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Is ?] 김무성 바른정당 의원

조은진 기자
2016-02-05 09:2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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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무성 바른정당 의원.


    ◆ 생애

    김무성은 1951년 9월20일 부산에서 태어났다.

    중동고등학교를 거쳐 한양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동해제강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해 32세의 나이에 삼동산업의 전무가 됐다.

    통일민주당의 창당 발기인으로 참여하면서 정계에 입문해 상도동계로 분류됐다. 대통령 선거대책본부 재정국장으로 활동했으며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이 창당된 이후 민주자유당 의사국장과 의원국장을 지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행정실장과 대통령 민정수석 비서관을 역임했으며 내무부 차관으로 임명됐다.

    신한국당 소속으로 부산 남구 을에서 출마해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후 5선 의원이 됐다.

    한나라당 출범에 참여했고 새누리당에 이르기까지 원내대표와 사무총장, 최고위원 등 주요 요직을 거쳤다.

    제18대 총선에서 친박으로 분류돼 공천에 탈락하자 무소속으로 출마해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한나라당에 복당했다.

    2012년 총선에 불출마하고 박근혜 후보 선거캠프를 이끄는 총괄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았다. 다음해 보궐선거에서 부산 영도구 국회의원에 당선돼 5선 의원이 됐다.

    새누리당 대표를 맡다가 2016년 4월 새누리당이 과반 의석 석권에 실패한 책임을 지고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부산광역시 중구영도구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별명이 ‘무대’(무성대장)일 만큼 시원시원한 성격을 갖고 있지만 상당히 말실수가 잦다.

    ◆ 가족관계

    김용주 전남방직주식회사 창업주가 부친이다. 김용주 창업주는 민주당 원내총무와 초대 주일공사를 지냈다.

    4남1녀 가운데 3남으로 자랐다.

    친누나 김문희 용문학원 재단 이사장은 현대증권과 현대상선의 주주다. 학교법인인 용문학원 재단은 서울 성북구 용문중학교와 용문고등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김창성 전 전남방직주식회사 회장 및 한국경영자총협회 명예회장이 형이다.

    현영원 전 현대상선 회장이 매형이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외조카로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이 조카사위다.

    부인 최양옥씨와 사이에 1남2녀를 뒀다. 장남 김종민씨는 고윤이라는 가명을 써 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아이리스2>, <호텔 킹> 등에 출연했다.

    최치환 전 경향신문 사장이 장인이다. 그는 박정희 정권에서 국회의원을 지냈고 그 뒤 삼성그룹 고문을 맡기도 했다.

    ◆ 학력

    1964년 부산화랑국민학교를 졸업했다.

    1967년 경남중학교를 졸업하고 1970년 중동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75년 한양대학교 경영학과를 학사로 졸업했다.

    1999년 고려대학교 정책대학원 최고위정책과정을 수료했다.

    2003년 부경대학교에서 명예정치학 박사와 2006년 한양대학교 명예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5년 동국대학교와 한국해양대학교에서 각각 명예정치학과 명예행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 경력

    1976년 동해제강 전무이사를 지낸 뒤 1982년 삼동산업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1985년 김영삼 전 대통령의 보좌관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민주화추진협의회에 참여해 특별위원회 부위원장에 선임됐다.

    1987년 통일민주당 제13대 대통령 선거대책본부 재정국장으로 활동했으며 통일민주당 총무국장, 기획조정실 차장, 국회행정실장을 역임했다.

    1990년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이 출범하자 김영삼 전 대통령을 따라 민자당에 합류해 의사국장, 의원국장을 지냈다.

    1993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행정실장, 대통령 민정수석 비서관을 맡았고 1994년 제48대 내무부 차관이 됐다.

    1996년 5월 신한국당 소속으로 부산 남구을에서 15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한나라당 출범에 참여했으며 당내에서 원내 수석부총무와 한나라당 총재 비서실장을 담당했다.

    2004년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위원장이 됐으며 2005년 민주화추진협의회 회장이 됐다.

    2005년 한나라당 사무총장에 선출됐고 2007년 11월 한나라당 최고위원회 위원이 됐다.

    2008년 18대 총선 공천에서 친박계에 대한 ‘보복공천’이 이뤄지자 한나라당을 탈당했다. 무소속으로 18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7월 복당했다.

    2010년 5월부터 1년간 한나라당 원내대표를 지냈다.

    2012년 제19대 총선에 불출마하고 박근혜 후보 선거 캠프를 이끄는 총괄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았다. 같은해 한나라당의 당명이 새누리당으로 바뀌었다.

    2013년 보궐선거에서 당선되어 5선 의원이 됐다.

    2014년 7월14일 제3차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대표로 선출됐다.

    2016년 4월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하자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20대 총선에서 부산광역시 중구영도구에서 의원으로 당선됐다.

    ◆ 사건/사고

    1996년 5월 공용주파수통신(TRS) 사업자에게 청탁과 함께 2천만 원을 받은 일로 특별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죄로 기소돼 1999년 7월 벌금 1천만 원, 추징금 2천만 원을 선고받았다.

    2000년 총선에서 투표일을 앞두고 같은 지역구의 민주당 후보에게 ‘생활’ 명목으로 500만 원을 건넸다가 다음해 3월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2008년 3월 영남권 공천에서 탈락했다. 김무성은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나라당 공천과정에 청와대가 개입했다”며 탈당을 선언했다. 김무성은 부산 남구을에 무소속 출마해 18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7월 복당했다.

    당 원내대표를 지내던 2010년 12월 4대강 예산 처리를 위해 몸싸움을 진두지휘해 비판받았다.

    2011년 7월 한나라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세력들은 김정일 정권의 꼭두각시 종북세력”이라는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다. 강정마을 주민 10명은 민사소송을 제기했고 2012년 2월27일 1심재판부는 10명 가운데 9명에게 각각 100만 원씩 총 900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2013년 6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해북방한계선(NLL)발언 논란과 관련해 김무성이 2012년 이미 이 대화록을 갖고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김무성은 대선 전 부산 유세에서 노 전 대통령이 서해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을 했다며 말을 인용했는데 그 발언이 국정원의 녹취록과 거의 흡사했기 때문이다. 김무성은 검찰조사에서 ‘증권가 정보지’ 내용을 토대로 한 보고서를 본 것이라고 해명했다.

    가족 및 친인척의 과거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2014년 2월 부친 김용주 전남방직주식회사 창업주가 반민족친일행위자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김 창업주는 일제강점기 경북도회 의원을 지냈으며 전쟁동원 친일단체인 조선 임전보국단 간부로서 ‘황군(일본군)에게 위문편지 보내기’ 운동을 주도한 사실이 1941년 매일신보에 실렸다. 반민특위법 4조8항에 따르면 당시 도회의원도 처벌대상으로 삼고 있어 친일파로 볼 수 있다는 견해였다.

