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Is ?] 조동길 한솔그룹 회장

장윤경 기자
2016-05-24 00: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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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동길 한솔그룹 회장.

    ◆ 생애

    조동길은 1955년 11월30일 이인희 한솔 고문의 3남으로 태어났다. 고등학교 시절 미국에서 지내다가 귀국해 연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삼성물산과 JP모건을 거쳐 전주제지에 입사해 이사대우로 일했다.

    한솔제지 기획조정실담당 이사, 상무이사, 부사장을 지냈다. 입사한 지 10년 만에 부회장을 맡았으며 이인희 한솔 고문의 뒤를 이어 한솔그룹 회장으로 취임했다. 

    한솔그룹의 외형을 키우고 내실을 다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취임 때 2조 원대이던 그룹 연매출을 5조 원대까지 키웠다.

    한솔그룹의 구조조정을 주도했으며 한솔그룹의 핵심인 한솔제지, 한솔아트원제지, 한솔페이퍼텍 등 제지사업군을 강화해 외연을 확대했다. 

    ◆ 가족관계

    어머니 이인희 한솔 고문과 아버지 조운해 강북삼성병원 이사장 사이에서 3남으로 태어났다.

    큰 형은 조동혁 한솔그룹 명예회장, 둘째 형은 조동만 전 아이글로브 회장이다.

    부인 안영주씨와 사이에 딸 조나영씨, 아들 조성민씨를 뒀다. 안영주씨는 안영모 전 동화은행장의 3녀다.

    조나영씨는 김앤장 법률사무소 한상호 변호사의 장남인 한경록씨와 결혼해 딸을 낳았다. 조성민씨는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외국계 회사를 다니며 경영수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 학력

    1980년 연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 경력

    1987년 12월부터 1991년까지 전주제지 이사대우를 지냈다.

    1991년 12월부터 1년 동안 한솔제지 기획조정실담당 이사를 맡았다.

    1993년 12월부터 1년 동안 한솔제지 상무이사로 재직했다.

    1995년 11월 한솔제지 부사장에 올랐다.

    1997년 11월 한솔그룹 부회장을 지냈다.

    1999년 세계 최대 신문용지제조업체인 캐나다의 아비티비, 북유럽 최대 신문용지 제조업체인 노르웨이의 노르스케와 합작으로 싱가포르에 아시아 최대 신문용지 전문회사를 설립했다.

    2002년 이인희 한솔 고문이 한솔제지 대표이사 자리를 조동길에게 물려줬다. 그 뒤 그룹 회장으로 취임했다.

    한솔그룹은 계열분리 후 공격적인 사업확장으로 2000년 자산 기준 11위를 차지한 대기업집단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 한솔제지 등이 경영 위기에 처하면서 상당수 계열사 및 자산을 매각하거나 축소했다.

    2009년에는 공정위가 자산 5조 원이 넘는 대기업들을 대상으로 지정하는 ‘대규모 기업집단’에서 제외됐다. 하지만 한솔그룹은 최근 2~3년 새 인수·합병으로 몸집을 불리며 2013년 4월 발표된 대규모 기업집단에 42위로 재진입했다.

    현재 한솔그룹은 제지 사업군을 기반으로 첨단 화학 소재, 인테리어 건축자재, IT 소재, 플랜트와 발전 보일러, 제3자 물류, 종합 레저 사업, IT 솔루션 분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업구성을 갖췄다.

    2012년부터 그룹 지배구조 재편을 추진해왔다. 한솔제지에서 지주회사 한솔홀딩스를 분리하며 재편의 어려운 고비를 넘겼다.

    2015년 들어 비상장자회사들이 실적을 개선했다. 한솔케미칼과 한솔페이퍼텍, 한솔개발 등이 그 예다. 한솔그룹은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됐다.

    조동길은 2015년 초 신년사에서 창립 50주년을 맞아 100년 이상 가는 초일류 장수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을 목표로 한솔경영체계를 새롭게 제시했다.

    2003년 12월부터 2013년 1월까지 대한테니스협회 회장으로 활동했다.

