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Is ?] 김지완 BNK금융지주 회장

김현정 기자
2017-12-06 08:38:30
1
  • 전체
  • 활동
  • 비전
  • 사건
  • 기타
  • 어록
  • ▲ 김지완 BNK금융지주 회장.


    ◆ 생애

    김지완은 BNK금융지주 회장이다.

    성세환 전 BNK금융지주 회장의 후임으로 주가조작 논란을 겪은 BNK금융지주의 신뢰성을 회복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1946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부산대 무역학과를 졸업한 뒤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세무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한일합섬을 거쳐 부국증권에 입사해 4년 만에 영업이사로 승진했다. 이후 초고속승진을 거듭해 사장으로 선임됐는데 당시 53살의 최연소 증권사 사장으로 이름을 알렸다.

    현대증권(현 KB증권) 사장을 역임하고 하나대투증권(현 하나금융투자) 사장 겸 하나금융지주 부회장을 맡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산상고 동문이며 2012년 문재인 당시 대통령 후보의 대선캠프에 경제고문으로 참여했다.

    원만한 성격의 소유자로서 넓고 탄탄한 인맥을 자랑한다.  

    ◆ 경영활동의 공과

    △올드보이의 귀환
    김지완을 비롯해 최흥식 금융감독원장 등 ‘김승유 사단’으로 꼽히는 인물들이 문재인 정부 출범 뒤 금융권으로 돌아와 이목이 쏠렸다.

    김지완과 최 원장은 특히 오랜 공백에도 불구하고 ‘현역’으로 복귀했다. 김승유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은 한국투자금융지주 고문으로 영입됐다. 

    김승유 전 회장과 경기고 고려대 동문으로 막역한 사이라고 알려진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에게 김 전 회장이 금융권 인사를 추천해주고 있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김승유사단은 김 전 회장이 하나금융지주 회장 시절 연을 맺어 측근으로 꼽히는 인사들을 말한다.

    김지완 선임을 두고 BNK금융그룹이 기존의 인사기조를 깨고 다른 금융회사의 임원을 지냈던 인사를 영입해 BNK금융그룹에 변화를 꾀하려 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기존 은행 중심의 사업모델에서 벗어나 보험업과 카드업, 증권업 등을 다양하게 다뤄야하는 등 빠르게 변화하는 금융환경에 대응하기 위해서 경험이 풍부한 올드보이들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커졌다는 것이다.

    김지완을 비롯한 올드보이들은 금융권에서 오랜 경험을 쌓은 만큼 사업을 추진하는 노하우와 두터운 인맥이 힘을 발휘하리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 BNK금융지주 실적.

    △BNK금융지주 회장 선임
    김지완은 2017년 9월26일 BNK금융지주 회장에 선임됐다. 성세환 전 BNK금융지주 회장이 주가조작 혐의로 구속된 뒤 162일 만이다.

    김지완은 부산은행 본점에서 9월27일 열린 취임식에서 공정성과 투명성 회복을 우선과제로 제시했다. BNK금융지주을 향한 여론이 악화된 것을 의식한 것으로 파악됐다.

    김지완은 “근본으로 돌아가 원칙을 지키는 경영을 위해 각 부문별 전문가로 구성된 ‘BNK 백년대계 위원회’를 꾸려 그룹경영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일 것”이라고 밝혔다.

    인사시스템을 개편하겠다는 의지도 내보였다.

    김지완은 “임원임기를 2년+2년으로 바꾸고 한 직급에 4년 이상 못 있도록 하는 등 순환보직을 원칙으로 한 인사혁신을 실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김지완은 은행에 쏠린 BNK금융그룹의 사업포트폴리오 개편, 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글로벌 진출, 지역금융그룹의 정체성 지키기 등을 BNK그룹의 과제로 제시했다. 

    부산은행과 경남은행의 ‘투뱅크 체제’는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하나대투증권 시절
    김지완은 2008년부터 2012년 6월까지 하나대투증권(현 하나금융투자) 사장 겸 하나금융지주 자산관리부문 부회장을 맡았다. 

    하나대투증권 취임 뒤 조직에 새 바람을 불어 넣으며 단기간 국내 ‘톱5’ 증권사로 육성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나대투증권은 펀드판매와 자산관리에만 치중했으나 수익구조를 개선해 종합 증권사로 발돋움할 기반을 마련했다. 

    하나대투증권의 브로커리지(수수료) 비즈니스도 크게 끌어올렸다. 브로커리지 비즈니스는 증권사 주요 수익인데도 하나대투증권에서 비중이 작았다. 

    하나대투증권은 2009년 회계연도(2009년4월~2010년3월)에는 2500억 원이 넘는 순이익을 거두며 대우증권에 이어 업계 ‘톱2’에 오르기도 했다.

    하나금융지주가 2008년 3월 추진한 매트릭스조직 개편에 따라 김지완은 하나금융지주 자산관리부문 부회장을 겸직하게 됐다. 매트릭스조직 개편이란 금융그룹 내의 은행, 증권사 같은 계열사 법인단위 중심으로 짜여진 조직체계와 별도로 투자은행(IB)이나 자산관리(WM)등 각 부문별로 부문장을 둬 이들이 담당사업부문을 총괄하도록 하는 조직체계를 말한다.

    이를 통해 김지완이 자산관리BU를, 김정태 당시 하나대투증권 사장(현재 하나금융지주 회장)이 하나은행장에 오르면서 개인금융BU를, 김종열 하나은행장이 하나금융지주 부회장으로 코퍼릿센터(기업 총괄 센터)를, 윤교중 하나금융지주 사장이 기업금융BU를 맡게 됐다.

    △현대증권 시절
    김지완은 2003년부터 2007년까지 현대증권(현 KB증권) 사장으로 일했다. 

    영업환경 개선과 함께 내부조직을 재정비하며 현대증권을 국내대표 브로커리지 증권사의 위치에 올려놓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가 사장으로 일한 4년6개월 동안 현대증권의 자기자본은 1조2천억 원에서 2조4천억 원까지 성장했다. 

    김지완은 건강상 이유로 2007년 12월26일 퇴임 의사를 밝혔다.

