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채널Who] 한국조선해양의 사업형 지주사 전환은 정말 기업가치 업그레이드의 열쇠가 될 수 있을까?

한국조선해양은 어떤 지향점을 두고 사업형 지주회사로 나아가게 될까?

한국조선해양이 모델로 삼을 만한 유럽의 선박기술기업들을 보면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과거 유럽은 20세기 중반까지 조선시장을 주름잡고 있다가 일본에게 산업 주도권을 넘겼다. 일본에게 넘어간 산업 주도권은 이제 한국과 중국이 양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유럽에는 선박 건조에 필요한 핵심 원천기술을 지닌 기업들이 많다. 현대중공업의 LNG(액화천연가스)운반선에는 프랑스기업 GTT의 원천기술 특허가 사용된다. 1척 당 100억 원 정도 로열티를 지불한다고 한다.

선박 추진엔진 기술에서는 덴마크 MDT, 핀란드 바르질라가 선두 기업으로 꼽힌다.

특히 미래 선박기술인 자율주행 부분에서도 유럽 기업들이 두드러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노르웨이 콩스버그는 선박 자동화와 항해 컨트롤 시스템 분야에서 독보적이란 평가도 받는다. 세계 최초로 완전 무인자율운항 소형 컨테이너선을 발주하기도 했다.

스위스에 본사를 둔 ABB는 지난해 싱가포르항에서 조이스틱을 통한 예인선 원격 제어에 성공한 바 있다. 이 회사는 선박뿐 아니라 산업 자동화와 발전설비 분야를 폭넓게 다루는 기술기업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기업들만 하더라도 주식시장에서 매겨지는 기업가치가 높은 편이다. 우리 돈으로 환산했을 때 주식 시가총액을 살펴보면 GTT는 5조 원, 콩스버그는 7조 원 수준이다.

한국조선해양의 기업가치는 6조 원 안팎인데 여기에는 대부분 사업자회사들의 가치만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만약 한국조선해양이 GTT나 콩스버그처럼 사업을 키운다면 기업가치도 지금의 플러스 알파가 얹어질 수 있다.

ABB는 나스닥에도 상장돼 있는데 시가총액이 70조 원 안팎이다.

한국조선해양도 유럽 기업들처럼 조선 기술기업으로 변신해 자체 사업역량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그 중심엔 수소와 자율주행 기술이 있다.

결국 미래 선박은 수소연료전지를 사용하는 자율주행 선박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LNG운반선의 지위를 수소 운반선이 대체하게 될 가능성도 많다.

실제로 한국조선해양은 고체산화물(SOFC) 수소연료전지 개발을 핵심 사업으로 꼽고 있다. 기술 역량을 갖춘 관련기업을 인수합병할 계획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최근 한국조선해양은 디지털 트윈 기술로 가상공간에서 자율주행운항 여객선을 시운전하는 데 성공다. 실제 공간에서 자율주행운항 도전도 곧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조선해양의 조선 기술기업 전환은 그룹 차원에서 절실하게 요구되는 일이기도 하다. 원천기술과 핵심 고부가가치 기자재와 관련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많을 뿐더러 선박 건조 의존도가 높은 사업 특성상 조선업의 사이클에 따라 영업의 부침이 크다는 취약점도 있기 때문이다.

한국조선해양이 글로벌 선두 선박 기술기업으로 변신에 성공한다면 이전에 비용으로 지불해야 했던 기술 로열티 등을 절약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국내외 조선사들을 상대로 새로운 수익을 창출할 수도 있다.

선박 건조에 집중된 기존 사업구조보다 안정성도 강화할 수 있다. 조선산업은 호황기와 불항기가 반복되고 그 폭도 매우 크다는 점이 약점으로 꼽힌다.

기술과 기자재 쪽 사업은 선박 건조 분야보다는 훨씬 안정적이라 그룹 차원에서 불황에 대한 대응력을 갖추는 데 기여할 수 있다.

근래 조선시장의 경쟁 구도에서는 가격 경쟁력이 중점 요인으로 작용했던 측면이 크다. 그래서 후발주자들이 가격 경쟁력을 내세워 선두주자를 추월하는 일이 계속 반복돼왔다. 중국이 최근 십수년 새 조선산업의 강자로 급부상한 것도 가격 경쟁력 덕분이다.

그런데 앞으로 조선시장의 경쟁 구도는 기술 경쟁력이 중심에 놓일 가능성도 커졌다. 조선산업의 판도에는 가격 경쟁력 만큼이나 기술 경쟁력이 미치는 영향도 크다.

지금 한국 조선사들이 LNG 등 친환경선박 기술력에서 중국과 초격차를 유지하며 여전히 선전하고 있는 이유도 기술력 덕분이다.

그리고 가장 큰 산업 판도 변화는 결국 기술 패러다임의 변화에서 비롯된다. 19세기 중반까지 조선시장 주도권을 쥔 곳은 미국이었다. 당시 선박은 나무로 만든 목선이었기 때문에 목재를 값싸게 조달할 수 있었던 미국이 경쟁력이 있었다.

그런데 증기기관의 등장과 철강을 선체에 적용하게 돼 선박 건조기술의 변화가 이뤄지며 산업화에 앞섰던 영국이 조선 주도국이 됐다.

수소와 자율주행이 이끄는 선박기술의 패러다임 변화는 그에 못지 않은 판도 변화를 야기할 수 있다. 자칫 여기서 뒤처지는 기업은 그동안 시장에서 쌓아온 입지에도 불구하고 단순 하청업체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국조선해양이 기술기업으로 어떻게 변화할까? 한국조선해양의 변신은 현대중공업그룹 뿐 아니라 한국 조선산업 전체에도 중요한 일일 수 있다. 류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