    2004년 2월부터 2007년 2월까지 제28대 한국제지공업연합회 회장을 맡았다.

    ◆ 사건/사고

    2013년 12월 한솔제지는 2007년 3월부터 2011년 10월까지 모두 17차례에 걸쳐 제지업체들과 담합을 통해 백판지 판매가격을 올렸다는 사실이 드러나 365억 원의 과징금을 받았다.

    2014년 5월 한솔EME도 포스코건설과 대구 하수처리장 공사 담합을 한 이유로 10억 700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한솔제지와 한솔EME가 잇따라 과징금을 받으면서 조동길의 리더십에 위기가 온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일었다.

    ◆ 상훈

    1999년 제4회 대한민국협상 대상을 받았다.

    ◆ 어록

    “창립 50주년을 맞아 무한 생존경쟁을 뚫고 100년 기업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최고경영자부터 일선 현장의 직원들이 이해하고 실천할 기업이념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2015/01/05, 한솔경영체계를 발표한 이유를 설명하면서)

    “차별화를 통한 경쟁우위 확보와 최대가치 구현, 고객과 함께 지속성장을 그룹의 사명으로 삼을 것.” “최고경영진부터 현장 일선 직원까지 모두가 한솔경영체계를 공감하고 실천해야 할 것.” (2015년 신년사에서)

    “혁신은 우리가 업무를 추진할 때 기계처럼 자동으로 나오는 습관과 같아야 한다." "이를 위해 뼛속 깊은 곳까지 혁신정신으로 무장하고 행동해야 한다." "윤리경영 제반 시스템을 업무와 행동에 내재화해 한솔의 큰 자랑 중 하나인 깨끗한 조직문화를 더욱 발전시켜 선제적으로 위험을 관리해 나가자." (2014/01 신년사에서)

    “미국에서는 한 가지 이상 스포츠를 의무화하고 있는데 비해 우리는 법정 체육 시간도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한창 키와 골격이 성장하는 청소년기에 스포츠를 통해 몸과 정신이 모두 건강해졌으면 좋겠다.” “피겨의 김연아, 수영의 박태환처럼 테니스에서도 세계적 스타가 나올 수 있도록 적극 뒷받침할 것.” (2009년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해외에서는 테니스를 골프보다 더 신사 스포츠로 인정한다. 그래서 업무차 유럽이나 미국에 가서 ‘한국의 테니스협회장’이라고 소개하면 보는 눈이 달라지고, 협상도 잘 풀리는 경우가 많았다.” (2009년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대부분의 계열사들이 국내외적으로 경영환경이 불투명한 가운데에서도 지속적인 경영혁신 노력을 통해 기대 이상의 경영실적을 보이고 있다.”“세계적 경제 불황의 터널은 아직 끝이 아니며 긴장의 끈을 놓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을 항상 염두에 두고,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 사태를 교훈 삼아 앞으로는 어떤 경영환경 속에서도 꾸준한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세계 최고의 가치 창출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가일층 분발해주기 바란다.” (2009/05/21, 한솔제지 장항공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C-커브 전략의 핵심은 재무구조의 안정화를 기반으로 기존 사업에서의 수익성을 극대화해 2∼3년간 내부역량과 기초체력을 견실히 한 후 이를 통해 새로운 성장사업을 발굴해 가는 수익성 을 동반한 성장을 실현하는 것." (2003년 신년사에서)

    “30년 동안 핵심주력사업이었고 수익성이 가장 좋았던 신문용지 사업을 매각해야했던 점이 가장 큰 충격이었다.” “협상과정에서는 수많은 협상관계기관과의 협상이 필요했고 북미, 유럽, 아시아라는 지역적인 문제로 야간에 회의를 진행해야 했다. 특히 지난해 12월 22일 런던에서 3자가 모여 대부분 본계약서를 체결하고 귀국한 후 매일 밤 국제전화를 하고 31일에는 날짜와 연도를 바꿔가며 새벽 3시까지 회의했다.” (1999/12/20,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앞으로 투자는 아시아 중에서도 주로 중국에 집중할 계획이다.현재는 물론 다가오는 21세기에 가장 중요한 시장인 중국에 대해 한솔제지는 이미 90년대 초부터 본격 진출해 2곳의 생산공장, 2개 법인, 7개 지점과 사무소를 설치하는 등 다각도로 사업을 벌이고 있다.” (1999/12/20,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 평가

    조동길은 한솔의 외형과 내실을 모두 성장시켰다고 평가받는다. 한솔그룹은 그가 취임하던 2002년 2조 원대의 매출에 머물렀으나 5 조원까지 성장했다.

