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MC 미국 투자로 대만 ‘실리콘 방패’ 잃을까 불안, 삼성전자 셈법 복잡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22년 12월6일 TSMC 애리조나 반도체공장 장비 반입식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EPA>

[비즈니스포스트] TSMC의 미국 파운드리공장 투자 계획을 두고 대만 현지에서 부정적 여론이 힘을 얻고 있다. 미국이 첨단 반도체 자급체제를 구축하면 대만과 협력할 필요성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TSMC가 미국 정부의 반도체 지원 정책에도 부정적 태도를 보이는 만큼 투자를 축소하거나 늦출 가능성이 떠오르며 경쟁사인 삼성전자의 셈법도 복잡해지고 있다.

대만 타이페이타임스는 20일 논평을 내고 “미국 정부의 반도체 온쇼어링(Onshoring) 정책은 대만의 경제가 중대 기로에 놓인 상황에서 큰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현재 한국과 대만 등 아시아 국가에 집중된 첨단 미세공정 반도체 공급망을 미국 내에 구축하도록 유도하는 '온쇼어링' 정책을 실행하고 있다.

바이든 정부에서 도입한 반도체 지원법을 통해 삼성전자와 TSMC 같은 기업의 미국 반도체공장 건설을 유치하고 시설 투자 보조금과 세제 혜택 등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내용이다.

특히 TSMC는 이런 정책에 적극 화답해 미국에 400억 달러(약 53조 원)을 들여 파운드리 생산공장을 신설하고 3나노 등 첨단 공정도 도입하기로 했다.

타이페이타임스는 TSMC의 결정이 대만 내부에서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자칫하면 대만의 ‘실리콘 방패’가 무너지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리콘 방패는 대만이 전 세계 첨단 반도체의 90% 이상을 생산하는 전략적 요충지로 미국 등 주요 국가의 보호를 받는 상황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중국의 대만 침공 등으로 TSMC의 반도체 공급이 어려워지면 미국이 자동차와 전자제품, 인공지능 등 산업에서 큰 타격을 받게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미국이 TSMC의 투자 유치를 통해 첨단 반도체 자급체제를 확보하면 대만을 보호해야 할 이유는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타이페이타임스는 미국 정부의 온쇼어링 정책이 결국 대만을 신뢰할 만한 파트너로 바라보지 않고 있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TSMC의 투자 결정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왔다. 미국에서 반도체를 생산하는 비용이 대만보다 훨씬 커 수익성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타이페이타임스는 TSMC의 미국 투자가 결국 중장기적으로 연구개발 투자 여력을 낮춰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비판했다.

장중머우 TSMC 창업주의 발언도 거론됐다. 그는 최근 미국 정부가 반도체 공급망 안정화를 위해 투자를 늘리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장중머우는 미국이 반도체 생산에 효율성이 높은 아시아 국가 대신에 미국 내 반도체 생산공장 유치에 힘쓰는 이유는 이해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타이페이타임스는 “대만이 세계 반도체 중심지 지위를 잃도록 하는 것은 대만의 경제 성장뿐 아니라 글로벌 반도체 산업을 해칠 수도 있는 결정”이라고 보도했다.

TSMC도 이미 대만 내부의 반발과 미국 정부의 까다로운 지원 조건을 의식해 미국 내 반도체공장 투자 확대에 이전과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다.
TSMC 미국 투자로 대만 ‘실리콘 방패’ 잃을까 불안, 삼성전자 셈법 복잡

▲ 대만 TSMC가 공개한 3나노 미세공정 반도체 웨이퍼.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TSMC는 미국 정부가 지원금 제공에 따른 조건으로 제시한 사업 기밀정보 공유 및 초과이익 환수 계획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류더인 TSMC 회장은 최근 대만에서 열린 산업 행사에 참석해 “(미국 반도체 지원법의) 일부 조건은 동의할 수 없다”며 “미국 정부와 논의를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만약 미국 정부가 현재 앞세우고 있는 조건을 철회하거나 조정하지 않는다면 TSMC로서는 대규모 투자를 강행해야 할 목적을 찾기 어려워질 수 있다.

TSMC가 기대한 만큼의 지원을 받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점도 반도체공장 설립에 변수로 꼽힌다.

당초 TSMC는 520억 달러에 이르는 미국 정부의 반도체 보조금 가운데 60~70억 달러 가량을 확보하겠다는 목표를 두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 상무부에 따르면 현재까지 반도체 보조금 신청에 관심을 보인 기업 수는 200곳 안팎에 이를 정도로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

인텔과 마이크론 등 미국 반도체기업이 정부 지원을 받기 더 유리한 상황에 놓였다는 점도 TSMC가 기대한 만큼의 지원을 받기 어려울 수밖에 없는 배경으로 지목된다.

삼성전자 역시 반도체 보조금을 노려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 170억 달러를 들이는 반도체 파운드리공장을 설립하고 있다.

만약 TSMC가 대만의 여론 악화와 미국 정부의 소극적 지원에 대응해 투자를 대폭 축소하거나 늦춘다면 삼성전자는 상대적으로 보조금 확보에 반사이익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삼성전자 역시 미국보다 한국에 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는데다 미국 정부 보조금 지급 조건에 따른 부담을 안고 있어 복잡한 셈법을 앞두고 있다.

타이페이타임스는 “대만의 반도체산업 관련한 문제는 모두가 만족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며 “그러나 대만 정부가 최대한 많은 시간을 벌어야만 한다”고 보도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