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남, 시스템반도체에 삼성전자의 미래를 걸다

김기남 삼성전자 DS부문 사장.

“지난해 성과에 자만하지 말라.”

김기남 삼성전자 DS부문 사장이 신년사에 담은 핵심 메시지다.  삼성전자 메모리반도체사업이 역대 최고 실적을 거두고 있지만 호황도 시한부라는 위기의식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김 사장은 '메모리반도체 르네상스'에 대비한 선제적 기술개발로 삼성전자 반도체의 급성장을 주도한 주역이다. 이제 시스템반도체에서 새로운 길을 찾고 있다. 

4일 업계에 따르면 김기남 사장은 메모리반도체의 슈퍼사이클(장기호황) 이후를 대비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사업은 최근 들어 걸림돌이 없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2016년부터 시작된 메모리반도체의 ‘초호황기’ 덕을 톡톡히 보면서 3분기에만 반도체사업에서 10조 원에 이르는 영업이익을 냈다. 삼성전자의 득세로 인텔은 반도체업계 왕좌에서 24년 만에 밀려났다.

그러나 이 슈퍼사이클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장담할 수 없다. 

모건스탠리는 최근 43쪽짜리 보고서를 통해 삼성전자의 투자자들에게 메모리반도체시장이 곧 정점을 찍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물론 낸드플래시의 가격 하락 가능성을 그 이유로 든 점을 감안하면 논거가 약하다는 반박도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사업의 몸통은 영업이익 61%가량을 차지하는 D램이고 낸드플래시는 34%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모두 ‘슈퍼사이클’의 종료시기를 둘러싼 논박일 뿐 수년 안에 메모리반도체가 불황을 맞을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김 사장이 직면한 또 다른 위협은 거대자본을 동원한 중국의 반도체 굴기다. 칭화유니그룹, 루이리IC 등 중국회사들은 정부의 지원을 업고 올해 하반기부터 D램과 낸드플래시 시험생산을 시작한다. 수요 측면에서는 메모리반도체 호황이 이어질 수 있어도 단가 측면에서 공급과잉에 따른 하락을 피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김 사장은 시스템반도체를 통해 미래를 도모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매출의 75%가 메모리부문에서 나오지만 시스템반도체는 반도체시장에서 차지하는 규모가 71%에 이르는 데다 메모리반도체보다 훨씬 비싸 부가가치가 높다.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반도체가 데이터를 저장하는 역할을 한다면 시스템반도체는 연산과 정보처리 등 ‘두뇌’ 역할을 한다. 스마트폰과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자율주행 기술 등 4차산업혁명 관련한 분야의 핵심부품이라 향후 성장성도 크다.

김 사장은 일찍부터 시스템반도체에 주목해왔다. 그는 2016년 3월 반도체산업협회 정기총회 당시 "요즘 모든 에너지의 100%를 시스템반도체에 쓰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삼성전자가 확보한 점유율이 5% 수준으로 낮은 만큼 앞으로 잠재력을 기대할 수 있다고 봤다.

지난해 10월 DS부문장에 오른 뒤 처음으로 주재한 최근 글로벌 전략회의에서도 시스템반도체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파운드리(위탁생산)사업부 전략을 짜는 데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메모리반도체 후발주자와 격차를 벌이는 데 주력하면서 시스템반도체 위탁생산에서도 업계 점유율 절반을 차지하는 대만기업 TSMC의 뒤를 이어 2위에 올라서겠다는 것이다. 

시스템반도체는 설계와 위탁생산으로 나뉘는데 김 사장은 시스템LSI사업부장으로 있으면서 지난해 5월 초 위탁생산사업팀을 독립사업부로 격상해 사업 확장의 뜻을 분명히 했다. 6조 원을 들여 위탁생산라인 증설도 추진하고 있다. 설계부문에서도 전문인력을 대대적으로 영입하고 있어 업계는 올해 최소 1천 명 이상의 인력을 충원할 것으로 바라본다.

최근에는 김 사장의 집무실 역시 시스템반도체를 주로 생산하는 기지인 화성캠퍼스로 옮겼다. 화성캠퍼스는 2세대 10나노 공정의 시스템반도체를 양산하고 있다.

올해부터 아우디에 시스템반도체 ‘엑시노스 프로세서’를 공급하기로 하면서 차량용 반도체시장에도 첫발을 내디뎠다. 삼성전자가 시스템반도체를 완성차업체에 납품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인 만큼 앞으로 사업영역 확대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김 사장은 전임자인 권오현 회장과 경영 스타일이 사뭇 다르다고 평가된다. 권 회장이 온화하고 안정적이라면 김 사장은 공격적이고 도전적이다.

이런 김 사장으로의 세대교체는 “반도체 1위를 달성한 지금이 위기의 시작점”이라는 권 회장의 경고와도 맞물린다.

시스템반도체 강화는 말처럼 간단하지 않다. 대만 TSMC가 압도적으로 시장을 지배하면서 후발주자들에게 쉽게 자리를 내주지 않고 있다. 삼성전자가 개발한 최신 10나노 공정의 유일한 고객사 퀄컴까지 TSMC에 뺏길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싸움닭’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리는 김 사장의 과감한 경영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김 사장은 경쟁이 치열한 삼성전자에서 ‘최연소 승진’ 기록을 연달아 썼다. 38세의 나이에 1GB D램개발 공로를 인정받아 최연소로 이사대우 승진을 했다. 51세에 삼성전자 종합기술원장을 맡으며 최연소 사장이 됐다. 

2013년부터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장을 맡다가 2014년에는 시스템LSI사업부장도 겸직하며 삼성전자 메모리반도체와 시스템반도체를 총괄했다. 

“불확실성을 극복하고 삼성전자를 초일류의 반도체회사를 만들겠다.” 김 사장의 취임 일성이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사업에 영업이익 60%를 기대고 있다. 김 사장이 삼성전자의 미래를 짊어졌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비즈니스포스트 고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