    한솔그룹의 핵심인 한솔제지, 한솔아트원제지, 한솔페이퍼텍 등 제지사업군을 강화해외연을 넓혀갔다. 친환경 건축자재 기업인 한솔홈데코, 화학소재를 생산하는 한솔케미칼, IT부품 등 소재를 공급하는 한솔테크닉스 등 소재사업군과 물류기업 한솔로지스틱스 등을 차례차례 세웠다.

    조동길은 한솔그룹 경영의 전면에 나서 성공적인 구조조정으로 능력을 인정받았다.

    그는 당시 임직원이 준수해야 할 경영전략으로 운용효율의 극대화, 저수익사업의 상시 구조조정, 기존 사업의 경쟁력 강화 등 3가지를 꼽았다. 특히 저수익사업의 상시구조조정과 관련해 "모든 계열사와 사업부는 3년내 자본비용 이상의 수익을 창출하지 못할 경우 스스로 구조조정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거시적 안목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해외조림 사업은 그의 아이디어였다.

    1993년 해외진출을 놓고 갑론을박을 벌였을 때 임원회의에서 당시 한솔제지 기획이사를 맡고 있었고 “100년 사업인 제지를 위해서는 미래를 내다보는 조림을 통해 글로벌 경쟁의 무기를 갖춰야 한다”고 주장해 관철시켰다. 이 해외조림 사업은 20년 만인 2013년부터 수익을 거뒀다.

    그룹 총수로서 실무와 현장을 잘 이해하는 경영자로 평가받는다. 글로벌 경영감각과 재무, 기획, 인사, 홍보, 마케팅, 생산 분야에 이르기까지 경영 전반에 대해 꿰뚫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그가 대학을 졸업하고 한솔에 입사하기 전에 삼성물산과 JP모건을 거치며 경영전반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키웠고 1987년 그룹의 모태인 전주제지에 입사한 뒤에도 기획과 자금 등 핵심 업무를 담당했던 경험이 바탕이 됐다. 

    테니스 전도사로 유명하다. 지인들과 '수요회'를 조직해 수요일마다 코트를 누비며 건강을 챙기곤 했다. 그는 미국의 지인과도 해마다 자선기금 마련 테니스 경기를 벌이는 등 테니스와 뗄 수 없는 인생을 보냈었다.

    테니스를 경영활동에도 접목한다. 그는 “골프는 하위권 선수가 우승하는 이변이 가끔 일어나지만 테니스는 체력과 기본기가 탄탄하지 않으면 결코 우승할 수 없다”며 “ 기업도 재무구조 등 펀더멘털이 튼튼해야 위기에서 살아남고, 호황기에 성장할 수 있다”라고 기본을 중시한다.

    그러나 한솔그룹은 그동안 삼성그룹 후광을 받아 성장해온 데다가 내부거래, 답함으로 실적을 올리면서 제지 이외에는 마땅한 주력 사업이 없다는 비판을 많이 받아왔다.

    창립 50주년을 맞은 2015년 한솔그룹은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본격 시동을 걸었다.

    그룹의 순환출자 구조를 ‘지주회사-자회사-손자회사’의 3단계 구조로 만드는 작업을 시작했으며 지주사 전환 작업은 한솔제지 존속회사가 사명을 바꾼 한솔홀딩스를 중심으로 진행됐다.

    조동길 등 특수관계인이 보유한 한솔홀딩스 지분은 17.73%다. 한솔홀딩스는 2016년에 신주를 내어주고 한솔제지 지분을 공개매수하는 주식스왑 작업을 진행했다. 주식을 스왑한 뒤 한솔홀딩스의 최대주주는 국민연금에서 조동길 외 5인으로 바뀌었다.

