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자동차 노동조합이 회사 회생을 위한 채권단 지원을 얻는 데 무거운 결정 앞에 놓였다.

쌍용차 노조는 스스로 노동권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은 각서를 내라는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다. 다만 세부사안을 놓고는 셈법이 복잡할 것으로 보인다.
 
쌍용차 회생까지 주어진 한 달, 노조 '역할 포기' 압박에 고민 깊다

▲ 정일권 쌍용차 노조위원장이 2020년 5월 경기 평택시청에서 열린 쌍용차 노사민정 특별협의체 간담회에서 경영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쌍용차>


13일 쌍용차에 따르면 이동걸 회장이 쌍용차 지원의 전제조건으로 내건 ‘단체협약 기간 연장’과 ‘흑자 전환 전 쟁의행위 중단’과 관련한 대처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회의를 준비하고 있다.

쌍용차 관계자는 “12일 오후에 이동걸 회장의 발언이 나온 만큼 아직 구체적 방침이 없는 상태”라며 “향후 회의 등을 거쳐 노조가 세부 대응을 정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쌍용차 정상화의 열쇠를 사실상 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쥐고 있는 만큼 노조가 쟁의권을 제한하려는 이동걸 회장의 제안을 큰 틀에서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는 시선이 우세하다.

문제는 세부적 사항인데 노조는 노조원과 산업은행, 잠재적 투자자를 모두 만족하는 안을 마련해야 하는 만큼 고심이 깊을 수밖에 없다.

국내 자동차업계에서는 미국 자동차유통업체 HAAH오토모티브홀딩스를 비롯해 사모펀드나 제3의 완성차업체 등이 쌍용차의 잠재적 투자자로 거론되고 있다.

어떤 업체가 쌍용차의 새로운 주인이 되든 비용절감 측면에서 인건비 감축을 추진할 가능성이 큰 만큼 노조는 이를 충족하는 협상안을 마련해야 한다.

인위적 인력 줄이기를 통한 인건비 축소방안이 새로운 협상안에 담길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이는 노조원 설득이 사실상 불가능할뿐더러 국내산업 활성화를 통한 고용 확대를 주된 과제로 짊어진 산업은행에게도 부담인 만큼 경영진과 잠재적 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노조의 협상안에는 총고용을 보장해달라는 내용이 담길 가능성이 크다.

이런 전제에서 인건비를 줄여야 하는데 노조가 현재 수준에서 3년 동안 기본급 동결안을 제시해도 잠재적 투자자나 산업은행의 성에는 차지 않을 수 있다.

쌍용차는 2019년 비상경영 체제에 들어간 뒤 임금 반납, 복지 축소 등으로 2020년 인건비를 30% 가까이 낮췄지만 여전히 동종업계 등과 비교해 높다는 지적을 받는다.

쌍용차는 지속해서 적자를 내는 상황에서도 2016년부터 2019년까지 직원 1명당 1년 평균급여로 8천만 원 이상을 지급했다. 2019년 1명당 평균급여로 8600만 원을 지급했는데 그해 기아차, LG전자 등과 같은 수준이다.

이 회장은 지난해 쌍용차가 자구안을 발표한 뒤에도 “모든 걸 내려놓고 고민하지 않는 것 같다는 의구심이 든다”며 인건비 축소 등을 압박하기도 했다.

노조가 잠재적 투자자는 물론 산업은행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결국 전체 인건비 추가 감축을 위한 방안을 검토할 가능성이 큰데 임금 및 단체협약을 중단을 요구받은 3년 후까지 내다봐야 하는 만큼 셈법이 복잡할 수밖에 없다.

새로운 협의안을 만들어낼 시간이 촉박하다는 점도 노조에게는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매년 진행하는 단체교섭 때도 상견례부터 협약식까지 아무리 빨라도 두 달 이상 걸리는데 지금은 법원의 자율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적용받고 있어 2월28일 전까지 결과를 내야 한다.

잠정 합의안을 마련한 뒤 노조원 총투표를 거치는 시간까지 고려하면 실제 방안을 도출하는 데는 한 달 정도밖에 시간이 남지 않았다.

시간이 촉박한 만큼 상황에 따라 노노 갈등이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쌍용차 회생까지 주어진 한 달, 노조 '역할 포기' 압박에 고민 깊다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이 12일 온라인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KDB산업은행 >


쌍용차 노조는 현재 산별노조인 민주노총 금속노조에서 탈퇴해 개별노조로 활동하고 있는데 금속노조는 지속해서 쌍용차 문제를 놓고 강경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 때문에 쌍용차 노조는 지난해 말 회사의 회생절차신청 이후 “복수 노조가 허용된 쌍용차에서 17명의 소수 조합원이 포함된 금속노조의 의견이 다수의 기업 노조 의지보다 우선되면 고용정책의 방향이 왜곡될 소지가 크다”는 내용을 담은 성명서를 내기도 했다.

정치권의 움직임도 노조의 선택에서 변수가 될 수 있다.

조혜민 정의당 대변인은 13일 국회 브리핑을 통해 “쟁의권은 노동자의 기본적 권리로 이동걸 회장이 지원조건 운운하며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며 “쌍용차 위기는 노조 탓이 아닌 대주주의 약속 위반과 산업당국의 외국투자기업과 관련한 정책 부재가 만든 비극”이라고 비판했다.

쌍용차 노사는 실제 파업이 빈번한 완성차업계에서 모범적 노사관계를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쌍용차 노사는 매년 임금협상 벌이고 2년에 한번 임금협상과 함께 단체협상을 진행하는데 2010년 이후 지난해까지 11년 연속 파업 없이 단체교섭을 마무리했다.

이동걸 회장은 12일 기자간담회에서 “쌍용차 노사는 단체협약을 1년에서 3년 단위로 늘려서 해야 하고 흑자가 되기 전 일체의 쟁의행위도 중단해야 한다”며 “잠재적 투자자와 협상을 통해 사업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이 2가지 조건이 제시되지 않으면 1원도 지원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한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