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Who Is ?] 박상진 삼성전자 대외협력 사장
박상진 삼성전자 대외협력부문 사장.


박상진은 삼성전자 대외협력담당 사장이다. 삼성전자에서 마케팅 전문가이자 해결사로 경력을 쌓아왔지만 승마협회장을 맡으면서 박근혜 게이트와 관련해 최순실씨 지원의 창구역할을 맡아 곤욕을 치르고 있다.

박상진은 1953년 태어나 서울대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구주법인장과 로벌마케팅실 실장, 무선사업부장, 동남아총괄 부사장을 역임하고 삼성테크윈에서 디지털카메라사업을 떼어내서 독립한 삼성디지털이미징의 대표이사 부사장을 맡았다.

삼성디지털이미징이 분사 1년 만에 삼성전자와 합병하자 삼성전자에서 디지털이미징사업부장을 맡으며 사장으로 승진했다.

삼성SDI 대표이사 사장으로 자리를 옮겨 삼성SDI를 에너지솔루션 기업으로 바꾸는 데 주력했다.

삼성전자 대외담당협력부분 사장으로 자리를 옮긴 뒤 승마협회 회장을 맡았다.

삼성그룹이 최순실씨와 딸 정유라씨에게 승마훈련비 등 수십억 원을 지원했고 박상진이 협상을 위해 유럽으로 출장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박상진은 이에 따라 검찰에 두 번 불려가 조사를 받았다.

경영활동의 공과
비전과 과제/평가
◆ 평가

삼성전자에서도 인정하는 ‘해외통’이자 전략마케팅 전문가로 평가받았다.

1999년 삼성전자 글로벌 마케팅 조직인 ‘글로벌마케팅실(GMO)’를 만들었고 줄곧 해외현장을 누비면서 삼성 브랜드 가치를 올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처음 해외마케팅 부서에 배치된 뒤 서양 문화를 알기 위해 싫어하던 관자 요리를 6개월간 먹으면서 미식축구와 야구에 관한 온갖 정보를 달달 외운 일화는 유명하다.

삼성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 공항 카트에 삼성로고를 붙이는 아이디어를 내기도 했다.

디지털이미징사업부장 시절 삼성그룹이 렌즈를 비롯한 광학기술을 내재화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당시 삼성은 세계 최초로 ‘듀얼 미러리스 카메라’를 출시하기도 했다. ‘디지털이미징’이라는 회사 이름도 직접 지었다고 한다.

다소 ‘험난한’ 자리에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해결사 이미지도 지니고 있다.

삼성테크윈에서 카메라 사업을 맡았을 당시 900억 원가량의 적자를 내고 있었다. 박상진은 카메라 문외한이었고 인사 발표 이틀 전 중국 출장 중에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박상진이 삼성디지털이미징 대표를 맡은 이후 삼성디지털이미징은 미러리스 카메라 등 히트제품을 내놓기도 했다.

박상진은 삼성디지털이미징을 삼성전자와 다시 합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그룹 측에 의견을 전달했다고 전해진다. 삼성전자와 디지털이미지의 합병은 삼성전자가 스마트폰 사업에서 카메라부문의 기술력을 강화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삼성SDI 사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는 자동차용 전지와 태양전지사업을 맡게 됐다. 삼성의 5대 신수종사업 가운데 2개를 맡게 된 것이다.

박상진은 삼성 SDI를 토털 에너지솔루션 전문기업으로 바꾸겠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삼성SDI는 독일 BMW와 미국 크라이슬러, 인도의 마힌드라 등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들에도 전지를 공급하고 있다.

박상진은 늘 혁신을 강조한다. 그는 신입사원들에게 “혁신은 어제 내린 눈”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어제 옳았던 게 오늘은 옳지 않게 된다”며 “이 세상엔 당연한 것도 영원한 것도 없이 매일 변한다”고 말한다.

박상진이 2014년 말 삼성SDI 사장에서 물러나자 배경을 놓고 많은 추측이 나왔다. 삼성SDI가 앨런머스크가 이끄는 테슬라모터스의 전기차배터리 납품에 실패한 것이 원인이라는 시선도 받았고 삼성SDI가 2013년 박상진 취임이후 처음 적자를 낸 것이 이유라는 분석도 나왔다.

