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Who Is ?] 윤윤수 휠라코리아 회장
윤윤수 휠라코리아 회장.


윤윤수는 1945년 경기도 화성에서 태어났다. 서울고와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신발제조사 화승에서 일을 배우며 스포츠 의류업계에 몸을 담았다.

화승을 나와 종합무역상사를 차리고 휠라와 인연을 맺었다.

휠라 본사의 권유로 휠라코리아를 설립해 대표이사를 맡았다.

합작법인을 세워 휠라의 이탈리아 본사를 인수한 뒤 합작법인으로부터 휠라의 글로벌 사업권을 인수했다.

경영활동의 공과
비전과 과제/평가
◆ 평가

윤윤수는 월급쟁이에서 시작해 오너 경영인의 반열에 오르면서 샐러리맨의 신화로 꼽힌다.

그는 ‘뚝심의 경영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1984년 ET인형 수출 실패 건으로 화승을 그만두고 신발 인형 등 다양한 품목을 취급하는 미니종합상사 대운무역을 차렸다.

화승에서 일할 당시 미국 출장을 갔다가 휠라를 처음 접했고 의류로 유명하던 휠라 브랜드로 신발을 만들어 미국에 팔면 잘 되겠다는 판단을 했다.

윤윤수는 미국에서 휠라 라이선스를 보유한 호머 알티스를 설득해 한국에서 만든 신발에 휠라 상표를 붙여 미국에 판매하는 데 성공했다. 신발장사가 의류 매출을 뛰어넘을 정도가 되자 1991년 휠라 본사에서 윤윤수에게 휠라코리아를 만들어 맡아 줄 것을 제안했다.

휠라코리아는 1992년 매출 150억 원을 냈고 이후 꾸준히 매출이 성장해 2000년에는 매출 1470억 원을 냈다. 10년도 되지 않아 매출을 10배가량 늘어난 것이다.

윤윤수는 2008년 휠라 신발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짝퉁’제작으로 유명한 중국 푸젠성으로 생산 기지를 이전했다.

생산기지 이전으로 생산원가를 50% 이상 낮춰 최대 소비시장인 미국에서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휠라의 짝퉁 제품 생산을 원천봉쇄하는 효과를 거뒀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 경력

1973년부터 1975년까지 해운공사에서 근무했다.

1975년부터 1981년까지 미국 유통업체 JC페니 한국지사에서 근무했다.

1981년부터 1984년까지 화승에서 수출담당 이사를 맡았다.

1984년 ET인형 수출 실패 건으로 화승을 나와 신발 인형 등 다양한 품목을 취급하는 미니종합상사 대운무역을 차렸다.

1991년부터 현재까지 휠라코리아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2011년 5월부터 골프장비업체인 아쿠쉬네트컴퍼니 회장을 맡고 있다.

◆ 학력

서울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74년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 가족관계

아내 이효숙씨와 슬하에 아들 윤근창, 딸 윤수연 1남1녀를 두고 있다.

◆ 상훈

1992년 한국산업포장, 1998년 제7회 전문경영인부문 다산경영상을 수상했다.

2000년 제34회 납세자의 날 대통령 표창, 2008년 제4회 한국CEO그랑프리 글로벌CEO부문 특별상, 2009년 이탈리아 국가공로훈장을 받았다.

2012년 제6회 언스트앤영 최우수 기업가상 마스터상, 2013년 제6회 코리아패션대상 대통령표창, 2014년 한국국제경영학회 글로벌 CEO 대상을 받았다.

◆ 상훈

1992년 한국산업포장, 1998년 제7회 전문경영인부문 다산경영상을 수상했다.

2000년 제34회 납세자의 날 대통령 표창, 2008년 제4회 한국CEO그랑프리 글로벌CEO부문 특별상, 2009년 이탈리아 국가공로훈장을 받았다.

2012년 제6회 언스트앤영 최우수 기업가상 마스터상, 2013년 제6회 코리아패션대상 대통령표창, 2014년 한국국제경영학회 글로벌 CEO 대상을 받았다.