    ◆ 기타

    미국 명문 사립고인 필립스 아카데미에서 테니스를 습득했다. 선수생활은 안했으나 동아리에서 잘 치는 학생이었다고 한다. 외국 협력업체 회장과 우연히 테니스 내기를 하다가 시작한 테니스 대회를 지인들도 참여하게 해 15년째 이어갔다.

    삼성가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재현 CJ그룹 회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등과 허물없이 지내는 것으로 전해진다.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과는 30년 지기이며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류진 풍산 회장, 이웅렬 코오롱 회장 등 동년배 총수들과 자주 교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5년 한솔홀딩스에서 보수 6억5백만 원을 받았다.

  • ◆ 평가

    조동길은 한솔의 외형과 내실을 모두 성장시켰다고 평가받는다. 한솔그룹은 그가 취임하던 2002년 2조 원대의 매출에 머물렀으나 5 조원까지 성장했다.

    한솔그룹의 핵심인 한솔제지, 한솔아트원제지, 한솔페이퍼텍 등 제지사업군을 강화해외연을 넓혀갔다. 친환경 건축자재 기업인 한솔홈데코, 화학소재를 생산하는 한솔케미칼, IT부품 등 소재를 공급하는 한솔테크닉스 등 소재사업군과 물류기업 한솔로지스틱스 등을 차례차례 세웠다.

    조동길은 한솔그룹 경영의 전면에 나서 성공적인 구조조정으로 능력을 인정받았다.

    그는 당시 임직원이 준수해야 할 경영전략으로 운용효율의 극대화, 저수익사업의 상시 구조조정, 기존 사업의 경쟁력 강화 등 3가지를 꼽았다. 특히 저수익사업의 상시구조조정과 관련해 "모든 계열사와 사업부는 3년내 자본비용 이상의 수익을 창출하지 못할 경우 스스로 구조조정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거시적 안목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해외조림 사업은 그의 아이디어였다.

    1993년 해외진출을 놓고 갑론을박을 벌였을 때 임원회의에서 당시 한솔제지 기획이사를 맡고 있었고 “100년 사업인 제지를 위해서는 미래를 내다보는 조림을 통해 글로벌 경쟁의 무기를 갖춰야 한다”고 주장해 관철시켰다. 이 해외조림 사업은 20년 만인 2013년부터 수익을 거뒀다.

    그룹 총수로서 실무와 현장을 잘 이해하는 경영자로 평가받는다. 글로벌 경영감각과 재무, 기획, 인사, 홍보, 마케팅, 생산 분야에 이르기까지 경영 전반에 대해 꿰뚫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그가 대학을 졸업하고 한솔에 입사하기 전에 삼성물산과 JP모건을 거치며 경영전반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키웠고 1987년 그룹의 모태인 전주제지에 입사한 뒤에도 기획과 자금 등 핵심 업무를 담당했던 경험이 바탕이 됐다. 

    테니스 전도사로 유명하다. 지인들과 '수요회'를 조직해 수요일마다 코트를 누비며 건강을 챙기곤 했다. 그는 미국의 지인과도 해마다 자선기금 마련 테니스 경기를 벌이는 등 테니스와 뗄 수 없는 인생을 보냈었다.

    테니스를 경영활동에도 접목한다. 그는 “골프는 하위권 선수가 우승하는 이변이 가끔 일어나지만 테니스는 체력과 기본기가 탄탄하지 않으면 결코 우승할 수 없다”며 “ 기업도 재무구조 등 펀더멘털이 튼튼해야 위기에서 살아남고, 호황기에 성장할 수 있다”라고 기본을 중시한다.

    그러나 한솔그룹은 그동안 삼성그룹 후광을 받아 성장해온 데다가 내부거래, 답함으로 실적을 올리면서 제지 이외에는 마땅한 주력 사업이 없다는 비판을 많이 받아왔다.