    △부국증권 시절
    김지완은 1974년 한일합섬이 부국증권을 인수한 것을 계기로 1977년 부국증권으로 옮기면서 바로 과장이 됐다. 1978년에는 부장으로 승진했다.

    증권이 금융시장의 꽃이 될 것이라는 판단 아래 증권사 일을 즐겼다고 한다. 밤낮 가리지 않고 뛰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시장도 도왔다. 1980년대 중반 ‘3저 호황(저환율·저유가·저금리)'을 기반으로 주식시장은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김지완은 기획부장영업부장을 거쳐 36세에 영업이사에 올랐다. 김지완은 한국경제와 인터뷰에서 당시를 회상하며 “신의 영역이 아닌 이상 사람으로서 할 수 있다면 고객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했다. 이는 영업성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한일합섬 시절
    한일합섬은 사실상 첫 직장이었고 김지완은 애사심이 뛰어났다. 한일합섬의 월급은 재계 최고 수준이었고 한 달이 멀다하고 나오는 상여금도 큰 액수였다.

    한일합섬이 1973년 국내 최초로 ‘수출 1억달러’를 돌파하는 등 한국의 산업화를 이끈다는 자부심도 있었다. 

    1973년 한일합섬의 기업공개(IPO)는 그를 증권업으로 이끌었다. 김지완은 상장 후 관리를 위해 한일합섬 주식부에서 근무했다. 1974년 한일합섬이 부국증권을 인수하자 자원해서 인수단에 들어갔고 1977년 부국증권으로 옮겼다. 

    ▲ 김지완 회장이 2017년 9월27일 부산은행 본점에서 열린 BNK금융지주 회장 취임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 비전과 과제

    김지완은 땅에 떨어진 BNK금융지주의 신뢰성을 회복해야 한다.

    BNK금융지주는 계획적으로 주가를 조작한 것으로 검찰수사에서 확인되면서 회사의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다. 

    검찰은 2017년 5월1일 BNK금융지주 유상증자 과정에서 주가조작을 한 혐의로 성세환 전 BNK금융지주 회장과 김일수 전 BNK금융지주 부사장(현 BNK캐피탈 사장)을 구속기소하고 박영봉 전 BNK금융지주 부사장을 포함한 임직원을 불구속기소했다.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금융회사가 자본시장을 교란하는 범죄인 주가조작을 한 만큼 죄질이 더욱 나쁘다는 비판을 받았다. 엘시티 특혜대출 의혹에 이어진 사건이라 금융회사의 이미지는 한층 크게 훼손됐다.

    김지완은 BNK금융그룹의 구조를 정비해 안정하고 디지털 역량을 강화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BNK금융그룹이 2017년을 ‘투뱅크-원프로세스’의 원년으로 삼은 만큼 김지완은 두 은행의 시너지로 더 큰 성장을 도모하는데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두 은행이 하나의 금융지주회사의 계열사로서 동일한 체계를 갖게 된다면 BNK금융지주 입장에서 경영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게 된다. 두 은행 사이의 불필요한 중복기능을 제거하고 유휴인력과 물적자원을 서로 쉽게 전환할 수 있게 돼 비용측면에서도 유리해진다.

    BNK금융그룹은 두 은행의 각 부서별 업무를 표준화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2016년 말 조직개편을 통해 각 그룹의 부서 이름 등 조직 구성을 통일했고 세부적 업무 프로세스도 일치시키고 있다. 업무표준화의 핵심인 IT업무의 표준화를 위해 IT본부도 신설했다.

    김지완은 BNK금융그룹의 디지털 역량을 확보해야 한다. 김지완이 고령의 나이이기 때문에 디지털 시대의 흐름을 쫓아갈 수 있냐는 시장의 의구심을 받고 있는 만큼 부담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BNK금융그룹은 2016년 3월 핀테크금융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모바일뱅크인 ‘썸뱅크’를 출범해 영업력의 돌파구로 삼았다. BNK금융그룹은 썸뱅크의 업그레이드를 계속해서 추진하고 있다. 각 핀테크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BNK핀테크발전협의회’를 여러 차례 열어 인공지능(AI)과 전자문서 시스템 도입 등을 논의하고 있다.

    김지완은 규모보다 저평가된 기업의 가치를 끌어올리는 데 역량을 모으겠다고 밝혔다. 지주의 역할을 확대해 글로벌시장 공략을 강화하고 리스크 관리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도 보였다.

    김지완은 “장부가격이나 실적과 같은 BNK금융의 기업가치와 비교하면 시장의 평가가 매우 낮다”면서 “대손문제가 그 원인인데 정리가 되고 나면 주가가 상승될 수 있는 계기를 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완은 지배구조 등 시스템 리스크를 줄이고 비즈니스 포트폴리오를 재정비해 성장성을 높여 나가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는 “책임과 권한을 분산하는 방향으로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계열사의 자율경영 체제를 확립해 견제와 균형이 조화된 리스크 관리 체계를 정착해 제대로된 평가를 받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김지완은 BNK금융그룹을 스페인의 ‘산탄데르 은행’처럼 세계적 금융기관으로 성장시키고 싶다는 포부도 보였다.

    산텐데르 은행은 스페인 작은 지방은행에서 출발해 많은 인수합병 과정을 거쳐 20년 만에 세계 5위권 초대형 은행으로 성장했다. 하나의 전산과 의사결정 체계를 구축했지만 각자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 독립된 형태로 운영한 것이 성공의 비결이었다. 

    김지완은 이를 롤모델로 삼고 부산은행과 경남은행을 ‘투뱅크 원프로세스’로 끌고 가겠다고 결심한 것으로 관측됐다.

    ▲ 김지완 하나대투증권 사장(왼쪽)이 2008년12월1일 하나IB증권과 통합 기념행사에서 깃발을 흔들고 있다.

    ◆ 평가

    원만한 성격을 지녔다. 덕분에 넓고 탄탄한 인맥을 갖춘 것으로 유명하다.

    김지완이 은행 경험은 부족하지만 CEO로서의 경쟁력은 금융권에서 빠지지 않는다고 평가받는다. 1998년 53세의 나이로 부국증권 사장을 시작으로 현대증권을 거쳐 하나대투증권까지 15년 동안 사장을 역임했다. 지금껏 증권가 최장수 CEO 기록으로 ‘직업이 사장’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주변 사람들을 잘 챙기는 따뜻한 성품을 지녔다. 

