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미국 텍사스 오스틴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공장 증설투자를 단행하기에 앞서 지역당국으로부터 원활한 전력 공급을 보장받아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텍사스지역은 현재 역대 최악의 한파를 맞아 반도체공장을 포함한 대부분의 시설에 전력 공급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삼성전자 미국 파운드리 증설에 전력 안정이 열쇠, 텍사스 전력난 심각

▲ 삼성전자 오스틴생산법인(SAS).


삼성전자가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새 공장을 지어도 지금처럼 전력 인프라가 불안하면 향후 반도체 생산환경을 보장하기 어렵다. 

26일 삼성전자에 따르면 텍사스 오스틴 공장은 16일 한파에 따른 전력 공급중단에 대비해 가동을 멈춘 이후 아직 가동되지 않고 있다.

반도체공장은 기본적으로 365일 24시간 가동돼야 한다. 반도체 생산에 알맞게 온도와 습도 등을 최적화한 청정실(클린룸) 환경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다.

공장 가동이 한 번 중단되면 클린룸 환경을 다시 반도체 양산에 적합하게 맞추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또 생산 중이던 웨이퍼도 모두 폐기해야 해 손해가 크다.

오스틴 공장도 열흘째 가동중단되면서 타격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스틴 지역매체 오스틴아메리칸스테이츠맨은 “삼성 오스틴공장이 생산을 멈추면 수백만 달러의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고 전했다. 오스틴 공장은 삼성전자 반도체사업 매출의 5%가량을 담당하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한파가 가라앉는다 해도 향후 같은 사태가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는 점이다. 

텍사스는 애초 미국 내 다른 주와는 독립된 전력체계를 운영하고 있어 이번처럼 자체 전력이 부족할 경우 외부의 도움을 받기 어렵다.

미국 CNBC는 이번 사태를 두고 “텍사스는 전력망을 섬처럼 운영하기로 했다”며 “이는 가장 필요할 때 다른 주에서 전력을 받을 수 없다는 점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오스틴 현지에서는 삼성전자가 전력 인프라를 염두에 두고 오스틴이 아닌 새로운 투자처를 고려할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지역매체 오스틴비즈니스저널은 오스틴지역제조업협회 관계자의 말을 빌려 “탄력적 전력 공급체계가 없다면 삼성전자나 테슬라 같은 기업들이 이 지역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도록 할 수 없다”고 바라봤다.

오스틴비즈니스저널은 전력 공급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반도체산업에 꼭 필요한 산업용수를 확보하는 데도 차질이 빚어진다고 지적했다.

삼성전자는 이미 오스틴 이외에도 애리조나와 뉴욕 등 여러 지역에서 투자를 요청받고 있다. 특히 애리조나는 인텔, NXP 등 여러 반도체기업이 이미 터를 잡은 곳이다. 최근에는 대만 파운드리기업 TSMC도 애리조나에 신공장 설립을 결정했다.

다만 삼성전자 쪽에서 볼 때 이미 산업용수와 전력 인프라가 구축된 오스틴 생산시설을 두고 완전히 새로운 장소에서 공장을 건립하면 자금 부담이 훨씬 커지게 된다. 현재 미국에서 운영되는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은 오스틴 공장뿐이다.

증권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지역당국에 전력 인프라 확충과 세제혜택 등 신규 투자에 따른 반대급부를 더 강하게 요구할 명분을 잡았다는 시선이 나온다.

삼성전자는 최근 반도체공장 건설을 조건으로 오스틴시에 재산세 환급 등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보다 큰 배려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노근창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텍사스주정부는 한파 사태와 관련해 기업들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배려할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파운드리사업 성장세를 이어가기 위해 미국에서 신규투자를 준비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블룸버그 등 미국언론은 삼성전자가 오스틴에 170억 달러 규모 투자를 집행해 3나노급 수준의 첨단 반도체 생산시설을 짓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KTB투자증권은 삼성전자가 올해 하반기 오스틴에서 신공장 건설에 들어간다고 전했다.

다만 삼성전자 관계자는 오스틴 등에서의 투자계획을 두고 “복수의 지역을 놓고 투자를 검토 중이나 아직 결정된 것이 없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앞서 국내사업장에서도 여러 차례 정전사태를 겪은 만큼 신규 투자처의 전력 공급현황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2020년 1월 삼성전자 화성 사업장에서 정전으로 일부 생산라인이 멈췄다. 당시 2~3일 만에 생산라인이 복구됐지만 그 사이 수십억 원의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 평택 사업장도 2018년 3월 정전사고로 손실 500억 원을 봤다. [비즈니스포스트 임한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