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기후회의 직후 화석연료 확대 방침, '합의문이 면죄부 줬다' 비판 목소리

▲ 11월27일 국내 공급망 문제를 다루는 미국 백악관 회의에 참석한 알리 자이디 백악관 국가 기후 고문.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올해 들어 원유와 가스 생산을 늘린 미국이 앞으로도 화석연료 생산과 사용을 계속 늘릴 것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서 ‘화석연료로부터의 전환’에 동참하기로 합의한 미국이 총회 종료 이틀만에 화석연료 생산 확대 방향을 밝힌 것이다.

이에 COP28 합의문이 탄소포집 등 온실가스 저감 기술 사용 여지를 열어준 것이 '면죄부'가 됐다는 비판이 국제기후단체에서 나오고 있다. 

15일(현지시각) 알리 자이디 미국 백악관 국가 기후 고문은 블룸버그 TV와 인터뷰에서 “미국에는 앞으로도 화석연료가 필요하다”고 발언했다.

'미국이 단기적으로 화석연료 생산을 늘리는 것이 이번 합의문을 향한 배신으로 보냐'는 질문에 자이디 기후 고문은 "일단 우리 앞에 닥친 수요를 충당해야 하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답했다. 

자이디 고문은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건물, 이동수단, 에너지 모두 화석연료에서 얻고 있다"며 "우리는 그래도 에너지 수요의 충당 수단을 빠르게 친환경 에너지로 바꾸고 있다"고 덧붙였다.

변호사 출신인 그는 미국 기후변화 피해 현황과 전망을 정리한 '제5차 국가 기후 평가 보고서(NCA)'에도 참여했다.

미국은 올해 석유, 가스 등 화석연료 생산량을 계속해서 늘렸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11월 미국 천연가스 수출량은 카타르를 제치고 세계 1위에 올랐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10월 미국 일일 원유 생산량이 1324만 배럴을 넘겼다고 밝혔다. 올해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블룸버그는 미국이 인플레이션감축법(IRA)로 대표되는 친환경 전환에 수십억 달러를 사용하면서도 신규 화석연료 채굴 계획을 계속 승인해주는 이중적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유럽 동맹국의 요구로 원유와 가스 생산을 늘리고 있으며 그와 별개로 화석연료로부터의 에너지 전환 역시 이어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존 케리 미국 기후변화 특사는 5일(현지시각) 파이낸셜타임스와 인터뷰에서 “미국의 화석연료 생산 증대는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인한 유럽 동맹국들의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미국이 향후 몇 년 동안 화석연료 생산을 계속 늘려갈 것이기는 해도 재생에너지 발전량 증대와 배터리 생산 등 친환경 전환은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기후회의 직후 화석연료 확대 방침, '합의문이 면죄부 줬다' 비판 목소리

▲ 미국 텍사스주 페트라 노바 발전소 탄소포집 설비. <연합뉴스>

케리 특사는 14일(현지시각) COP28 현장 기자회견에서도 “조 바이든 대통령은 친환경 전환을 가속화하기 위해 확고한 전략을 세웠으나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전환을 향한 지지를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경제적 상황을 고려해 정의롭고 질서 있는 방식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중요한 것은 약속을 지킬 수 있는 수준으로 계획을 세우는 것”이라며 “(각 당사국들이) 다음 기후총회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상태로 오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번 COP28 최종합의문은 “각 당사국은 2030년까지 화석연료로부터의 전환을 시작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하지만 이러한 합의 내용을 따르려면 미국부터 화석연료의 생산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줄이기 시작해야 한다. 미국은 중국 다음의 온실가스 다배출국가이기 때문이다. 

유럽집행위원회 집계에 따르면 2021년 미국의 온실가스 배출 비중은 12.6%로 32.9%를 차지한 중국에 이어 세계 2위였다. 유럽연합(EU) 27개국을 모두 합한 7.3%보다 5% 이상 높았다.

미국은 화석연료 생산을 줄이는 대신 탄소포집시설을 확대하고 있다. 화석연료 증산으로 늘어난 온실가스 배출을 탄소포집을 통해 상쇄하겠다는 구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이디 고문의 발언이 있었던 것과 같은 날 미국 정부는 신규 탄소포집 설비 지원 계획도 발표했다.

로이터는 15일(현지시각) 미국 에너지부(DOE)가 국내 석탄 및 천연가스 발전소의 탄소포집 설비 구축을 위해 8억9천만 달러(약 1조1518억 원)를 지원한다고 보도했다.

블룸버그 뉴에너지파이낸스(BNEF) 집계에 따르면 미국이 지난 30년 동안 탄소포집 기술 분야에 투자한 누적 금액은 약 830억 달러(약 107조 원)로 세계 1위다.

이 투자가 완료되면 미국의 탄소포집력은 세계 최대 규모가 된다.

국제에너지기구 집계에 따르면 2030년까지 완공이 계획된 북미 지역 탄소포집 설비 규모는 이산화탄소 환산톤(CO2eq) 기준 1억6180만 톤이다. 아시아 2720만 톤과 유럽 9500만 톤을 합친 것보다도 많다.

탄소포집 기술은 화석연료가 연소할 때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모아 저장하는 기술이다. 

이론적으로는 화석연료를 태우면서도 온실가스 배출은 막을 수 있어 주목받고 있으나 효용성이 크게 떨어져 업계가 계속 화석연료를 사용할 수 있다는 근거로 악용한다는 시각도 있다.

블룸버그는 합의문에 “탄소중립(넷제로)와 온실가스 저감을 위해 탄소포집 저장 및 활용(CCUS) 기술을 활용할 수 있다”고 명시된 조항이 미국과 화석연료 업계가 앞으로도 채굴과 사용을 이어갈 수 있는 '생명줄(lifeline)'을 마련했다고 분석했다.

비영리단체 기후무결성센터(Center for Climate integrity)의 커트 데이비스 디렉터는 블룸버그를 통해 “나는 탄소포집 기술이 화석연료 업계의 ‘면죄부’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도 시대와 관계없이 탄소포집 기술은 실용성이 없는 기술로 남을 것이기 때문에 다른 대안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가디언은 14일(현지시각) "이번 기후총회는 화석연료업계가 수십년 동안 이어온 거짓말과 기만을 향한 책임을 질 수 있는 장이었다"며 "그러나 이들은 소위 말하는 '저탄소' 천연가스와 탄소포집을 통한 온실가스 '청소'와 같은 거짓말을 다시 선택했다"고 평가했다.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