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Who Is ?] 박용현 중앙대학교 이사장
박용현 중앙대학교 이사장.


박용현은 중앙대학교와 두산연강재단의 이사장이다. 연강재단은 1978년 설립 이래 장학, 학술, 문화사업을 지원하고 있는 두산의 학술문화재단이다. 박용현은 두산건설 회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중앙대학교 이사장으로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학내 갈등을 수습하고 안정적으로 학교법인을 운영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1943년 9월16일 서울에서 아버지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회장의 4남으로 태어났다. 경기중학교와 경기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했다.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외과학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의료계와 학계에서 활동하다 두산건설 대표이사에 선임되면서 뒤늦게 두산그룹의 경영일선에 등장했다.

두산그룹 회장을 맡아 3년간 그룹을 이끈 뒤 중앙대학교 이사장에 선임됐다.

서비스정신과 경영마인드가 뛰어나다는 평을 듣는다.

경영활동의 공과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장 3연임
2010년 제 13대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장에 선임돼 지금까지 자리를 맡고 있다.

동반성장 기술포럼, CEO조찬세미나 등 사업을 추진한 공을 인정받아 2013년 제14대 회장에 재선임됐고 2014년 기업부설 연구소 3만 개 시대를 여는 등의 활동 덕분에 2016년 2월 제39회 정기총회에서 제15대 회장으로 선임돼 3연임하게 됐다.

박용현은 3연임이 확정되고 난 뒤 “불확실한 대내외 경제상황에 대응해 산업기술 비전을 제시하고 국내기업의 해외기술 협력과 시장개척을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 극복, 두산그룹 사상 최대 실적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두산그룹은 2008년 22조원이던 매출이 2009년 21조원대로 약간 줄어들었다. 하지만 2010년에는 매출 24조6000억 원, 영업이익 1조8000억 원을 올리며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다.

2011년에는 매출 26조2000억 원을 내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했다.

△서울대병원 의료영리화 주도
1998년부터 2004년까지 서울대 병원장을 지내면서 매킨지의 컨설팅 결과를 내세워 병원 운영의 중심축을 수술건수 늘리기, 의료인력 줄이기 등 이윤 추구로 정립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환자수와 검진건수를 기준삼아 의사한테 성과급을 지급하는 제도도 도입했다.

분당서울대병원과 강남진료센터 개원도 박용현이 주도했다. 형인 박용성 전 중앙대 이사장은 이를 두고 "동생이 의사지만 장사꾼 기질이 있어 서울대 병원을 개혁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비전과 과제/평가

◆ 비전과 과제

박용현은 중앙대학교 이사장으로서 중앙대학교의 학내갈등을 마무리하고 안정적으로 학교법인을 이끌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박용현의 취임은 형인 박용성 전 이사장이 2016년 비리와 막말 논란에 휩싸이면서 이사장에서 물러난 뒤 1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기 때문에 주변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다

더구나 두산그룹이 중앙대학교를 인수한 후 두산그룹의 골칫덩어리인 두산건설에 학교 내 건물 공사 등을 몰아주면서 재정이 악화했다는 논란 등이 있어 부담이 클 것으로 보인다.

박용현은 두산건설 대표를 역임했고 현재 회장을 맡고 있으며 장남은 두산건설 부회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Who Is ?] 박용현 중앙대학교 이사장
박용현 이사장(가운데) 등이 참석한 가운데 두산연강재단은 2010년 10월5일 '제1회 연강예술상' 시상식을 열었다.

◆ 평가

40년 가까이 의사로 살아오다 2007년 뒤늦게 경영인으로 변신했지만 경영에도 소질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의사로 커리어를 훨씬 오래 쌓기는 했지만 1998년부터 서울대병원장, 두산 연강재단 이사장, 두산건설 회장, 전경련 부회장을 거치면서 경영관련 경험도 적지 않게 다졌다.

박용현은 경영인으로서 소통, 사회공헌 등을 기회가 날때마다 강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서울대 병원장 시절에도 권위적이고 관료적인 조직문화를 개혁해 병원 문턱을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 낮추기 위해 노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당시 조직원의 의식 변화와 서비스 질 향상에 앞장서 경영혁신대상을 수상한 적도 있다.

아호는 영산(映山)이며 종교는 천주교, 취미는 골프다.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 경력

1973년 외과전문의 자격을 취득했다.

1976년부터 1978년까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전임강사로 일했다.

1978년 10월부터 2006년 2월까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외과학교실 조교수, 부교수, 교수 등을 지냈으며 1979년부터 1981년까지 미국 하버드대학교 의과대학 피터벤트브리감앤위먼스병원 전임의로 일했다.

1984년 9월부터 1988년 10월까지 제8차 아시아태평양소화기병학회 조직위원회 사무총장 ,1993년 6월부터 1995년 6월까지 서울대병원 기획조정실 실장, 1993년부터 1995년 6월까지 제3차 아시아간 담도, 췌장외과학회 사무총장을 맡았다.

1993년부터 1998년 5월까지 서울대병원 기획조정실 실장, 진료부원장을 역임했다.

1998년 6월부터 2004년 5월까지 서울대병원 병원장을 지냈고 2005년부터 두산연강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2007년 2월부터 두산건설 회장을 맡고 있으며 2009년 3월부터 2012년 3월까지는 두산그룹 회장도 겸직했다.

2014년 7월부터 2015년 12월까지 서울대학교 제2대 이사장을 지냈다.

2015년 6월부터 예술의전당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2016년 2월부터 중앙대학교 제11대 이사장을 겸직하고 있다.

◆ 학력

1959년 경기중학교, 1962년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68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1970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의학 석사, 1977년 의학 박사를 마쳤다.

