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남산 감싼 밀레니엄힐튼 호텔, 한국 현대건축 역사 속으로 물러난다

▲ 서울 특별시 중구 소월로 50 남산 자락에 위치한 밀레니엄힐튼 호텔의 해질녘 전경. <밀레니엄힐튼 홈페이지>

[비즈니스포스트] 서울 남산 자락에서 40년 동안 도시를 내려다보던 밀레니엄힐튼 호텔이 올해 마지막 겨울을 보내고 허물어진다.

23일 서울 밀레니엄힐튼 호텔의 홈페이지를 보면 호텔은 올해 12월31일로 예정된 운영 종료를 앞두고 다양한 ‘이별’ 이벤트로 40년 역사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다. 이곳의 정식 명칭은 '밀레니엄힐튼 서울'이다. 

호텔 메인 로비에는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실제 사용된 객실 어매니티 물품과 직원 유니폼, 기물 등을 볼 수 있는 ‘히스토리 뮤지엄’ 갤러리가 마련돼 있다.  

 
40년 남산 감싼 밀레니엄힐튼 호텔, 한국 현대건축 역사 속으로 물러난다

▲ 1995년부터 연말마다 전시해온 밀레니엄힐튼 호텔의 명물 '미니어처 힐튼열차'. <밀레니엄힐튼 홈페이지>

지하 로비층에서는 매일 오전 7시30분부터 밤 10시까지 밀레니엄힐튼의 명물로 사랑받아 온 미니어처 ‘힐튼열차’가 마지막으로 전시된다. 힐튼열차는 1995년부터 연말이면 호텔 로비에서 사람들을 맞아왔다.

또 호텔이 문을 닫기 전날인 12월30일까지 국내 호텔업계 최초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인 힐튼 호텔 ‘알폰테’의 역대 시그니처 디저트로 구성한 1983 애프터눈 티 세트도 맛볼 수 있다.

1983년은 밀레니엄힐튼 호텔이 개관한 해다.
 
40년 남산 감싼 밀레니엄힐튼 호텔, 한국 현대건축 역사 속으로 물러난다

▲ 2003년 11월23일 밀레니엄힐튼 호텔(당시 서울 힐튼호텔) '크리스마스 자선열차 발차식'에서 어린이들이 미니어처 힐튼열차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밀레니엄힐튼 호텔은 한국 현대건축 1세대를 대표하는 김종성 건축가가 “세계 최고 수준의 호텔을 지어달라”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부탁을 받고 설계한 건축물이다.

김 전 회장은 1970년대 후반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급 호텔을 짓겠다는 계획을 세운 뒤 해외에서 선진건축을 공부한 한국인 건축가를 찾았다. 

그리고 미국으로 직접 날아가 당시 일리노이 대학 건축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던 김종성 건축가를 만났다.

김종성 건축가는 ‘신은 디테일에 있다’는 말로 유명한 독일의 근대 건축가 미스 반 데 로에 아래에서 12년 동안 일했다. 모더니즘 건축의 대가를 직접 사사한 만큼 한국 현대 건축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건축가로 꼽힌다.
 
40년 남산 감싼 밀레니엄힐튼 호텔, 한국 현대건축 역사 속으로 물러난다

▲ 서울 밀레니엄힐튼 호텔은 남산을 감싸 안은 듯한 병풍형 외관으로 유명하다. <서울건축>

밀레니엄힐튼 호텔은 그가 여러 언론 인터뷰에서 ‘가장 완성도가 높은’ 작품으로 꼽은 건물이다.

대우그룹이 심혈을 기울인 프로젝트였던 만큼 공사비 등 투자에도 공을 들인 것으로 전해진다. 

밀레니엄힐튼 호텔은 남산을 감싸 안은 듯한 병풍형의 외관을 지니고 있다.

지하 로비부터 2층까지 18미터 높이, 아파트로 치면 6층 규모로 뚫려있는 웅장하고 고풍스런 로비도 유명하다.
 
40년 남산 감싼 밀레니엄힐튼 호텔, 한국 현대건축 역사 속으로 물러난다

▲ 대리석 계단, 기둥 등으로 웅장하고 고풍적 분위기를 풍기는 밀레니엄힐튼 호텔 로비 모습. <밀레니엄힐튼 홈페이지>

밀레니엄힐튼 호텔은 개관 2년 뒤 서울시 건축상 금상을 받았는데 대형 건축물인데도 설계에서 시공까지 순수한 우리 기술로 세웠고 특히 평면처리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를테면 밀레니엄힐튼 호텔은 건물 외벽을 특수 알루미늄 소재로 마감했는데 이 알루미늄도 국내 기업인 효성에서 제작했다.

남산의 경사진 대지를 잘 활용하고 건물 양쪽 끝을 굴절시켜 새로운 느낌을 준 디자인도 높은 점수를 받았다.

