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프리즘] 코로나 '선물' 재택근무, 애플 직원도 포드처럼 일하라고?

▲ 코로나19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대부분의 기업들이 재택근무제를 경험하게 됐지만, ‘위드코로나’ 시대인 요즘에도 여전히 상당수 기업들이 이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사진은 4차산업 참고용 이미지.

코로나19는 우리에게 많은 고통을 주었지만 IT업계에는 예상치 못한 선물도 안겨주었다. 테크놀로지에 기반한 새로운 문화가 우리 생활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오며 ‘뉴노멀’이 되었기 때문이다. ‘재택근무’가 가장 대표적인데 코로나19를 거치며 우리 사회의 ‘일하는 방식’ 가운데 하나가 됐다. 

코로나19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대부분의 기업들이 재택근무제를 경험하게 됐지만, ‘위드코로나’ 시대인 요즘에도 여전히 상당수 기업들이 이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네이버는 임직원들이 주5일 전면 원격 근무 혹은 주3일 이상 출근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커넥티드제도’를 실시하고 있고 SK커뮤니케이션즈 역시 주2회 재택근무를 기본으로 하는 하이브리드 근무제를 올 연말까지 시행한다고 한다.

미국의 애플은 재택근무를 끝내고 사무실로 복귀하라는 방침을 발표했다가 직원들의 반발에 부딪혀 이를 철회했다고 한다. 

사실 필자는 글로벌 IT기업에 근무하던 3~4년 전 목이 터져라 재택근무나 원격근무제의 도입을 외쳤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에는 스마트워크 문화를 확장시키려는 정부의 정책과 맞물려 ‘일하는 방식의 혁신’을 가져오겠다는 야심찬 포부가 있었다.

그래서 국회의원들과 함께 국회에서 포럼도 만들고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나 인사부 담당자들을 상대로 스마트워크와 재택근무의 필요성을 전국을 돌며 강연하기도 했다. 물론 이를 통해 스마트워크 솔루션 시장의 확대를 염두에 둔 것임을 부정하진 않겠다. 지금은 상관없는 일이 되었지만.

그러나 나의 기대와 달리 기업측의 반응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 특히 중소기업으로 갈수록 더했다. ‘재택근무’는 해고의 전단계로 흔히 악용되는 일도 빈번했다. 경영자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성과가 나오지 않는 직원에게 “회사 나오지 말고 그냥 집에서 계셔라”고 통보하는 일종의 징계처럼 활용된 것이다.

당시 경영자들이 보인 일반적인 반응은 “보이지도 않는데 어떻게 믿느냐”는 것이었다. 물론 ‘감시하지 않으면 직원들이 집에서 놀고 있을 것이다’는 전제가 깔린 반응이다.

정부가 스마트워크를 위한 소프트웨어 구입이나 인프라 구축을 위해 기업에 많은 보조금을 쏟아부어도 이 제도가 확산될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였다. 기업경영자의 인식이 근본적 전환되지 않는다면, 기업의 문화가 포용적으로 바뀌지 않는다면 재택근무 등 테크놀로지를 활용한 일하는 방식의 혁신은 요원한 일이었다. 

그런데 코로나19 2년은 모든 것을 한순간에 바꿔 놓았다.

코로나19 초기인 2020년 9월 한국경영자총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실시된 이후 국내 매출 100대 기업에서 88.4%가 재택근무(사무직)를 시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응답 기업의 절반에 가까운 46.8%가 정상근무 대비 업무생산성이 90%이상이라고 대답했다.

정부나 IT회사들이 수년간 공들여도 안된 최고 등급 난이도의 숙제를 너무나 쉽게 해결해 버린 것이다. 그것도 경영자들이 거부할 수 없는 방식으로 말이다. 지금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느끼면서도 허탈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재택근무는 아직 뜨거운 감자이다.

찬반이 엇갈리고 아직 정확한 좌표를 찾지 못한 듯 하다. 경영자도 직원들도 이 새로운 방식에 충분히 적응하지 못하긴 마찬가지다. 코로나19로 인해 울며겨자먹기식으로 도입을 해봤지만 여전히 많은 경영자들이 일하는 모습을 직접 볼수 없는 직원들을 미덥지 않아 하고 직원들의 반응도 엇갈린다.

“출퇴근 시간을 아낄 수 있어 시간에 여유가 생겼다”, “눈치 안보고 자율적으로 일하니 더 좋다”, “아무래도 집에 있으면 느슨해 지고 자꾸 딴생각이 난다”, “일과 생활의 구분이 어렵고 오히려 근무시간이 더 늘어나는 것 같다” 등등. 아직 모두들 확신이 없다.  
이쯤에서 다시 한번 재택근무를 근본적으로 되짚어보자.
 
