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 발표, 처벌에서 기업 자율규제로 전환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11월30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정부가 산업 현장에서 발생하는 노동자 사망 사고 등 중대재해를 줄이기 위해 사후 규제·처벌 중심에서 기업 자율에 맡기는 방식으로 대응 기조를 바꾼다.

고용노동부는 30일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발표했다.

로드맵은 사고사망만인율(근로자 1만 명당 산재 사고사망자 수)을 2026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0.29퍼밀리아드로 감축하는 것을 목표로 뒀다. 

우리나라의 2021년 사고사망만인율은 0.43퍼밀리아드로 OECD 38개국 가운데 34위에 머물러 있다. 2020년 1월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 시행, 2022년 1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등으로 처벌을 강화했지만 사고사망만인율은 8년째 0.4~0.5퍼밀리아드 수준에서 머물러있다.

정부는 사고사망만인율을 낮추기 위해 위험성평가를 핵심수단으로 자기규율 예방체계를 확립하기로 했다. 2023년부터 300인 이상 대기업을 대상으로 위험성평가를 의무화하고 2024년에는 50~299인, 2025년에는 소규모 5~49인 사업장까지 단계적으로 적용한다.

자기규율 예방체계란 △정부가 제시하는 하위규범·지침을 토대로 노사가 함께 사업장 특성에 맞는 자체 규범을 마련해 △평상시에는 위험성평가를 핵심 수단으로 사업장 내 유해·위험요인을 스스로 발굴·제거하고 △사고가 발생하면 예방노력의 적정성을 따져 결과에 대한 책임을 부여하는 안전관리 방식을 말한다.

위험성평가의 현장 안착을 뒷받침하기 위해 산업안전감독 및 법령 체계를 전면 개편한다.

정기 산업안전감독을 '위험성평가 점검'으로 전환해 위험성평가 적정 실시여부, 위험성평가 결과의 근로자 공유 여부, 재발방지대책 수립·시행 여부 등을 근로자 인터뷰 방식 등을 통해 확인하고 컨설팅, 재정지원 사업과 연계한다.

산업‧기술 변화 등을 반영해 안전보건기준규칙 모든 조항(679개)을 현행화한다. 안전보건기준규칙 가운데 필수적으로 준수해야 하는 핵심규정은 처벌이 가능하도록 법규성을 유지하면서도 개별 사업장의 특성을 반영해 유연한 대처가 필요한 사항은 기술가이드 형식으로 구체적 내용을 제공한다.

중소기업 등 중대재해 취약 분야를 집중 지원·관리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우리나라 중대재해는 규모별로는 50인 미만 소규모 기업에서 80.9%, 업종별로는 건설업과 제조업에서 72.6%, 사고유형별로는 추락‧끼임‧부딪힘 사고가 62.6%, 원‧하청별로는 하청 사업장에서 40%가 발생하고 있다. 

이에 50인 미만 소규모 기업에 맞춤형 시설과 인력 지원을 통해 안전관리 역량 향상을 돕는다. 특히 소규모 기업이 밀집한 주요 산업단지는 공동 안전보건 관리자를 선임할 수 있도록 하고 화학 안전보건 종합센터를 신설·운영하기로 했다.

건설업과 제조업에는 인공지능(AI) 카메라, 추락 보호복 등 스마트 기술·장비를 중점적으로 지원하고 근로자 안전확보 목적의 CCTV 설치도 제도화한다. 이와 함께 하청 근로자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해 원청 대기업이 하청 중소기업의 안전보건 역량 향상을 지원하는 사업을 늘리기로 했다.

근로자의 안전보건 참여를 대폭 확대한다. 산업안전보건법상 근로자 참여 중심 기구인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설치 대상 사업장을 '100인 이상'에서 '30인 이상'으로 넓히며 근로자의 핵심 안전수칙 준수 의무를 산업안전보건법에 명시한다.

노사정 안전일터 공동선언, 지역 단위 안전문화 실천 추진단 구성‧운영, 업종 단위 계절․시기별 특화 캠페인 등 범국가 차원의 안전캠페인도 대대적으로 펼친다.

중대재해 감축 정책의 효과성을 높이기 위해 안전보건 서비스 전달 기관 사이 협업 및 거버넌스 구축에도 힘쓴다.

양질의 종합 기술지도·컨설팅을 제공하는 '안전보건 종합 컨설팅 기관'을 육성하고 평가체계를 개편해 우수기관에 공공기관 안전관리 용역 발주 시 가점 등 인센티브를 확대한다. 기술지도, 재정지원 등 안전보건공단의 중소기업 지원 기능을 확대·개편하고 위험성평가제 전담조직도 신설한다.

사고 발생시 골든타임 확보를 위해 응급의료 비상 대응체계를 정비한다.

응급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근로자 대상 CPR(심폐소생술) 교육을 근로자 의무 교육시간으로 인정한다. 이를 통해 2026년까지 사업장 내 CPR이 가능한 근로자를 50%까지 확대한다.

중대재해 상황공유 체계도 고도화한다. 가칭 ‘산업안전비서’ 챗봇 시스템 등을 통해 일반 국민에게 실시간으로 중대재해 속보를 전파·공유하고 지자체, 직능단체, 민간기관, 안전관리자 네트워크 등을 활용하여 사고속보를 실시간으로 문자 전송한다. 중대재해 현황 등을 지도 형태로 시각화한 사고분석·공개 플랫폼도 구축한다.

이정식 장관은 "금번 로드맵은 선진국의 성공 경험, 수많은 안전보건 전문가와 현장 안전보건관계자의 제언에 기초해 마련한 우리 현실에 맞는 가장 효과적 중대재해 감축 전략"이라며 "로드맵이 차질 없이 추진되면 누구나 안심하고 일할 수 있는 대한민국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선진국도 자기규율 예방체계로 전환 과정에서 다양한 우려사항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자기규율 예방체계가 중대재해 감축을 위한 가장 효과적 전략이라는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함으로써 큰 성과를 거뒀다"며 "우리도 확신을 가지고 흔들림 없이 추진한다면 우리 일터 안전수준이 획기적으로 높아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남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