    하나금융투자를 떠난 지 몇 년이 흐른 뒤에도 감사한 마음을 전달하며 당시 비서 역할을 했던 직원들을 모아 밥을 사기도 했다.

    2008년 외환위기 당시 하나대투증권 사정이 나빠지자 김지완은 “구조조정을 해 직원들을 내보내고 마음이 좋지 않다”며 사장실 규모를 반으로 줄였다. 회사에서 사장에게 제공하는 복지를 거의 다 스스로 없앴다.

    공과 사의 구분이 확실한 강직한 성품이다. 김지완의 아들이 홍콩에서 근무를 했을 때 아들과 국제전화를 할 일이 계속 생기자 김지완이 회사서 쓰는 통화료에서 국제전화 요금을 떼어내 따로 청구토록 하라고 지시했다.

    김지완은 70세가 넘는 고령이지만 체력이 좋다고 평가받는다. 김지완이 회사를 옮기면 해당 회사 임원이 등산훈련부터 시작한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영업에서 성과를 내려면 체력이 기본이라는 김지완의 철학이 토대가 됐다. 

    그는 증권가 사장 시절 본사 임원과 부서장을 이끌고 불암산 등반으로 시작해 수락산, 도봉산, 북한산까지 40여㎞를 종주하는 무박 2일 등산 행사를 매년 했다. 이 코스를 일컫는 ‘불·수·도·북’이라는 말도 생겼다. 김지완은 늘 등반에 앞장서며 젊은이를 능가하는 체력을 과시했다.

    하나대투증권 시절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출발해 팔당댐까지 이어진 조깅 코스를 임직원들과 정기적으로 함께 뛰는 것도 즐겼다.

    김지완의 집안은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만 해도 경주에서 부유하기로 유명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해 5학년 때 부산으로 도망치듯 이사를 했다고 한다. 아버지의 별세로 가세는 더욱 기울었다. 

    김지완은 가난 속에서 7남매를 키우는 어머니를 보면서 열심히 공부했다고 한다. 

    김지완은 지역명문 부산중학교에서 항상 상위권에 들었지만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부산상고에 진학했다. 전교 60등까지 주어지는 전액 장학금과 생활비 지원을 받기 위해서였다. 

    고등학교 때부터 과외교사를 했고 2학년이 되자 취업반에 들어갔다. 그의 꿈은 '은행원'이었다. 빨리 직장을 잡아 집안에 보탬이 되고 동생들 뒷바라지도 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졸업 전 치른 은행 입사시험에서 낙방했다. 김지완은 훗날 한국경제와 인터뷰에서 “그냥 그렇게 상고를 나와 은행에 갔더라면 아마 지점장 정도 하고 직장 생활을 마쳤을 것”이라며 “시험에 떨어진 게 오히려 저에게 새로운 기회를 열어준 셈”이라고 회상했다.

    김지완은 작은 개인회사에 취직했다. 낮에는 직장에 다니고 저녁에는 사장 자녀 가정교사 노릇을 하면서 대학 입시를 준비했다. 

    김지완은 고교 동창들보다 2년 늦은 1966년 부산대 무역학과에 들어갔다. 대학 친구 12명과 바위처럼 변함없는 우정을 기리자며 '우암회(友巖會)'를 만들었다. 김정길 전 행정자치부 장관과 김정복 전 보훈처 장관 등이 우암회 친구들이다. 

    대학 재학 중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했다. 

    ▲ 김지완 하나대투증권 사장(앞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이 임직원, 고객 등 총 306명과 함께 ‘2010년 불수도북(불암·수락·도봉·북한산) 산행’을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사건사고

    △BNK금융지주 회장 선출 과정 난항
    BNK금융지주 회장을 선출하는 과정이 길고 험난했다.

    성세환 전 BNK금융지주 회장이 구속된 뒤 새 회장이 뽑히기까지 162일이 걸렸다.

    BNK금융지주는 성 전 회장이 형을 확정받지 않은 만큼 임원 해임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봐 새 회장 선임을 미뤘다. 성 전 회장의 보석신청이 기각되면서 BNK금융지주는 새 회장을 선임하는데 뜻을 모으고 선임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박재경 BNK금융지주 회장직무대행과 손교덕 경남은행장, 빈대인 부산은행장 직무대행 3파전으로 가는 듯 했으나 BNK금융지주 회장과 부산은행장을 분리하고 회장후보를 내·외부에서 공모하기로 결정하면서 외부인사 김지완이 등장했다. 회장후보에 무려 16명이 지원했다.

    이후 김지완과 박 직무대행의 2파전으로 흘렀다. 

    박 직무대행을 지지하는 쪽에서는 BNK금융의 내부사정을 잘 알고 있는 만큼 빠르게 혼란을 수습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김지완을 지지하는 임원추천위원회 위원들은 그동안 지속됐던 ‘순혈주의’을 깨고 외부인사를 영입해 그룹 쇄신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김지완에게 낙하산인사라는 꼬리표가 붙은 점은 김지완을 지지하는 위원들에게 부담요소였다.

    김지완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부산상고 동기인데다 2012년 문재인 대통령 대선후보 시절 경제고문으로 캠프에 참여한 이력이 있어 청와대와 관련 있는 낙하산인사라는 논란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했다.

    부산시민단체협의회와 부산경제살리기시민연대 등은 김지완을 낙하산인사로 규정하고 “지역사회의 요구를 받아들여 자격 없는 낙하산을 단절하라”고 주장했다.

    김지완은 2017년 9월26일 BNK금융지주 회장에 선임됐다. 김지완을 반대했던 부산은행 노조는 그가 노조의 제안을 받아들인 데 따라 반대투쟁을 마무리한다고 밝혔다.

    빈대인 부산은행장의 중재로 김지완과 노조가 꾸준히 협의한 데 따른 결과인데 김지완은 노조에게 부산은행의 자율경영과 차기 지배구조의 내부승계, 사원복지 개선 등을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지완은 조직쇄신 방향을 잡기 위해 기존 내부인사를 제외하고 외부출신 인사들과 부산은행에서 은퇴한 금융권 인사들로 ‘투명위원회'를 꾸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주가조작 사건
    BNK금융지주는 계획적으로 주가를 조작한 것으로 검찰수사에서 확인되면서 회사의 이미지와 신뢰성에 큰 타격을 입었다.

