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전용 플랫폼 E-GMP를 활용하는 차세대 전기차인 현대차 ‘아이오닉’과 기아 ‘EV’ 시리즈의 미국 생산 시점을 앞당길까?

미국 전기차시장이 미국 산업의 생태계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예상보다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는 점은 현대차와 기아의 차세대 전기차 글로벌 생산전략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미국 전기차 무섭게 성장한다, 정의선 현대차 기아 미국 생산 서두를까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6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최근 발표한 2조 달러 규모의 초대형 인프라 투자계획은 미국 전기차산업에 가장 큰 수혜를 줄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견제, 친환경사업 확대, 인프라 강화, 반도체와 배터리 육성 등 바이든 행정부 ‘뉴딜’ 주요정책의 접점이 전기차로 모인다는 것인데 이에 따라 미국 전기차시장은 애초 예상보다 더욱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바이든 행정부는 2030년까지 교통 개선을 위해 모두 6210억 달러를 투입하는데 이 가운데 30%에 육박하는 1740억 달러를 전기차 확산을 위한 보조금 등으로 쓴다.

이재선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바이든 대통령 예산안이 과거 트럼프 대통령의 예산안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은 교통과 건설부문에서 전기차와 그린에너지 예산 비중이 높다는 것이다”며 “2차전지와 전기차 등 친환경 성장업종에 관심이 몰리고 있다”고 바라봤다.

미국의 대규모 전기차 육성정책에 정의선 회장도 전기차 글로벌 생산전략을 놓고 새로운 판을 짜야할 상황에 놓였다고 할 수 있다.

정 회장은 그동안 현대차와 기아의 전기차 주력시장을 유럽으로 설정하고 글로벌 판매전략을 세워왔다.

아이오닉5와 EV6는 올해 유럽과 국내에서만 본격적으로 판매된다. 아이오닉과 EV는 각각 전용 플랫폼 E-GMP를 활용하는 현대차와 기아의 주력 전기차 브랜드인데 아이오닉5와 EV6는 그 시작을 알리는 차량이다.

아이오닉5가 하반기 미국에 출시될 예정이지만 생산일정 등을 고려할 때 본격적 판매는 내년부터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아이오닉5와 EV6가 미국에 본격 상륙하는 내년도 전기차 전략이 유럽 중심인 점은 크게 다르지 않다.

기아는 내년 EV6의 북미 판매목표를 2만 대로 잡았다. 유럽 4만 대는 물론 국내 3만 대보다 적다.

미국은 한동안 트럼프 행정부 아래에서 전기차 등 친환경차 육성에 상대적으로 소홀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에 따라 정 회장은 탄소배출 규제를 강화하는 유럽을 중심으로 전기차 확대전략을 짰는데 바이든 대통령의 강력한 전기차 육성정책으로 전략을 다시 짜야하는 상황이 벌어진 셈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후보 때부터 파리기후협약 재가입 등을 공약하며 전기차시장을 육성할 뜻을 밝혔지만 취임 뒤 예상보다 더욱 강력한 정책으로 힘을 싣고 있다.

정 회장이 아이오닉과 EV의 미국 현지 생산기지 구축을 서두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아이오닉과 EV가 미국에서도 흥행을 예고한다면 판매 확대의 변수는 생산량이 될 수 있다.

아이오닉5와 EV6는 국내에서 각각 4월과 7월 판매를 시작하는데 지금 예약해도 올해 안에 차량 인도를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사전 수요조사에서 많은 주문이 몰렸다.

글로벌 전기차시장이 점점 더 커지면 중장기적으로 아이오닉과 EV 역시 해외생산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글로벌 수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현지 라인 구축을 앞당길 수 있는 셈이다.

미국은 현대차와 기아의 해외 제1시장이기도 하다.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도 변수가 될 수 있다.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이 발효되면 완성차업체는 2025년까지 역내 조달비중을 75%로 올려야 무관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자동차부품의 현지 조달비중이 높아지는 만큼 완성차업체는 차량을 현지에서 생산할수록 원가 절감 등에서 더욱 유리해질 수 있다.
 
미국 전기차 무섭게 성장한다, 정의선 현대차 기아 미국 생산 서두를까

▲ 현대차 미국 앨리배마 공장 전경.


코로나19 이후 미국과 중국 등 글로벌 주요 국가의 자국 우선주의는 더욱 심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준규 한국자동차산업협회 운영위원장은 6일 ‘포스트 코로나19 자동차산업의 변화와 발전과제’를 주제로 한 자동차산업발전포럼 발표에서 “코로나19를 계기로 글로벌 자동차산업의 다양한 변화가 가속화하고 있다”며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 등 자국 이기주의 확산과 차량용 반도체, 희토류 등의 공급망 문제가 부상하면서 글로벌 가치사슬이 재편되고 있다”고 바라봤다.

현대차와 기아가 아이오닉과 EV를 해외에서 생산하기 위해서는 단체협약에 따라 노사위원으로 구성된 고용안정위원회의 협의를 거쳐야 한다.

이에 따라 노조가 해외생산에 변수가 될 수 있지만 내연기관차 생산을 국내로 돌리고 전용 전기차를 해외로 내보내는 방식 등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

내연기관차는 전용 전기차와 비교해 들어가는 모듈과 투입되는 생산인력이 많아 고용유지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현대차는 올해 2월 미국 앨리배마 공장에서 생산하고 있는 쏘나타와 아반떼 물량 7만 대를 국내로 돌리고 미국에서 신형 투싼을 생산하기로 노사가 합의하기도 했다. 현대차 노사가 해외물량 유턴에 합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아이오닉5와 EV6는 아직 본격적으로 고객에게 인도도 하지 않은 단계로 아직까지 구체적 증설계획은 없다”며 “향후 글로벌시장 수요에 맞춰 생산량을 조절해 나갈 계획이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한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