◆ 가족관계

아버지는 박두병 전 두산그룹 회장, 어머니는 명계춘씨다.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과 박용오 전 성지건설 회장, 박용성 전 두산중공업 회장이 형이다.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과 박용욱 이생그룹 회장이 동생이다.

부인 배우자 윤보영씨와 슬하에 박태원 두산건설 부회장, 박형원 두산인프라코어 부사장, 박인원 두산중공업 전무를 뒀다.

조카로는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과 박지원 두산중공업 회장, 박경원 전 성지건설 부회장, 박중원 전 성지건설 부사장, 박진원 전 두산 산업차량BG 사장과 박석원 두산엔진 부사장, 박서원 오리콤 부사장, 박재원 두산인프라코어 부장 등이 있다.

2003년 지병을 앓고 있던 부인이 세상을 떠난 후 줄곧 혼자 지내다가 2009년 10월 20세 연하 서울대의대 동문 후배 여의사와 재혼했다.

◆ 상훈

2002년 황조근정훈장, 2013년 과학기술인정보통신인 한마음대회 과학기술부문 창조장을 받았다.

◆ 기타
[Who Is ?] 박용현 중앙대학교 이사장
박용현 두산건설 회장은 2008년 10월1일 문화체육관광부 유인촌 장관으로부터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신임 이사장 임명장을 수여받았다.

어록


“중앙대의 창의적 발전을 도모하며 미래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2016/02/04, 중앙대학교 이사회에서 이사장으로 선임된 뒤)

“문화예술 지원은 100년 후를 내다보는 안목이 필요하다. 의료계 산업계 등을 거치면서도 문화예술의 수준이 곧 국격을 나타낸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었다. 경제 상황이 달라지더라도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이 흔들리지 않도록 메세나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적극 나설 것이다. 메세나법이 문화 산업의 근간을 튼튼히 할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이다.” (2012/07/17, 메세나협회 기자간담회에서)

“예전부터 3년만 그룹 회장을 맡기로 약속한 것은 아니지만 혼자선 늘 3년만 하고 떠나겠다는 생각을 해왔다. 동생인 박용만 회장에게 이 자리를 물려주고 떠나겠다는 뜻을 최근 밝힌 것일 뿐이다.” (2012/03/30, 한국경제와 인터뷰에서)

“이제는 양적(Volume) 성장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질적(Value) 성장에 집중할 때다. 두산은 발 빠른 변화와 과감한 투자로 인프라지원사업(ISB) 분야에서 글로벌 기업들과 견줄 만한 경쟁력을 확보했다. 그러나 자부심이 자칫 방심으로 이어져서는 안 되며 변화를 위한 도전과 혁신은 계속되어야 한다.” (2011/08/01, 창립 115주년을 맞아 사내 홈페이지에 게시한 기념사에서)

“우리나라가 1인당 소득 2만 달러까진 겨우 왔는데 3만~4만 달러가 되려면 문화적 수준도 함께 가야 한다. 여기까지는 물적·인적 자원만으로 성과를 얻을 수 있었지만 이제는 문화적 창의성이 바탕이 되지 않고는 경쟁력을 가질 수도, 선진국이 될 수도 없다.

예술교육과 아트센터 운영을 통해 기업도 이제는 문화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라는 것을 알게 됐다. 기업의 사회공헌활동(CSR)이 몇 년 전만 해도 선택사항이었다면 이제 지속 성장 기업이 되기 위해서 필수조건이 됐다. 세계적으로 두산을 알리기 위해서는 예술에 대한 투자가 절실하다.“ (2010/12/01, 매일경제와 인터뷰에서)

“협력업체와 동반성장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자 시대적 대세다.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도 협력업체의 경쟁력 증진이 필요하다. 상생협력이 말로 그치지 않고 실질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계열사의 상생협력 이행 실적을 분기별로 점검하고 이를 CEO 평가에 반영하겠다.” (2010/09/06, 서울 을지로 두산타워에서 열린 계열사 사장단 회의에서)

“두산은 한국에서 가장 긴 113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기업이다. 앞으로도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고 재무적으로도 건실한 체제를 다져 글로벌 일류기업으로서의 또 다른 100년 역사를 써 나가자.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눈높이가 한층 높아지고 있어 진정한 글로벌 기업이 되려면 이러한 추세에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기업의 지속가능경영을 위해 글로벌 두산에 걸맞은 사회공헌활동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 (2009/03/30, 서울 강동구 길동 DLI 연강원에서 열린 두산 회장 취임식에서)

“올 한 해 성공적으로 글로벌 M&A를 성사시켜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간 상황이다. 내년에는 매물로 나온 현대건설, 쌍용건설 등 건설업종 M&A에 주력할 것이다. 대우건설 인수 실패 시 도덕성 부문 페널티는 뼈아팠다. 내년에 인수전이 진행될 경우 보다 공정한 잣대가 주어지길 바란다.” (2007/12/19. 매일경제와 인터뷰에서)

“조기퇴임하는 특별한 이유는 없다. 오랫동안 서울대병원에 몸담으면서 이제 외과 교수로서나 병원 행정가로서 역할을 다했고 더 이상 기여할 게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바깥에 나가면 더욱 자유롭게 서울대병원을 도울 수 있을 것이다. 의료계에 40년간 몸담았던 의료인으로서 남몰라라 하지 않을 것이다.” (2006/01/26, 서울대병원장 조기 은퇴를 앞두고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의사출신 CEO도 많으며, 서울대병원장으로 있으면서 직원 5500여명에 한해 예산 5천억 원이나 되는 거대한 조직을 이끌면서 나름대로 경영수업도 많이 쌓았다.” (2006/01/26,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