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미국 정유 대기업 엑손모빌이 유럽연합(EU)에 환경규제 완화를 요구하며 수천억 달러 규모 자금 철수 가능성을 내비쳤다. 향후 친환경 전환을 위해 기업들의 자금이 필요한 유럽연합의 상황을 이용하려는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20일(현지시각)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엑손모빌은 유럽연합이 최근 확대하고 있는 환경규제를 놓고 '유럽 경제의 탈산업화(deindustrialization)'라고 비난했다.
 
엑손모빌 EU에 '환경규제 완화' 요구, 수천억 달러 규모 자금 철수 압박도

▲ 지난해 5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세계 플라스틱 이사회' 회의에 참석한 카렌 맥키 엑손모빌 제품 솔루션 대표. <엑손모빌>


카렌 맥키 엑손모빌 제품솔루션 대표는 파이낸셜타임스를 통해 “엑손모빌은 2022년부터 2027년까지 탈탄소화를 위해 2천억 달러(약 267조 원)를 투입한다”며 “그러나 앞으로 자금 투입은 유럽 외 다른 지역들을 우선적으로(prioritize)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지난 10년 동안 엑손모빌이 유럽 지역에서 각종 프로젝트에 투입한 자금 규모는 이미 2천억 달러(약 267조 원)가 넘어선 상태다. 

지난해 12월에는 유럽 지역에서 진행하는 3억 유로(약 4334억 원) 규모 탄소포집 선행 프로젝트(pilot project)를 발표하기도 했다.

맥키 대표는 “엑손모빌은 투자를 결정할 때 장기적 전망을 갖고 진행한다”며 “그런 관점에서 최근 유럽 상황을 봤을 때 신뢰성이 떨어졌으며 예측가능한 정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 관점에서 유럽 경제는 탈산업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유럽이 야심차게 마련한 기후 규제는 기업에 매우 부정적 영향을 미쳤으며 사업 허가 및 접근과 관련해 복잡하고 느린 절차를 강요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지적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최근 유럽연합이 확대하고 있는 환경규제를 향한 에너지, 철강 대기업들의 불만이 높아진 것을 반영해 엑손모빌 임원이 입을 연 것이라고 풀이했다.

또한, 맥키 대표의 발언은 20일 벨기에 안트베르펜에서 개최된 ‘유럽 산업 정상회의’에 참가한 엑손모빌, 토탈에너지스, 아르셀로미탈 등 70개 기업들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엑손모빌 EU에 '환경규제 완화' 요구, 수천억 달러 규모 자금 철수 압박도

▲ 20일(현지시각)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 산업 정상회의'. 우르술라 폰 데어 라이엔 유럽집행위원장(오른쪽에서 두 번째), 알렉산드르 더크로 벨기에 총리(오른쪽에서 첫 번째)가 참석했다.

해당 총회를 통해 발표된 성명에 따르면 향후 유럽연합은 기후목표 달성을 위해 이들 기업들로부터 현재와 비교해 6배가 넘는 자금을 추가로 투자받아야 할 것으로 추정됐다.

즉 친환경 전환 계획 실천을 ‘돈줄’은 유럽연합이 아닌 글로벌 기업들이 쥐고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엠마누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알렉산드르 더크로 벨기에 총리 등은 유럽집행위원회의 급진적 환경규제를 놓고 유럽 지역을 향한 투자가 위축되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실제로 이번 안트베르펜 산업 총회에서도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시행된 미국과 비교해 투자 시장으로서 유럽의 가치가 떨어졌으며 이에 유럽 사업체들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고 파이낸셜타임스는 전했다.

그러나 글로벌 기업들의 압박에도 투자 시장으로서 경쟁력 확보와 환경규제는 여전 병행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캠브리지 지속가능성 리더십연구소의 마틴 포터 대표는 비즈니스 커뮤니티 게시글을 통해 “사업체들은 환경규제를 불평하기보다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사업 기회를 포착해야 한다”며 “지속가능성 확보와 기후변화 대응은 경제적 경쟁력 확보와 떼놓고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