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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어록의 연금술사들] '경영의 신' 교세라 이나모리, 불 속의 밤을 줍다

이재우 sinemakid222@gmail.com 2022-10-24  0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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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어록의 연금술사들] '경영의 신' 교세라 이나모리, 불 속의 밤을 줍다

▲ 일본에서 ‘경영의 신’으로 불렸던 교세라그룹 창업자 이나모리 가즈오. 그는 육종학자 우장춘 박사의 사위다. <교세라>

[비즈니스포스트] "나름대로의 철학을 지녔어, 장래 뭔가를 해낼 사내야."

일본 태생의 육종학자 우장춘(1898~1959년)은 사위가 될 청년의 '싹수'를 단박에 알아봤다. 우장춘의 막내딸 스나가 아사코(須永朝子)는 이 청년의 회사 동료였다.

그런 우장춘의 눈은 정확했고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사위는 훗날 '뭔가' 정도가 아니라 '엄청난걸' 해내면서 일본 재계를 대표하는 거목으로 성장했다. 

한국과 남다른 인연이 있는 이 남자는 교토기업 교세라를 창업한 이나모리 가즈오(稲盛和夫·1932~2022년) 명예회장.

그는 필자가 '가장 이상적인 경영자'로 꼽고 있는 기업인이다. 비교적 덜 알려져 있던 이나모리의 이름이 교토를 넘어 일본 전국구로 퍼진 건 파산 직전의 일본항공(이하 JAL) 회생 성공 덕이다. 

일본 속담에 '불 속의 밤(栗)을 줍는다'는 말이 있다. 자신의 이익이 아닌 타인의 이익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고난과 위기에 손을 대는 걸 의미한다. 이 속담의 포인트는 '타인의 이익'에 있다. 

2010년 초의 일이다. 일본언론들은 팔순을 앞둔 이나모리가 '불 속의 밤'을 어떻게 꺼낼 것인가에 대해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불 속의 밤'은 JAL 회생을 말한다. 당시 JAL은 정상 항로를 이탈해 도산으로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부채 총액 2조3천억 엔, 전후 최대 규모의 파산 상태였다. 도쿄지방법원 회생 신청에 이어 곧바로 상장폐지가 됐다. 바둑으로 치자면 JAL은 누가 봐도 '곤마(困馬)'나 다름없었다. '살리기 힘든 돌'이라는 얘기다. 

다급해진 일본정부와 기업재생기구가 SOS를 친 곳은 경영의 귀재인 이나모리 가즈오 명예회장. 전권을 주며 회생 참여를 요청한 것이다. 파인세라믹 분야 세계 선두기업인 교세라를 창업하고 거대 통신기업 KDDI를 설립한 이나모리는 굳이 불 속에 손을 넣을 이유가 전혀 없었다.

자칫 JAL 회생에 실패한다면 그동안 쌓아온 명성에 금이 갈 게 뻔했다. 그럼에도 이나모리는 불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사실 이타적 경영 윤리를 표방하고 실천하던 이나모리에게는 피할 수 없는 운명과도 같았다. 그의 경영철학 핵심은 바로 '이타심'.

그는 입버릇처럼 "리더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이타심"이라며 "동기는 선(善)이어야 하고 사심(私心)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해왔다. 이타심을 경영의 판단 기준으로 삼았던 것이다. 

때론 지나친 확신이 기업을 망치는 법이다. 당시 JAL이 그랬다. 'JAL은 절대 도산하지 않는다'는 신앙에 가까운 사고방식이 경영 간부들 사이에 만연해 있었다. 한마디로 '내셔널 플래그 캐리어(National flag carrier·국적 항공사)'라는 자만심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그런 JAL 회생에 뛰어든 이나모리에겐 비장의 무기가 있었다. 바로 그가 고안한 '아메바 경영'이라는 경영기법이다. 손오공이 분신술을 쓰듯 이나모리는 교세라 경영에 자신을 대신할 젊은 리더들을 곳곳에 포진시켰다. 