    김무성 측은 "임전보국단 명단에 한용운과 장면 등 민족 지도자나 백남운과 여운형 등 좌익계열 지도자 이름도 있다“며 ”일본에 의한 강제가입이 의심되며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가 기사를 날조했다는 증언도 있다"고 반박했다. 김무성 측은 "도의원도 관선이 아니라 민선으로 선출된 것인데 단순히 친일파로 말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부친의 친일논란은 2015년 하반기 다시 터졌다. 김무성은 부친의 흉상이 있는 경북 포항 영흥초등학교를 찾았다. 그는 부친의 흉상 밑에 헌화와 묵념시, 부친의 친일 의혹을 반박하는 자료와 선친에 대한 평전을 놓아두기도 했다.

    2014년 4월 장인 최치환 전 경향신문 사장이 제주 4.3 사건 진압을 지휘한 작전참모였다는 의혹이 등장했다. 만주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만주국 장교로 근무하던 최 사장이 해방 후 25세의 나이로 경위에 임관해 4.3 사건과 함께 여순사건 진압 지휘에 가담했으며 그뒤 이승만 정권에서 출세가도를 달렸다는 것이다.

    김무성 측은 “사위의 입장에서 장인을 평가하는 것은 효의 관념에 맞지 않으며 장인은 조국 보전을 위해 노력한 분으로 알고 있다”고 해명했다.

    2014년 6월 참여연대가 딸의 교수 채용과 관련해 김무성을 검찰에 고발했다. 수원대가 2013년 9월 김무성의 딸을 수원대 전임 교원으로 채용했고 김무성은 2013년 10월 국정감사에서 비리의혹을 받던 이인수 수원대 총장의 국정감사 증인 채택이 무산되도록 도움을 줬다는 취지혔다. 검찰은 한차례 서면조사한 뒤 무혐의 처분했다.

    김무성은 이듬해 4월 참여연대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한뒤 2015년 12월 취하했다. 김무성의 차녀는 고소 취하 시점과 비슷한 시기 수원대에 교수직 사임서를 냈다.

    2014년 7월 전당대회에서 비주류이자 비박계로 불리던 김무성이 친박 주류 진영의 대표주자인 서청원 최고위원을 상당한 표 차이로 누르고 승리했다. 김무성은 이른바 ‘원조 친박’ 이미지로 박 대통령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는 동시에 박 대통령 및 친박 주류 진영과 대립각을 세우는 이미지로 선거에 나섰다. “청와대에 할 말은 하겠다”, “보수 혁신의 아이콘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2014년 8월 새누리당이 7.30 재보궐 선거에서 압승을 거둔 뒤 ‘김무성 체제’가 본격 출범했다.

    당시 ‘세월호 특별법’과 관련해 수사권과 특검추천권을 놓고 여야간 반목이 계속되고 있었다. 김무성은 8월29일 세월호 특별법 합의안을 번복하거나 수정할 의사가 없음을 천명했다. 김무성은 “우리가 백배 양보를 해서 풀린다면 양보하겠지만 양보할 수 없는 벼랑까지 가있고 양보를 하면 우리가 벼랑에서 떨어진다”고 말했다.

    2014년 9월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와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김무성은 한국노총 간담회에서 “‘초이노믹스’식의 재정 확대 정책만 갖고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부의 재정확장 방침과 관련 국가채무비율 등 국가재정 건전성에 대한 우려를 다시 제기했다.

    2014년 10월 중국 방문 기간 중 기자 간담회에서 개헌을 통한 국가 권력구조 개편과 관련해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의 검토 필요성을 언급하며 정치권의 개헌 논의에 불을 붙였다.

    김 무성은 “우리 사회 분위기나 성숙도가 (정치적) 중립지대를 허용하는 수준이 됐기 때문에 연정을 통해 사회 안정을 도모해야 한다”며 “다음 대선(2017년)에 가까이 가면 (개헌은) 또 안 될 것”이라며 본격 개헌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

    청와대와 친박계는 그동안 개헌 논의에 따른 권력 누수를 우려하며 ‘시기상조론’을 주장해왔다. 청와대가 김무성의 발언에 즉각 반발하자 김무성은 “내 불찰”이었다며 사과했지만 청와대는 “대표되는 분이 실수로 언급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못박았다.

    10월23일 김태호 새누리당 의원이 돌연 김무성을 비판하며 최고위원직을 사퇴해 파장이 일었다. 김 의원은 “대통령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국회를 향해 ‘경제활성화 법안만 통과시켜 달라. 지금이 골든타임’이라고 말해왔는데 오히려 ‘개헌 골든타임’이라고 대통령에게 염장을 뿌렸다”며 “저부터 반성하는 차원에서 최고위원직을 사퇴한다”고 말했다.

    김무성은 청와대의 개헌논의 금지 경고에도 불구하고 2015년 1월 당 최고중진연석회의 비공개회의장에서 개헌의 필요성과 배경을 다시 언급해 관심이 쏠렸다.

    2015년 1월 청와대 문건파동과 관련해 김무성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보던 수첩에 적힌 메모가 카메라에 포착돼 주목받았다. 김무성의 수첩에는 ‘문건파동 배후는 K. Y. 내가 꼭 밝힌다’라고 적혀 있었다.

    이른바 ‘수첩파문’으로 논란이 커지면서 청와대 선임행정관(2급)이 국정개입 문건 유출의 배후로 김무성과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을 지목했다는 추측이 나돌았다. 김무성은 “모임에서 들은 것을 메모한 것이지만 내용이 황당하다고 생각해 적어놓기만 했다”고 말했다.

    같은 달 서청원 최고의원과 2015년 4월 재보선 후보자 선정 방안을 두고 설전을 주고 받았다. 김무성은 2014년 12월부터 100% 여론조사 방식을 주장해왔다. 서 의원은 “(공천을 담당하는) 조직강화특위 문제 같은 사항들은 상의해서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015년 4월 ‘성완종 리스트’ 파문 정국이 일었다. 친박 실세들이 직격탄을 맞는 가운데 김무성은 자유로웠다. 4월16일 박 대통령이 김무성을 청와대로 불러 독대했다.

    그뒤 성완종리스트 파문이 2012년 불법 대선자금 의혹으로 불씨가 옮겨가는 가운데 김무성이 “야당도 같이 조사를 받아야 한다”고 말해 검찰의 수사방향에 영향을 끼치려는 의도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야당은 “물귀신 작전”이라며 즉각 반발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6주기 추도식에 참석했다. 노 전 대통령의 아들 노건호씨가 유족 인사말에서 “전직 대통령이 서해북방한계선(NLL)을 포기했다며 정상회의록 일부를 피 토하듯 읽으시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어려운 발걸음을 해주셨다”며 “권력으로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넣고도 모자라 선거에 이기려고 국가 기밀문서를 읊어대고 국정원을 동원해 댓글 달아 종북몰이 해대다가 아무말없이 언론에 흘리고 불쑥 나타나시지 진정 대인배의 풍모”라고 말해 주목받았다.

    김무성은 그뒤 한 강연에 참석해 “제가 (대선 때) 과하게 비판했던 것을 인정한다. 돌 안 맞은 게 다행”이라며 “그에 대한 아무런 감정이 없다”고 말했다.

