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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커홀릭, 마흔에 은퇴하다] 돈 부자 대신 시간 부자가 되다

캐나다홍작가 skkhong2@gmail.com 2022-07-18  08: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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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커홀릭, 마흔에 은퇴하다] 돈 부자 대신 시간 부자가 되다

▲ 미세먼지 하나 없는 캐나다 소도시의 봄. <캐나다홍작가>

[비즈니스포스트] 미세먼지 때문에 마흔에 조기은퇴를 하고 캐나다 영주권을 받아 이민을 왔다. 수년 전까지는 생각지도 않던 새로운 삶들이 빠르게 펼쳐졌다. 

은퇴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상적인 은퇴자산으로 이삼십억 정도를 말한다. 나도 그런 삶을 원하던 이들 중 하나였다. 그러나 내 마흔 은퇴는 한국가구 평균 자산 5억 정도의 소박한 액수로 급작스럽게 이루어졌다.

호흡기가 약한 편이었기에 겨울과 봄 내내 기승을 부리는 미세먼지로 인해 받는 물리적 정신적 고통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미세먼지 성분이 뭔지, 한국과 주변국의 정책은 뭔지 등을 조사할수록 내가 이 지역을 피하는 것만이 해답인 게 확실해졌다. 그렇게 떠밀리듯 택한 조기은퇴였다.

대학 때부터 이십 년간 휴일도 없이 워커홀릭으로 일해온 입시 논술 강사였고, 수천이던 연봉이 억대로 오른 지 몇 년 안 되던 참이었다. 십여 년 더 일하면 이상적 은퇴자산을 만들어 호화롭게 쉴 수 있겠다 싶었다.

한국에서는 흔한 유형인 효율지상주의자, 결과지향주의자로 일하느라 좀 지쳐 있었지만, 관성대로 십수 년 더 일할 수는 있었다. 한국에서는 다들 그렇게 열심히 일하면서 사니까. 

그런데 점점 심해지는 미세먼지는 돈이냐 건강이냐 사이에서 양자택일을 하게 만들었다. 결국 돈 부자가 되는 선택지를 포기하고 건강을 지키며 소박한 재정 상황으로도 마음 편히 사는 시간 부자의 삶을 택하기로 했다.

일을 관두고 멀리 이민가는 것에 대해 누굴 설득할 필요가 없는 비혼이었기에 좀 더 쉬웠다. 가난한 어린 시절부터 검소하게 사는 삶에 익숙했기에 소박한 은퇴자금으로도 삶을 꾸려나갈 자신이 있었다.

매체를 통해 접하는 다른 조기은퇴자들 중에도 비슷한 이들이 꽤 있었다. 5억 정도의 소박한 은퇴자금을 조금씩 써 없애는 것이 아니라 부동산 및 주식으로 생활비 이상이 나오는 파이프라인을 마련한 경우가 많았다. 부동산 및 주식이 물가상승률 이상으로 오르기에 은퇴자금은 줄어들지 않고 늘어날 것이다. 나 역시 내 소박한 은퇴자금을 비슷하게 관리하고 있다.

은퇴 뒤 5억으로 부자처럼 사는 나라로 이민을 갈 수도 있고, 반대로 한국보다 노인복지가 잘 되어 있는 선진국을 택할 수도 있다. 캐나다를 고른 나는 후자였다. 노인이 되면 그간 한국에 든 연금도 나오고 캐나다에서 나이 들면 받는 기초연금과 중복수령이 된다.

가난한 노인에게는 캐나다의 각종 보조 연금이 나오기에 다들 꽤 살 만한 편이다. 빈곤 노인층이 40%인 한국과 달리 5%에 불과한, 노인복지 및 문화지원이 꽤 잘 되어 있는 나라이다. 노인들의 표정이 밝고 문화행사를 즐기며 즐겁게 사는 모습을 주로 보게 된다. 캐나다는 미국과 달리 무상의료라서 시스템이 좀 느리긴 해도 병원비 걱정도 없다.