구체적으로 이랬다. 채산부문 조직을 5~10명의 작은 단위(아메바)로 세분화하여 독립채산제로 운영했다. 각각의 아메바엔 리더를 두어 전 사원 모두가 경영에 참여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나모리는 이 아메바 경영을 통해 교토의 작은 마을에서 출발한 교세라를 전 세계 계열사 299개, 직원 8만3천 명을 둔 글로벌 기업으로 키웠다. 이 아메바 경영은 교세라를 넘어 크고 작은 기업들을 소생, 회생시켰다. 마치 중국의 명의 화타(華佗)처럼. 그 결정판이 JAL이었다. 

이나모리는 아메바 경영과 이타심 경영철학을 통해 JAL의 기업 체질개선에 돌입해 2년 만에 'V자' 회복을 이뤄냈다. 도산으로 급전직하하던 JAL은 기수를 돌려 회생에 성공했다. 사람들은 이를 'JAL의 기적'이라고 불렀다.
 
[경영어록의 연금술사들] '경영의 신' 교세라 이나모리, 불 속의 밤을 줍다

▲ 한때 파산 직전까지 갔던 일본항공(JAL). JAL은 '기업이 자만하면 언제든 망할 수 있다'는 교훈을 일본 재계에 심어줬다. < JAL >

아메바 경영의 힘은 대단했다. 이런 평가도 뒤따랐다. 

"재상장 전에 JAL의 경영상태를 분석한 증권분석가들은 아메바 경영의 위력에 감탄했다."(기타 야스토시 저, '이나모리 가즈오, 마음에 사심은 없다'에서 인용)

이나모리 명예회장은 '잔수'를 버리고 대의의 바다로 '행마(行馬)'를 몰아간 경영현자였다. 그의 리더관이 그러했다.

특히 중국 명대 말기 정치사상가인 여곤(일명 여신오)의 말을 중시했다. 여곤은 '신음어(呻吟語)'라는 자신의 책에서 리더의 자질을 3가지로 구분했다. 첫 번째가 심침후중(深沈厚重), 두 번째가 기락호웅(磊落豪雄), 세 번째가 총명재변(聰明才辯)이다. 잠시 풀이해 보자. 

'심침후중'은 사려 깊고 신중한 인물, '기락호웅'은 호쾌하고 사소한 것에 구애받지 않는 인물, '총명재변'은 머리가 좋고 말을 잘하는 인물을 뜻한다. 이나모리는 늘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하면 심침후중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까?"

JAL 회생 성공 후 후임자 물색에도 이런 리더관이 적용됐다. 이나모리의 말을 천천히 들어보자.

"JAL에는 도쿄대 출신의 엘리트 간부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머리도 좋고, 능력도 출중하고, 전략 짜기에도 익숙했습니다. 경영 중책을 그들에게 맡겨야 했을까요? 저는 고민 끝에 경영 경험이 없는 조종사 출신 간부를 선택했습니다. 그의 말에서 '품격'을 느꼈기 때문입니다."(경제매체 '비즈니스인사이드 재팬'에서 인용) 

능력보다 사람의 덕망을 본 것이다. 2012년 2월 JAL에는 그렇게 조종사 출신(35년 파일럿 경력) 최초의 사장이 취임했다.

이나모리의 사람 보는 눈은 그의 장인처럼 결코 틀리지 않았다. 2013년 3월 JAL 대표직에서 미련없이 물러난 이나모리는 불 속에서 당당하게 걸어 나왔다. 

성공 보수? 천만에. 그의 손엔 1엔조차 쥐어져 있지 않았다. 애당초 무보수로 일하겠다고 했던 그였다. 이나모리는 그 대신 보수보다 더 영광스런 훈장을 얻었다. '경영의 신'이라는 별칭이다. 

