중앙회 성남시지부장으로 일했다.

    2002년 농협중앙회 의정부 양주시군지부장으로 근무했다.

    2004년 농협중앙회 경기지역본부 신용부본부장으로 승진했다.

    2005년 농협중앙회 수신부장을 맡았다.

    2007년 1월 농협중앙회 금융기획부장으로 일했다.

    2008년 1월 농협중앙회 기획실장으로 근무했다.

    2008년 7월 농협중앙회 신용대표이사에 오른 뒤 2010년 7월 연임에 성공했다.

    2013년 1월 경기신용보증재단 이사장과 미래에셋생명 사외이사를 맡았다.

    2013년 6월부터 2014년까지 농협중앙회 부회장으로 근무했다.

    2017년 12월부터 제13대 전국은행연합회 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 (왼쪽부터)김태영 당시 농협중앙회 신용부문 대표이사와 오연천 당시 서울대학교 총장이 2011년 5월25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에서 농협과 서울대가 함께하는 '하나로 한마당 대축제'에서 물풍선 던지기를 하고 있다.<뉴시스>

    ◆ 학력

    1971년 영남상업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75년 명지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 가족관계

    ◆ 상훈

    1979년 농촌저축유공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1985년 농림수산식품부장관 표창을 수상했다.

    1994년 재경부장관 표창을 받았다.

    2005년 기획재정부장관 표창을 수상했다.

    2010년 은탑산업훈장을 받았다. 햇살론과 새희망홀씨 등 서민금융대출과 지방자치단체와 협력사업, 친환경기업 여신지원 등 노력을 인정받았다.

    ◆ 기타

    ◆ 어록

    “지금 금융산업을 둘러싼 금융환경의 불확실성과 금융산업이 직면한 과제들은 결코 녹록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심제 태산이(人心齊 泰山移)’의 자세로 우리 금융인들이 지혜와 뜻을 함께 모아협력하고 노력하면,우리 금융산업이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2018/01/01, 은행연합회 신년사에서)

    “은행산업은 독자적으로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전략적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블록체인, 빅데이터 같은 핀테크 기술을 능동적으로 활용해 ‘은행권 블록체인 인증시스템’ 등을 만들어 은행의 디지털혁신을 주도하겠다.”(2017/12/01, 은행연합회장 취임식에서)

    “단기적으로 금융지주회사 체제의 안정적인 운영에 집중해야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비은행부문 인수합병(M&A), 글로벌 진출 등 신성장동력 확충, 그룹 자산관리모델 구축 등으로 사업영역을 확대해야 한다.”(2011/07/28, 아시아경제와 인터뷰에서)

    “사업구조 개편은 농협의 새 50년을 준비하는 데 불가피한 선택이다. 후배들에게 멋진 농협의 미래를 물려주기 위해서라도 구조 개편은 빨리 마무리해야 한다.”(2010/07/28, 매일경제와 인터뷰에서)

    “어려울 때일수록 고객을 잘 섬겨야 고객이 농협의 무기가 된다. 나아가 고객에게 원스톱 종합금융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2009/02/09, 농협 사업추진전략회의에서)

    “농협금융지주회사를 설립해 은행사업부문과 금융투자회사, 보험사 등을 자회사로 전환, 그룹내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 하겠다. 카드사와 보험회사를 설립하고 증권, 선물, 자산운용사 등 금융투자회사의 통합을 통해 겸업화에 속도를 내겠다.”(2008/07/14, 농협중앙회 신용부문 대표이사 취임식에서)
  • ◆ 경영활동의 공과

    △은행연합회장 선출
    2017년 12월 전국은행연합회 회장에 선출됐다.

    정치권 영향력이 큰 농협조직에서 일한 경력을 살려 은행업계 의견을 잘 대변할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문재인 대통령과 같은 부신 출신이라는 점과 19대 대선에서 문재인 대선캠프의 금융경제위원회 공동 부위원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던 만큼 문재인 정부와 소통이 원활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됐다.