소박한 경제적 자유와 노후 복지에 대한 대비는 이런 식으로 해 두었기에, 남은 과제는 시간 부자의 삶을 잘 즐기며 건강히 살아가는 것이었다.

은퇴 뒤에 무얼 하며 지낼지를 구상하는 것은 설레면서도 두렵기도 한 양가감정을 갖게 한다. 나 역시도 그랬다. 일을 안 하면 도대체 무엇을 통해 성취감을 얻고 성장할 것인지, 내 일터처럼 나를 알아보고 추켜세워주던 공간을 떠나 나를 전혀 모르는 이들 속에서 어떻게 나를 증명할 수 있을지, 더구나 은퇴 뒤 영어 쓰는 먼 나라로 혼자 훌쩍 떠나서 얼마나 외로울지, 걱정되는 것은 많았다. 

다수의 은퇴자들이 비슷한 걱정을 하고 퇴직 후 무력감을 느끼는 과정을 거친다고 한다. 나 역시도 완전히 바뀐 삶에 적응하는 데에 꼬박 일 년이 걸렸다.

빠르던 삶이 갑자기 느려졌고, 최대효율을 추구하며 바쁘게 동동거리던 일상은 심심하고 게을러도 되는 한가함으로 가득 찼다. 한국의 워커홀릭으로 오래 산 습성 탓에 처음에는 이런 일상이 어색하고 불안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일 년쯤 적응 기간을 거치며, 그리고 한국보다 한참 비효율적이지만 여유롭게 웃으며 잘 살아가는 캐나다인 친구들의 삶을 보면서 점점 안심하게 되었다.

‘좀 느려도 되는구나’, ‘계속 성과를 내지 않아도 괜찮구나’, ‘좀 실수해도 되고 남의 실수에도 여유롭게 대처할 만하구나’, ‘새 인간관계는 어디서든 가능하고, 중년의 판단력으로 능동적으로 택한 관계가 더 만족스러울 수 있구나’, ‘큰돈 안 들이고도 즐기고 놀기가 가능하구나’, 이런 생각과 경험이 쌓였기 때문이다. 더 이상 내 느림이 불안하지 않았고 매일매일이 행복한 휴가로 변했다.
[워커홀릭, 마흔에 은퇴하다] 돈 부자 대신 시간 부자가 되다

▲ 인구 밀도 낮은 캐나다 소도시의 여름 산책로. <캐나다홍작가>

캐나다 동부의 선선한 여름날인 오늘은 느지막이 일어나 바다가 보이는 야외 발코니에서 한가하게 건강식 브런치를 만들어 먹고 음악을 들으며 요가도 하고 웹툰도 봤다. 오후엔 주식 정보도 좀 정리하고 캐나다 정부가 무료로 제공하는 이민자 영어 수업도 들었지만 여전히 한가했다. 서둘 것도 없고 경쟁할 것도 없고 기한 내에 꼭 성과를 내야 하는 일들도 아니니까.

저녁에는 캐나다인 친구들과 산책을 하다가 동네 바닷가에서 야외 블루스와 바차타 댄스를 즐겼고 집에 와선 천천히 건강식을 만들어 먹고는 일주일만에 기특하게 청소도 좀 했다.

한가하지만 즐겁게 보낸 오늘 쓴 돈은 식재료비 팔천 원 정도뿐이다. 은퇴 전 같았으면 나간 김에 옷도 좀 사고 친구들과 레스토랑에도 가느라 이십만 원 정도는 썼을 것이다. 그런 소비를 크게 줄이자 은퇴 전 생활비의 20% 정도로도 생활이 된다.

덜 쓴다고 불편하지 않고 만족스러운 이유는, 소비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내 통장만이 아니라 내 건강을 위해서, 소비에 대한 내 자유의지를 위해서, 환경을 위해서 절약을 하고 미니멀리즘을 추구한다.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과 어울리니 불편할 것 없이 죽이 잘 맞는다.

