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얼어붙은 부동산 경기로 주택 미분양 사태가 속출함에 따라 미분양 매물을 처리하기 위해 각종 방법이 동원된 가운데 제주도의 한 빌라가 분양 대금을 가상화폐로 결제할 수 있다는 계약 조건을 내걸었다.

국내 부동산 시장에서 가상화폐 거래는 흔치않은 일이다. 다만 해외에서는 이미 가상화폐를 이용한 부동산 구매가 확산하고 있어 국내에서도 가상화폐를 통한 부동산 거래 사례가 늘어날지 주목된다.
 
얼어붙은 주택시장이 부른 비트코인으로 부동산 거래, 해외는 이미 확산 중

▲ 제주 휴안 더갤러리 애월 2차 빌라 조감도. <도현종합건설>


12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제주 휴안 더갤러리 애월 2차 빌라는 최근 가상화폐로 분양 대금을 결제할 수 있다고 홍보했다.

제주 휴안 더갤러리 애월 2차 빌라는 24세대 규모의 고급 빌라다. 이 사업장은 제주지역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자 층별 분양가 할인을 적용하는 것에 더해 주택 분양 대금을 가상화폐로 받겠다고 밝혔다.

시행사 대표는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실제로 가상화폐로 계약을 진행하려는 사례가 있냐는 질문에 “보러온다고 하고 일정을 잡는 분들이 있다”면서 “최근에 가상화폐 비트코인 가격이 너무 올라가다 보니 상황을 지켜보시는 분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가상화폐를 부동산 매매대금으로 받는 부분에 제도적 검토를 했냐는 질문엔 “부동산 거래다 보니까 얼마에 매매했는지 정확하게 나타난다”며 “실거래 신고만 정확하게 해서 세금만 제대로 낸다면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최근 가상화폐 시장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미국 가상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에 따르면 비트코인은 11일(현지시각) 낮 12시 기준으로 7만2087달러(약 9457만 원)에 거래되면서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국내 비트코인 가격은 12일 오후 2시 기준으로 빗썸 1억50만 원, 업비트 1억85만 원으로 1억 원을 넘겼다.

가상화폐가 제도권으로 편입되는 추세가 반영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1월 비트코인의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11개 상품을 승인했고 이날 영국 런던증권거래소는 2분기부터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상장지수증권(ETN) 상장 신청을 받겠다고 밝혔다.

국내 부동산 분양 시장에 가상화폐 방식 결제가 등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다만 해외 사례를 살펴보면 가상화폐로 부동산 자산을 거래하는 상황을 찾아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미국은 이미 2010년대 중반부터 가상화폐를 이용한 부동산 매매가 이뤄졌다. 

월스트리저널에 따르면 2014년 미국 캘리포니아 타호 호수 주변 5665㎡의 주택용 토지가 160만 달러어치 비트코인으로 거래됐다. 다만 이 거래는 비트코인을 미국 달러로 환급한 뒤에 거래가 진행된 것이었다.

순수하게 비트코인으로만 부동산 매매가 이뤄진 것은 2018년이다. 가상화폐 투자자인 마이클 코마란스키는 2018년 2월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6백만 달러(약 78억 원) 가치의 마이애미 저택을 455비트코인에 처분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부동산 회사 카루소는 2021년부터 가상화폐 거래소 제미니와 협력해 소매 및 상업용 부동산의 임차인이 임대료를 비트코인으로 낼 수 있도록 허용하기도 했다.

미국 텍사스에 본사를 둔 부동산 데이터 플랫폼 마이엘리스팅(MyEListing)은 2023년부터 가상화폐 결제 플랫폼인 코인베이스 커머스와 손잡고 가상화폐로 미국 주거 및 상업용 부동산을 사고팔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얼어붙은 주택시장이 부른 비트코인으로 부동산 거래, 해외는 이미 확산 중

▲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가 2023년 6월16일(현지시간) 몬테네그로 수도 포드고리차에 있는 포드고리차 지방법원으로 재판을 받으러 가고 있다. <연합뉴스>


부동산 거래에 가상화폐가 사용되는 것이 미국만의 일은 아니다.

튀르키예의 부동산 중개사인 안탈리아홈즈는 2017년 9월 가상화폐를 결제 수단으로 채택한 뒤 2018년 비트코인을 활용한 9개의 부동산 판매를 진행했다. 

안탈리아홈즈는 튀르키예 안탈리아에 본사가 위치한 부동산 중개회사로 튀르키예 외에도 스웨덴, 스페인 등에 지부를 설립해 부동산을 매매하고 있다.

바이람 텍체 안탈리아홈즈 회장은 “부동산 부문 투자에 가상화폐를 활용하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부동산을 매입하는 것이 매우 수익성이 높을 것”이라며 “안탈리아홈즈는 가상화폐로 주택을 구입하려는 사람들에게 터키 주택을 소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최근 테라·루나 폭락사태 주범인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의 송환 사태로 이름이 알려진 몬테네그로도 부동산 매매에 가상화폐가 활발히 이용되는 나라다. 몬테네그로는 이더리움 블록체인의 공동 창립자이자 가상화폐 전문가인 비탈릭 부테린에게 시민권을 부여하기도 한 곳이다.

발칸반도 전문 언론 ‘발칸인사이트’는 2023년 12월29일 보도에서 수백만 유로 상당의 몬테네그로 부동산 거래 대금이 가상화폐로 지급되고 있다고 전했다.

두바이 현지 매체 칼리지타임스(Khaleej Times)에 따르면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 본사를 둔 주요 부동산 개발업체 다막 프로퍼티스도 2022년 5월부터 자산 대금을 가상화폐로도 받겠다고 밝힌 바 있다.

유럽 가상자산의 허브로 꼽히는 포르투갈은 2022년부터 아예 법적으로 가상화폐를 지불수단으로 간주해 부동산 매매에 사용하는 것을 허용했다.

부동산 중개 플랫폼 이데알리스타에 따르면 포르투갈 공증인 단체는 2022년 한 해 동안 가상화폐로 거래가 이뤄진 부동산 매매 증서를 13건 작성했다. 대부분의 거래는 수도인 리스본이나 관광지역인 알가르브 지방에서 이뤄졌다.

미국 유명 부동산 중개업자 라이언 서란트는 2021년 야후파이낸스와 인터뷰에서 "가상화폐가 점진적으로 부동산 시장에 진출하고 있고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며 "향후 5년 내 부동산 거래의 50%가 가상화폐로 결제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홍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