    2015년 7월 취임1주년 기자회견에서 화두로 ‘정당 민주주의’를 내놨다. “공천권을 내려 놓겠다”며 완전 국민경선제(오픈프라이머리) 도입을 꺼내 놨다. 이를 놓고 권력자의 공천 개입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하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이 전면적 오픈프라이머리 시행에 반대해 여야 합의가 무산돼 상황이 복잡해졌다. 새정연은 당헌당규상 20% 이내에서 전략공천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단독으로 시행하려면 150억 원이 넘는 경선 관리 비용을 국고에서 부담하게 할 법개정 작업이 필요했고 ‘역선택’ 마련할 대안도 없었다.

    2015년 7월 미국 방문 중 보인 언행이 파장을 일으켰다. 김무성은 이틀 연속 큰절을 하는가 하면 “중국보다 미국”, “전투기를 사겠다” 등의 파격발언을 잇달아 내뱉었다.

    8월 문재인 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오픈프라이머리와 권역별 비례대표제 빅딜’을 제안했지만 이번엔 김무성이 거절했다. 김무성은 문 전 대표가 도입을 요구한 권역별 비례대표제에 대해 “지역주의 해소를 위해 만들어졌지만 전문가 영입이라는 비례대표제의 의미가 퇴색하고 의석수가 많이 늘어날 수밖에 없어 적용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김무성은 “오픈프라이머리 이름을 ‘국민공천제’로 바꾸겠다”며 “국민공천제처럼 국민과 당원에게 공천권을 돌려드리는 공천 혁명은 정치개혁의 결정판으로 다른 제도와 맞바꿀 수 없다”고 말했다.

    2015년 9월 김무성의 둘째 사위 이상균 신라개발 대표가 마약 상습 투약 혐의로 구속된 적이 있으며 유력 정치인의 인척이어서 재판에서 양형기준 이하의 형을 받았다는 외압 의혹이 제기됐다. 김무성은 국회에서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어 “요즘 세상에 정치인 가족이라고 하면 더 중형을 때리지 봐주는 판사를 본 적 있느냐”며 이를 전면 부인했다.

    2015년 10월 결국 친박계의 전략공천 요구를 사실상 수용했다. 김무성은 “공천 룰을 논의할 특별기구에서 ‘당헌당규대로 공천하자’고 결론내리면 수용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특별기구가 ‘당헌 당규대로 당원들의 의견을 반영하자’고 의결하면 이것도 수용할 수 있다”며 현행대로 당원투표와 여론조사 비율 5:5를 적용한 공천 가능성을 열어뒀다.

    새누리당의 공천 갈등은 곧 2라운드에 접어들었다. 오픈프라이머리가 무산된 데 이어 ‘안심번호 국민공천제’와 ‘전략공천’ 문제를 놓고 친박과 비박계가 정면충돌했다.

    같은 시기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놓고 여야간 첨예한 대립이 이어졌다. 김무성은 국정교과서 정책에 대해 “정권이 열 번 바뀌더라도 절대 바뀌지 않을 균형잡힌 교과서, 올바른 교과서가 될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문재인 전 대표는 “1년짜리 정권교과서가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2015년 11월22일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 김무성은 85년 김 전 대통령이 주도했던 ‘민주화추진협의회’에 합류하면서 정계에 입문한 이른바 ‘상도동 막내’였다. 김무성은 “나는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아들”이라며 하루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빈소를 지켰다.

    연말연초 잦은 말실수가 논란이 됐다. 2015년 12월18일 연탄 봉사활동을 하다 흑인 학생에게 “니는 연탄색깔 하고 얼굴 색깔이 똑같네”라고 농담을 던져 인종차별적 발언이라고 비판받았다. 행사에는 새마을운동 교육차 한국을 찾은 브라질과 콜롬비아, 동티모르, 파키스탄, 짐바브웨 등 27개국 유학생 40여 명이 함께했다.

    김무성은 페이스북을 통해 “현장에서 친근감을 표현한다는게 상처가 될 수 있음을 고려하지 못한 잘못된 발언이었다”고 사과했다.

    2016년 1월30일 저출산 대책의 일환으로 조선족의 이민 문턱을 낮출 것을 제안해 거세게 비판받았다. 이에 대해 김성수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현안브리핑을 통해 “저출산 대책은 아예 포기하고 조선족을 받아들여 인구부족 사태를 막자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2016년 4월 제20대 총선이 다가오면서 공천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김무성은 유력인사들의 험지출마를 공언했다. 하지만 최근 안대희 전 대법관과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각각 서울 마포갑과 종로 출마를 선언하면서 험지출마론을 필승전략으로 강조해온 김무성의 리더십이 도마에 올랐다.

    ◆ 상훈

    1996년 황조근정훈장을 수여받았다.

    2007년 코리아 베스트드레서 스완어워즈 정치부문에서 수상했다.

    2011년 코리아정책상과 대한민국을 빛낸 21세기 한국인상을 받았다.

    2014년 대한민국 의정대상과 대한민국 유권자 대상을 받았다.

    ◆ 어록

    “독일은 출산율이 1.34명까지 내려가서 이민자들을 대거 받았다. 그랬더니 터키에서 몇 년 만에 400만 명이 몰려와 문을 닫았다. 우리는 조선족이 있어 문화쇼크를 줄일 수 있다. 조선족을 대거 받아들여야 한다.” (2016/01/30 저출산 대책특위 회의 겸 당정 협의회에서)

    “권력 주변에 수준낮은 사람들은 완장을 차려 한다. 그들은 완장을 차고 권력자 이미지를 손상시킨다. 역대 정권마다 있었던 일인데 그게 대통령한테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2016/01/26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시민의 소중한 세금을 시장들이 개인적인 인기를 얻기 위해 남용하는 포퓰리즘이야 말로 악마의 속삭임이자 달콤한 독약이다.” (2016/01/25 이재명 성남시장의 청년배당 정책과 박원순 서울시장의 청년지원금 정책에 대해)

    “진박 논란은 그만큼 정치수준이 낮다는 것.” “너무 쉽게 국회의원에 당선된 분들이 충실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있는 게 사실이다.” (2016/01/18 2016 신년회견에서 대구경북의 ‘진박’(진실한 사람+친박) 후보 논란에 대해)

    “난 박근혜 대통령 선거 총책임자였다. 나를 ‘비박’이라고 지칭하는 것은 옳지 않다.” (2016/01/18 2016 신년회견에서)

    "'안철수 신당'의 등장은 표면적으로는 야당(野黨) 분열이지만 여당(與黨)에 대한 경고의 의미도 담고 있다" "(다만) 신당이 지금의 야당처럼 반대를 위한 반대만 하게 되면 결국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할 것" (15/01/04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국민 앞에 석고대죄하는 마음 자세로 인사회를 시작한다.”며 “지난해 여러 개혁과제를 추진했지만 국민 눈높이의 성과를 내지 못했고 국민이 목마르게 기다리는 노동개혁 5개 법안과 경제활성화법안들을 처리하지 못했다.” “입법 미비로 오늘(1월 1일)부터 선거구 무효라는 초유의 비상상황에 직면하게 돼 죄인 된 심정으로 국민께 사과드린.다” (2016/01/01 새누리당 신년인사회에서)