첫 번째 질문은 재택근무나 원격근무가 왜 일하는 방식의 혁신인가라는 것이다. 우리가 가장 익숙한 사무실 풍경을 떠올려보자. 부장-과장-차장-대리-사원으로 이어지는 사람들이 사무실에서 위계에 따라 자리배치가 되어있다. 물론 상급자가 가장 시야가 좋은 자리에서 부하 직원들을 쉽게 둘러볼 수 있는 구조다.

그래서 퇴근을 하려면 하급자들은 괜히 상사의 눈치가 보이고 심지어 상사가 퇴근하기 전까지 자리를 지켜야 하는 회사가 아직도 있을 것이다. 이런 구조와 기업문화에서는 코로나보다 무서운 일종의 ‘상사병’(직장상사가 주는 병)이 만연할 수도 있다.  

공교롭게도 이러한 사무실 구조를 볼 때마다 2차산업혁명을 가져온 포드의 ‘컨베이어벨트’가 떠오른다. 1900년대 초 자동차의 대량생산을 위해 효율성을 극대화한 일하는 방식이다.

포드는 ‘도살장’에서 사람들이 정렬하여 각자 지정된 부위만을 작업하는 것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시스템의 기본구조는 쉼없이 부품처럼 일하는 노동자와 이를 감시하는 간부들이다. 한마디로 높은 생산성을 유지하기 위해 감시구조이다. 

나는 이러한 공장의 일하는 방식이 사무실로 전이된 것이 아닌가하는 합리적 의심을 한다. (물론 블루컬러와 화이트컬러를 구분하거나 차별하고자 하는 것은 전혀 필자의 의도가 아니다.)

사무실에서도 직원들이 농땡이를 피지 않는지 상급자가 감시 또는 통제하고 눈에 보여야 일하는 것으로 안심하는 구조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업무생산성’을 높이는 방식이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왔다고도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우리는 4차산업혁명시대에 2차산업 혁명시대의 일하는 방식을 고집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럼 이쯤에서 근본적인 질문 하나. 우리는 왜 꼭 사무실에 나와서 일을 해야 하지? 그것은 아마도 사무실에 모여서 일하는 것이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최선의 근무형태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이 전제에 대해 살펴보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과연 대다수의 경영자들이 희망하는 것처럼 직원들이 사무실에 출근해 8시간 내내 열심히 일을 하고 있을까. 나의 대답은 No이다.

오피스 환경에는 무수한 회의와 전화, 다양한 방해요인들이 도사리고 있다. 실제 많은 미팅과 전화에 시달리고 동료들이 시도때도 없이 커피 마시자고 하고 (흡연자는) 동료들과 담배 피고 상사가 호출하면 달려가고 결재 대기하고 하면 실제 오롯이 자신의 일에 전념할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다.

한정된 업무시간은 그렇게 흘러가 버린다. 그래서 일이 밀릴 경우 집중해서 일하기 위해서는 '야근'이라는 극약처방을 내린다. 물론 주52시간제로 인해 이제 야근도 힘들어졌지만 말이다.   

우리 회사는 주1회 재택근무제를 실시하고 있는데 나는 직원들에게 “집중해서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이 시간을 잘 활용하라”고 강조한다. 위와 같은 외부의 ‘잡음’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롭게 자신의 일에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라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생산성을 높이는 지름길이라고 믿는다. 

한 가지 예를 들자. 아이가 갑자기 아프다면 아픈 아이를 집에 혼자 두고 부모가 사무실에서 일에 전념할 수 있을까. 차라리 아이와 함께 하면서 일을 하는 것이 이 경우에는 더욱 효율적일 수 있을 것이다. 필요하다면 상사와 의논해 근무시간을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비즈 프리즘] 코로나 '선물' 재택근무, 애플 직원도 포드처럼 일하라고?

▲ 오늘날 사무실 구조를 볼 때마다 2차산업혁명을 가져온 포드의 ‘컨베이어벨트’가 떠오른다. 1900년대 초 자동차의 대량생산을 위해 효율성을 극대화한 일하는 방식이다. 사진은 2차산업 참고용 이미지. <위키미디어>


이어지는 질문. 그렇다면 정말 직원들이 집 또는 외부에서 일에 몰입하면서 일을 할지 믿을 수 있을까. 제이슨 프라이드와 데이비드 하이네마이어 핸슨은 '사무실 따윈 필요없어'라는 책에서 이렇게 반문한다. 