    검찰은 2017년 5월1일 BNK금융지주 유상증자 과정에서 주가조작을 한 혐의로 성세환 전 BNK금융지주 회장과 김일수 전 BNK금융지주 부사장(현 BNK캐피탈 사장)을 구속기소하고 박영봉 전 BNK금융지주 부사장을 포함한 임직원을 불구속기소했다.

    성 전 회장은 2017년 8월22일 법원의 보석 결정으로 일단 석방된 상태다. 성 전 회장은 8월16일 BNK금융지주 회장과 부산은행장 사임서를 제출했다.

    주가 시세조작에 가담한 BNK금융지주와 부산은행, BNK투자증권 등 법인 3곳도 약식재판에 넘겼다. 경남은행을 제외한 BNK금융지주를 비롯해 핵심계열사들이 모두 관련한 혐의에 연루된 셈이다.

    △엘시티 특혜대출 의혹
    부산 해운대 엘시티(LCT) 사업의 핵심 인물 이영복 회장이 검찰에 구속되면서 BNK금융그룹의 이름도 도마에 올랐다. 

    BNK금융그룹은 엘시티사업에 프로젝트 파이낸생(PF)으로 수백억 원을 대출해줬는데 금융당국은 이 과정에서 불법이나 특혜가 있었는지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프로젝트 파이낸싱은 금융기관에서 건설 등 대규모 프로젝트의 미래 수익을 담보로 자금을 미리 빌려주는 투자금융(IB)사업을 말한다.

    검찰은 2017년 1월4일 이장호 전 부산은행장의 자택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며 수사범위를 BNK금융그룹의 특혜대출의혹으로 확대했다.

    이 전 부산은행장은 부산은행장과 BNK금융지주 회장, 부산은행 고문을 지냈다.

    이 전 행장은 2014년 10월 부산은행이 엘시티에 3800억 원의 긴급자금대출(브릿지론)과 1조7800억 원 규모의 사업담보(PF)대출을 약정할 때 부산은행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 전 행장은 2017년 4월14일 열린 첫 재판에서 의혹을 부인했다. 

    ▲ 김지완 현대증권 사장(왼쪽)이 2007년 12월13일 기아자동차와 현대증권 공동마케팅 조인식에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 경력

    1969년 한일합섬에 입사했다.

    1977년 부국증권으로 자리를 옮겼다. 

    1981년 4년 만에 부국증권 영업이사로 승진한 뒤 상무, 전무 등을 거쳤다. 

    1998년 53세 나이로 부국증권 사장에 올라 당시 최연소 증권사 사장으로 이름을 알렸다.

    2003년부터 2007년까지 현대증권(현 KB증권) 사장으로 일했다. 

    2008년부터 하나대투증권(현 하나금융투자) 사장 겸 하나금융지주 자산관리부문 부회장을 맡았다. 

    2012년 6월 자리에서 물러난 뒤 하나금융지주 상임고문을 맡았다.

    2016년 8월부터 인산교육재단 감사로 일했다.

    2017년 9월 BNK금융지주 회장에 올랐다.

    ◆ 학력

    1964년 부산상고를 졸업했다. 

    1970년 부산대학교 무역학과를 졸업했다.

    이성태 전 한국은행 총재와 신헌철 SK에너지 부회장이 고등학교 동창이고 김정길 전 행정자치부 장관과 김정복 전 보훈처 장관 등이 대학교 동창이다. 

    2002년 홍익대학교에서 세무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 가족관계

    ◆ 상훈

    ◆ 기타

    ◆ 어록

    “빌게이츠가 말한 ‘앞으로 금융산업은 금융은 필요하지만 은행은 사라질 것(Banking is necessary, Banks are not)’ 이라는 말에 공감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엔 절대적인 것은 없다” “금융업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자산은 고객과 직원으로 직원들의 실력과 건강, 고객의 신뢰 등이다. 금융은 사람이다.”(2017/10/24, 부산시 남구 문현동 부산은행 본점 2층 대강당에서 ‘김지완 회장 CEO특강’중에)

    “근본으로 돌아가 원칙을 지키는 경영을 위해 각 부문별 전문가로 구성된 ‘BNK 백년대계 위원회’를 꾸려 그룹경영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일 것이다.”(2017/09/28, BNK금융지주 회장 취임식에서)

    “떠날 생각을 하니 만감이 교차한다. 젊은 신임 사장들이 대거 등장하는 상황에서 이제는 후배들에게 자리를 물려줄 때가 됐다.” “부국증권 시절부터 오랫동안 함께 했던 고객들이 많이 있다. 앞으로 38년 동안 오랜 고객이었던 사람들을 챙겨 볼 예정이다.” “그동안 매주 금요일 하던 아침 달리기는 종강이 아닌 휴강에 들어갔다.” “증권업계가 상당히 어려운 상황에 있는데 앞으로 상황이 좀 더 나아졌으면 한다.”(2012/06/22, 하나대투증권 퇴임식에서)

    “부국증권에서 하고 싶었던 증권업을 시작했다. 신의 영역이 아닌 이상 사람으로서 할 수 있다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했다. 고객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했다. 이는 영업성과로 이어졌다.”(2010/07/20, 한국경제와 인터뷰에서)

    “유럽발 재정위기가 가닥을 잡아가면서 금융시장이 빠르게 안정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오히려 주식시장에 대한 긍정적 접근이 필요한 시기라고 판단된다. 특히 인구구조가 급격히 고령화되고 있고, 저금리현상 또한 상당기간 지속될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장기적으로 유동자금이 부동산이나 예금자산에서 투자자산을 중심으로 재편될 수 있다는 것을 유의해야 한다.” (2010/06/25, 한국경제와의 인터뷰에서)
  • ◆ 경영활동의 공과

    △올드보이의 귀환
    김지완을 비롯해 최흥식 금융감독원장 등 ‘김승유 사단’으로 꼽히는 인물들이 문재인 정부 출범 뒤 금융권으로 돌아와 이목이 쏠렸다.

