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전기차 지원에 자동차노조 반발, 바이든 '친환경'과 '친노조' 사이 딜레마

▲ 전미자동차노조(UAW)가 전기차 기업에 들어가는 정부 지원금 등을 문제삼아 파업을 예고했다. 노조는 '정의로운 전환'이 필요하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사진은 7월12일 미국 미시간주 스털링하이츠에 위치한 스텔란티스의 생산설비 앞에서 시위하는 숀 페인(우측) 전미자동차노조 위원장의 모습.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중요한 정책적 성과로 드는 전기차(EV) 산업 지원 정책에 속도를 내는 과정에서 내연기관차 노조를 중심으로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미국 대선에서 연임을 노리는 바이든 대통령은 중요한 지지 기반에 해당하는 노조의 목소리를 무시하기도, 받아들이기도 어렵다는 딜레마를 안게 됐다.

24일(현지시각) 미국 정치전문지 폴리티코에 따르면 전미자동차노조가 대규모 파업을 예고하면서 바이든 대통령에 정치적 부담을 키우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전미자동차노조는 바이든 정부의 전기차 지원 정책에 기존 내연기관차 산업 노동자들에 대한 ‘정의로운 전환’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을 비판하고 있다.

새로운 산업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기존 산업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충분한 대책이 논의되어야 하는데 바이든 정부의 전기차 육성 방안에는 이를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폴리티코에 따르면 전미자동차노조는 바이든 정부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해 수십억 달러 규모의 세금을 전기차와 배터리 생산에만 지원하고 있다는 점을 비판했다.

미국 정부가 인플레이션 감축법으로 기후변화를 막고 전기차를 비롯한 친환경 산업을 육성하는 정책에 책정한 재정 규모는 모두 3690억 달러(약 471조6300억 원)에 달한다. 

바이든 정부는 재정 지원뿐 아니라 미국 환경보호청(EPA) 등 행정기관을 통해 내연기관차 규제를 강화하면서 전기차 산업 육성에 속도를 내고 있다.

포드와 GM 등 자동차기업도 자연히 이런 정책에 맞춰 내연기관 차량 생산을 축소하고 정부 지원을 노려 전기차와 배터리 생산공장을 신설하는 사례를 늘리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자동차기업의 내연기관차 공장에서 근로하던 종사자들이 일자리를 잃거나 이전보다 불리한 근로 환경에 놓이는 등 문제가 불거졌다.
 
미국 전기차 지원에 자동차노조 반발, 바이든 '친환경'과 '친노조' 사이 딜레마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친환경 제조업 중심으로 산업을 재편하면서도 2024년 대선에 지지를 받기 위해 노조의 요구사항까지 챙겨야 하는 딜레마적 상황에 놓였다. 사진은 2022년 9월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오토쇼에 참여한 바이든 대통령이 쉐보레의 전기픽업트럭 실버라도에 탑승하는 모습. <연합뉴스>

전미자동차노조의 파업 예고는 바이든 정부 정책을 향한 불만이 마침내 수면 위로 떠올랐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전기차 등 친환경 산업을 지원하는 인플레이션 감축법 시행은 바이든 대통령이 임기 중 이뤄낸 최대 성과로 꼽힌다.

따라서 이런 정책이 효과적으로 미국 내 전기차 제조업 활성화 등 결과를 낳는 일은 지지율을 확보하는 데 중요하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은 노조 중심의 미국 노동자들을 이전부터 중요한 지지 기반으로 두고 있다는 점에서 전기차 지원 정책에 관련해 딜레마를 안게 됐다.

자동차기업의 전기차 중심 전환을 지원하는 정책을 지금과 같이 강행하면 노조의 계속되는 반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반면 노조 측의 요구를 받아들여 이러한 정책 시행에 속도를 조절한다면 인플레이션 감축법의 효과는 다소 낮아지게 될 공산이 크다.

폴리티코는 친환경 산업 중심으로 바이든 정부 경제정책의 우선순위가 재편되는 과정에서 내연기관차 등 화석연료 산업에 종사하던 노동자들이 중요한 정치적 변수로 떠올랐다고 지적했다.

특히 전미자동차노조는 수십만 명에 이르는 조합원을 두고 미국 전체 노동자들의 여론을 주도하는 역할도 하고 있어 선거의 향방을 결정짓게 될 수도 있다.

폴리티코는 전미자동차노조의 영향력이 큰 미국 미시건주를 대표적 예시로 들었다. 2020년 대선에서 미시건주가 바이든 대통령에 승리를 안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미국 민주당 소속의 프라밀라 자야팔 하원의원은 폴리티코를 통해 “미국 정부가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 전환에 필요한 과정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다면 큰 정치적 위협을 맞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더구나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2024년 대선에 출마해 당선되면 바이든 정부의 친환경 정책을 모두 철회하겠다고 공언하면서 바이든 대통령을 더 큰 딜레마 상황으로 밀어넣고 있다.

전미자동차노조는 현재 대선에서 지지할 후보를 결정하지 않았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바이든 정부의 친환경 정책을 적극 비판하는 공화당 쪽으로 여론이 기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바이든 대통령이 전기차 및 배터리 생산 투자를 지원하는 과정에서 자동차 제조사들에 내연기관차 공장 노동자 고용승계와 같은 대책을 요구하는 등 조건을 내걸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숀 페인 전미자동차노조 위원장도 최근 공식 영상메시지를 통해 미국 정부가 GM을 비롯한 자동차기업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내연기관차 산업 노동자들이 소외되도록 했다는 점을 비판했다. 이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