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Who Is ?] 정종섭 전 행정자치부 장관
정종섭 전 행정자치부 장관.



정종섭은 1957년 6월 16일 경상북도 경주에서 태어났다.

1981년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1982년 제24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그뒤 1985년 경희대학교 대학원 법학과 석사와 1989년 연세대학교 대학원 법학과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정종섭은 개혁 성향의 헌법학자로 꼽힌다. 유신시대에 법대를 다니면서 헌법의 정당성에 대해 고민을 많이 토로했다.

당시 젊은 학자였던 허영으로부터 동화적 통합이론을 배웠다. 스승의 이론에 법사회학, 실천법학, 참여민주주의 등을 가미해 민주주를 제도화하는 데 힘썼다. 또 국회에서 국가적 차원의 중립적 ‘헌법연구위원회’를 설치해 운영할 필요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사법고시에 합격한 뒤 헌법재판소 연구관을 지냈다. 그뒤 건국대학교 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 교수로 재직했다. 2010년 서울대 법학대학장 겸 법학전문대학원장으로 선출됐다.

2014년 7월부터 강병규 전 장관에 이어 제3대 안전행정부 장관으로 재직하고 있다.

2014년 11월 안전행정부의 안전과 인사,조직 기능이 분리돼 국무총리 직속의 국민안전처로 넘어가면서 이 외의 정부의전과 서무, 정부조직관리, 지방자치제도 등의 남은 기능만을 담당하게 됐다. 안전행정부의 기능이 바뀌면서 이름도 행정자치부로 바뀌었다.

정종섭도 2014년 11월부터 행정자치부 장관을 맡아 2016년 1월 퇴임했다.

경영활동의 공과
비전과 과제/평가
◆ 평가

정종섭은 보수적 헌법학자로 잘 알려져 있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타파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자신이 쓴 '대한민국 헌법이야기'에서 제주4.3항쟁과 관련해 "이러한 공산주의 세력의 무장봉기는 전국적으로 극렬하게 전개되어 전국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부쳤다"고 기술해 논란이 일었다. 그는 취임 이후 제주도를 찾아 "제주4.3항쟁 정신은 국민통합의 정신"이라며 "제주도민들이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면 참으로 죄송하다"고 해명했다.

그는 '역사교과서 좌우논쟁'을 일으킨 교학사 교과서 집필진이 주도하는 학술단체 한국현대사학회의 이사를 맡기도 했다.

장관이 되기 전 주요 일간지에서 칼럼리스트로 활약했다. 당시 역사나 정치와 관련해서 극단적 보수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군복무시절 박사과정에 재학했고 시간강사로 활동하기도 해 장관 청문회에서 군복무 특혜와 관련해 지탄의 대상이 됐다. 학술 논문 이중게재 논란과 부동산 투기의혹에도 휩싸였다.

세월호 사고 당시 국회가 자진청산해야 한다고 발언해 물의를 빚었다. 야당은 이에 대해 “정 장관이 스스로 안행부 장관인지 헌법학자인지 헷갈리고 있다”며 “다시 대학으로 돌아가라”고 맹비난했다.

안전행정부 장관 취임 이후 광주 소방헬기 추락사고 현장을 찾는 데서 첫 일정을 시작했다. 크고 작은 안전 사고현장을 집중적으로 챙기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 경력

1992년부터 법학과 교수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제25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학장이 됐다.

2012년 정치권에 발을 들였다. 새누리당 공직자후보추천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낸 뒤 국회 정치쇄신자문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2013년 대검찰청 검찰개혁심의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2014년 1월 제20대 한국헌법학회 회장을 지냈다. 2014년 7월 강병규 전 장관에 이어 제3대 안전행정부 장관으로 임명됐다.

2014년 11월부터 2016년 1월까지 행정개편된 행정자치부 장관을 맡았다.
◆ 학력

1976년 경북고등학교를 나와 1981년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1985년 경희대학교 대학원 법학과 석사학이를 받았고 1989년 연세대학교 대학원 법학과 박사학위를 받았다.

◆ 가족관계

부인과 자녀 셋을 두고 있다.

세 자녀 가운데 장녀는 중학교를 자퇴하고 미국의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셋째는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미국 대학에 유학했다.

장녀는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인턴으로 활동했다. 당시 정종섭이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자문기구인 이코모스 한국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어 특혜채용 의혹이 제기됐다.

◆ 상훈

1992년 한국공법학회 학술상을 받았고 2012년 국민훈장 석류장을 수상했다.