    창립 50주년을 맞은 2015년 한솔그룹은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본격 시동을 걸었다.

    그룹의 순환출자 구조를 ‘지주회사-자회사-손자회사’의 3단계 구조로 만드는 작업을 시작했으며 지주사 전환 작업은 한솔제지 존속회사가 사명을 바꾼 한솔홀딩스를 중심으로 진행됐다.

    조동길 등 특수관계인이 보유한 한솔홀딩스 지분은 17.73%다. 한솔홀딩스는 2016년에 신주를 내어주고 한솔제지 지분을 공개매수하는 주식스왑 작업을 진행했다. 주식을 스왑한 뒤 한솔홀딩스의 최대주주는 국민연금에서 조동길 외 5인으로 바뀌었다.

    ◆ 사건/사고

    2013년 12월 한솔제지는 2007년 3월부터 2011년 10월까지 모두 17차례에 걸쳐 제지업체들과 담합을 통해 백판지 판매가격을 올렸다는 사실이 드러나 365억 원의 과징금을 받았다.

    2014년 5월 한솔EME도 포스코건설과 대구 하수처리장 공사 담합을 한 이유로 10억 700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한솔제지와 한솔EME가 잇따라 과징금을 받으면서 조동길의 리더십에 위기가 온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일었다.

  • ◆ 경력

    1987년 12월부터 1991년까지 전주제지 이사대우를 지냈다.

    1991년 12월부터 1년 동안 한솔제지 기획조정실담당 이사를 맡았다.

    1993년 12월부터 1년 동안 한솔제지 상무이사로 재직했다.

    1995년 11월 한솔제지 부사장에 올랐다.

    1997년 11월 한솔그룹 부회장을 지냈다.

    1999년 세계 최대 신문용지제조업체인 캐나다의 아비티비, 북유럽 최대 신문용지 제조업체인 노르웨이의 노르스케와 합작으로 싱가포르에 아시아 최대 신문용지 전문회사를 설립했다.

    2002년 이인희 한솔 고문이 한솔제지 대표이사 자리를 조동길에게 물려줬다. 그 뒤 그룹 회장으로 취임했다.

    한솔그룹은 계열분리 후 공격적인 사업확장으로 2000년 자산 기준 11위를 차지한 대기업집단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 한솔제지 등이 경영 위기에 처하면서 상당수 계열사 및 자산을 매각하거나 축소했다.

    2009년에는 공정위가 자산 5조 원이 넘는 대기업들을 대상으로 지정하는 ‘대규모 기업집단’에서 제외됐다. 하지만 한솔그룹은 최근 2~3년 새 인수·합병으로 몸집을 불리며 2013년 4월 발표된 대규모 기업집단에 42위로 재진입했다.

    현재 한솔그룹은 제지 사업군을 기반으로 첨단 화학 소재, 인테리어 건축자재, IT 소재, 플랜트와 발전 보일러, 제3자 물류, 종합 레저 사업, IT 솔루션 분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업구성을 갖췄다.

    2012년부터 그룹 지배구조 재편을 추진해왔다. 한솔제지에서 지주회사 한솔홀딩스를 분리하며 재편의 어려운 고비를 넘겼다.

    2015년 들어 비상장자회사들이 실적을 개선했다. 한솔케미칼과 한솔페이퍼텍, 한솔개발 등이 그 예다. 한솔그룹은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됐다.

    조동길은 2015년 초 신년사에서 창립 50주년을 맞아 100년 이상 가는 초일류 장수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을 목표로 한솔경영체계를 새롭게 제시했다.

    2003년 12월부터 2013년 1월까지 대한테니스협회 회장으로 활동했다.

    2004년 2월부터 2007년 2월까지 제28대 한국제지공업연합회 회장을 맡았다.

    ◆ 학력

    1980년 연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 가족관계

    어머니 이인희 한솔 고문과 아버지 조운해 강북삼성병원 이사장 사이에서 3남으로 태어났다.

    큰 형은 조동혁 한솔그룹 명예회장, 둘째 형은 조동만 전 아이글로브 회장이다.

