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 삼성화재가 4월부터 올려 받는 구 실손의료보험 보험료 인상폭이다. 

손해보험업계의 큰형님인 삼성화재가 실손의료보험료를 가장 많이 올리고 나머지 보험사들도 15~17% 줄줄이 인상한다. 
 
구 실손보험료 20% 가까이 올린 보험사, 은성수가 말한 '합리적'인가

▲ 삼성화재 로고 이미지. 


실손의료보험료는 해마다 올랐지만 그 가운데 구 실손의료보험료가 올해 특히 더 많이 오르면서 기존 보험 가입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표준화실손의료보험은 올해 보험사별로 10~12% 인상, 신 실손의료보험은 동결됐다.

삼성화재는 최근 2년 동안 보험료를 다른 보험사보다 낮게 올리거나 내렸기 때문에 올해 보험료를 20% 가까이 올리게 됐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기존 보험 가입자들로서는 인상폭이 과도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특히 오랜 기간 보험에 가입하고 특별히 아픈 데가 없어 의료비 청구를 하지 않았던 선량한 충성고객들로서는 분통이 터질 법한 일이다.

보험이란 기본적으로 일부 소수의 사람들이 청구하는 보험료 부담을 나머지 대다수 가입자들이 나눠지는 구조이긴 하다. 타인에게 닥친 어려움이 언제든 나에게도 닥칠 수 있다는 데 대비해 서로 돕고 부담을 나누는 데서 비롯됐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입원환자 가운데 실손의료보험 전체 가입자의 95%가 무청구자·소액 청구자이고 연간 100만 원 이상 보험금을 청구하는 사람은 전체 가입자의 2~3% 수준이다. 외래는 전체 가입자의 80% 이상이 무청구자 또는 연간 10만 원 미만의 소액 청구자로 나타났다.

반면 현재 보험가입자가 내는 평균 보험료를 살펴보면 40세 남자 기준 구 실손의료보험이 3만6679원, 표준화 실손의료보험이 2만710원, 신 실손의료보험이 1만2184원으로 구실손보험 가입자가 가장 많이 내고 있다. 

구 실손의료보험 가입자는 가장 많은 보험료를 내고 있는데도 인상폭은 가장 큰 셈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도하게 보험을 청구하는 가입자들을 걸러내지 않고 보험사 수익성 악화의 방패막이로 다수의 기존 가입자에게 비용부담을, 그것도 한꺼번에 대폭으로 전가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더욱이 구 실손의료보험의 보험료를 대폭 올려 손해율을 관리하는데 부담이 적은 신 실손의료보험이나 7월 출시되는 4세대 실손의료보험으로 전환을 유도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소비자의 선택권은 제한된다. 

자기부담금이 없거나 적은 구 실손의료보험 및 표준화 실손의료보험은 이미 절판돼 가입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고객으로서는 구 실손의료보험의 보장조건이 더 유리하지만 보험료 부담 때문에 신 실손의료보험이나 4세대 실손의료보험으로 갈아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또 고객이 구 실손의료보험 인상에 불만을 갖고 해지를 하더라도 대개의 경우는 해지환급금이 터무니 없이 적다. 

국민건강보험만으로 부족한 현실에서 이미 거의 모든 국민이 실손의료보험에 많든, 적든 가입돼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실손의료보험 가입은 소비자의 선택이지만 그 선택지가 한정되고 주어진 환경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는 셈이다. 이러한 점에서 삼성화재를 비롯한 보험사의 행태는 고객을 가두리양식장에 가둬두고 한쪽으로 몰아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삼성화재가 20% 가깝게 보험료를 올리는 것을 용인해준 금융당국 책임도 크다. 

실손의료보험은 민영 보험이지만 개인 가입자가 3800만 명이 넘어 ‘국민보험’ 성격을 지니고 있어 금융당국의 의견이 보험료 인상률에 결정적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는 보험사에서 요구한 구 실손의료보험료 인상률의 80%를 반영하는 의견을 제시했다. 결국 보험사와 금융당국이 실손의료보험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손쉬운 보험료 인상으로 소비자에 부담만 전가하도록 물꼬를 터준 셈이 됐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지난해 12월 송년 기자간담회에서 실손의료보험료 인상과 관련해 “가입자가 3800만 명이 되다 보니 의무보험인 자동차보험과 같이 국민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너무 크다”며 “보험업계가 합리적 수준에서 보험료를 결정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가뜩이나 어려워진 살림살이에 꼬박꼬박 내오던 보험료를 20% 안팎으로 더 부담해야 한다는 게 과연 합리적 수준인지 대형 보험사들과 금융당국에 묻고 싶다.

참고로 삼성화재는 2020년 별도기준으로 순이익 7668억 원을 거뒀다. 2019년보다 25.9% 늘었다.

원수보험료(매출)는 2019년보다 3.8% 증가한 19조5485억 원으로 집계됐다. 종목별로는 자동차보험과 일반보험은 각각 12.6%, 5.8% 증가했지만 실손의료보험 등 장기보험은 0.2% 감소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남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