거의 무료인 문화 프로그램 및 시설들을 이용해서 그림, 산책, 요가, 수영, 댄스 등 여러 취미생활도 즐기고 있다. 나이 오십에는 영어 잘하는 멋진 춤 선생이 되어 자원봉사 강습을 다닐 꿈도 꾸면서 매일 춤 연습도 신나게 하는 중이다. 호화 요트 여행이나 비싼 물건 사는 데에는 관심이 없다. 내 형편 내에서 가능한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은퇴 5년 차인 지금은 이렇게 느리고 소박하게 즐기고 쉬며 사는 법에 꽤 익숙해졌다. 삶이 이렇게도 진행될 수 있다는 것에 매일 놀라고 감사하며 지낸다. 이렇게 살아보고 나서야 한국에서 사십 년간 스스로를 쥐어짜며 공부하고 일하느라 마음이 꽤 지쳤었다는 것도 깨달을 수 있었다. 은퇴 전엔 꿈꿔보지도 않던, 아니 어떤 삶인지 전혀 모르기에 꿈꿀 수도 없었던 신기하고 재미있는 삶, 소박하지만 여유로운 시간 부자의 삶, 이렇게 얼결에 해버린 마흔 은퇴는 내 일상을 바꾸고 내 생각과 철학마저 바꾸고 있다. 

여러 책에서 인용되는 <멕시코 어부 이야기>는 우리의 바쁜 삶을 성찰해보게 만든다. 뉴욕의 성공한 사업가가 실력은 좋지만 쉬면서 띄엄띄엄 일하는 멕시코 어부에게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어업 사업으로 성공하지 않겠냐고 제안한다. 그렇게 성공한 뒤에는 은퇴해서 한가하게 멕시코 시골에서 낚시하고 가족들과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낮잠도 실컷 잘 수 있을 것이라며. 그러자 어부는 ‘내가 지금 그렇게 살고 있지 않소!’라며 그 사업 제안을 거절한다는 내용이다. 

물론 깨끗하고 안전한 집, 건강상의 문제 등 인생 변수를 대비한 여유자금, 생활비 걱정 없는 경제적 자유 등 안정적인 은퇴 생활을 위한 기본기는 갖추는 것이 현명하다. 다만 이런 안정성을 위한 기준을 너무 높게만 잡느라, 또는 불필요한 소비까지 많이 하느라 은퇴를 미루고 더 오래 일하는 굴레에 갇혀있는 것은 아닌지 정도는 한 번쯤 돌아볼 필요가 있다.

멕시코 어부의 삶이나 뉴욕 사업가의 삶, 그리고 그 중간쯤에 있을 이 필자의 삶 등등, 세상에는 다양한 삶의 모습들이 있으니 두루두루 참고해서 무엇이 자신에게 잘 맞는지 생각해 볼 계기로 쓰면 좋을 것이다. 

앞으로 이 칼럼을 통해서 이런 나의 소박하지만 여유로운 일상, 생각, 변화들을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비즈니스포스트의 여러 훌륭한 기업가분들의 기사를 읽다가 잠시 들러 한가함을 느끼다 갈 수 있는 잔잔한 에세이 같은 칼럼이 될 것이다.

열심히 살고 계획하고 노력하는 중인 한국의 성실한 대부분의 사람들을 응원한다. 나 역시 그들 중 하나였고, 지금은 사십 년간 성실했던 그 덕을 보는 중이라는 것도 안다. 우리의 성실함이 후회가 될 필요는 없다. 성실하게 일할 줄 아는 이가 은퇴 계획에서도 성실할 여력이 있을 것이다.

여러분의 일과 삶, 지향점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작은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비즈니스만큼 중요한, 아니 비즈니스보다 더 중요할 우리의 행복을 열심히, 같이 궁리해 보자. 캐나다홍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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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derstandable |  2022-07-18 22:5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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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부보다는 사업가여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중간도 있었군요ㅎㅎㅎ 다음 칼럼도 기대합니다!!
부산파이어 |  2022-07-18 19: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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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파이어족입니다. 일찍 은퇴하고 싶어서 자산 기준을 좀 낮춰보려고 함니다. 제 가족들과 캐나다로 이민가려는 목표도 있어서 잘 봤ㅅㄷㅂ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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