    김지완과 최 원장은 특히 오랜 공백에도 불구하고 ‘현역’으로 복귀했다. 김승유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은 한국투자금융지주 고문으로 영입됐다. 

    김승유 전 회장과 경기고 고려대 동문으로 막역한 사이라고 알려진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에게 김 전 회장이 금융권 인사를 추천해주고 있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김승유사단은 김 전 회장이 하나금융지주 회장 시절 연을 맺어 측근으로 꼽히는 인사들을 말한다.

    김지완 선임을 두고 BNK금융그룹이 기존의 인사기조를 깨고 다른 금융회사의 임원을 지냈던 인사를 영입해 BNK금융그룹에 변화를 꾀하려 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기존 은행 중심의 사업모델에서 벗어나 보험업과 카드업, 증권업 등을 다양하게 다뤄야하는 등 빠르게 변화하는 금융환경에 대응하기 위해서 경험이 풍부한 올드보이들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커졌다는 것이다.

    김지완을 비롯한 올드보이들은 금융권에서 오랜 경험을 쌓은 만큼 사업을 추진하는 노하우와 두터운 인맥이 힘을 발휘하리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 BNK금융지주 실적.

    △BNK금융지주 회장 선임
    김지완은 2017년 9월26일 BNK금융지주 회장에 선임됐다. 성세환 전 BNK금융지주 회장이 주가조작 혐의로 구속된 뒤 162일 만이다.

    김지완은 부산은행 본점에서 9월27일 열린 취임식에서 공정성과 투명성 회복을 우선과제로 제시했다. BNK금융지주을 향한 여론이 악화된 것을 의식한 것으로 파악됐다.

    김지완은 “근본으로 돌아가 원칙을 지키는 경영을 위해 각 부문별 전문가로 구성된 ‘BNK 백년대계 위원회’를 꾸려 그룹경영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일 것”이라고 밝혔다.

    인사시스템을 개편하겠다는 의지도 내보였다.

    김지완은 “임원임기를 2년+2년으로 바꾸고 한 직급에 4년 이상 못 있도록 하는 등 순환보직을 원칙으로 한 인사혁신을 실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김지완은 은행에 쏠린 BNK금융그룹의 사업포트폴리오 개편, 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글로벌 진출, 지역금융그룹의 정체성 지키기 등을 BNK그룹의 과제로 제시했다. 

    부산은행과 경남은행의 ‘투뱅크 체제’는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하나대투증권 시절
    김지완은 2008년부터 2012년 6월까지 하나대투증권(현 하나금융투자) 사장 겸 하나금융지주 자산관리부문 부회장을 맡았다. 

    하나대투증권 취임 뒤 조직에 새 바람을 불어 넣으며 단기간 국내 ‘톱5’ 증권사로 육성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나대투증권은 펀드판매와 자산관리에만 치중했으나 수익구조를 개선해 종합 증권사로 발돋움할 기반을 마련했다. 

    하나대투증권의 브로커리지(수수료) 비즈니스도 크게 끌어올렸다. 브로커리지 비즈니스는 증권사 주요 수익인데도 하나대투증권에서 비중이 작았다. 

    하나대투증권은 2009년 회계연도(2009년4월~2010년3월)에는 2500억 원이 넘는 순이익을 거두며 대우증권에 이어 업계 ‘톱2’에 오르기도 했다.

    하나금융지주가 2008년 3월 추진한 매트릭스조직 개편에 따라 김지완은 하나금융지주 자산관리부문 부회장을 겸직하게 됐다. 매트릭스조직 개편이란 금융그룹 내의 은행, 증권사 같은 계열사 법인단위 중심으로 짜여진 조직체계와 별도로 투자은행(IB)이나 자산관리(WM)등 각 부문별로 부문장을 둬 이들이 담당사업부문을 총괄하도록 하는 조직체계를 말한다.

    이를 통해 김지완이 자산관리BU를, 김정태 당시 하나대투증권 사장(현재 하나금융지주 회장)이 하나은행장에 오르면서 개인금융BU를, 김종열 하나은행장이 하나금융지주 부회장으로 코퍼릿센터(기업 총괄 센터)를, 윤교중 하나금융지주 사장이 기업금융BU를 맡게 됐다.

    △현대증권 시절
    김지완은 2003년부터 2007년까지 현대증권(현 KB증권) 사장으로 일했다. 

    영업환경 개선과 함께 내부조직을 재정비하며 현대증권을 국내대표 브로커리지 증권사의 위치에 올려놓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가 사장으로 일한 4년6개월 동안 현대증권의 자기자본은 1조2천억 원에서 2조4천억 원까지 성장했다. 

    김지완은 건강상 이유로 2007년 12월26일 퇴임 의사를 밝혔다.

    △부국증권 시절
    김지완은 1974년 한일합섬이 부국증권을 인수한 것을 계기로 1977년 부국증권으로 옮기면서 바로 과장이 됐다. 1978년에는 부장으로 승진했다.

    증권이 금융시장의 꽃이 될 것이라는 판단 아래 증권사 일을 즐겼다고 한다. 밤낮 가리지 않고 뛰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시장도 도왔다. 1980년대 중반 ‘3저 호황(저환율·저유가·저금리)'을 기반으로 주식시장은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김지완은 기획부장영업부장을 거쳐 36세에 영업이사에 올랐다. 김지완은 한국경제와 인터뷰에서 당시를 회상하며 “신의 영역이 아닌 이상 사람으로서 할 수 있다면 고객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했다. 이는 영업성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한일합섬 시절
    한일합섬은 사실상 첫 직장이었고 김지완은 애사심이 뛰어났다. 한일합섬의 월급은 재계 최고 수준이었고 한 달이 멀다하고 나오는 상여금도 큰 액수였다.

    한일합섬이 1973년 국내 최초로 ‘수출 1억달러’를 돌파하는 등 한국의 산업화를 이끈다는 자부심도 있었다. 

    1973년 한일합섬의 기업공개(IPO)는 그를 증권업으로 이끌었다. 김지완은 상장 후 관리를 위해 한일합섬 주식부에서 근무했다. 1974년 한일합섬이 부국증권을 인수하자 자원해서 인수단에 들어갔고 1977년 부국증권으로 옮겼다. 

