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MC 미국에서 퀄컴 4나노 반도체 생산, 대규모 투자 ‘회의론’도 힘 실려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22년 12월6일 TSMC 애리조나 반도체공장 장비 반입식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 EPA >

[비즈니스포스트] 대만 TSMC가 미국 애리조나주에 신설하는 반도체 파운드리공장에서 내년부터 퀄컴의 모바일 반도체 양산을 시작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러나 바이든 정부의 반도체 지원법 및 비용 부담 등 변수로 TSMC의 대규모 투자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되기 어려울 수 있다는 회의론도 고개를 든다.

21일 대만 경제일보 보도에 따르면 TSMC는 내년부터 미국 애리조나 공장에서 예정대로 4나노 미세공정 반도체 위탁생산을 시작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모바일 반도체 전문기업 퀄컴이 TSMC 미국 공장의 첫 고객사로 자리잡고 있다.

팀 쿡 애플 CEO도 최근 TSMC의 미국 반도체공장 장비 반입식에 참석해 해당 공장에 반도체 위탁생산을 맡길 것이라는 계획을 밝혔다.

TSMC가 미국 공장 가동을 시작하는 초반부터 퀄컴과 애플 등 대형 시스템반도체 위탁생산 고객사를 확보하면서 순조롭게 사업을 시작하게 된 셈이다.

반도체장비 반입식에서 TSMC는 애리조나 공장에 투자 규모를 기존 120억 달러(약 15조7천억 원)에서 400억 달러(52조3천억 원)로 크게 늘리겠다는 목표도 처음 제시했다.

기존에 예정된 4나노 미세공정 이외에 최신 기술인 3나노 반도체 생산라인도 도입하며 미국 내 투자 규모를 대폭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TSMC의 미국 투자 확대를 두고 대만 내부에서 회의론이 갈수록 힘을 얻고 있다. TSMC의 투자 여력이 미국에 분산돼 대만 내 시설 투자가 상대적으로 위축될 수 있다는 이유다.

TSMC가 대만에서 근무하던 반도체 전문인력을 미국 공장으로 대거 이동하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는 만큼 우수한 기술 인재가 해외로 유출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정치권에서 나오고 있다.

장중머우 TSMC 창업주도 미국에서 반도체공장을 운영하는 데 드는 비용 등 단점을 강조하면서 현지 시설 투자 확대에 관련해 부정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는 최근 대만에서 열린 경제포럼에 참석해 “대만과 미국에 시설 투자를 벌일 때 발생하는 차이를 과소평가했다”며 공장 가동에 들이는 비용이 대만의 2배 이상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다.

대만 타이페이타임스는 이와 관련해 논평을 내고 “일부 전문가는 두 국가의 반도체공장 운영 비용 차이가 4배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마저 내놓고 있다”며 “TSMC는 미국 정부의 보조금에 기대를 걸고 있지만 이는 지나치게 낙관적인 생각”이라고 지적했다.
 
TSMC 미국에서 퀄컴 4나노 반도체 생산, 대규모 투자 ‘회의론’도 힘 실려

▲ 대만 신주과학단지에 위치한 TSMC 연구개발센터.

TSMC가 미국에 과감하게 투자 확대 계획을 발표한 데는 바이든 정부의 적극적 시설 투자 지원 정책이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바이든 정부에서 시행하는 반도체 지원법에 따라 전 세계 반도체기업이 미국 내 공장 건설 및 연구개발 투자에 520억 달러(약 68조 원)의 지원금과 추가 세제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 상무부가 최근 보조금 제공과 관련해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면서 TSMC가 투자 확대를 통해 확보하게 될 실익이 줄어들 가능성이 유력해졌다.

정부 지원을 받는 기업이 반도체사업에서 발생하는 초과 이익을 일부 반환해야 하고 향후 중국 내 시설 투자에도 제약을 받게 됐기 때문이다.

타이페이타임스는 “미국 정부가 TSMC에 보조금을 제공할 때 이런 조건에 예외를 적용할 지는 불투명하다”며 “대만 정부가 TSMC의 투자 확대와 관련해 더 심각한 고민을 안게 됐다”고 보도했다.

TSMC가 첨단 반도체 미세공정 기술과 전문인력 유출 등 리스크를 안고 미국 공장에 투자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실질적으로 유의미한 이익을 거둘 수 있을지도 불확실해졌다는 것이다.

장중머우 창업주는 상무부의 엄격한 지원금 제공 조건이 결국 반도체 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고객사와 소비자의 부담을 키울 수 있다는 점도 언급했다.

대만 정부와 장 창업주가 이처럼 TSMC의 미국 공장 투자에 부정적 태도를 유지한다면 앞으로 TSMC의 향후 사업 계획과 의사결정에 압박을 키울 수 있다.

장 창업주는 현재 TSMC 경영에 정식으로 참여하지 않고 있지만 공개석상과 외부 행사 등에 활발하게 참석하며 사실상 TSMC의 대기업 총수와 같은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가 결과적으로 TSMC의 미국 시설투자 계획 축소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고개를 든다.

중국 IT지가 보도에 따르면 이미 TSMC의 미국 공장에서 생산장비 반입 등 투자 속도가 다소 늦어지는 추세도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TSMC의 미국공장 가동 시기가 기존에 계획된 2024년에서 2025년으로 늦춰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 상무부의 TSMC 투자 보조금 제공 규모와 지원 조건 등이 앞으로 최종 투자 규모와 생산라인 구축 속도 등에 변수로 자리잡을 공산이 크다.

삼성전자도 TSMC와 마찬가지로 미국 텍사스주에 첨단 반도체 파운드리 생산공장을 건설하고 있는 만큼 이와 비슷한 고민을 안게 될 수밖에 없다.

로이터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기존에 170억 달러(약 22조2천억 원)로 추산하고 있던 미국 반도체공장 투자 금액이 인건비 상승 등에 따라 크게 늘어날 가능성이 유력하다. 삼성전자가 이런 변수를 고려해 투자 계획을 늦추거나 규모를 축소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