    은행연합회장 후보에 오를 때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의 추천을 받아 이경섭 NH농협은행장이 추천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 전 위원장과 김태영은 농협금융지주에서 함께 근무한 인연이 있다. 

    2013년 6월 임 전 위원장은 NH농협금융지주 회장에 올랐는데 임 전 위원장이 취임하기 전날 김태영이 농협중앙회 전무이사(부회장)로 복귀했다.

    임 전 위원장이 농협 조직의 특성을 잘 파악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도움을 주면서 친분이 두터워진 것으로 전해졌다. 

    ▲ (왼쪽부터)임종룡 당시 NH농협금융지주 회장과 김태영 당시 농협중앙회 부회장이 2013년 6월11일 서울 중구 농협중앙회 본점에서 열린 임 당시 회장 취임식에서 꽃다발을 주고받은 뒤 악수하고 있다.<뉴시스>

    △농협중앙회 신용부문 대표이사 시절
    2008년 농협중앙회 신용부문 대표이사로 당시 신용부문 기획실장이었던 김태영이 깜짝 발탁됐다.

    지역본부장이나 임원을 거치지 않은 기획실장(부장급)을 신용대표 후보로 발탁한 만큼 농협중앙회에서 파격적 인사라는 평가가 나왔다.

    1급 직원이 대표이사로 승진·발탁된 것은 농협 역사상 두 번째로 매우 드문 일이었다. 1급 직원이 대표이사로 발탁된 기존 사례는 2000년 노의현 당시 농업경제부문 대표이사가 유일했다.

    최원병 당시 농업중앙회 회장이 농협 금융사업의 세대교체와 변화를 위해 김태영을 중용한 것으로 관측됐다.

    김태영은 2008년 신용부문 대표에 오른 뒤 신용부문에서 별탈없이 일을 추진해 외부에서 무난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신용부문대표를 맡아 인맥이나 파벌에 휩쓸리지 않고 온화하고 합리적 리더십을 발휘하면서 농협조직 내부뿐 아니라 금융당국과 소통도 활발하게 이뤄지는 데 기여했다.

    2010년 7월 임기 2년 연임에 성공한 뒤부터 농협금융지주사 설립에 힘썼다.

    농협중앙회는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을 중앙회에서 분리해 각각 지주회사 체제로 만드는 방안을 추진했는데 김태영은 금융과 농협조직의 특성을 두루 알고 있는 경험을 바탕으로 2012년 3월 농협금융지주가 안정적으로 출범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는 평가를 받았다.

    △농협중앙회의 프라이빗뱅킹사업 기반 닦아
    농협중앙회 PB(프라이빗뱅킹)사업의 기반을 닦은 인물로 꼽힌다.

    2005년 수신부장으로 일하면서 농협중앙회 PB사업의 기반이라 할 수 있는 PB영업 전담팀을 만들었고 PB 인력양성 프로그램인 ‘PB전문가 교육과정’도 처음 도입했다. 

    주요 권역별로 PB영업점을 늘려갔고 이를 바탕으로 2007년 4월 농협중앙회 PB센터 1호점인 ‘강남PB센터’를 열었다. 

    또 ‘농협’ 브랜드 대신 새로운 PB브랜드인 ‘로얄로드(Royal Road)’를 내걸어 차별화를 두기도 했다. 

    ▲ 김태영 은행연합회 회장이 2017년 12월1일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관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있다.<은행연합회>

  • ◆ 비전과 과제

    은행들의 낮은 수익성을 개선하기 위해 각종 금융규제를 풀어내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은행의 신탁업 진출과 증권사의 초대형 종합금융투자사업자(IB) 지정과 같은 굵직한 금융정책과 관련해 은행권의 목소리를 적극 대변해 은행권의 먹거리를 지켜내야 한다.