이렇듯 이나모리는 국익을 위해 자신의 열정과 시간을 기꺼이 보탰다. 그러니 '덧셈의 기업인'이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이익과 사심은 덜어냈다. '뺄셈의 기업인'이기도 한 셈이다.

50대에 사재를 털어 권위 있는 '교토상(京都賞)'을 제정할 때의 일이다. 상의 이름을 두고 주위에선 그의 이름을 넣어 '이나모리상'으로 하자고 제안했지만 그는 한사코 손사래를 쳤다. 사심이 없었다는 증거다. 

이나모리는 또 '곱셈의 기업인'이라고 부를 만하다. '세이와주쿠(盛和塾)'라는 경영아카데미를 무료로 진행하면서 젊은 기업인들에게 경영철학의 씨를 뿌리고 전파했기 때문이다.

세이와주쿠는 교토에서 출발해 일본 전역에 기하급수적으로 퍼져나갔고 미국, 중국 등 해외에 62개 지부를 둘 정도로 확대됐다. 마치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훗날 엄청난 파장으로 이어지는 '나비효과' 같았다. 

이뿐인가. 이나모리는 '나눔의 기업인'이었다. 60대부터 경영서적을 쓰기 시작해 40여 권 넘게 펴내면서 영감과 지혜를 나눠주었던 그다. 모교인 가고시마현 가고시마대학을 위한 어마어마한 기부는 '왼손이 모를 정도로' 오른손이 조용하게 진행했다. 

하나 더 덧붙이자면 그는 '물음표의 기업인'이기도 했다. 60대 후반 한때 불교에 귀의해 머리를 깎고 삿갓을 쓰고 탁발을 다니는 기행을 했다.

재벌 회장님이 스님이라니. 그는 세상 골목을 돌며 무엇을 구하려고 했을까? 오랫동안 그의 삶에 관심을 가져온 필자는 여전히 그게 궁금하다.
 
[경영어록의 연금술사들] '경영의 신' 교세라 이나모리, 불 속의 밤을 줍다

▲ 큐슈 남단 가고시마현 가고시마대학에 세워진 이나모리 가즈오의 전신 입상. 동상 아래엔 '어떤 일이 있더라도 포기하지 않으면 꿈은 반드시 어루어진다'는 글이 새겨져 있다.<가고시마대학>

'경영의 신'이라고 시련기가 없었을까? 1973년 글로벌 오일 쇼크 때의 일이다. 이듬해 일본경제는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고 기업들은 줄줄이 도산에다 감원 바람이 몰아쳤다.

이나모리의 회사 교세라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이나모리는 오일 쇼크의 두려움을 어떻게 헤쳐나갔을까. 그는 직원들을 모아놓고 이런 비장한 말을 했다. 

"험난한 빙하기의 시대, 툰드라에 낀 이끼를 먹고서라도 반드시 살아 남아야 합니다."(중국 경제 작가 까오즈젠 저, '세계 500대 초일류 기업의 관리기법'에서 인용)

전례없이 혹독한 시기를 살고 있는 지금 한 번쯤 곱씹어 볼 말이 아닌가. 혹시 말이다. 여러분은 선택하지 못하거나 고민 중인 '불 속의 밤'이 있지는 않는가?

올해 8월 24일이다. 그 '불 속의 밤'에 기꺼이 손을 집어넣는 용기를 보여줬던 이나모리 가즈오 명예회장이 90세로 생을 마감했다. 필자는 그의 죽음에 미국 작가 아나이스 닌(Anais Nin)의 말을 빌려와 '부의금'으로 대신한다.  

"인생은 용기(courage)의 양에 따라 줄어들거나 늘어난다."(Life shrinks or expands in proportion to one's courage.) 이재우 재팬올 발행인
 
이재우 발행인(일본 경제전문 미디어 재팬올)은 일본 경제와 기업인들 스토리를 오랫동안 탐구해왔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열성팬으로 '원령공주의 섬' 야쿠시마 사진전을 열기도 했다. 부캐로 산과 역사에 대한 글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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