    “오픈프라이머리를 흔들려는 세력들이 자꾸 말을 만들어내고 있다.” “저는 정치생명을 걸고 오픈프라이머리를 관철시키겠다. 이것이 우리 정치개혁의 결정판이다.” (2015/08/20 오픈프라이머리와 관련해)

    “나라를 위해서 표를 생각하지 않고 노동시장 개혁을 추진하겠다.” “공무원연금 개혁은 완성했고 이제 노동개혁 부문을 우리가 중점 개혁 목표로 잡아 추진해야 한다.” (2015/07/18 ‘이승만 전 대통령 50주기 추모식’에서)

    “당청은 한몸일 수밖에 없고 이 정권은 박근혜정권이자 새누리당 정권” “당은 대통령이 하는 일을 뒷받침하고 베이스가 돼야 한다. 다만 과거처럼 대통령이 한마디한다고 해서 모든 걸 다 따라가는 상황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안 만나다가도 일이 생기면 만나 상의해 협조하는 것이 당정처이다. 의견이 좀 다르다고 회의를 안 한다고 하면 잘못된 일이다.” (2015/06/03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초청 학생 대상 특강에서)

    “대통령께서 공무원연금 개혁을 생각하면 한숨이 나온다고 했는데 저는 이 문제만 생각하면 정말 가슴이 터질 듯이 답답하다.” “어찌해서 하나마나한 맹탕 개혁, 졸속, 비열한 거래 등 이런 말로 매도당하면서 이렇게 온통 오물을 뒤집어써야 하는지 참 기가 막힌 심정이다.” (2015/05/14 노인복지 정책모임인 ‘퓨처라이프 포럼’에서)

    “전 세계적으로 핵실험을 2~3번 하면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게 돼 있다. 문제 발언이긴 하지만 현재도 북한에서 우리 남쪽을 향해 핵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 “사드는 고고도 미사일이다. 그래서 북한에서 만약 쏘아 올렸을 때 약 150km 상공에서 쏴서 요격할 수 있는 방어체제를 갖춰야 한다는 것은 기본상식”(2015/03/24 부산 해양대학교에서 열린 ‘청춘무대 김무성 토크쇼’에서 사드 배치 문제에 관해)

    “당시 소장이던 박 전 대통령이 5.16혁명을 일으키지 않았으면 대한민국이 어떻게 됐을까 생각해 보라.” "박정희 전 대통령은 우리나라가 적화통일될 가능성이 있음을 알고 무능하고 부패한 우리 정치권을 뒤집어엎어 혁명을 했다." "물론 우리 국민이 좀 억압을 당한 것은 잘못된 일이지만 우리 경제가 북한경제를 따라잡아서 오늘날 이러한 결과가 나왔다." (2014/02/04 서울에서 열린 전국포럼연합 주체 토론회 강연에서)

    “자녀 하나 낳은 분들 반성하셔야 한다.” “우리 모두 이상화, 김연아 같은 딸을 낳아야 한다.” (2014/02/12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2013년 출산율이 1.18명으로 하락한 점을 언급하며)

    “교육부의 엄격한 검정을 거쳐 통과된 역사교과서를 전교조의 테러에 의해 채택되지 않는 나라는 자유대한민국으로 볼 수 없다.” (2014/01/06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보수성향 시민사회단체 합동 신년회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은 저 자신도 과거 민주화 투쟁 시절 하루에도 몇 번씩 불렀던 민주화 투쟁 주제가였다." "5.18 기념 행사용 별도의 노래를 만들기 위한 예산을 책정했다는데 아까운 예산을 낭비하지 말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5.18 주제곡으로 선정해 유가족과 광주 시민들이 원하는 대로 해줘야 한다." (2013/05/08 새누리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국가보훈처의 ‘임을 위한 행진곡’ 5•18기념식 주제곡 선정 배제 논란에 대해)

    “종북주의자 30여 명의 반대 데모 때문에 중요 국책사업이 중단되고 있고, 현재 강정마을에서 공사를 제지하는 세력은 사실상 북한 김정일 정권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고 있는 종북세력이 대부분이다.” “이들이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것은 결국 북한에 불리한 것은 하지 말자는 종북적 행태다.” (2011/07/27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사에서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반대에 대해)

    "내가 사랑하고 헌신했던 한나라당이 여기까지 온 데 비통한 심정을 금치 못한다. 오늘 나는 마음은 한나라당에 두고 몸만 당을 떠난다.” “이런 무원칙한 공천을 일삼은 세력이 한나라당을 망치는 것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게 반드시 선거에서 이기고 돌아와 한나라당을 국민의 사랑을 받는 당으로 다시 만들겠다." (2008/03/14 기자회견에서 ‘한나라당 공천 청와대 개입’ 논란과 관련해)

    ◆ 평가

    정치권에서 선 굵은 정치인으로 통한다. 특히 김영삼 전 대통령의 사랑과 신뢰는 각별했다. 2008년 총선 당시 김 전 대통령이 김무성의 선거사무실을 방문해 “전국적 인물이 된 김 의원은 앞으로 대통령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며 김무성의 지지를 호소했다.

    한때 대표적인 '친박'으로 분류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이던 시절 당 사무총장을 맡았고 2007년 대선 경선 때 '친박계 좌장'으로 불렸지만 2014년 전당대회를 앞두고 “청와대에 할 말은 하겠다”며 비박계의 아이콘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2010년 정부의 세종시 수정 추진을 놓고 박근혜 대통령과 입장 차를 보이면서 한때 ‘탈박’의 길을 걸었다. 이때 김무성은 원내대표까지 오르면서 비박계 인사들과 두터운 신분을 쌓고 '화합형 리더'의 이미지를 얻었다.

    당 일각에서 '보수우파'를 자처하는 김무성의 강한 보수성향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김무성은 앞서 제주해군기지 반대 활동가들을 '종북세력' '김정일의 꼭두각시' 등으로 지칭해 구설수에 올랐다.

    경제관 역시 정통보수에 가까워 경제민주화 추세와 거리가 있다는 분석이다.

    회의나 강연에서 수치를 제시하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 김무성은 비서실에 “주요 현안에 대한 발언 자료를 준비할 때 반드시 통계를 첨부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예를 들어 워싱턴의 한국전쟁 참전기념비를 찾아 “6.25전쟁 때 미군이 참전해 3만6940명이 전사하고 9만2134명이 부상하고 8157명이 실종 상태라며 메모지를 보지 않고 줄줄이 외워 말하는 식이다.

    김무성의 별명은 ‘무대’(무성대장)다. 통 큰 보스라는 의미를 함축한 별명이다. 시원한 성격 때문에 말을 거침없이 내뱉어 말실수가 잦다. 이를 놓고 김무성의 하나의 스타일로 해석하는 시선이 있는 반면 반복되는 말실수는 그의 자질문제라는 비판도 존재한다.