박상진은 2014년 5월 “조남성 대표와 각자대표체제는 연말까지”라고 말했기에 미리 내정을 받은 곳이 있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최근 박근혜 게이트가 드러나면서 박상진이 삼성SDI대표에서 삼성전자 대외협력부문 사장으로 옮긴 다음 승마협회장에 오른 전모가 밝혀지고 있다. 박상진은 ‘유럽통’으로서 최순실씨 모녀가 유럽에서 활동하는데 삼성그룹의 지원창구로 활동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 경력

1977년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1993년부터 1998년까지 삼성전자 구주법인장을 맡았다. 1999년 삼성전자 글로벌 마케팅실장을 맡았다가 2001년부터 삼성전자 무선사업부로 자리를 옮겼다. 2003년부터 1년 동안 무선사업부장을 맡기도 했다.

2004년부터 삼성전자 동남아총괄 부사장을 맡았다. 2008년에는 삼성테크윈으로 자리를 옮겨 디지털카메라사업을 담당했다. 2009년 삼성테크윈 디지털카메라사업부가 삼성테크윈에서 삼성디지털이미징으로 분사하자 대표를 맡았다.

삼성디지털이미징이 분사 1년 만에 삼성전자와 합병하기로 결정되자 사장으로 승진했다.

2011년부터 삼성SDI 대표이사를 맡게됐다. 삼성SDI가 2014년 제일모직과 합병하자 그해말 삼성전자 대외협력부문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2015년 3월 승마협회장에 취임했다.

◆ 학력

1970년 경복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77년 서울대 무역학과를 졸업했다.

◆ 가족관계

◆ 상훈

◆ 상훈

어록


“중국의 사이버 관련 산업은 우리보다 훨씬 앞서 있다고 봐야 한다. 시장이 커서 좋은 아이디어 하나만 있어도 규모의 경제로 큰 수익을 거둘 수 있어 좋은 아이디어와 약한 규제 여건에 맞게 벤처도 활성화됐다” (2015/05/28, 서울 여의도 전경련 회관에서 열린 ‘제4차 한중 CEO 라운드 테이블’에서)

“배터리는 안정성 문제가 매우 중요하다. 단 한 번의 실수가 모든 것을 망칠 수 있다. 우리업계는 100-1이 99가 아니라 0이다. 절대적인 안정성이 보장돼야 하는 이유다.” (2013/10/17,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13 에너지대전 인터배터리 포럼 기조연설에서)

“옛날에는 한 우물을 파는 열정만 있으면 성공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고 새로운 세계를 리드하려면 특별한 성공 DNA(유전자)가 필요하다. 실패를 맛보더라도 본인만의 브랜드를 만드는 게 성공할 수 있는 첫째 요건이다.” (2013/10/08, 강원 춘천 백령아트센터에서 열린 삼성그룹 대학생 토크콘서트 열정락서에서)

“남자가 좋다고 따라다닐 때 바로 눈 맞춰 주면 좋아할 것 같은가요? 사실 안 좋아해요. 살짝 튕겨줘야 더 애가 탑니다. 그렇다고 끝까지 무시하면 남자들은 아주 싫어하죠, 연애에서의 밀당(밀고 당기기)처럼 조금 비싸게 구는 것이 삼성의 브랜드 전략이죠.” (2012/03/27, 천안시 남서울대 체육관에서 열린 토크콘서트 열정락서에서)

“디테일이야말로 스케일을 완성하는 디딤돌이자 버팀목이다.디테일을 실패하는 순간 스케일도 실패한다. 로켓 부스터 내 고무링이 추운 날씨로 인해 갈라져 폭발까지 이르게 된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등 디테일이 소홀해 벌어졌던 사건과 사고는 수없이 많다. 그만큼 디테일은 스케일이 커지면 커질수록 그 스케일을 떠받치는 기둥이 되기 때문이다.” (2011/03/02, '3월 CEO메시지'를 통해)

“콤팩트에서 1위가 된다고 카메라 1등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DSLR 등 고급 카메라 시장에서 성공해야 1위다. DSLR은 일본 업체가 완전히 잡고 있지만 미러리스 카메라라는 영역이 생기면서 우리에게도 기회가 생겼다. 내년 세계 시장 점유율 25%가 목표다.” (2010/09/14, 홍콩 인터컨티넨털 호텔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디지털카메라로 일본의 아성을 다시 한 번 무너뜨리겠다. 카메라 일류화사업을 통해 2012년에 매출 약 5조원, 시장점유율 17~20%대로 선두기업으로 올라설 것이다. 과거 TV시장의 전례처럼 일본이 가진 주요 산업축을 뒤흔들 기회가 올 것이다.” (2009/03/03, 미국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휴대폰 단말기업체들이 PC 시장이 걸었던 것과 같은 길을 걸 필요가 없다. 마이크로소프트(MS)와 인텔은 제품의 모든 가치를 빨아들여 버렸다. MS는 모바일 OS 개발에 전력을 다하고 있지만 제품은 완벽하지 않고따라서 잘 전달되지 않는다. MS는 유럽시장에 진출하려 해 왔지만 성공적이지 못했다.” (2003/02/18, 프랑스 칸에서 열린 3GSM 콩그레스에서 심비안에 5% 지분을 투자했다고 밝히며)