어록


“휠라와 아큐시네트 외에도 3~4곳의 해외 기업을 인수했다. 해외 기업 인수가 성공하려면 일단 해당 분야에 대한 공부를 정말 많이 해야 한다. 우리 회사는 저와 휠라USA 사장을 비롯해 4명의 핵심 임원이 전담 팀을 짜 모든 협상에 들어간다. 인수 후에도 그 회사가 한국 기업이 아닌 해당 국가 기업, 나아가 글로벌 기업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기업 문화를 존중하는 것은 인수 후 통합의 시작점이다.” (2015/03/15, 한 매체와 인터뷰 중 해외기업 인수 비결을 묻는 질문에)

“2007년 휠라 글로벌 사업권 인수 후에 5년 동안 기초를 다시 다졌다. 최근 인수한 아쿠쉬네트도 경영이 견실하게 진행되어 가고 있다. 이제 수확만 남았다. 매년 10% 이상씩 성장하지 않겠나 내다보고 있다.” (2012/08/29,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부모의 투병이 동기 부여가 돼 서울대학교 의대에 도전했다가 세 차례나 낙방했다. 하지만 가난한 어린 시절에 이어 실패를 수없이 반복하는 시간이 이어졌어도 절대 좌절하지는 않았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 고난은 언제나 큰 재산이자 새로운 도전의 동력이 될 것이다.” (2012/02/24, 서울대학교 졸업식 축사에서)

“미국은 자회사 형태로 직접 운영하고 있으며 중국은 합작 투자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이외 나머지 해외 국가들은 라이선스 체제로 변환시켰다. 그 지역 패션 비즈니스에 정통한 굴지 기업과 파트너십을 맺어 현재 70여개 국가에서 휠라를 전개해 나가고 있고 라이선스를 준 기업들에게는 권한을 많이 주어 각 지역별 특성에 맞춰 소비자와 만나도록 하고 있다.” (2010/07/26,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휠라 글로벌 사업권 인수 후 변화를 묻는 질문에)

◆ 평가

윤윤수는 월급쟁이에서 시작해 오너 경영인의 반열에 오르면서 샐러리맨의 신화로 꼽힌다.

그는 ‘뚝심의 경영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1984년 ET인형 수출 실패 건으로 화승을 그만두고 신발 인형 등 다양한 품목을 취급하는 미니종합상사 대운무역을 차렸다.

화승에서 일할 당시 미국 출장을 갔다가 휠라를 처음 접했고 의류로 유명하던 휠라 브랜드로 신발을 만들어 미국에 팔면 잘 되겠다는 판단을 했다.

윤윤수는 미국에서 휠라 라이선스를 보유한 호머 알티스를 설득해 한국에서 만든 신발에 휠라 상표를 붙여 미국에 판매하는 데 성공했다. 신발장사가 의류 매출을 뛰어넘을 정도가 되자 1991년 휠라 본사에서 윤윤수에게 휠라코리아를 만들어 맡아 줄 것을 제안했다.

휠라코리아는 1992년 매출 150억 원을 냈고 이후 꾸준히 매출이 성장해 2000년에는 매출 1470억 원을 냈다. 10년도 되지 않아 매출을 10배가량 늘어난 것이다.

윤윤수는 2008년 휠라 신발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짝퉁’제작으로 유명한 중국 푸젠성으로 생산 기지를 이전했다.

생산기지 이전으로 생산원가를 50% 이상 낮춰 최대 소비시장인 미국에서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휠라의 짝퉁 제품 생산을 원천봉쇄하는 효과를 거뒀다는 평가를 받는다.

◆ 기타

저서로 <내가 연봉 18억원을 받는 이유>(1997,조선일보 간)와 <생각의 속도가 빨라야 산다>(2001, 여백)가 있다.

윤윤수의 어머니는 그를 낳고 100일 만에 장티푸스로 사망했으며 고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도 폐암으로 사망했다.

재수 끝에 서울대 치대에 합격했으나 서울대 의대를 가고 싶다는 꿈을 버리지 못하고 휴학한 뒤 삼수까지 했지만 서울대의대에 합격하지 못했다.

한국외국어대학 재학 때 외무고시에 수차례 도전했지만 낙방했다. 카투사병으로 군복무를 했다.

부인 이효숙씨는 여장부 스타일로 윤윤수가 처음 사업을 시작했을 때 비서와 운전기사, 청소부 역할을 다 담당했고 사업자금이 필요할 때마다 돈을 구해다 주기도 했다고 한다.

대학교 3학년 때 시험을 치던 중 갑자기 친구가 윤윤수의 답안지와 바꿔치기를 하다가 들켜 함께 정학을 받기도 했다.

취미는 골프로 핸디는 20 가량 된다. 2007년과 2009년에 두 번 홀인원을 했는데 첫 번째 홀인원을 한 뒤 휠라를 인수했고 두 번째 홀인원을 하고 2년 뒤에 아쿠쉬네트 회장이 됐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