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르 월드컵 정치적 논란 역대급, 피파 파트너 현대차그룹 '난감'

▲ 사상 처음 이슬람 국가에서 열린 카타르 월드컵에서 역대급 정치적 문제들이 불거지면서 공식 후원사인 현대자동차와 기아가 부정적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시선이 나온다. 사진은 21일(현지시각) 카타르 도하 칼리파 국제경기장에서 열린 조별리그 B조 1차전 경기를 앞두고 이란 축구 대표팀 선수들이 침묵한 채 국가를 듣고있는 모습.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1968년 멕시코 올림픽. 남자 육상 200미터 경기에서 금메달과 동메달을 각각 목에 건 미국 육상선수 토미 스미스와 존 카를로스는 시상식에서 미국 국가가 흘러나올 때 검은 장갑을 낀 주먹을 들고 눈을 감은채 고개를 숙였다.

당시 미국에 팽배해 있던 인종차별에 반대한다는 뜻을 보인 것이었다.

50여 년이 지나 열린 카타르 월드컵에서 이와 비슷한 장면이 재연됐다. 이란 축구 대표팀은 잉글랜드와의 대회 첫 경기에 앞서 이란 국가가 울려퍼지자 11명의 선발선수 모두가 굳은 표정으로 침묵했다. 

9월 히잡을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체포됐던 여대생이 의문사하면서 두 달 넘게 이어지고 있는 이란 반정부 시위에 지지를 보낸 것으로 풀이된다.

사상 처음 이슬람 국가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여러 정치적 논란들이 역대급으로 불거지면서 공식 후원사인 현대자동차와 기아가 부정적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시선이 나온다.

29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현대차와 기아는 카타르 월드컵에서 탄소중립 등 친환경 캠페인을 중심으로 월드컵 마케팅 활동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대차와 기아는 카타르 월드컵에 각각 616대, 297대의 자동차를 운영 차량으로 제공했다. 그 가운데 현대차 236대, 기아 80대가 전기차, 하이브리드차,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 등 친환경차다. 대회 공식 운영 차량으로 친환경차가 사용되는 것은 월드컵 후원 역사상 처음이다.

현대차는 카타르 월드컵에 대비해 올해 4월부터 '세기의 골' 캠페인을 진행해왔다. 축구 경기에서의 골 뿐 아니라 미래 세대를 위해 지속가능한 세상이라는 하나의 큰 골(목표)을 향해 함께 힘을 모으자는 취지다.

이를 위해 현대차는 글로벌 명사들을 모아 글로벌 브랜드 홍보대사 '팀 센츄리'를 출범했다. 주장인 전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 선수 스티븐 제라드를 비롯해 방탄소년단, 박지성, 미국 유명 패션디자이너 제레미 스캇, 현대차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로봇개 스팟 등 11명으로 구성됐다.

팀 센츄리 멤버는 각자의 전문 분야에서 지구의 지속가능한 미래와 탄소 중립 월드컵을 만들기 위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서포터를 모집해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다만 카타르 월드컵에서 정치적 논란이 잇따르고 있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담은 친환경 활동을 중심으로 현대차와 기아가 펼치고 있는 월드컵 마케팅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는 시선이 나온다. 

이란 대표팀의 저항으로 정치적 이슈가 카타르 월드컵 전면에 등장한 가운데 월드컵 개막 전부터 제기돼 온 카타르의 이주노동자, 성소수자 인권 관련 문제들이 지구촌 축구 축제의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해 영국 가디언지는 카타르가 월드컵 유치에 성공한 2010년 12월부터 10년 동안 인도와 파키스탄, 네팔,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등에서 온 이주노동자 6500명이 월드컵 관련 현장에서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카타르에 위치한 각국 대사관에서 제공한 자료를 바탕으로 추정한 것이다.

다만 카타르 정부는 모든 사망자가 월드컵 관련 노동현장에 투입된 것은 아니므로 집계에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반박했다.

또 카타르는 동성애를 법으로 금지하고 있는데 이를 위반하면 징역형을 받거나 이슬람 율법에 의해 사형에 처해질 수도 있다.

이런 논란 속에서 영국 BBC는 카타르 월드컵 개막식을 생중계하지 않았다. 공식적으로 이유를 밝히진 않았으나 대회 전 불거진 카타르 인권문제에 따른 결정으로 해석된다.

앞서 잉글랜드, 독일, 네덜란드, 벨기에, 웨일스, 스위스, 덴마크 등 7개 대표팀 주장들은 카타르 관련 논란이 이어지자 모든 차별에 반대한다는 뜻을 담아 무지개색 '원 러브' 완장을 차고 경기를 뛰기로 했다. 그러나 국제축구연맹(FIFA)이 원 러브 완장을 착용하면 옐로카드를 주겠다고 밝히면서 해당 계획은 무산됐다.

원 러브 캠페인은 네덜란드 축구협회가 2020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20)에서 차별에 반대하고 다양성과 포용을 촉진하기 위해 시작했다.

일각에서는 글로벌 기업이 지향하는 가치와 부합하지 않는 개최지에서 월드컵을 공식 후원하는 것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올해 6월 현대차는 미국 유튜브 채널에 성소수자 관련 브랜드 홍보 영상을 올리며 "현대차는 성소수자(LGBTQ+)의 여정을 1년 365일 지원한다"고 말했다.

이에 허프포스트 영국은 현대차를 포함한 코카콜라, 아디다스, 버드와이저 등 카타르 월드컵 공식 스폰서에 후원한 이유와 성소수자 포용성 공약을 어겼다는 비판에 관한 대응 방안을 물었다.

현대차는 "FIFA가 주최국들과 함께 인권을 완전히 존중하고 그렇게 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서 면밀히 감시할 것으로 기대한다"는 원론적 답변을 내놓은 것으로 전해진다.

국제엠네스티도 월드컵 스폰서 기업들에 인권문제를 묻는 메일을 보냈다. 이 질문에도 현대차는 허프포스트에 보낸 것과 거의 같은 내용으로 답변했다.

카타르 월드컵 최상위 후원사인 '피파 파트너'는 현대차·기아와 독일 아디다스, 코카콜라, 중국 완다그룹, 카타르항공, 카타르에너지, 미국 카드사 비자 등 7개 글로벌 기업이 맡고 있다. 

현대차와 기아는 1999년 FIFA와 파트너십을 맺은 뒤 2002 한일월드컵부터 카타르 월드컵까지 6회 연속으로 피파 파트너를 맡아왔다. 

이 기간 현대차·기아의 글로벌 자동차 판매량은 1999년 202만 대(현대차 127만 대, 기아 75만대)에서 지난해 667만 대(현대차 389만 대, 기아 278만 대)로 3배 넘게 뛰었고 두 회사는 올 상반기 합산 판매실적 기준 글로벌 3위의 글로벌 완성차업체로 성장했다.

다만 최상위 후원사로써 많은 자원을 투입한 현대차와 기아의 월드컵 마케팅이 개최지 카타르가 역대급 논란에 휩싸이면서 기업 이미지에 나쁜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시선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카타르 월드컵은 스포츠 이벤트 차원에서 후원을 하는 것일 뿐이다"고 말을 아꼈다. 허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