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탄소배출권도 유럽에서 인정받는다, EU 지역별 탄소시장 지원 공식화

▲ 6일(현지시각) 유럽의회에서 2040년 유럽연합 기후목표와 관련해 발언을 하는 붑커 훅스트라 유럽집행위원회 기후위원.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유럽연합 기후대표가 유럽 외 지역의 탄소배출권 인정을 공언하면서 정부간 협상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 탄소배출권이 유럽연합에서 인정받으면 유럽 탄소국경세가 본격 시행되는 내후년에 철강 등 유럽 수출 한국기업들이 받을 부담이 상당히 완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두 지역 탄소배출권의 가격 차이가 커 한국의 탄소배출권을 유럽연합이 어떤 조건으로 인정해주느냐에 따라 한국기업들이 질 부담의 강도가 달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13일(현지시각) 로이터는 유럽집행위원회(EC)가 유럽외 지역 탄소 배출권 시장 형성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붑커 훅스트라 유럽집행위원회 기후위원은 벨기에 브뤼셀에서 13일 열린 국제 싱크탱크 행사에 참석해 “유럽연합은 향후 유럽 외 지역에서 각국 사정에 맞춘 유럽연합 배출권 거래제도(EU-ETS)와 유사한 탄소 시장 수립에 ‘상당한 노력(significant effort)’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상당한 노력'이란 정책, 경제, 외교, 행정 등 유럽집행위원회 권한에 포함되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유럽집행위원회 발표에 따르면 이미 배출권 시장이 형성된 중국, 미국, 유럽연합, 영국 외에 다른 국가가 배출권 시장 수립을 지원하는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한다.

훅스트라 위원은 “더 많은 국외 탄소시장 형성을 지원하는 것과 함께 최종적으로는 이들 시장을 모두 연계시킬 것”이라고 설명했다.

로이터는 훅스트라 위원의 발언이 2026년 시행을 앞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지목한 것이라고 해설했다.

탄소국경조정제도란 유럽연합이 제3국의 수입제품에도 유럽연합 제품과 동등하게 탄소배출권 구매 의무화 등 환경 비용을 부과하는 제도다. 세금처럼 부과된다는 이유로 '탄소국경세'라고도 불린다. 

이 제도의 목적은 '탄소 누출(Carbon Leakage)' 즉 기업이 탄소배출량을 감축하는 대신 관련 세금이나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탄소배출 규제가 느슨한 국가로 이전하는 현상을 막는 것이다. 

철강, 알루미늄, 시멘트, 비료, 전력, 수소 등 온실가스 배출이 많은 6개 품목이 대상이다. 이 제도는 2023년 10월부터 2025년 12월까지 전환기간을 거쳐 2026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된다.

이에 해당 품목을 유럽에 수출하는 한국 기업들도 지난달부터 수출 제품별·분기별로 배출한 온실가스를 유럽집행위원회에 보고해야 할 의무가 부과됐다.

2026년 1월부터는 유럽으로 수출하는 기업들은 배출권을 구매하고 유럽집행위원회에 인증해야 한다. 

이 제도가 본격 시행되면 특히 유럽 수출 비중이 큰 포스코 등 철강 기업들에 부담이 커질 수 있다. 2022년 기준으로 탄소국경조정제도 대상 품목 중 철강의 비중은 89%에 이른다.

유럽연합 배출권이 한국보다 비싸다는 점도 부담 요인이다. 14일 기준 1톤당 8990원인 한국 배출권(KAU23)과 달리 유럽연합 배출권(EU-ETS)은 56.4유로(약 8만 원)로 거의 9배나 비싸다.

이 때문에 이 제도가 공표된 이후 한국 기업들은 유럽 수출 때 한국 내에서 지불한 탄소배출권을 그대로 인정받기를 원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한국에서 구매한 탄소배출권을 유럽 수출 때 인정받지 못하면 그만큼 추가로 비용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산업통상자원부 등 한국 정부기관들은 한국 배출권 거래제도(K-ETS)를 통해 구매한 배출권을 탄소국경조정제도에서 폭넓게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는 협상을 이어오고 있다.

K-ETS를 EU-ETS와 같이 톤당 기준으로 인정을 해줘야 하는지 또는 가격만큼 차감해줘야 하는지가 주요 논점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에 나온 훅스트라 기후위원의 발언은 유럽집행위원회 기후대표가 국외 배출권을 탄소국경조정제도에서도 인정해주겠다고 공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탄소배출권 전문기업 에코아이의 박현신 팀장은 비즈니스포스트 통화에서 “유럽연합이 배출권 거래 시장을 확대하기로 했다는 것과 탄소국경조정제도로 겪는 부담을 완화시켜주겠다는 측면에서 한 발언으로 의미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 탄소배출권도 유럽에서 인정받는다, EU 지역별 탄소시장 지원 공식화

▲ 7일(현지시각)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 위치한 의사당에서 개최된 유럽의회 본회의. <연합뉴스>

그러나 협의안이 구체화 되려면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박 팀장은 “한국 기업들의 부담이 얼마나 경감되는지는 앞으로 탄소국경조정제도에서 K-ETS를 통해 구매한 배출권을 어느 정도로 인정해주냐에 따라 다를 것으로 보인다”며 "현재는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로이터도 국가별로 배출권 제도 운영 구조, 배출권 가격, 적용되는 산업 분야 등이 다른 만큼 유럽연합이 향후 국외 배출권을 어떻게 인정해주는지가 관건이라고 분석했다.

훅스트라 위원은 “탄소국경조정제도와 관련해 각국에서 많은 ‘잡음(fuss)’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래도 이미 유럽연합은 각국과 협상해 제도를 안정적으로 구축하기 위한 적응을 해나가고 있는 단계에 들어섰다”고 강조했다.

탄소국경세는 유럽을 넘어 영국, 미국 등 주요국가로 점차 확산되는 추세에 있다.

영국 재무부는 지난해 12월 유럽연합과 같은 탄소국경조정제도(UK CBAM) 도입을 발표했다. 이 제도는 2027년 1월 시행된다. 적용되는 품목은 철강, 시멘트, 알루미늄, 비료 그리고 세라믹과 유리다.

미국은 2022년 상원이 발의한 청정경쟁법(CCA)가 올해부터 단계적 시행에 들어간다. 정유, 석유화학, 유리, 제지 등 12개 수입품목에 온실가스 배출 1톤당 55달러를 부과한다.

본격적 시행은 유럽연합 탄소국경조정제도보다도 빠른 2025년 1월로 계획됐다.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