    ▲ 김지완 회장이 2017년 9월27일 부산은행 본점에서 열린 BNK금융지주 회장 취임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 ◆ 비전과 과제

    김지완은 땅에 떨어진 BNK금융지주의 신뢰성을 회복해야 한다.

    BNK금융지주는 계획적으로 주가를 조작한 것으로 검찰수사에서 확인되면서 회사의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다. 

    검찰은 2017년 5월1일 BNK금융지주 유상증자 과정에서 주가조작을 한 혐의로 성세환 전 BNK금융지주 회장과 김일수 전 BNK금융지주 부사장(현 BNK캐피탈 사장)을 구속기소하고 박영봉 전 BNK금융지주 부사장을 포함한 임직원을 불구속기소했다.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금융회사가 자본시장을 교란하는 범죄인 주가조작을 한 만큼 죄질이 더욱 나쁘다는 비판을 받았다. 엘시티 특혜대출 의혹에 이어진 사건이라 금융회사의 이미지는 한층 크게 훼손됐다.

    김지완은 BNK금융그룹의 구조를 정비해 안정하고 디지털 역량을 강화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BNK금융그룹이 2017년을 ‘투뱅크-원프로세스’의 원년으로 삼은 만큼 김지완은 두 은행의 시너지로 더 큰 성장을 도모하는데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두 은행이 하나의 금융지주회사의 계열사로서 동일한 체계를 갖게 된다면 BNK금융지주 입장에서 경영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게 된다. 두 은행 사이의 불필요한 중복기능을 제거하고 유휴인력과 물적자원을 서로 쉽게 전환할 수 있게 돼 비용측면에서도 유리해진다.

    BNK금융그룹은 두 은행의 각 부서별 업무를 표준화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2016년 말 조직개편을 통해 각 그룹의 부서 이름 등 조직 구성을 통일했고 세부적 업무 프로세스도 일치시키고 있다. 업무표준화의 핵심인 IT업무의 표준화를 위해 IT본부도 신설했다.

    김지완은 BNK금융그룹의 디지털 역량을 확보해야 한다. 김지완이 고령의 나이이기 때문에 디지털 시대의 흐름을 쫓아갈 수 있냐는 시장의 의구심을 받고 있는 만큼 부담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BNK금융그룹은 2016년 3월 핀테크금융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모바일뱅크인 ‘썸뱅크’를 출범해 영업력의 돌파구로 삼았다. BNK금융그룹은 썸뱅크의 업그레이드를 계속해서 추진하고 있다. 각 핀테크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BNK핀테크발전협의회’를 여러 차례 열어 인공지능(AI)과 전자문서 시스템 도입 등을 논의하고 있다.

    김지완은 규모보다 저평가된 기업의 가치를 끌어올리는 데 역량을 모으겠다고 밝혔다. 지주의 역할을 확대해 글로벌시장 공략을 강화하고 리스크 관리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도 보였다.

    김지완은 “장부가격이나 실적과 같은 BNK금융의 기업가치와 비교하면 시장의 평가가 매우 낮다”면서 “대손문제가 그 원인인데 정리가 되고 나면 주가가 상승될 수 있는 계기를 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완은 지배구조 등 시스템 리스크를 줄이고 비즈니스 포트폴리오를 재정비해 성장성을 높여 나가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는 “책임과 권한을 분산하는 방향으로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계열사의 자율경영 체제를 확립해 견제와 균형이 조화된 리스크 관리 체계를 정착해 제대로된 평가를 받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김지완은 BNK금융그룹을 스페인의 ‘산탄데르 은행’처럼 세계적 금융기관으로 성장시키고 싶다는 포부도 보였다.

    산텐데르 은행은 스페인 작은 지방은행에서 출발해 많은 인수합병 과정을 거쳐 20년 만에 세계 5위권 초대형 은행으로 성장했다. 하나의 전산과 의사결정 체계를 구축했지만 각자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 독립된 형태로 운영한 것이 성공의 비결이었다. 

    김지완은 이를 롤모델로 삼고 부산은행과 경남은행을 ‘투뱅크 원프로세스’로 끌고 가겠다고 결심한 것으로 관측됐다.

    ▲ 김지완 하나대투증권 사장(왼쪽)이 2008년12월1일 하나IB증권과 통합 기념행사에서 깃발을 흔들고 있다.

  • ◆ 평가

    원만한 성격을 지녔다. 덕분에 넓고 탄탄한 인맥을 갖춘 것으로 유명하다.

    김지완이 은행 경험은 부족하지만 CEO로서의 경쟁력은 금융권에서 빠지지 않는다고 평가받는다. 1998년 53세의 나이로 부국증권 사장을 시작으로 현대증권을 거쳐 하나대투증권까지 15년 동안 사장을 역임했다. 지금껏 증권가 최장수 CEO 기록으로 ‘직업이 사장’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주변 사람들을 잘 챙기는 따뜻한 성품을 지녔다. 

    하나금융투자를 떠난 지 몇 년이 흐른 뒤에도 감사한 마음을 전달하며 당시 비서 역할을 했던 직원들을 모아 밥을 사기도 했다.

    2008년 외환위기 당시 하나대투증권 사정이 나빠지자 김지완은 “구조조정을 해 직원들을 내보내고 마음이 좋지 않다”며 사장실 규모를 반으로 줄였다. 회사에서 사장에게 제공하는 복지를 거의 다 스스로 없앴다.

    공과 사의 구분이 확실한 강직한 성품이다. 김지완의 아들이 홍콩에서 근무를 했을 때 아들과 국제전화를 할 일이 계속 생기자 김지완이 회사서 쓰는 통화료에서 국제전화 요금을 떼어내 따로 청구토록 하라고 지시했다.

    김지완은 70세가 넘는 고령이지만 체력이 좋다고 평가받는다. 김지완이 회사를 옮기면 해당 회사 임원이 등산훈련부터 시작한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영업에서 성과를 내려면 체력이 기본이라는 김지완의 철학이 토대가 됐다. 

    그는 증권가 사장 시절 본사 임원과 부서장을 이끌고 불암산 등반으로 시작해 수락산, 도봉산, 북한산까지 40여㎞를 종주하는 무박 2일 등산 행사를 매년 했다. 이 코스를 일컫는 ‘불·수·도·북’이라는 말도 생겼다. 김지완은 늘 등반에 앞장서며 젊은이를 능가하는 체력을 과시했다.