“신뢰하지 못할 직원은 애초에 뽑지 말아야 한다. 당신을 신뢰하지 못하는 상사를 위해서 일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상사가 원격근무를 허락하지 못할만큼 당신을 신뢰하지 못한다면 어차피 일을 해도 신뢰받지 못할 게 분명하다.”

이 지적은 정말 폐부를 찌른다고 생각한다. 직원들에게 중요한 계약을 맡기고 영업비밀을 공유하고 심지어 자금관리까지도 맡기면서 정작 직원들이 눈에 안보이면 믿지 못하겠다는 것은 상당히 궁색하다. 

나는 원격 또는 재택근무를 둘러싼 의문 가운데 상당수는 사실 테크놀로지가 해결해 줄 수 있다고 믿는다. 시중에 나와있는 많은 스마트워크 솔루션을 활용하면 실시간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고 화상회의를 통해 대면 커뮤니케이션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해외 파트너들과 매일 실시간 화상회의를 하는 시대이다. 과거에는 이런 테크놀로지가 없었기 때문에 스마트워크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정말 다양한 기능을 탑재한 많은 스마트워크 솔루션들이 시장에 나와있다. 그리고 실제 우리는 코로나를 겪으면서 그 효용성을 경험했다. 다행히 코로나로 인해 거의 모든 기업이 스마트워킹 인프라를 이미 갖췄기 때문에 ‘하드웨어’는 완비된 셈이다. 

물론 필자는 모든 기업이 전면적으로 재택근무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은 전혀 아니다. 기업마다 업무적인 특성이 있고 특성에 맞게 탄력적으로 운영해야 함은 물론이다. 공장에서 일하는 생산직 근로자에게 재택근무를 하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  

재택근무를 회사에서 베푸는 시혜로 보는 관점도 옳지 않다고 보지만 실제 우리 회사 직원들을 보면 나름의 사기 진작 효과도 있는 듯하다. 직원들 입장에서는 출퇴근 시간을 절약해 자기 계발에 활용할 수 있고 좀 느긋하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리라. 

문제는 ‘소프트웨어’이다. 이 제도를 도입하려면 이에 앞서 포용적인 기업문화와 정확한 성과평가 시스템이 갖춰져야 하기 때문이다. 기업입장에서는 직원들이 업무 성과를 얼마나 올렸느냐가 중요하지 얼마나 많이 일했느냐, 어디서 일했느냐가 중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재택근무제를 놓고 우리가 겪는 혼란은 일종의 과도기적인 현상이라고 본다.

아직은 직원들도 자율적으로 일하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도 있을 수 있고 집이 주는 편안함의 유혹에 빠져 일에 몰입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반대로 일과 생활이 분리가 안돼 과몰입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재택근무를 위한 룰세팅 조차 되어있지 않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결국 우리 앞에 놓여있는 재택근무제는 경영자나 구성원들이 지금까지의 경험을 토대로 발전시켜나가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싶다.

지금 경영자와 인사팀은 재택근무의 도입 여부가 아니라 이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각 기업의 문화와 업무특성에 맞게 탄력적으로 최적화시키고 이에 맞는 성과평가 체계와 포용적인 기업문화를 만들지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직원 입장에서도 무조건 재택근무를 신청하기 보다는 최고의 업무 성과를 낼 수 있는 자신에게 최적화된 근무형태와 업무 스타일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두둑한 보너스와 연봉으로 연결될 것이니 말이다.

결국 회사와 직원들이 장점을 극대화하고 단점을 최소화하는 새로운 ‘스마트워킹 문화’를 함께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한 가지만 명심하자. 회사가 추구하는 목표가 업무생산성을 높여 큰 성과를 만드는 것이라면 직원에게 가장 일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회사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일하는 장소가 사무실이든, 집이든, 커피숍이든 일하는 장소는 기술혁명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의 우리에게는 중요하지 않다. 기업을 경영하는 나에게는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일을 잘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우리가 가장 효과적으로 일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가는 여정, 그것이 바로 내가 말하는 일하는 방식의 혁신이다. 이태희 CUE Korea 대표
 
대학졸업 후 30년간 언론(한국일보)과 공무원(방송통신위원회), 국제기구(TEIN), 글로벌 기업(마이크로소프트) 등 공공과 민간의 영역을 넘나들며 사회의 ‘새롭고 긍정적인 변화’를 추구해왔다. 2020년부터 글로벌 마케팅·테크놀로지 기업인 CUE Group의 한국 대표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변화의 지향-사상의 자유시장과 인터넷의 미래'(나남, 2010)이 있으며, 몇 권의 공저와 학술논문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