서현 건축가는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라는 제목의 책에서 “서울 힐튼 호텔은 병풍을 세워놓은 듯하지만 양끝을 살짝 꺾은 덕분에 밋밋하고 지루할뻔한 건물이 가볍고 세련된 형상을 얻었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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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년대 개관한 밀레니엄힐튼 호텔은 당시 소공동 롯데호텔, 서울프라자호텔 등과 함께 한국의 대표적 고급 호텔이었다. <서울건축>

서현 건축가는 “이는 사대에서 과녁을 조준하던 궁수가 마지막 순간에 화살을 놓은 것처럼 위력적 디자인이다”고 평가했다.

밀레니엄힐튼 호텔은 올해 재건축 계획이 알려지자 건축계를 중심으로 한국 현대건축사에 의미가 있는 건물이라는 점에서 보존해야 한다는 시각과 힐튼 호텔을 건축유산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시각이 대립하면서 의견이 분분하기도 했다.

밀레니엄힐튼 호텔은 정부가 고급 관광호텔을 외화조달 수단으로 적극 지원하던 시절 세워졌다.

1980년대, 90년대 한국 사회경제가 가파른 성장과 변화를 겪던 시기 서울 중심지에 글로벌 호텔기업 ‘힐튼’ 이름을 단 5성급 고급 호텔이었던 만큼 건물이 안고 있는 이야기도 많다.

밀레니엄힐튼 호텔은 1997년 국제금융위기 당시 미셸 캉드쉬 제7대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한국을 방문해 묵기도 했고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때 북한 조문단도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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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이 1998년 4월18일 밀레니엄힐튼 호텔(당시 서울 힐튼호텔)에서 산자부 차관을 포함 기업인들과 오찬을 즐기고 있다. <연합뉴스>

1967년 소규모 무역업체 대우실업으로 시작해 대한민국 4대 재벌그룹으로 성장했던 대우그룹의 흥망성쇄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상징이기도 하다. 

김우중 대우그룹 전 회장은 1970년대 한국 경제성장과 함께 그룹이 급격하게 커졌을 때 힐튼 호텔 건립을 시작했다.

김 회장은 완성된 힐튼 호텔 꼭대기 층인 23층에 개인 집무실을 마련했다. 힐튼 호텔 23층은 정재계 인사들이 드나들면서 재계 ‘펜트하우스’라는 별명도 있었다.

대우그룹은 힐튼 호텔을 매각하면서도 23층은 힐튼 호텔을 운영했던 계열사 대우개발이 장기임대 형식으로 빌려 관리했다.

김우중 전 회장은 1999년 부도 위기에 처한 대우그룹 구조조정 혁신방안을 내놓으면서 내부 임직원에 “가장 아끼는 것부터 팔겠다”며 힐튼 호텔과 대우중공업 조선부문을 매각 대상에 넣도록 지시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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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3월20일 밀레니엄힐튼 호텔(당시 서울 힐튼호텔)에서 대우그룹 창립 42주년 기념행사가 열리고 있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도 이날 행사에 참석해 대우인회 회원들과 담소를 나눴다. <연합뉴스>

김우중 전 회장의 부인 정희자씨는 힐튼 호텔을 경영하면서 호텔업계의 여성 경영인으로 두각을 드러내기도 했다.

정희자씨는 1983년 12월7일 힐튼 호텔이 개관한 뒤 1984년 1월 대우개발 회장으로 취임해 매각 때까지 호텔을 직접 경영했다.

정희자씨는 한양공대 건축학과를 졸업했고 1976년부터 1년 반 동안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동양미술사를 공부했다.   

힐튼 호텔을 경영하기 전까지는 그룹 경영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않았지만 해외여행을 할 때 도안이 특별한 물건을 사오거나 그림으로 그려와 대우그룹 디자인실에 자료로 전해줬다고 한다.

힐튼 호텔 운영을 맡은 뒤에는 호텔에 진열할 미술품을 직접 골랐고 호텔 내부 집기 배치 등 인테리어부터 레스토랑의 음식 맛까지 구석구석 일일이 정성을 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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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3월22일 사단법인 대우세계경영연구회 주최로 서울 양재동 엘타워에서 열린 대우 창업 51주년 행사에 참석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 아내 정희자 전 대우개발 회장. <대우세계경영연구회>

김우중 전 회장이 한 마디 상의도 없이 힐튼 호텔 매각을 결정하자 호텔 방 문을 걸어잠그고 통곡했다는 이야기도 널리 알려진 일화다.

힐튼 호텔은 1999년 싱가포르계 투자전문기업 씨디엘호텔코리아로 소유권이 이전되면서 대우그룹의 역사에서 물러났다.

그 뒤 지난해 이지스자산운용과 현대건설이 매입하면서 이번에는 남산 자락을 밟고 있던 건물마저 완전히 철거된다.

이지스자산운용과 현대건설은 밀레니엄힐튼을 완전히 허물고 그 자리를 오피스와 호텔 등으로 구성한 복합시설로 개발한다는 계획을 세워뒀다. 박혜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