“미국에서 경쟁업체들이 저가정책을 펴고 있지만 애니콜은 평균 시장가격보다 120%정도 비싸게 팔리고 있다. 이는 디자인이나 품질의 우수성을 소비자들이 인정해준 결과다. 애니콜이 미국시장의 휴대폰 가격을 리드하면서 최고급 휴대폰 브랜드로 이미지 구축에 성공했음을 입증했다.” (2001/02/07, 삼성 애니콜이 노키아 모토로라 등 선진업체의 제품을 제치고 금액기준으로 판매실적 1위를 차지했다는 조사가 발표되자)

◆ 평가

삼성전자에서도 인정하는 ‘해외통’이자 전략마케팅 전문가로 평가받았다.

1999년 삼성전자 글로벌 마케팅 조직인 ‘글로벌마케팅실(GMO)’를 만들었고 줄곧 해외현장을 누비면서 삼성 브랜드 가치를 올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처음 해외마케팅 부서에 배치된 뒤 서양 문화를 알기 위해 싫어하던 관자 요리를 6개월간 먹으면서 미식축구와 야구에 관한 온갖 정보를 달달 외운 일화는 유명하다.

삼성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 공항 카트에 삼성로고를 붙이는 아이디어를 내기도 했다.

디지털이미징사업부장 시절 삼성그룹이 렌즈를 비롯한 광학기술을 내재화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당시 삼성은 세계 최초로 ‘듀얼 미러리스 카메라’를 출시하기도 했다. ‘디지털이미징’이라는 회사 이름도 직접 지었다고 한다.

다소 ‘험난한’ 자리에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해결사 이미지도 지니고 있다.

삼성테크윈에서 카메라 사업을 맡았을 당시 900억 원가량의 적자를 내고 있었다. 박상진은 카메라 문외한이었고 인사 발표 이틀 전 중국 출장 중에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박상진이 삼성디지털이미징 대표를 맡은 이후 삼성디지털이미징은 미러리스 카메라 등 히트제품을 내놓기도 했다.

박상진은 삼성디지털이미징을 삼성전자와 다시 합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그룹 측에 의견을 전달했다고 전해진다. 삼성전자와 디지털이미지의 합병은 삼성전자가 스마트폰 사업에서 카메라부문의 기술력을 강화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삼성SDI 사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는 자동차용 전지와 태양전지사업을 맡게 됐다. 삼성의 5대 신수종사업 가운데 2개를 맡게 된 것이다.

박상진은 삼성 SDI를 토털 에너지솔루션 전문기업으로 바꾸겠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삼성SDI는 독일 BMW와 미국 크라이슬러, 인도의 마힌드라 등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들에도 전지를 공급하고 있다.

박상진은 늘 혁신을 강조한다. 그는 신입사원들에게 “혁신은 어제 내린 눈”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어제 옳았던 게 오늘은 옳지 않게 된다”며 “이 세상엔 당연한 것도 영원한 것도 없이 매일 변한다”고 말한다.

박상진이 2014년 말 삼성SDI 사장에서 물러나자 배경을 놓고 많은 추측이 나왔다. 삼성SDI가 앨런머스크가 이끄는 테슬라모터스의 전기차배터리 납품에 실패한 것이 원인이라는 시선도 받았고 삼성SDI가 2013년 박상진 취임이후 처음 적자를 낸 것이 이유라는 분석도 나왔다.

박상진은 2014년 5월 “조남성 대표와 각자대표체제는 연말까지”라고 말했기에 미리 내정을 받은 곳이 있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최근 박근혜 게이트가 드러나면서 박상진이 삼성SDI대표에서 삼성전자 대외협력부문 사장으로 옮긴 다음 승마협회장에 오른 전모가 밝혀지고 있다. 박상진은 ‘유럽통’으로서 최순실씨 모녀가 유럽에서 활동하는데 삼성그룹의 지원창구로 활동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 기타

회사 직원들에게 ‘거족거이(巨足巨耳)’라는 말을 강조한다. 큰 발과 큰 귀라는 뜻으로 많이 걷고 많이 들으라는 의미를 담아 스스로 만든 한자성어다.

군대시절 어느날 상급자를 따라 조깅을 해보니 너무 기분이 상쾌하다는 것을 느꼈고 이후 ‘매일매일 하루를 값지게 살아야겠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지금도 달리기로 건강을 다진다.

타워팰리스에 사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