    김태영은 4차산업혁명에 발맞춰 은행권의 디지털 금융기반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정보공유, 클라우드컴퓨팅(인터넷저장시스템)과 관련한 규제의 완화 등이 필요하다면 이를 정부에 적극적으로 건의하기로 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와 유럽중앙은행(ECB) 등 주요국 중앙은행뿐 아니라 한국은행도 기준금리를 점차 올리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은 만큼 가계부채 연착륙을 위해 정부 및 다른 금융권과 협력해야할 필요성도 높다.

    가계부채 규모가 1400조 원을 넘은 만큼 시중금리 상승으로 가계대출의 건전성이 악화되면 고스란히 은행권이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있다.

    금융감독원의 채용비리 검사에서 우리은행뿐 아니라 다른 은행 5곳에서도 채용비리 정황이 포착되면서 논란이 확대되고 있다.

    금감원이 은행연합회를 중심으로 은행권 채용절차 관련 모범사례 규준을 마련하기로 한 만큼 은행권의 신뢰 회복을 위한 계기로 만들기 위해 힘쓸 것으로 보인다.

  • ◆ 평가

    1971년 농협중앙회에 입사한 뒤 2014년까지 40년 가까이 농협에서 일하면서 농협의 특징을 잘 파악하고 있는 ‘농협맨’으로 꼽힌다.

    농협중앙회에 평사원으로 입사해 부회장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로도 유명하다.

    1971년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주산 특기생으로 농협중앙회에 입사한 뒤 1981년 중앙회 금융부 금융계획 과장을 시작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신용사업부문에서 보냈다. 

    농협대학 출신들이 농협중앙회에서 ‘주류’로 꼽혔던 만큼 명지대학교 경영학과 출신인 김태영은 ‘비주류’로 분류됐다.

    ‘간부 등용문’이라 불리는 ‘교육부문’에서 일한 경험이 없다는 점도 불리한 여건이었다. 농협중앙회에서 ‘교육부문’은 고위 임원급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할 핵심요직으로 불린다. 

    하지만 그는 주변의 예상을 깨고 2008년 7월 농협중앙회 신용대표 자리까지 올라 2012년 농협의 신경분리까지 진두지휘하면서 최원병 당시 농협중앙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 유통, 금융 등 여러 업무를 다루고 있는 농협조직의 특성에도 불구하고 신용부문에서 줄곧 일해오면서 농협에서 찾기 쉽지 않은 ‘금융 전문가’로 꼽힌다. 

    직원들은 김태영을 꼼꼼하게 일처리를 하는 ‘워커홀릭’으로 평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유의 친화력을 보여  동종업계는 물론 정·관계에도 인적 네트워크를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태영이 인맥이나 파벌을 만들지 않고 온화하고 합리적 성격을 갖고 있어 조직 안팎에서 신망이 높다는 점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 김태영 당시 농협중앙회 부회장이 2014년 6월18일 서울 중구 충정로 농협중앙회 중회의실에서 열린 농업경쟁력제고를 위한 '소비자패널 구축 업무 협약식'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뉴시스>

    ◆ 사건/사고

    △농협중앙회 전산망 장애
    2011년 4월11일 농협중앙회 금융전산망이 마비되면서 체크카드 거래와 신용카드 현금서비스, 대출 등 금융거래가 이뤄지지 않았다.

    농협중앙회는 여러차례 복구를 완료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잇달아 약속이 지켜지지 못하면서 5월 중순까지 한달여 넘게 전산장애가 나타났다.

    이재관 당시 농협중앙회 전무이사는 금융전산망 마비사태에 책임을 지고 사직서를 제출했다.

    최원병 당시 농협중앙회 회장과 당시 신용부문 대표이사였던 김태영에게도 책임론이 제기됐지만 이들은 전산장애는 IT부문의 문제인 만큼 농협중앙회 회장과 신용부문과 별개의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금감원은 농협중앙회 전산망 마비사태와 관련해 특별검사를 실시하고 농협중앙회의 주요 경영진이었던 최 당시 회장과 김태영, 이재관 당시 전무를 대상으로 감독책임을 조사했다.