    ◆ 기타

    1985년에 민족문제연구소의 이사로 재직했다. 그러나 이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문제를 연구한 임종국의 유지를 기리는 민족문제연구소와 다른 곳이다. 후자는 1991년 반민족문제연구소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어 후에 같은 이름으로 개명했다.

    2013년 9월부터 12월까지 좌편향 역사교과서를 바로잡자는 취지의 새누리당 내 국회의원모임 '근현대사 역사교실'을 개설해 직접 강연에 나섰다. 김무성은 강연에서 역사교육체제가 좌편향돼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과거 민주화 투쟁시절 하루에도 몇 번씩 불렀던 주제가였다"라며 자신의 민주화 투쟁경력을 자랑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국회의‘ 화환 문화’를 지적했다. 그는 2015년 10월 한 행사에서 축사에 앞서 “의원회에 가면 하루에도 한 대여섯 개씩 세미나가 열리는데 국회의원이 하는 세미나에 화환이 왜 와야 되느냐. 저런 것들 다 필요없는 거다”며 문밖 화환들을 손으로 가리켰다.

    또다른 행사에서 화환 행렬을 보다 최경환 전 부총리와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이름으로 보내진 화환을 가리키며 “모두 국민 세금 아이가”라고 해 주목받았다.

  • ◆ 평가

    정치권에서 선 굵은 정치인으로 통한다. 특히 김영삼 전 대통령의 사랑과 신뢰는 각별했다. 2008년 총선 당시 김 전 대통령이 김무성의 선거사무실을 방문해 “전국적 인물이 된 김 의원은 앞으로 대통령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며 김무성의 지지를 호소했다.

    한때 대표적인 '친박'으로 분류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이던 시절 당 사무총장을 맡았고 2007년 대선 경선 때 '친박계 좌장'으로 불렸지만 2014년 전당대회를 앞두고 “청와대에 할 말은 하겠다”며 비박계의 아이콘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2010년 정부의 세종시 수정 추진을 놓고 박근혜 대통령과 입장 차를 보이면서 한때 ‘탈박’의 길을 걸었다. 이때 김무성은 원내대표까지 오르면서 비박계 인사들과 두터운 신분을 쌓고 '화합형 리더'의 이미지를 얻었다.

    당 일각에서 '보수우파'를 자처하는 김무성의 강한 보수성향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김무성은 앞서 제주해군기지 반대 활동가들을 '종북세력' '김정일의 꼭두각시' 등으로 지칭해 구설수에 올랐다.

    경제관 역시 정통보수에 가까워 경제민주화 추세와 거리가 있다는 분석이다.

    회의나 강연에서 수치를 제시하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 김무성은 비서실에 “주요 현안에 대한 발언 자료를 준비할 때 반드시 통계를 첨부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예를 들어 워싱턴의 한국전쟁 참전기념비를 찾아 “6.25전쟁 때 미군이 참전해 3만6940명이 전사하고 9만2134명이 부상하고 8157명이 실종 상태라며 메모지를 보지 않고 줄줄이 외워 말하는 식이다.

    김무성의 별명은 ‘무대’(무성대장)다. 통 큰 보스라는 의미를 함축한 별명이다. 시원한 성격 때문에 말을 거침없이 내뱉어 말실수가 잦다. 이를 놓고 김무성의 하나의 스타일로 해석하는 시선이 있는 반면 반복되는 말실수는 그의 자질문제라는 비판도 존재한다.

    ◆ 사건/사고

    1996년 5월 공용주파수통신(TRS) 사업자에게 청탁과 함께 2천만 원을 받은 일로 특별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죄로 기소돼 1999년 7월 벌금 1천만 원, 추징금 2천만 원을 선고받았다.

    2000년 총선에서 투표일을 앞두고 같은 지역구의 민주당 후보에게 ‘생활’ 명목으로 500만 원을 건넸다가 다음해 3월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2008년 3월 영남권 공천에서 탈락했다. 김무성은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나라당 공천과정에 청와대가 개입했다”며 탈당을 선언했다. 김무성은 부산 남구을에 무소속 출마해 18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7월 복당했다.

    당 원내대표를 지내던 2010년 12월 4대강 예산 처리를 위해 몸싸움을 진두지휘해 비판받았다.

    2011년 7월 한나라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세력들은 김정일 정권의 꼭두각시 종북세력”이라는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다. 강정마을 주민 10명은 민사소송을 제기했고 2012년 2월27일 1심재판부는 10명 가운데 9명에게 각각 100만 원씩 총 900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2013년 6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해북방한계선(NLL)발언 논란과 관련해 김무성이 2012년 이미 이 대화록을 갖고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김무성은 대선 전 부산 유세에서 노 전 대통령이 서해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을 했다며 말을 인용했는데 그 발언이 국정원의 녹취록과 거의 흡사했기 때문이다. 김무성은 검찰조사에서 ‘증권가 정보지’ 내용을 토대로 한 보고서를 본 것이라고 해명했다.

    가족 및 친인척의 과거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2014년 2월 부친 김용주 전남방직주식회사 창업주가 반민족친일행위자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김 창업주는 일제강점기 경북도회 의원을 지냈으며 전쟁동원 친일단체인 조선 임전보국단 간부로서 ‘황군(일본군)에게 위문편지 보내기’ 운동을 주도한 사실이 1941년 매일신보에 실렸다. 반민특위법 4조8항에 따르면 당시 도회의원도 처벌대상으로 삼고 있어 친일파로 볼 수 있다는 견해였다.

    김무성 측은 "임전보국단 명단에 한용운과 장면 등 민족 지도자나 백남운과 여운형 등 좌익계열 지도자 이름도 있다“며 ”일본에 의한 강제가입이 의심되며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가 기사를 날조했다는 증언도 있다"고 반박했다. 김무성 측은 "도의원도 관선이 아니라 민선으로 선출된 것인데 단순히 친일파로 말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부친의 친일논란은 2015년 하반기 다시 터졌다. 김무성은 부친의 흉상이 있는 경북 포항 영흥초등학교를 찾았다. 그는 부친의 흉상 밑에 헌화와 묵념시, 부친의 친일 의혹을 반박하는 자료와 선친에 대한 평전을 놓아두기도 했다.

    2014년 4월 장인 최치환 전 경향신문 사장이 제주 4.3 사건 진압을 지휘한 작전참모였다는 의혹이 등장했다. 만주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만주국 장교로 근무하던 최 사장이 해방 후 25세의 나이로 경위에 임관해 4.3 사건과 함께 여순사건 진압 지휘에 가담했으며 그뒤 이승만 정권에서 출세가도를 달렸다는 것이다.

    김무성 측은 “사위의 입장에서 장인을 평가하는 것은 효의 관념에 맞지 않으며 장인은 조국 보전을 위해 노력한 분으로 알고 있다”고 해명했다.