◆ 상훈

1992년 한국공법학회 학술상을 받았고 2012년 국민훈장 석류장을 수상했다.

어록

“지방자치단체의 과한 복지사업은 범죄로 규정될 수도 있으나 처벌조항이 없어 지방교부세로 컨트롤하기로 했다.” (2015/12/01 국무회의에서 서울시 '청년수당'(취업준비생에게 최장 6개월까지 월 50만 원 지원)에 대해 언급하면서)

“자전거 대장정은 새로운 유라시아와 통일한국시대를 여는 최초의 발걸음으로 기억될 것.” (2014/11/17임진각과 국회의사 등을 잇는 ‘원코리아 뉴라시아 자전거 평화원정단’의 평화코스 출발에 앞서 소감을 말하며)

“우리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은 긴급재정명령을 할 수 있어도 국회 해산은 못한다. 국회가 자진 해산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2014/09/19 세월호 특별법 문제로 국회가 공전하고 있는 데 대해 국회를 자극하는 발언을 하며)

“다시는 (세월호와 같은) 이러한 가슴 아픈 사고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근본적인 재난안전 대책을 마련하고 철저하게 실천해야 한다. 국회에 제출된 세월호 사고 후속조치 법안들도 적기에 처리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2014/07/17 안전행정부 장관 취임식에서)

"우리는 지금 지방분권의 확대라는 시대적 요구에 직면하고 있다. 중앙정부가 가지고 있는 권한을 지방으로 과감하게 이양하는 한편 감사와 평가기능의 확충을 통해 권한과 책임의 균형을 맞추겠다. 지방자치단체의 비효율적 지출과 과다한 부채에 대해서 그 재정 현황을 모두 공개하고, 제도적 예방수단을 보완하겠다." (2014/07/17 안전행정부 장관 취임식에서)

"국내 최고 대통령은 이승만 전 대통령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시대착오적 이념타령으로 나라를 망쳤다."(2010/04/19 한국일보에 '4.19에 돌아보는 이승만'이라는 칼럼을 기고하며)

◆ 평가

정종섭은 보수적 헌법학자로 잘 알려져 있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타파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자신이 쓴 '대한민국 헌법이야기'에서 제주4.3항쟁과 관련해 "이러한 공산주의 세력의 무장봉기는 전국적으로 극렬하게 전개되어 전국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부쳤다"고 기술해 논란이 일었다. 그는 취임 이후 제주도를 찾아 "제주4.3항쟁 정신은 국민통합의 정신"이라며 "제주도민들이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면 참으로 죄송하다"고 해명했다.

그는 '역사교과서 좌우논쟁'을 일으킨 교학사 교과서 집필진이 주도하는 학술단체 한국현대사학회의 이사를 맡기도 했다.

장관이 되기 전 주요 일간지에서 칼럼리스트로 활약했다. 당시 역사나 정치와 관련해서 극단적 보수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군복무시절 박사과정에 재학했고 시간강사로 활동하기도 해 장관 청문회에서 군복무 특혜와 관련해 지탄의 대상이 됐다. 학술 논문 이중게재 논란과 부동산 투기의혹에도 휩싸였다.

세월호 사고 당시 국회가 자진청산해야 한다고 발언해 물의를 빚었다. 야당은 이에 대해 “정 장관이 스스로 안행부 장관인지 헌법학자인지 헷갈리고 있다”며 “다시 대학으로 돌아가라”고 맹비난했다.

안전행정부 장관 취임 이후 광주 소방헬기 추락사고 현장을 찾는 데서 첫 일정을 시작했다. 크고 작은 안전 사고현장을 집중적으로 챙기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 기타

한학자인 부친의 영향으로 한학과 서예에 조예가 깊다.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예술의 전당 예술대상 조직위원으로 활동했다.

현대엘리베이터와 삼성생명보험의 사외이사를 역임했다. 현대엘리베이터에서 3년 넘게 활동하다가 장관 후보자가 되면서 사직했다. 삼성생명보험은 서울대 총장선거에 출마하면서 선임 3주만에 사직했다. 이들 회사 사외이사 연봉을 합친 금액이 1억 원을 웃돌 정도로 많다.

주요 저서로 <헌법연구>, <대한민국 헌법을 읽자!>, <정종섭 교수와 함께 보는 대한민국 헌법>,<대한민국 헌법 The Constitution of Kore>,<헌법소송>,<헌법학원>,<판례 헌법소송>,<객관식헌법-2006>,<헌법재판연구 1>,<한국헌법사문류>,<한국의 사법제도와 발전모델>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