    부인 안영주씨와 사이에 딸 조나영씨, 아들 조성민씨를 뒀다. 안영주씨는 안영모 전 동화은행장의 3녀다.

    조나영씨는 김앤장 법률사무소 한상호 변호사의 장남인 한경록씨와 결혼해 딸을 낳았다. 조성민씨는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외국계 회사를 다니며 경영수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 상훈

    1999년 제4회 대한민국협상 대상을 받았다.

  • ◆ 어록

    “창립 50주년을 맞아 무한 생존경쟁을 뚫고 100년 기업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최고경영자부터 일선 현장의 직원들이 이해하고 실천할 기업이념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2015/01/05, 한솔경영체계를 발표한 이유를 설명하면서)

    “차별화를 통한 경쟁우위 확보와 최대가치 구현, 고객과 함께 지속성장을 그룹의 사명으로 삼을 것.” “최고경영진부터 현장 일선 직원까지 모두가 한솔경영체계를 공감하고 실천해야 할 것.” (2015년 신년사에서)

    “혁신은 우리가 업무를 추진할 때 기계처럼 자동으로 나오는 습관과 같아야 한다." "이를 위해 뼛속 깊은 곳까지 혁신정신으로 무장하고 행동해야 한다." "윤리경영 제반 시스템을 업무와 행동에 내재화해 한솔의 큰 자랑 중 하나인 깨끗한 조직문화를 더욱 발전시켜 선제적으로 위험을 관리해 나가자." (2014/01 신년사에서)

    “미국에서는 한 가지 이상 스포츠를 의무화하고 있는데 비해 우리는 법정 체육 시간도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한창 키와 골격이 성장하는 청소년기에 스포츠를 통해 몸과 정신이 모두 건강해졌으면 좋겠다.” “피겨의 김연아, 수영의 박태환처럼 테니스에서도 세계적 스타가 나올 수 있도록 적극 뒷받침할 것.” (2009년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해외에서는 테니스를 골프보다 더 신사 스포츠로 인정한다. 그래서 업무차 유럽이나 미국에 가서 ‘한국의 테니스협회장’이라고 소개하면 보는 눈이 달라지고, 협상도 잘 풀리는 경우가 많았다.” (2009년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대부분의 계열사들이 국내외적으로 경영환경이 불투명한 가운데에서도 지속적인 경영혁신 노력을 통해 기대 이상의 경영실적을 보이고 있다.”“세계적 경제 불황의 터널은 아직 끝이 아니며 긴장의 끈을 놓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을 항상 염두에 두고,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 사태를 교훈 삼아 앞으로는 어떤 경영환경 속에서도 꾸준한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세계 최고의 가치 창출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가일층 분발해주기 바란다.” (2009/05/21, 한솔제지 장항공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C-커브 전략의 핵심은 재무구조의 안정화를 기반으로 기존 사업에서의 수익성을 극대화해 2∼3년간 내부역량과 기초체력을 견실히 한 후 이를 통해 새로운 성장사업을 발굴해 가는 수익성 을 동반한 성장을 실현하는 것." (2003년 신년사에서)

    “30년 동안 핵심주력사업이었고 수익성이 가장 좋았던 신문용지 사업을 매각해야했던 점이 가장 큰 충격이었다.” “협상과정에서는 수많은 협상관계기관과의 협상이 필요했고 북미, 유럽, 아시아라는 지역적인 문제로 야간에 회의를 진행해야 했다. 특히 지난해 12월 22일 런던에서 3자가 모여 대부분 본계약서를 체결하고 귀국한 후 매일 밤 국제전화를 하고 31일에는 날짜와 연도를 바꿔가며 새벽 3시까지 회의했다.” (1999/12/20,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앞으로 투자는 아시아 중에서도 주로 중국에 집중할 계획이다.현재는 물론 다가오는 21세기에 가장 중요한 시장인 중국에 대해 한솔제지는 이미 90년대 초부터 본격 진출해 2곳의 생산공장, 2개 법인, 7개 지점과 사무소를 설치하는 등 다각도로 사업을 벌이고 있다.” (1999/12/20,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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