    하나대투증권 시절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출발해 팔당댐까지 이어진 조깅 코스를 임직원들과 정기적으로 함께 뛰는 것도 즐겼다.

    김지완의 집안은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만 해도 경주에서 부유하기로 유명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해 5학년 때 부산으로 도망치듯 이사를 했다고 한다. 아버지의 별세로 가세는 더욱 기울었다. 

    김지완은 가난 속에서 7남매를 키우는 어머니를 보면서 열심히 공부했다고 한다. 

    김지완은 지역명문 부산중학교에서 항상 상위권에 들었지만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부산상고에 진학했다. 전교 60등까지 주어지는 전액 장학금과 생활비 지원을 받기 위해서였다. 

    고등학교 때부터 과외교사를 했고 2학년이 되자 취업반에 들어갔다. 그의 꿈은 '은행원'이었다. 빨리 직장을 잡아 집안에 보탬이 되고 동생들 뒷바라지도 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졸업 전 치른 은행 입사시험에서 낙방했다. 김지완은 훗날 한국경제와 인터뷰에서 “그냥 그렇게 상고를 나와 은행에 갔더라면 아마 지점장 정도 하고 직장 생활을 마쳤을 것”이라며 “시험에 떨어진 게 오히려 저에게 새로운 기회를 열어준 셈”이라고 회상했다.

    김지완은 작은 개인회사에 취직했다. 낮에는 직장에 다니고 저녁에는 사장 자녀 가정교사 노릇을 하면서 대학 입시를 준비했다. 

    김지완은 고교 동창들보다 2년 늦은 1966년 부산대 무역학과에 들어갔다. 대학 친구 12명과 바위처럼 변함없는 우정을 기리자며 '우암회(友巖會)'를 만들었다. 김정길 전 행정자치부 장관과 김정복 전 보훈처 장관 등이 우암회 친구들이다. 

    대학 재학 중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했다. 

    ▲ 김지완 하나대투증권 사장(앞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이 임직원, 고객 등 총 306명과 함께 ‘2010년 불수도북(불암·수락·도봉·북한산) 산행’을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사건사고

    △BNK금융지주 회장 선출 과정 난항
    BNK금융지주 회장을 선출하는 과정이 길고 험난했다.

    성세환 전 BNK금융지주 회장이 구속된 뒤 새 회장이 뽑히기까지 162일이 걸렸다.

    BNK금융지주는 성 전 회장이 형을 확정받지 않은 만큼 임원 해임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봐 새 회장 선임을 미뤘다. 성 전 회장의 보석신청이 기각되면서 BNK금융지주는 새 회장을 선임하는데 뜻을 모으고 선임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박재경 BNK금융지주 회장직무대행과 손교덕 경남은행장, 빈대인 부산은행장 직무대행 3파전으로 가는 듯 했으나 BNK금융지주 회장과 부산은행장을 분리하고 회장후보를 내·외부에서 공모하기로 결정하면서 외부인사 김지완이 등장했다. 회장후보에 무려 16명이 지원했다.

    이후 김지완과 박 직무대행의 2파전으로 흘렀다. 

    박 직무대행을 지지하는 쪽에서는 BNK금융의 내부사정을 잘 알고 있는 만큼 빠르게 혼란을 수습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김지완을 지지하는 임원추천위원회 위원들은 그동안 지속됐던 ‘순혈주의’을 깨고 외부인사를 영입해 그룹 쇄신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김지완에게 낙하산인사라는 꼬리표가 붙은 점은 김지완을 지지하는 위원들에게 부담요소였다.

    김지완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부산상고 동기인데다 2012년 문재인 대통령 대선후보 시절 경제고문으로 캠프에 참여한 이력이 있어 청와대와 관련 있는 낙하산인사라는 논란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했다.

    부산시민단체협의회와 부산경제살리기시민연대 등은 김지완을 낙하산인사로 규정하고 “지역사회의 요구를 받아들여 자격 없는 낙하산을 단절하라”고 주장했다.

    김지완은 2017년 9월26일 BNK금융지주 회장에 선임됐다. 김지완을 반대했던 부산은행 노조는 그가 노조의 제안을 받아들인 데 따라 반대투쟁을 마무리한다고 밝혔다.

    빈대인 부산은행장의 중재로 김지완과 노조가 꾸준히 협의한 데 따른 결과인데 김지완은 노조에게 부산은행의 자율경영과 차기 지배구조의 내부승계, 사원복지 개선 등을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지완은 조직쇄신 방향을 잡기 위해 기존 내부인사를 제외하고 외부출신 인사들과 부산은행에서 은퇴한 금융권 인사들로 ‘투명위원회'를 꾸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주가조작 사건
    BNK금융지주는 계획적으로 주가를 조작한 것으로 검찰수사에서 확인되면서 회사의 이미지와 신뢰성에 큰 타격을 입었다.

    검찰은 2017년 5월1일 BNK금융지주 유상증자 과정에서 주가조작을 한 혐의로 성세환 전 BNK금융지주 회장과 김일수 전 BNK금융지주 부사장(현 BNK캐피탈 사장)을 구속기소하고 박영봉 전 BNK금융지주 부사장을 포함한 임직원을 불구속기소했다.

    성 전 회장은 2017년 8월22일 법원의 보석 결정으로 일단 석방된 상태다. 성 전 회장은 8월16일 BNK금융지주 회장과 부산은행장 사임서를 제출했다.

    주가 시세조작에 가담한 BNK금융지주와 부산은행, BNK투자증권 등 법인 3곳도 약식재판에 넘겼다. 경남은행을 제외한 BNK금융지주를 비롯해 핵심계열사들이 모두 관련한 혐의에 연루된 셈이다.

    △엘시티 특혜대출 의혹
    부산 해운대 엘시티(LCT) 사업의 핵심 인물 이영복 회장이 검찰에 구속되면서 BNK금융그룹의 이름도 도마에 올랐다. 

