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세 TSMC 창업주 장중머우 APEC 참석, 글로벌 반도체업계 '촉각'

▲ 장중머우(모리스 장) TSMC 창업주가 대만 경제인을 대표해 APEC 회의에 참석한다. 그가 미국과 중국 반도체 갈등에 관련해 내놓을 발언이 주목받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반도체 파운드리 세계 1위 기업 TSMC를 설립한 장중머우 창업주가 대만 경제인을 대표해 태국 방콕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경제회의에 참석한다.

장중머우가 그동안 주요 행사에서 반도체산업과 관련해 단호한 소신을 밝힌 사례가 많은 만큼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갈등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세계 반도체업계가 그의 입을 주목하고 있다.

18일 대만 타이페이타임스에 따르면 차이잉원 대만 총통은 18일~19일 열리는 APEC 경제 대표단 회의에 장중머우를 대만 대표 자격으로 참석하도록 했다.

APEC 경제회의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태평양 주요 국가 대표단이 모여 경제 협력 및 글로벌 시장 변화에 공동 대응 방안을 논의하는 행사다. 올해는 3년 만의 대면회의가 열린다.

타이페이타임스는 대만이 정치인 대신 장중머우를 대표단 자격으로 보낸 배경에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산업을 둘러싼 갈등이 중요한 이유를 차지하고 있다고 바라봤다.

TSMC와 대만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세력 다툼이 최근 글로벌 반도체업계의 지정학적 리스크 확대에 주요 원인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장중머우가 설립한 TSMC는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기업으로 평가받는다. 첨단 기술 경쟁의 핵심인 미세공정 기반 시스템반도체가 대부분 TSMC 대만 공장에서 생산된다.

따라서 장중머우의 APEC 회의 참석은 대만과 TSMC가 앞으로 미국과 중국의 갈등 국면에서 어떤 태도를 보일 지 알려주는 중요한 변곡점이 될 수 있다.

전 세계 반도체기업과 관련당국은 장중머우가 APEC 경제회의에서 열리는 간담회 등 행사에 참석해 내놓을 발언을 두고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장중머우가 그동안 세계 반도체기업과 관련해 과감한 소신을 담은 발언으로 세계 반도체업계를 긴장하도록 만든 사례가 여러 차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8월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대만을 방문했을 때 경제회담에 참석해 미국의 반도체 지원법 시행은 결국 실패로 끝나게 될 무리한 시도에 불과하다는 발언을 내놓았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펠로시 의장 등 회의에 참여한 사람들이 모두 장중머우의 예상치 못한 발언에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장중머우는 올해 초 미국 씽크탱크에서 주최한 토론회에 참석해 TSMC가 미국에 반도체공장을 설립하는 일은 비용 대비 효율이 매우 떨어지는 일이라는 지적을 내놓기도 했다.

TSMC가 이미 미국 애리조나주에 반도체공장 투자를 결정한 상황에서 이와 상반되는 발언으로 자신의 뚜렷한 소신을 단호하게 드러낸 셈이다.

그는 지난해도 APEC 회의에서 미국과 중국이 모두 자국에 반도체 생산공장을 확보해 자급체제를 구축하려는 ‘온쇼어링’ 노력이 세계 반도체업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의견을 전했다.

미국과 중국에서 이런 시도가 이어질수록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비용은 높아지고 기술 발전은 늦어지는 결과를 낳아 실망스러운 성과를 거둘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91세 TSMC 창업주 장중머우 APEC 참석, 글로벌 반도체업계 '촉각'

▲ TSMC 반도체 파운드리공장.

장중머우가 이처럼 TSMC의 반도체 생산 거점 다변화에 일관적으로 비판적 태도를 보여 온 만큼 올해 APEC 회의에서도 비슷한 취지의 발언이 이어질 공산이 크다.

올해는 이에 더해 미국과 중국의 세력 다툼 한가운데 놓인 대만과 TSMC의 향후 대응 방향에 관련해 의미있는 발언이 나올 수도 있다.

장중머우는 2018년부터 올해까지 5년 연속으로 대만 총통의 요청을 받아 APEC 경제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그만큼 대만의 입장을 효과적으로 대변하고 있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장중머우가 이번 회의에서 내놓을 주요 발언은 앞으로 세계 반도체업계 지형도와 아시아 지역 중심의 지정학적 리스크에 큰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대만과 TSMC가 미국의 요청과 달리 중국 및 대만에서 주요 반도체 생산을 지속하겠다는 뜻을 보인다면 한국과 대만, 일본을 향한 미국의 반도체 동맹 구축 시도는 더욱 힘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미국이 중국을 세계 반도체 공급망에서 고립시키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는 만큼 대만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에 정치적 압박을 더 강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장중머우가 중국의 대만 지배력 강화 노력에 비판적 태도를 보이며 미국을 중요한 파트너로 생각한다는 발언을 내놓는다면 중국의 무력도발 등 대만을 위협하려는 시도가 더 활발해질 위험성도 커진다.

결국 장중머우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반도체기업을 비롯한 여러 국가 반도체산업 및 기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발언을 내놓을 수도 있는 셈이다.

장중머우는 1931년생으로 올해 만 91세다. 중국에서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을 대부분 영국의 지배를 받던 홍콩에서 보냈고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 하버드대학교에 입학한 뒤 메사추세츠 공대(MIT) 기계공학과로 편입했다.

미국 반도체기업 텍사스인스트루먼트에 입사해 반도체 분야에서 경력을 쌓기 시작한 뒤 1987년 TSMC를 창업했다. 장기간 TSMC의 CEO로 일하다 2018년 경영에서 물러났지만 여전히 대만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갖춘 인사로 꼽힌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