    같은해 10월 금감원은 농협중앙회에 기관경고를 내리고 농협중앙회 IT부문 본부장 및 임직원 20여 명에게 정직을 포함한 중징계를 결정했다.

    다만 최 전 회장과 김태영은 징계대상에서 제외됐다. 금감원은 관련 법규를 검토했지만 이들을 징계할 법적 근거를 찾지 못했다.

    당시 금감원 관계자는 “농협중앙회의 IT부문은 신용 부문과 분리 운영되고 농협중앙회장도 법적으로 IT사업부문에 대해선 책임을 지지 않는다”며 “여러 번 검토해봤지만 징계를 내릴 수 없다는 것이 결론”이라고 말했다.

    △NH농협금융지주 회장 경쟁
    2012년 3월 농협금융지주 출범을 앞두고 당시 농협중앙회 임원들은 농협 사업구조개편에 따른 변화와 혁신의 일환으로 모두 사의를 표명했다. 

    신충식 당시 농협중앙회 전무이사(부회장)와 이덕수 당시 농업경제부문 대표이사, 남성우 당시 축산경제부문 대표이사에 이어 당시 신용부문 대표이사였던 김태영도 자리에서 물러났다.

    김태영은 농협금융지주 회장과 농협은행장 가운데 한 자리를 맡을 유력한 후보로 거명됐지만 신충식 전 전무이사에게 자리를 내줬다.

    새로 출범한 농협금융지주 수장자리를 놓고 권태신 전 국무총리실장과 이철휘 전 자산관리공사 사장 등이 회장 후보로 떠오르면서 ‘낙하산 인사’ 논란이 거세지자 신충식 전 전무이사가 지주 회장과 은행장을 겸임해 논란을 잠재웠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당시 신 회장은 같은해 6월 지주 회장에서 물러나고 은행장만 맡겠다고 밝혔다. 신 회장은 “금융지주와 은행은 분리 운영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겸직에 한계가 많다”고 말했다.

    김태영은 다시 농협금융지주 회장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지만 출범 초기 ‘외풍’을 막아줄 외부인사가 회장을 맡아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쏠리면서 멀어졌다.

    같은해 7월 당시 농협금융지주 2대 회장에 신동규 전 은행연합회장이 선임됐다.

    그런데 2013년 5월 신동규 당시 회장이 취임한 지 1년도 지나지 않아 회장에서 물러나면서 김태영은 또 다시 지주 회장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다.

    신동규 당시 회장은 “농협금융은 제갈량이 와도 안 되는 조직”이라는 말을 남기고 스스로 물러났다.

    2013년 6월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이 2대 농협금융지주 회장에 오르자 김태영은 농협중앙회 부회장으로 농협에 복귀한 뒤 2014년 말에 임기 6개월을 남기고 스스로 물러났다.  

    ▲ 김태영 당시 농협중앙회 신용부문 대표이사(오른쪽)가 2012년 1월17일 설 명절을 앞두고 서울 중구 농협중앙회 VIP식당에 교남동 독거노인들을 초청한 ‘사랑의 떡국 나눔’ 봉사활동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어르신들에게 떡국을 대접하고 있다.<뉴시스>

    △NH농협은행 부실책임
    2016년에 NH농협은행 부실을 일으킨 장본인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김태영이 2008년부터 2012년까지 농협중앙회 신용부문 대표이사로 일하면서 추진한 무리한 투자가 수년 후 농협은행의 부실을 불러왔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뒤 시중은행들은 조선업과 관련된 여신규모를 줄이고 있었는데 농협은행은 오히려 조선업 여신을 늘렸다.

    농협은행이 부실하게 된 주요한 요인으로 꼽히는 STX조선해양 여신도 이 때 이뤄졌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기 직전인 2008년 6월 농협중앙회 신용부문의 STX조선해양 RG(지급보증)는 2조1650억원 규모였는데 2010년 4월에 2조2310억 원까지 늘었다.
     
    2016년 농협은행은 STX조선해양이 파산신청을 하면서 대규모 충당금을 적립하게 되면서 큰 피해를 봤다.

