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에서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반도체 지원법이 핵심의제로 다뤄지지 않았다. 

미국 기업 투자유치 규모 역시 우리기업의 미국 투자와 비교하면 미미한 수준이라 이창양 산업부 장관의 남은 미국 일정이 더욱 부담스러울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국빈방문 통상외교 성과 불투명, 주무장관 이창양 현지 고군분투

이창양 산업통상부 장관이 4월25일(현지시간) 워싱턴 D.C.에서 열린 '한미 첨단산업·청정에너지 파트너십 업무협약 체결식'에 참석해 인사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27일 정치권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한미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반도체 지원법에 관련해 뾰족한 결론이 나오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바이든 대통령은 정상회담 뒤 공동기자회견에서 IRA와 반도체 지원법 관련 질의에서 "누군가를 해치기 위한 것이 아니다"며 "SK와 삼성이 미국에서 경제성장을 창출하고 한국에서 일자리도 창출해 윈윈이다"고 말했다.

또한 "대부분 한국 기업은 미국이 안 좋은 영향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할 것"이라며 "한국이 경제적으로 잘 되는 것이 미국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말했다. 사실상 현상을 유지하려는 인식을 드러낸 것으로 여겨진다.

이에 따라 이번 정상회담에선 두 나라의 국가안보실에 '차세대 신흥·핵심기술대화'를 만들어서 기술과 인력 교류 등을 촉진협의체를 만들기로 합의하는 선에서 논의가 멈췄다.

이 장관으로서는 국빈으로 환대받았지만 IRA나 반도체 지원법과 관련해서는 국내 기업에 절실한 해법을 찾지 못한 채 빈손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커진 것으로 보인다.

올해 3월 기준으로 한국 수출이 6개월 연속 감소하는 가운데 특히 반도체 수출은 8개월 연속으로 내리막을 걷고 있기 때문에 이 장관은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반도체 지원법, IRA와 관련해 실질적 성과를 거두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미국 정부는 반도체 지원법에 따라 자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에 총 390억 달러(약 50조원) 지원금을 약속했지만 우리 기업이 반도체 보조금을 받으려면 초과이익을 공유하고 핵심 기술을 통째로 넘겨야 되는 상황이다.

중국공장 생산량 증가 5% 제한 조항 역시 해결되지 않았다. 기술적 업그레이드가 허용되면서 집적도를 높여 그나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D램과 달리 그것이 불가능한 낸드플래시는 사실상 중국 공장 유지가 어려운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크다.

2025년으로 예정된 IRA의 ‘외국 우려단체’ 핵심광물 사용금지 조항 또한 이번 회담에서 논의 요구가 제기됐으나 이뤄지지 않았다. 중국 핵심광물 의존도가 높은 우리 기업으로서는 미국과 논의해 시간을 버는 것이 필요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 일정은 27일에 상하원 합동의회 연설, 미군 수뇌부 정세브리핑, 28일에 보스턴 메사추세츠공대 디지털바이오분야 석학과 대화, ‘클러스터 라운드테이블’ 참석, 하버드대학교 정책연설이 남았다. 사실상 통상경제 분야에서 더 이상 정상급 논의가 진행될 공간이 없어 보인다.

애초에 양국이 IRA와 반도체 지원법 문제를 정상회담에서 핵심의제로 다룰 생각이 없었다는 관측도 나온다.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은 19일 브리핑에서 미국의 반도체법과 IRA 등이 의제가 될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당초 우려보다 우리 기업 피해가 크지 않은 방향으로 운영돼 왔다”며 “이번 회담에서 구체적인 건을 얘기할 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답했다.

대통령실은 두 법안 발표 이후 미국의 후속조치가 진행되며 상황이 개선됐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 지원법의 안전장치 조항은 미국이 중국 공장의 기술 업그레이드는 허용해주면서 숨통이 트였다.  

IRA로 막대한 피해를 입을 것으로 예상됐던 현대자동차는 SK온과 북미 배터리셀 북미 합작법인(JV)설립을 계기로 2026년부터는 오히려 IRA에 따른 혜택을 모든 차량이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 장관의 다른 과제였던 한국의 값싼 전기료를 둘러싼 미국과 통상마찰 문제는 아예 의제에도 올라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미국 정부는 우리 정부가 전기료를 왜곡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상무부는 윤 대통령 방미를 앞둔 18일 한국에서 미국으로 수출되는 철강 품목에 1.1%의 상계관세를 물려야 한다는 내용의 상계관세 관련 예비판정 결과를 발표했다.

상계관세는 국내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로 상대 수출국이 특정 상품에 수출장려금, 보조금 등의 혜택을 줘 가격을 현저히 싸게 했을 때 수입국이 경쟁력 상계를 위해 과세하는 차별관세이다.

전기료가 계속 원가 이하의 수준을 유지하면 미국과의 통상 문제는 점점 심각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 만큼 이 장관이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와 관련한 한국의 상황을 전달하고 미 상무부의 공감 정도는 얻어왔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의 값싼 전기료를 두고 미국의 공감을 얻지 못한다면 결국 통상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미국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으로 전기료를 인상하는 과정이 진행될 공산이 크다. 국내 여론 등을 고려하면 이 장관이 귀국 뒤 풀어야할 숙제다.

다만 이 장관이 이번 국빈 방문 동행에서 경제외교 성과를 아예 거두지 못한 것은 아니다.

이 장관은 26일 워싱턴DC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에서 한·미 양국 사이 첨단분야의 미래지향적 협력 강화를 위해 양국 기업·기관 대표 45명이 참석한 가운데 '한미 첨단산업·청정에너지 파트너십' 행사를 개최하고 모두 23건의 업무협약을 맺었다.

이번 업무협약은 배터리와 바이오, 자율주행차 항공, 로봇 등 첨단산업 분야 10건과 수소·원전·탄소중립 등 청정에너지 분야 13건이 포함됐다. 

이 장관은 "한미 양국이 그동안 군사·안보 동맹을 맺어온 것에 한발 나아가 첨단산업·기술동맹으로 외연을 넓힌 계기"라며 "이번에 심은 협력의 씨앗이 조만간 큰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이 장관은 장관급 채널에서 추가 성과를 도출하기 위한 노력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이 장관은 한국시각 28일 새벽 미국 에너지부·상무부 장관과 회담이 예정돼 있다. 김홍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