    2014년 6월 참여연대가 딸의 교수 채용과 관련해 김무성을 검찰에 고발했다. 수원대가 2013년 9월 김무성의 딸을 수원대 전임 교원으로 채용했고 김무성은 2013년 10월 국정감사에서 비리의혹을 받던 이인수 수원대 총장의 국정감사 증인 채택이 무산되도록 도움을 줬다는 취지혔다. 검찰은 한차례 서면조사한 뒤 무혐의 처분했다.

    김무성은 이듬해 4월 참여연대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한뒤 2015년 12월 취하했다. 김무성의 차녀는 고소 취하 시점과 비슷한 시기 수원대에 교수직 사임서를 냈다.

    2014년 7월 전당대회에서 비주류이자 비박계로 불리던 김무성이 친박 주류 진영의 대표주자인 서청원 최고위원을 상당한 표 차이로 누르고 승리했다. 김무성은 이른바 ‘원조 친박’ 이미지로 박 대통령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는 동시에 박 대통령 및 친박 주류 진영과 대립각을 세우는 이미지로 선거에 나섰다. “청와대에 할 말은 하겠다”, “보수 혁신의 아이콘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2014년 8월 새누리당이 7.30 재보궐 선거에서 압승을 거둔 뒤 ‘김무성 체제’가 본격 출범했다.

    당시 ‘세월호 특별법’과 관련해 수사권과 특검추천권을 놓고 여야간 반목이 계속되고 있었다. 김무성은 8월29일 세월호 특별법 합의안을 번복하거나 수정할 의사가 없음을 천명했다. 김무성은 “우리가 백배 양보를 해서 풀린다면 양보하겠지만 양보할 수 없는 벼랑까지 가있고 양보를 하면 우리가 벼랑에서 떨어진다”고 말했다.

    2014년 9월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와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김무성은 한국노총 간담회에서 “‘초이노믹스’식의 재정 확대 정책만 갖고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부의 재정확장 방침과 관련 국가채무비율 등 국가재정 건전성에 대한 우려를 다시 제기했다.

    2014년 10월 중국 방문 기간 중 기자 간담회에서 개헌을 통한 국가 권력구조 개편과 관련해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의 검토 필요성을 언급하며 정치권의 개헌 논의에 불을 붙였다.

    김 무성은 “우리 사회 분위기나 성숙도가 (정치적) 중립지대를 허용하는 수준이 됐기 때문에 연정을 통해 사회 안정을 도모해야 한다”며 “다음 대선(2017년)에 가까이 가면 (개헌은) 또 안 될 것”이라며 본격 개헌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

    청와대와 친박계는 그동안 개헌 논의에 따른 권력 누수를 우려하며 ‘시기상조론’을 주장해왔다. 청와대가 김무성의 발언에 즉각 반발하자 김무성은 “내 불찰”이었다며 사과했지만 청와대는 “대표되는 분이 실수로 언급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못박았다.

    10월23일 김태호 새누리당 의원이 돌연 김무성을 비판하며 최고위원직을 사퇴해 파장이 일었다. 김 의원은 “대통령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국회를 향해 ‘경제활성화 법안만 통과시켜 달라. 지금이 골든타임’이라고 말해왔는데 오히려 ‘개헌 골든타임’이라고 대통령에게 염장을 뿌렸다”며 “저부터 반성하는 차원에서 최고위원직을 사퇴한다”고 말했다.

    김무성은 청와대의 개헌논의 금지 경고에도 불구하고 2015년 1월 당 최고중진연석회의 비공개회의장에서 개헌의 필요성과 배경을 다시 언급해 관심이 쏠렸다.

    2015년 1월 청와대 문건파동과 관련해 김무성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보던 수첩에 적힌 메모가 카메라에 포착돼 주목받았다. 김무성의 수첩에는 ‘문건파동 배후는 K. Y. 내가 꼭 밝힌다’라고 적혀 있었다.

    이른바 ‘수첩파문’으로 논란이 커지면서 청와대 선임행정관(2급)이 국정개입 문건 유출의 배후로 김무성과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을 지목했다는 추측이 나돌았다. 김무성은 “모임에서 들은 것을 메모한 것이지만 내용이 황당하다고 생각해 적어놓기만 했다”고 말했다.

    같은 달 서청원 최고의원과 2015년 4월 재보선 후보자 선정 방안을 두고 설전을 주고 받았다. 김무성은 2014년 12월부터 100% 여론조사 방식을 주장해왔다. 서 의원은 “(공천을 담당하는) 조직강화특위 문제 같은 사항들은 상의해서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015년 4월 ‘성완종 리스트’ 파문 정국이 일었다. 친박 실세들이 직격탄을 맞는 가운데 김무성은 자유로웠다. 4월16일 박 대통령이 김무성을 청와대로 불러 독대했다.

    그뒤 성완종리스트 파문이 2012년 불법 대선자금 의혹으로 불씨가 옮겨가는 가운데 김무성이 “야당도 같이 조사를 받아야 한다”고 말해 검찰의 수사방향에 영향을 끼치려는 의도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야당은 “물귀신 작전”이라며 즉각 반발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6주기 추도식에 참석했다. 노 전 대통령의 아들 노건호씨가 유족 인사말에서 “전직 대통령이 서해북방한계선(NLL)을 포기했다며 정상회의록 일부를 피 토하듯 읽으시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어려운 발걸음을 해주셨다”며 “권력으로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넣고도 모자라 선거에 이기려고 국가 기밀문서를 읊어대고 국정원을 동원해 댓글 달아 종북몰이 해대다가 아무말없이 언론에 흘리고 불쑥 나타나시지 진정 대인배의 풍모”라고 말해 주목받았다.

    김무성은 그뒤 한 강연에 참석해 “제가 (대선 때) 과하게 비판했던 것을 인정한다. 돌 안 맞은 게 다행”이라며 “그에 대한 아무런 감정이 없다”고 말했다.

    2015년 7월 취임1주년 기자회견에서 화두로 ‘정당 민주주의’를 내놨다. “공천권을 내려 놓겠다”며 완전 국민경선제(오픈프라이머리) 도입을 꺼내 놨다. 이를 놓고 권력자의 공천 개입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하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이 전면적 오픈프라이머리 시행에 반대해 여야 합의가 무산돼 상황이 복잡해졌다. 새정연은 당헌당규상 20% 이내에서 전략공천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단독으로 시행하려면 150억 원이 넘는 경선 관리 비용을 국고에서 부담하게 할 법개정 작업이 필요했고 ‘역선택’ 마련할 대안도 없었다.

    2015년 7월 미국 방문 중 보인 언행이 파장을 일으켰다. 김무성은 이틀 연속 큰절을 하는가 하면 “중국보다 미국”, “전투기를 사겠다” 등의 파격발언을 잇달아 내뱉었다.