    BNK금융그룹은 엘시티사업에 프로젝트 파이낸생(PF)으로 수백억 원을 대출해줬는데 금융당국은 이 과정에서 불법이나 특혜가 있었는지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프로젝트 파이낸싱은 금융기관에서 건설 등 대규모 프로젝트의 미래 수익을 담보로 자금을 미리 빌려주는 투자금융(IB)사업을 말한다.

    검찰은 2017년 1월4일 이장호 전 부산은행장의 자택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며 수사범위를 BNK금융그룹의 특혜대출의혹으로 확대했다.

    이 전 부산은행장은 부산은행장과 BNK금융지주 회장, 부산은행 고문을 지냈다.

    이 전 행장은 2014년 10월 부산은행이 엘시티에 3800억 원의 긴급자금대출(브릿지론)과 1조7800억 원 규모의 사업담보(PF)대출을 약정할 때 부산은행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 전 행장은 2017년 4월14일 열린 첫 재판에서 의혹을 부인했다. 

    ▲ 김지완 현대증권 사장(왼쪽)이 2007년 12월13일 기아자동차와 현대증권 공동마케팅 조인식에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 ◆ 경력

    1969년 한일합섬에 입사했다.

    1977년 부국증권으로 자리를 옮겼다. 

    1981년 4년 만에 부국증권 영업이사로 승진한 뒤 상무, 전무 등을 거쳤다. 

    1998년 53세 나이로 부국증권 사장에 올라 당시 최연소 증권사 사장으로 이름을 알렸다.

    2003년부터 2007년까지 현대증권(현 KB증권) 사장으로 일했다. 

    2008년부터 하나대투증권(현 하나금융투자) 사장 겸 하나금융지주 자산관리부문 부회장을 맡았다. 

    2012년 6월 자리에서 물러난 뒤 하나금융지주 상임고문을 맡았다.

    2016년 8월부터 인산교육재단 감사로 일했다.

    2017년 9월 BNK금융지주 회장에 올랐다.

    ◆ 학력

    1964년 부산상고를 졸업했다. 

    1970년 부산대학교 무역학과를 졸업했다.

    이성태 전 한국은행 총재와 신헌철 SK에너지 부회장이 고등학교 동창이고 김정길 전 행정자치부 장관과 김정복 전 보훈처 장관 등이 대학교 동창이다. 

    2002년 홍익대학교에서 세무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 가족관계

    ◆ 상훈

    ◆ 기타

  • ◆ 어록

    “빌게이츠가 말한 ‘앞으로 금융산업은 금융은 필요하지만 은행은 사라질 것(Banking is necessary, Banks are not)’ 이라는 말에 공감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엔 절대적인 것은 없다” “금융업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자산은 고객과 직원으로 직원들의 실력과 건강, 고객의 신뢰 등이다. 금융은 사람이다.”(2017/10/24, 부산시 남구 문현동 부산은행 본점 2층 대강당에서 ‘김지완 회장 CEO특강’중에)

    “근본으로 돌아가 원칙을 지키는 경영을 위해 각 부문별 전문가로 구성된 ‘BNK 백년대계 위원회’를 꾸려 그룹경영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일 것이다.”(2017/09/28, BNK금융지주 회장 취임식에서)

    “떠날 생각을 하니 만감이 교차한다. 젊은 신임 사장들이 대거 등장하는 상황에서 이제는 후배들에게 자리를 물려줄 때가 됐다.” “부국증권 시절부터 오랫동안 함께 했던 고객들이 많이 있다. 앞으로 38년 동안 오랜 고객이었던 사람들을 챙겨 볼 예정이다.” “그동안 매주 금요일 하던 아침 달리기는 종강이 아닌 휴강에 들어갔다.” “증권업계가 상당히 어려운 상황에 있는데 앞으로 상황이 좀 더 나아졌으면 한다.”(2012/06/22, 하나대투증권 퇴임식에서)

    “부국증권에서 하고 싶었던 증권업을 시작했다. 신의 영역이 아닌 이상 사람으로서 할 수 있다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했다. 고객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했다. 이는 영업성과로 이어졌다.”(2010/07/20, 한국경제와 인터뷰에서)

    “유럽발 재정위기가 가닥을 잡아가면서 금융시장이 빠르게 안정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오히려 주식시장에 대한 긍정적 접근이 필요한 시기라고 판단된다. 특히 인구구조가 급격히 고령화되고 있고, 저금리현상 또한 상당기간 지속될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장기적으로 유동자금이 부동산이나 예금자산에서 투자자산을 중심으로 재편될 수 있다는 것을 유의해야 한다.” (2010/06/25, 한국경제와의 인터뷰에서)
v

이 기사는 꼭!

  1. 문재인 지지율 51.8%로 대폭 상승, 반일 여론 확산되며 지지층 결집
  2. [CEO톡톡] 김상조, 이재용의 삼성 컨트롤타워 부활 위한 멍석 까나
  3. [Who Is ?]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총괄 수석부회장
  4. 문재인 “국군 통수권자로서 군 기강에 책임감 느끼고 있다”
  5. 황윤철, 경남은행 경영전략회의에서 "원 팀으로 위기극복해야"
  6. 언론노조, 민영방송 공공성 토론회에서 "SBS는 미디어 사익추구모델"
  7. 롯데제과 직원, “부당해고 당했다”며 본사건물에서 투신소동 벌여
  8. 김용익 “건강보험 자금운용을 수익성 높이는 방향으로 혁신”
  9. 포스코케미칼, 소재 국산화 움직임에 배터리 소재사업 확대기회 잡아
  10. [오늘Who] 신동빈, '반롯데' 정서 무서움 절감하고 '공감'을 내걸다
TOP

인기기사

  1. 1 '3대 연예기획사' 판 깨지나,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몸집키우기 본격화
  2. 2 현대차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는 토요타 렉서스에 얼마나 다가섰나
  3. 3 [Who Is ?]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총괄 수석부회장
  4. 4 김범년, 한전KPS 경영평가 2년째 D등급에서 탈출구 찾기 쉽지않아
  5. 5 삼성전자, 갤럭시노트10으로 5G스마트폰 절대강자 과시한다

임원 전문직 경력직 채용정보

AD

이 기사의 댓글 1개

어울삶 | (121.184.221.209)   2017-12-06 15:26:55
미친 하나것들...ㄲㄲㄲ
그래서...???
망하는 소리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