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바게뜨 신뢰 회복 갈 길 멀다, 쇄신 의견 요청에 소비자 날선 비판

▲ 파리바게뜨가 기업문화를 개선한다는 취지로 고객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 하지만 고객들은 파리바게뜨의 행보에 싸늘한 시선만 보내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SPC그룹의 베이커리 브랜드 파리바게뜨가 기업문화를 개선한다는 취지로 고객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

하지만 SPC그룹 계열사의 노동자 사망사고 이후에도 여러 논란이 이어진 탓에 고객들의 시선은 여전히 싸늘하기만 하다.
 
29일 파리바게뜨에 따르면 15일부터 홈페이지에 ‘고객의 목소리를 듣겠습니다’라는 코너를 열고 고객 의견을 모으고 있다.

파리바게뜨는 이 코너의 취지를 놓고 “다시 태어나는 마음으로 고객 여러분들의 말씀에 귀 기울이겠다”며 “고객님의 목소리를 거울삼아 거듭날 수 있도록 반드시 변화해 나가겠다”고 설명했다.

SPC그룹 계열사 SPL에서 10월15일 노동자 사망사고가 발생한 뒤 회사의 대처에 분노한 소비자를 중심으로 불매운동이 벌어지자 이에 대응하기 위한 목적으로 보인다. 노동자 사망사고 이후 파리바게뜨 매출은 가맹점별로 20~30%가량씩 하락한 것으로 파악된다.

파리바게뜨는 △안전 △기업문화 △상생 △품질 △기타 등 5가지 항목을 두고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선택하도록 했다. 복수 선택도 가능하다.

또한 파리바게뜨에 바라는 점과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점도 자유롭게 남길 수 있다. 파리바게뜨는 12월31일까지 이 창구를 열어두기로 했다.

소비자들의 참여는 많은 편이다. 25일 오전 10시 기준으로 2844건의 의견이 모였다.

구체적으로 어떤 의견들이 나왔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파리바게뜨는 의견을 모두 취합한 뒤 회사가 변화해가는 모습을 파리바게뜨 홈페이지 내 ‘파바의 약속’이라는 코너에서 12월부터 지속적으로 공개하겠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하지만 고객들의 반응을 전혀 확인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파리바게뜨는 고객 목소리를 듣는 창구를 열겠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타그램에 글을 게시했다. 이 게시물에 댓글을 남긴 소비자들의 반응을 보면 고객들이 파리바게뜨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엿볼 수 있다.

파리바게뜨가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적절하지 않은 곳에서 찾고 있다는 질책이 대다수다.

이들은 “고객 서비스가 문제가 아니라 직원 안전 관리가 문제인데 고객에게 무슨 의견을 듣는다는거냐” “대상이 틀렸다, 직원들의 목소리가 퍼스트다” “이것을 고객에게 묻냐, 뭐가 문제인지 파리바게뜨 스스로가 모르냐. 의견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인 것을 모르겠냐“고 질책했다.

사고는 회사 내부에서 터졌는데 개선안을 임직원들에게서가 아니라 소비자에게서 찾겠다고 나선 것에서부터 파리바게뜨가 아직 문제의 심각성을 잘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파리바게뜨가 고객 목소리를 듣겠다고 나선 취지와 상관없이 회사의 행보에 곱지 않은 시선이 쏟아지고 있는 셈이다.

파리바게뜨는 고객 목소리를 듣는 것과 별개로 이미 임직원을 대상으로 회사의 개선 방향과 관련한 제안을 취합하는 창구를 별도로 만들어놓고 있다는 입장을 전해왔다.

그럼에도 고객들의 시선은 차갑다. 파리바게뜨의 움직임이 ‘보여주기’를 의식한 행보라고 보는 사람도 적지 않다. 케이크 판매 성수기인 크리스마스 대목을 앞두고 어떻게든 매출을 회복하기 위해 ‘우리도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알리기 위한 의도라는 것이다.

고객들은 파리바게뜨 인스타그램 게시물에 “회사가 할만큼 하고 있으니 우리 좀 봐달라는 취지로밖에 안 보인다” “크리스마스를 눈앞에 두고 어떻게든 케이크 매출을 올리려는 것 같다”고 댓글을 달았다.

소비자들이 싸늘한 시선을 거두지 않는 까닭은 애초 SPC그룹이 스스로 논란을 키운 데도 이유가 있다. SPC그룹이 노동자 사망사고 이후 대처하는 과정에서 부적절한 행보가 여럿 보였기 때문이다.

단적인 사례는 사망사고가 벌어진 현장의 바로 옆 라인의 가동을 멈추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고를 제대로 수습하지도 않고 공장을 돌렸다는 사실은 소비자 불매운동의 도화선이 됐다. 
 
파리바게뜨 신뢰 회복 갈 길 멀다, 쇄신 의견 요청에 소비자 날선 비판

허영인 SPC그룹 회장(사진)이 10월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양재동 SPC 본사에서 SPC그룹 계열사 SPL의 제빵공장 사망사고 와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자 허영인 SPC그룹 회장이 직접 기자회견을 열고 공식적으로 사과하기도 했다. 하지만 허 회장이 질의응답을 받지 않고 준비된 사과문만 읽고 기자회견장을 빠져나갔다는 사실도 소비자들에게 부정적 인식을 심은 것으로 여겨진다.

11월 초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이 SPC삼립에 현장조사를 나갔을 때 한 직원이 이 감독관의 가방을 뒤져 감독계획서를 몰래 촬영하고 사내 메신저로 이를 SPC삼립 본사와 다른 계열사에 공유한 사실은 SPC그룹의 도덕성에도 치명타를 줬다. 

파리바게뜨는 고객들의 싸늘한 시선과 관련해 별도 게시물을 올려 “하루 만에 천여 개 넘게 입력된 소중한 비판과 질책을 경영진과 임직원 모두 하나하나 읽고 듣고 있다”며 “구성원들의 목소리와 함께 계속 귀 기울여 듣고 꾸준히 변화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젊은 구성원 중심의 팀을 새로 만들어 구성원 주도로 기업문화를 개선하고 있다’ ‘직원들의 안전한 근무 환경을 위해 외부 전문기관을 통한 공장 안전진단 후 개선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독립된 활동을 보장하는 SPC 안전경영위원회를 공식 출범했다’는 사실도 알렸다.

유통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금으로서는 파리바게뜨가 어떤 일을 하더라도 비난할 준비부터 하고 있는 소비자들의 부정적 시각을 바꾸지 못하고 있는 상황으로 보인다"며 "파리바게뜨 사망사고와 관련해 사정당국의 수사에서 책임 소재가 먼저 명확하게 규명되고 이와 관련해 SPC그룹이 좀 더 구체적인 개선방안을 내놓기 전까지는 계속 이런 상황이 지속될 수밖에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