    8월 문재인 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오픈프라이머리와 권역별 비례대표제 빅딜’을 제안했지만 이번엔 김무성이 거절했다. 김무성은 문 전 대표가 도입을 요구한 권역별 비례대표제에 대해 “지역주의 해소를 위해 만들어졌지만 전문가 영입이라는 비례대표제의 의미가 퇴색하고 의석수가 많이 늘어날 수밖에 없어 적용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김무성은 “오픈프라이머리 이름을 ‘국민공천제’로 바꾸겠다”며 “국민공천제처럼 국민과 당원에게 공천권을 돌려드리는 공천 혁명은 정치개혁의 결정판으로 다른 제도와 맞바꿀 수 없다”고 말했다.

    2015년 9월 김무성의 둘째 사위 이상균 신라개발 대표가 마약 상습 투약 혐의로 구속된 적이 있으며 유력 정치인의 인척이어서 재판에서 양형기준 이하의 형을 받았다는 외압 의혹이 제기됐다. 김무성은 국회에서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어 “요즘 세상에 정치인 가족이라고 하면 더 중형을 때리지 봐주는 판사를 본 적 있느냐”며 이를 전면 부인했다.

    2015년 10월 결국 친박계의 전략공천 요구를 사실상 수용했다. 김무성은 “공천 룰을 논의할 특별기구에서 ‘당헌당규대로 공천하자’고 결론내리면 수용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특별기구가 ‘당헌 당규대로 당원들의 의견을 반영하자’고 의결하면 이것도 수용할 수 있다”며 현행대로 당원투표와 여론조사 비율 5:5를 적용한 공천 가능성을 열어뒀다.

    새누리당의 공천 갈등은 곧 2라운드에 접어들었다. 오픈프라이머리가 무산된 데 이어 ‘안심번호 국민공천제’와 ‘전략공천’ 문제를 놓고 친박과 비박계가 정면충돌했다.

    같은 시기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놓고 여야간 첨예한 대립이 이어졌다. 김무성은 국정교과서 정책에 대해 “정권이 열 번 바뀌더라도 절대 바뀌지 않을 균형잡힌 교과서, 올바른 교과서가 될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문재인 전 대표는 “1년짜리 정권교과서가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2015년 11월22일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 김무성은 85년 김 전 대통령이 주도했던 ‘민주화추진협의회’에 합류하면서 정계에 입문한 이른바 ‘상도동 막내’였다. 김무성은 “나는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아들”이라며 하루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빈소를 지켰다.

    연말연초 잦은 말실수가 논란이 됐다. 2015년 12월18일 연탄 봉사활동을 하다 흑인 학생에게 “니는 연탄색깔 하고 얼굴 색깔이 똑같네”라고 농담을 던져 인종차별적 발언이라고 비판받았다. 행사에는 새마을운동 교육차 한국을 찾은 브라질과 콜롬비아, 동티모르, 파키스탄, 짐바브웨 등 27개국 유학생 40여 명이 함께했다.

    김무성은 페이스북을 통해 “현장에서 친근감을 표현한다는게 상처가 될 수 있음을 고려하지 못한 잘못된 발언이었다”고 사과했다.

    2016년 1월30일 저출산 대책의 일환으로 조선족의 이민 문턱을 낮출 것을 제안해 거세게 비판받았다. 이에 대해 김성수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현안브리핑을 통해 “저출산 대책은 아예 포기하고 조선족을 받아들여 인구부족 사태를 막자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2016년 4월 제20대 총선이 다가오면서 공천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김무성은 유력인사들의 험지출마를 공언했다. 하지만 최근 안대희 전 대법관과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각각 서울 마포갑과 종로 출마를 선언하면서 험지출마론을 필승전략으로 강조해온 김무성의 리더십이 도마에 올랐다.

  • ◆ 경력

    1976년 동해제강 전무이사를 지낸 뒤 1982년 삼동산업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1985년 김영삼 전 대통령의 보좌관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민주화추진협의회에 참여해 특별위원회 부위원장에 선임됐다.

    1987년 통일민주당 제13대 대통령 선거대책본부 재정국장으로 활동했으며 통일민주당 총무국장, 기획조정실 차장, 국회행정실장을 역임했다.

    1990년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이 출범하자 김영삼 전 대통령을 따라 민자당에 합류해 의사국장, 의원국장을 지냈다.

    1993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행정실장, 대통령 민정수석 비서관을 맡았고 1994년 제48대 내무부 차관이 됐다.

    1996년 5월 신한국당 소속으로 부산 남구을에서 15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한나라당 출범에 참여했으며 당내에서 원내 수석부총무와 한나라당 총재 비서실장을 담당했다.

    2004년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위원장이 됐으며 2005년 민주화추진협의회 회장이 됐다.

    2005년 한나라당 사무총장에 선출됐고 2007년 11월 한나라당 최고위원회 위원이 됐다.

    2008년 18대 총선 공천에서 친박계에 대한 ‘보복공천’이 이뤄지자 한나라당을 탈당했다. 무소속으로 18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7월 복당했다.

    2010년 5월부터 1년간 한나라당 원내대표를 지냈다.

    2012년 제19대 총선에 불출마하고 박근혜 후보 선거 캠프를 이끄는 총괄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았다. 같은해 한나라당의 당명이 새누리당으로 바뀌었다.

    2013년 보궐선거에서 당선되어 5선 의원이 됐다.

    2014년 7월14일 제3차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대표로 선출됐다.

    2016년 4월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하자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20대 총선에서 부산광역시 중구영도구에서 의원으로 당선됐다.

    ◆ 학력

    1964년 부산화랑국민학교를 졸업했다.

    1967년 경남중학교를 졸업하고 1970년 중동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75년 한양대학교 경영학과를 학사로 졸업했다.

    1999년 고려대학교 정책대학원 최고위정책과정을 수료했다.

    2003년 부경대학교에서 명예정치학 박사와 2006년 한양대학교 명예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5년 동국대학교와 한국해양대학교에서 각각 명예정치학과 명예행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 가족관계

    김용주 전남방직주식회사 창업주가 부친이다. 김용주 창업주는 민주당 원내총무와 초대 주일공사를 지냈다.

    4남1녀 가운데 3남으로 자랐다.

    친누나 김문희 용문학원 재단 이사장은 현대증권과 현대상선의 주주다. 학교법인인 용문학원 재단은 서울 성북구 용문중학교와 용문고등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김창성 전 전남방직주식회사 회장 및 한국경영자총협회 명예회장이 형이다.

    현영원 전 현대상선 회장이 매형이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외조카로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이 조카사위다.

    부인 최양옥씨와 사이에 1남2녀를 뒀다. 장남 김종민씨는 고윤이라는 가명을 써 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아이리스2>, <호텔 킹> 등에 출연했다.

    최치환 전 경향신문 사장이 장인이다. 그는 박정희 정권에서 국회의원을 지냈고 그 뒤 삼성그룹 고문을 맡기도 했다.

    ◆ 상훈

    1996년 황조근정훈장을 수여받았다.

    2007년 코리아 베스트드레서 스완어워즈 정치부문에서 수상했다.

    2011년 코리아정책상과 대한민국을 빛낸 21세기 한국인상을 받았다.

