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반도체기업 미국 제재에 활로 찾는다, 기업공개로 자금조달 '러시'

▲ 중국 반도체 및 관련기업들이 최근 기업공개(IPO)를 통해 연구개발 자금 조달을 시도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중국 SMIC 반도체 생산공장.

[비즈니스포스트] 미국 정부가 중국 반도체기업을 대상으로 한 수출규제 조치를 강화한 뒤 중국 반도체기업들이 기업공개(IPO)를 통해 자금 조달을 시도하는 사례가 빠르게 늘고 있다.

자국 반도체기업의 연구개발 역량을 키워 미국의 제재에 정면으로 대응하겠다는 중국 정부의 입장이 반영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8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따르면 11월 한 달 동안 중국 반도체 관련기업 9곳이 잇따라 기업공개 신청서를 제출하고 상장 준비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중국 파운드리 2위 업체인 화홍반도체가 상하이증시에 성공적으로 상장했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다양한 기업들이 이런 성공사례 재현을 노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화홍반도체는 이미 홍콩증시에 상장돼 거래되고 있는데 최근 상하이증시 이중상장을 통해 25억 달러(약 3조3천억 원)에 이르는 추가 자금을 조달하는 데 성공했다.

뒤를 따라 상장에 나선 중국 반도체기업 및 반도체 패키징기업, 소재기업 9곳이 조달을 계획하고 있는 금액은 총합 30억 달러(약 4조 원)에 이른다.

중국 반도체기업 및 관련기업은 대부분 중국 정부의 자금 지원을 바탕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들의 상장을 통한 자금 확보에도 중국 국영펀드가 큰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투자은행 나틱시스의 분석을 인용해 “중국 반도체기업의 상장은 손쉬운 자금 조달로 연구개발 역량을 키우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 정부는 자국 반도체기업의 성장을 지원해 중국이 해외 기업에 의존을 낮추는 강력한 반도체 자급체제를 구축하도록 하겠다는 목표를 두고 있다.

최근 중국 반도체 관련업체들의 상장에 더욱 가속도가 붙은 것은 미국 정부의 제재 강화가 주요 원인으로 분석된다.

미국 상무부는 최근 새 수출 규제를 통해 중국 반도체기업이 첨단 반도체장비와 소프트웨어 등을 확보하기 어렵도록 하는 조치를 적용했다.

바이든 정부가 중국의 반도체 공급망을 고립시켜 글로벌 기술 경쟁에서 미국의 우위를 강화하는 전략을 펴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가 이에 대응해 자국 반도체기업의 자체 기술력 확보에 더욱 속도를 내도록 하면서 자금을 지원하기 위한 수단으로 상장을 적극 유도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중국 반도체 관련기업의 연구개발 자금 확보는 미국의 수출 규제에 대응하는 데 매우 중요한 전략으로 자리잡게 될 것”이라고 바라봤다.

올해 중국에서 기업공개를 추진하고 있는 중국 반도체 관련기업은 누적으로 46곳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11월까지 19곳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해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중국 기업들이 본토증시에 상장하면 중국 정부가 국영펀드 등을 통해 이들을 향한 합법적 자금 지원을 더 활발하게 늘릴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현재 중국 반도체기업 및 장비업체의 기술력이 미국의 수출 규제 영향을 방어하는 데 역부족이라는 평가를 받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이 이어진다면 상황이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

투자은행 나틱시스는 앞으로 중국에서 상장을 추진하는 반도체기업이 더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았다.

중국 정부의 ‘반도체 굴기’가 미국의 제재 강화를 계기로 한층 더 탄력을 받고 있는 셈이다.

일반 투자자들이 중국 반도체기업에 투자할 수 있도록 하는 펀드 조성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크레딧스위스와 중국 공상은행이 최근 출범한 중국 반도체지수펀드가 대표적으로 꼽힌다.

투자자들이 해당 펀드에 투자하는 자금은 곧 중국 반도체 관련기업의 자본 유입으로 이어질 수 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중국 정부가 미국의 반도체 제재를 오히려 성장 기회로 삼으려 한다는 점이 뚜렷해지고 있다”고 바라봤다.

현지 반도체기업을 지원하겠다는 중국 정부의 강력한 의지는 시스템반도체 파운드리 중국 1위 업체 SMIC의 주가 변동에도 반영되고 있다.

홍콩증시에 상장된 SMIC 주가가 10월 이래로 약 0.9% 하락한 반면 상하이증시에 이중상장된 SMIC 주가는 같은 기간 약 8% 상승했다는 점이 예시로 제시됐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최근 상장을 추진하는 중국 반도체기업 대부분이 시스템반도체 생산 전문기업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라며 SMIC를 향한 제재가 중국의 현지 반도체기업 육성 전략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시사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