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 인공지능 규제법안, '가속주의 VS 이타주의' 본격 대립 신호탄 되나

▲ 유럽연합(EU)은 인공지능 기술의 잠재적 위험성을 우려해 규제 법안을 발빠르게 준비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6월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 위치한 유럽연합 의회에서 의원들이 거수로 인공지능 규제법 찬성 여부에 투표하는 모습.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인공지능(AI) 규제에 전적으로 반대하는 ‘효과적 가속주의(Effective Accelerationism)’가 미국에서 실리콘밸리 주요 기업 대표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얻으며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유럽에서는 유럽연합(EU)의 인공지능 규제법안(AI Act) 합의 등 안전을 중시하는 ‘효과적 이타주의(Effective Altruism)’가 우세한 형국이다.

하지만 인공지능 규제법의 최종 적용까지는 2년 여의 시간이 더 필요해 인공지능 기술을 놓고 가속주의와 이타주의가 벌이는 대결이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12일 뉴욕타임스와 포브스 등 주요 외신을 종합하면 인공지능 규제를 없애자는 의견이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뉴욕타임스의 정보기술(IT) 전문 칼럼니스트 케빈 루스는 인공지능 규제를 없애자는 가속주의에 최근 실리콘밸리 인사들이 지지 의사를 공개적으로 선언하고 있다는 내용의 칼럼을 현지시각으로 10일 게재했다.  

이들은 인공지능 기술이 외부 규제에 영향을 받지 않고 제한 없이 이뤄져야 사회 문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해 이점이 더욱 커진다는 주장을 펼친다. 

소셜미디어 X(구 트위터) 계정 ‘베프 제조스’는 효과적 가속주의를 뜻하는 약어 ‘e/acc’을 달고 활동하면서 5만 명의 팔로워를 확보했다. 

포브스의 1일자 보도에 따르면 베프 제조스는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라도 기술의 성장을 촉진해야 한다는 주장에 동조한다며 “(정부) 기관은 구제할 수 없을 정도로 부패했으며 언론은 문화 통제를 위한 창구에 불과하다”는 글도 직접 게시한 적이 있다. 

포브스는 베프 제조스 계정을 전 구글 엔지니어이자 인공지능 스타트업 엑스트로픽 대표인 기욤 베르동이 운영하고 있다고 지목했다.

주요 기업의 인사들이 베프 제조스에 동조하면서 자신이 효과적 가속주의를 지지한다는 의사를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스타트업 액셀레이터인 ‘와이콤비네이터’의 게리 탄 대표가 그들 가운데 한 명이다. 포브스에 따르면 탄 대표는 베프 제조스를 ‘형제’라고 칭하며 그의 의견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챗GPT로 인공지능 열풍을 불러온 오픈AI의 샘 올트먼 최고경영자(CEO) 또한 효과적 가속주의에 반응하고 있다. 

2022년 6월 제프 베조스가 “오픈AI가 인공지능 개발에 선두를 달리고 있지만 나도 따라잡으려 노력해 보겠다”고 쓰자 올트먼은 “나를 추월할 수 없을 것“이라고 답글을 남겼다.
 
유럽연합 인공지능 규제법안, '가속주의 VS 이타주의' 본격 대립 신호탄 되나

▲ 샘 올트먼 오픈AI CEO가 7월11일 미국 아이다호주 선밸리에서 열린 비공개 사교모임 선밸리 콘퍼런스에 참석해 한 언론과 인터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2022년에 소셜미디어(SNS)에서 결성된 효과적 가속주의 집단은 온라인에서 의견을 나누는 것을 넘어 오프라인 모임도 활발히 전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11월6일 오픈AI의 개발자회의가 열린 직후엔 수백여 명의 효과적 가속주의 지지자들이 모이기도 했다. 

루스 칼럼니스트는 뉴욕타임스를 통해 “효과적 가속주의는 실리콘밸리에서 힘을 얻고 있으며 워싱턴에서 일하는 미 당국 관료들은 이 집단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고 경고했다”고 지적했다. 
 
효과적 가속주의가 추구하는 방식은 12월8일 세계 최초로 합의된 유럽연합(EU)의 인공지능 규제 법안과 대비되는 모양새다. 인공지능 규제법안은 인공지능 기술에 내재한 위험을 규제해야 한다고 본다는 점에서 효과적 이타주의와 관점이 유사하다. 

규제안은 인공지능으로 무분별하게 생체 인식을 하거나 개인과 기업 등의 사회적 영향력을 나타내는 ‘소셜 스코어링(social scoring)’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는 등 효과적 이타주의처럼 기술 발전보다는 인간과 사회의 안전을 더욱 중시한다. 

가속주의와 이타주의 사이에 의견 대립이 인공지능 법안의 세부 사항을 정하는 과정에서 본격화할 것이라는 시각도 한편에서 나온다. 

로이터는 12일자 보도에서 ‘상황을 잘 아는 관계자 2명’의 발언을 인용해 유럽연합이 인공지능 규제안의 법적 근거 등 세부 사항을 이날부터 논의를 시작할 것이라고 전했다. 

로이터는 특히 유럽연합이 “챗GPT와 같은 주요 인공지능 시스템을 어떻게 규제할지” 방안을 모색할 것으로 전망했다. 

가속주의를 옹호하는 집단이 규제안을 정하는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가능성도 있다. 이미 오픈AI가 유럽연합에 인공지능 기술이 위험하지 않다며 로비를 했던 정황이 6월20일 주간지 타임의 보도로 드러난 적도 있다.

결국 유럽의회와 각국에서 규제안이 확정될 것으로 전망되는 2026년까지 인공지능 기술 발전을 둘러싼 가속주의와 이타주의 집단은 치열하게 대결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뉴욕타임스는 “효과적 가속주의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다양한 의견을 보이고 있다”며 “일부 소수는 로봇이 인류를 장악해야 한다는 등 설득력이 떨어지는 주장도 서슴지 않아 현실에 영향을 미칠지는 미지수”라고도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