    2014년 대한민국 의정대상과 대한민국 유권자 대상을 받았다.

  • ◆ 어록

    “독일은 출산율이 1.34명까지 내려가서 이민자들을 대거 받았다. 그랬더니 터키에서 몇 년 만에 400만 명이 몰려와 문을 닫았다. 우리는 조선족이 있어 문화쇼크를 줄일 수 있다. 조선족을 대거 받아들여야 한다.” (2016/01/30 저출산 대책특위 회의 겸 당정 협의회에서)

    “권력 주변에 수준낮은 사람들은 완장을 차려 한다. 그들은 완장을 차고 권력자 이미지를 손상시킨다. 역대 정권마다 있었던 일인데 그게 대통령한테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2016/01/26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시민의 소중한 세금을 시장들이 개인적인 인기를 얻기 위해 남용하는 포퓰리즘이야 말로 악마의 속삭임이자 달콤한 독약이다.” (2016/01/25 이재명 성남시장의 청년배당 정책과 박원순 서울시장의 청년지원금 정책에 대해)

    “진박 논란은 그만큼 정치수준이 낮다는 것.” “너무 쉽게 국회의원에 당선된 분들이 충실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있는 게 사실이다.” (2016/01/18 2016 신년회견에서 대구경북의 ‘진박’(진실한 사람+친박) 후보 논란에 대해)

    “난 박근혜 대통령 선거 총책임자였다. 나를 ‘비박’이라고 지칭하는 것은 옳지 않다.” (2016/01/18 2016 신년회견에서)

    "'안철수 신당'의 등장은 표면적으로는 야당(野黨) 분열이지만 여당(與黨)에 대한 경고의 의미도 담고 있다" "(다만) 신당이 지금의 야당처럼 반대를 위한 반대만 하게 되면 결국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할 것" (15/01/04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국민 앞에 석고대죄하는 마음 자세로 인사회를 시작한다.”며 “지난해 여러 개혁과제를 추진했지만 국민 눈높이의 성과를 내지 못했고 국민이 목마르게 기다리는 노동개혁 5개 법안과 경제활성화법안들을 처리하지 못했다.” “입법 미비로 오늘(1월 1일)부터 선거구 무효라는 초유의 비상상황에 직면하게 돼 죄인 된 심정으로 국민께 사과드린.다” (2016/01/01 새누리당 신년인사회에서)

    “오픈프라이머리를 흔들려는 세력들이 자꾸 말을 만들어내고 있다.” “저는 정치생명을 걸고 오픈프라이머리를 관철시키겠다. 이것이 우리 정치개혁의 결정판이다.” (2015/08/20 오픈프라이머리와 관련해)

    “나라를 위해서 표를 생각하지 않고 노동시장 개혁을 추진하겠다.” “공무원연금 개혁은 완성했고 이제 노동개혁 부문을 우리가 중점 개혁 목표로 잡아 추진해야 한다.” (2015/07/18 ‘이승만 전 대통령 50주기 추모식’에서)

    “당청은 한몸일 수밖에 없고 이 정권은 박근혜정권이자 새누리당 정권” “당은 대통령이 하는 일을 뒷받침하고 베이스가 돼야 한다. 다만 과거처럼 대통령이 한마디한다고 해서 모든 걸 다 따라가는 상황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안 만나다가도 일이 생기면 만나 상의해 협조하는 것이 당정처이다. 의견이 좀 다르다고 회의를 안 한다고 하면 잘못된 일이다.” (2015/06/03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초청 학생 대상 특강에서)

    “대통령께서 공무원연금 개혁을 생각하면 한숨이 나온다고 했는데 저는 이 문제만 생각하면 정말 가슴이 터질 듯이 답답하다.” “어찌해서 하나마나한 맹탕 개혁, 졸속, 비열한 거래 등 이런 말로 매도당하면서 이렇게 온통 오물을 뒤집어써야 하는지 참 기가 막힌 심정이다.” (2015/05/14 노인복지 정책모임인 ‘퓨처라이프 포럼’에서)

    “전 세계적으로 핵실험을 2~3번 하면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게 돼 있다. 문제 발언이긴 하지만 현재도 북한에서 우리 남쪽을 향해 핵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 “사드는 고고도 미사일이다. 그래서 북한에서 만약 쏘아 올렸을 때 약 150km 상공에서 쏴서 요격할 수 있는 방어체제를 갖춰야 한다는 것은 기본상식”(2015/03/24 부산 해양대학교에서 열린 ‘청춘무대 김무성 토크쇼’에서 사드 배치 문제에 관해)

    “당시 소장이던 박 전 대통령이 5.16혁명을 일으키지 않았으면 대한민국이 어떻게 됐을까 생각해 보라.” "박정희 전 대통령은 우리나라가 적화통일될 가능성이 있음을 알고 무능하고 부패한 우리 정치권을 뒤집어엎어 혁명을 했다." "물론 우리 국민이 좀 억압을 당한 것은 잘못된 일이지만 우리 경제가 북한경제를 따라잡아서 오늘날 이러한 결과가 나왔다." (2014/02/04 서울에서 열린 전국포럼연합 주체 토론회 강연에서)

    “자녀 하나 낳은 분들 반성하셔야 한다.” “우리 모두 이상화, 김연아 같은 딸을 낳아야 한다.” (2014/02/12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2013년 출산율이 1.18명으로 하락한 점을 언급하며)

    “교육부의 엄격한 검정을 거쳐 통과된 역사교과서를 전교조의 테러에 의해 채택되지 않는 나라는 자유대한민국으로 볼 수 없다.” (2014/01/06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보수성향 시민사회단체 합동 신년회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은 저 자신도 과거 민주화 투쟁 시절 하루에도 몇 번씩 불렀던 민주화 투쟁 주제가였다." "5.18 기념 행사용 별도의 노래를 만들기 위한 예산을 책정했다는데 아까운 예산을 낭비하지 말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5.18 주제곡으로 선정해 유가족과 광주 시민들이 원하는 대로 해줘야 한다." (2013/05/08 새누리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국가보훈처의 ‘임을 위한 행진곡’ 5•18기념식 주제곡 선정 배제 논란에 대해)

    “종북주의자 30여 명의 반대 데모 때문에 중요 국책사업이 중단되고 있고, 현재 강정마을에서 공사를 제지하는 세력은 사실상 북한 김정일 정권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고 있는 종북세력이 대부분이다.” “이들이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것은 결국 북한에 불리한 것은 하지 말자는 종북적 행태다.” (2011/07/27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사에서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반대에 대해)

    "내가 사랑하고 헌신했던 한나라당이 여기까지 온 데 비통한 심정을 금치 못한다. 오늘 나는 마음은 한나라당에 두고 몸만 당을 떠난다.” “이런 무원칙한 공천을 일삼은 세력이 한나라당을 망치는 것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게 반드시 선거에서 이기고 돌아와 한나라당을 국민의 사랑을 받는 당으로 다시 만들겠다." (2008/03/14 기자회견에서 ‘한나라당 공천 청와대 개입’ 논란과 관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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