    김태영과 강덕수 STX그룹 전 회장이 명지대학교 동문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농협 안팎에서 더욱 논란이 거세지기도 했다.

  • ◆ 경력

    1971년 농협중앙회에 입사해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1981년 농협중앙회 금융부 금융계획과장으로 일했다.

    1992년 농협중앙회 일본사무소 차장으로 근무했다.

    1996년 농협중앙회 비서실 비서역을 맡았다.

    1997년 농협중앙회 성남시지부장으로 일했다.

    2002년 농협중앙회 의정부 양주시군지부장으로 근무했다.

    2004년 농협중앙회 경기지역본부 신용부본부장으로 승진했다.

    2005년 농협중앙회 수신부장을 맡았다.

    2007년 1월 농협중앙회 금융기획부장으로 일했다.

    2008년 1월 농협중앙회 기획실장으로 근무했다.

    2008년 7월 농협중앙회 신용대표이사에 오른 뒤 2010년 7월 연임에 성공했다.

    2013년 1월 경기신용보증재단 이사장과 미래에셋생명 사외이사를 맡았다.

    2013년 6월부터 2014년까지 농협중앙회 부회장으로 근무했다.

    2017년 12월부터 제13대 전국은행연합회 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 (왼쪽부터)김태영 당시 농협중앙회 신용부문 대표이사와 오연천 당시 서울대학교 총장이 2011년 5월25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에서 농협과 서울대가 함께하는 '하나로 한마당 대축제'에서 물풍선 던지기를 하고 있다.<뉴시스>

    ◆ 학력

    1971년 영남상업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75년 명지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 가족관계

    ◆ 상훈

    1979년 농촌저축유공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1985년 농림수산식품부장관 표창을 수상했다.

    1994년 재경부장관 표창을 받았다.

    2005년 기획재정부장관 표창을 수상했다.

    2010년 은탑산업훈장을 받았다. 햇살론과 새희망홀씨 등 서민금융대출과 지방자치단체와 협력사업, 친환경기업 여신지원 등 노력을 인정받았다.

    ◆ 기타

  • ◆ 어록

    “지금 금융산업을 둘러싼 금융환경의 불확실성과 금융산업이 직면한 과제들은 결코 녹록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심제 태산이(人心齊 泰山移)’의 자세로 우리 금융인들이 지혜와 뜻을 함께 모아협력하고 노력하면,우리 금융산업이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2018/01/01, 은행연합회 신년사에서)

    “은행산업은 독자적으로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전략적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블록체인, 빅데이터 같은 핀테크 기술을 능동적으로 활용해 ‘은행권 블록체인 인증시스템’ 등을 만들어 은행의 디지털혁신을 주도하겠다.”(2017/12/01, 은행연합회장 취임식에서)

    “단기적으로 금융지주회사 체제의 안정적인 운영에 집중해야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비은행부문 인수합병(M&A), 글로벌 진출 등 신성장동력 확충, 그룹 자산관리모델 구축 등으로 사업영역을 확대해야 한다.”(2011/07/28, 아시아경제와 인터뷰에서)

    “사업구조 개편은 농협의 새 50년을 준비하는 데 불가피한 선택이다. 후배들에게 멋진 농협의 미래를 물려주기 위해서라도 구조 개편은 빨리 마무리해야 한다.”(2010/07/28, 매일경제와 인터뷰에서)

    “어려울 때일수록 고객을 잘 섬겨야 고객이 농협의 무기가 된다. 나아가 고객에게 원스톱 종합금융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2009/02/09, 농협 사업추진전략회의에서)

    “농협금융지주회사를 설립해 은행사업부문과 금융투자회사, 보험사 등을 자회사로 전환, 그룹내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 하겠다. 카드사와 보험회사를 설립하고 증권, 선물, 자산운용사 등 금융투자회사의 통합을 통해 겸업화에 속도를 내겠다.”(2008/07/14, 농협중앙회 신용부문 대표이사 취임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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