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반도체산업 육성 정책도 먹혔다, 정부 의지와 소부장 경쟁력 주효

▲ 일본 정부가 TSMC 공장 유치와 라피더스 설립을 통해 정부의 반도체 재건 정책에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TSMC 일본 구마모토 반도체 공장 건설 현장. < TSMC >

[비즈니스포스트] 일본의 반도체 기술 강화 및 제조업 활성화 정책이 미국과 유럽에 비해 빠르게 실제 성과로 나타나며 초반부터 유의미한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의 강력한 추진 의지가 조속한 반도체 보조금 집행 결정으로 이어져 투자 유치에 기여한 한편 일본이 반도체 공급망 분야에서 갖추고 있는 장점도 반영된 결과로 분석된다.

25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일본이 현재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반도체 생산 투자 경쟁에서 ‘선제승’을 거두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과 일본, 유럽 등은 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된 뒤 반도체 공급 차질이 장기화되며 자동차와 전자제품 등 주요 산업에 악영향을 받기 시작하자 잇따라 제조업 활성화 정책을 수립했다.

한국과 대만, 중국 등 소수 국가에서 글로벌 반도체 생산량을 대부분 책임지고 있는 상황이 중장기적으로 리스크를 키울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관계 악화, 우크라이나 전쟁 등 지정학적 갈등도 해외 국가에 반도체 공급을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여론에 힘을 실었다.

결국 미국과 유럽은 수십조 원을 투입하는 반도체 연구개발 및 투자 지원 정책을 발표했고 일본 정부도 자국 및 해외 반도체기업의 생산공장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됐다.

미국은 이런 정책 효과로 2천억 달러(약 266조 원) 이상의 반도체 생산 투자를 유치했고 유럽도 인텔과 TSMC 등 주요 시스템반도체 제조사의 공장 건설을 약속받는 등 성과를 냈다.

그러나 현재 시점에서 반도체산업 활성화에 가장 큰 성과를 본 국가는 일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TSMC의 일본 공장이 미국이나 유럽보다 이른 올해 말 가동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TSMC는 현재 전 세계 시스템반도체 생산량의 대부분을 책임지고 있는 가장 중요한 기업이다. 따라서 TSMC 공장 가동은 각국의 반도체 지원 정책 성과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으로 꼽힌다.

미국에 신설되는 TSMC 제1 공장의 경우 가동 시기가 올해에서 내년으로 미뤄졌고 제2 공장 투자 계획도 연기돼 투자 축소 가능성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다.

TSMC 독일 반도체 공장은 투자 결정 시점이 예상보다 크게 늦춰졌고 생산 규모와 활용되는 공정 기술 수준도 다른 국가의 공장과 비교해 다소 뒤떨어진다.

반면 TSMC 일본 구마모토 공장은 가장 일찍 가동을 시작하게 될 뿐만 아니라 최근 제2 공장 투자 계획까지 공식화되면서 중요한 반도체 생산기지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일본 반도체산업 육성 정책도 먹혔다, 정부 의지와 소부장 경쟁력 주효

▲ TSMC가 일본 반도체공장 투자를 위해 소니, 덴소 등 현지 기업과 설립한 합작법인 JASM 건물 예상 조감도. < TSMC >

블룸버그는 일본 정부가 효율적인 지원 정책과 잘 짜여진 일정 관리, 반도체 기업과 관계 강화 등 다른 국가에서 재현하기 어려운 요소를 앞세워 이러한 성공을 주도했다고 평가했다.

TSMC는 반도체 제조사와 고객사, 협력사 기반과 일본 정부 및 학계의 지원 등 모든 요소가 다른 국가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난 성과로 이어졌다는 입장도 전했다.

일본은 한때 반도체 강국으로 꼽히는 국가였지만 여러 역사적 사건을 겪으며 미국과 한국, 중국 등 국가의 경쟁사들에 산업 주도권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러나 반도체 생산에 필수인 화학소재와 장비, 부품 등 분야에서는 여전히 세계 최상위권 기업을 다수 보유하며 상당한 영향력을 자랑하고 있다.

TSMC가 일본 공장 가동을 앞당길 수 있던 배경도 미국이나 유럽과 달리 이러한 협력사들의 생산설비 등 인프라를 새로 구축해야 할 필요성이 낮았다는 점이 꼽힌다.

일본 정부는 반도체 공장 가동에 필요한 산업용수와 전력, 도로 등 인프라 구축에도 적극 속도를 내 TSMC의 원활한 생산 투자가 이뤄질 수 있도록 도왔다.

중장기적으로 대만 기업인 TSMC에 반도체 기술력을 전적으로 의존하는 상황에서 벗어나겠다는 일본 정부의 전략도 구체화되고 있다.

일본 정부와 기업들이 출자해 설립한 반도체 파운드리 기업 라피더스는 2027년 2나노 미세공정 상용화를 목표로 정부 지원금을 활용해 홋카이도에 반도체 생산공장을 신설하고 있다.

라피더스의 2나노 반도체 개발은 일본이 한국과 대만, 미국에 이어 첨단 반도체를 자체 생산할 기술력을 갖춘 극소수 기업에 포함되도록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인공지능과 첨단 군사무기 등에 필수적인 미세공정 반도체 기술력을 일본도 자체적으로 보유하게 된다는 의미기 때문이다.

결국 일본 정부는 당분간 TSMC를 통해 첨단 반도체 공급망을 확보하고 장기적으로는 라피더스를 활용해 이러한 핵심 기술을 내재화한다는 계획을 두고 있는 셈이다.

일본의 반도체 산업 정책이 초반부터 긍정적 성과를 보이는 것은 중장기적으로 경제 성장과 국가 경쟁력 강화에도 기여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로 평가받고 있다.

블룸버그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반도체 산업 재건이 경제 성장 동력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하고 있다”며 일본에서 TSMC와 라피더스를 향한 희망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