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이 한겨울에 길거리를 걷는 사연

▲ 30일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앞. 구광모 LG그룹 회장에게 청소노동자 고용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2020년 12월30일 아침 최저기온은 영하 12도였다. 체감온도는 영하 20도 가까이 내려갔다.

이런 날씨에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이 길거리로 나섰다. 일자리를 지켜달라고 호소하기 위해서였다. 이들은 31일이면 일자리를 잃는다.

청소노동자들은 여의도 LG트윈타워 앞에서 행진을 시작했다. 목적지는 한남동이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의 자택인 한남더힐이 있는 곳이다.

행진규모는 왜소했다. 9명뿐이었다. 전체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는 80여명이지만 서울시의 코로나19 방역지침에 따랐다.

행진 앞뒤로 호위하는 경찰로는 청소노동자들의 추위를 막아줄 바람막이가 될 수 없었다.

행진 선두에 선 사람이 든 현수막에는 ‘죽음으로 내몰려진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의 삶을 향한 행진’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현장]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이 한겨울에 길거리를 걷는 사연

▲ 30일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이 행진에 앞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행진대열에서 가장 젊은 사람은 50대 중반이었다. 가장 나이 많은 사람이 65세였다.

나이든 이들은 매서운 추위에도 묵묵히 거리를 걸었다. 31일 LG트윈타워에서 쫓겨나게 된다는 절박한 처지가 이들을 한걸음씩 떼게 만들었다.

현재 LG트윈타워 관리는 LG그룹 지주사 LG의 100% 자회사 S&I코퍼레이션이 담당한다. S&I코퍼레이션은 다시 지수아이앤씨에 청소 용역을 준다.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은 지수아이앤씨에 고용돼 있다. 지수아이앤씨는 구광모 회장의 고모인 구훤미씨와 구미정씨가 각각 지분 50%씩을 들고 있는 기업이다.

문제는 S&I코퍼레이션이 최근 청소 용역을 지수아이앤씨가 아닌 백상기업에 맡기기로 하면서 발생했다. 

공공운수노조에 따르면 지수아이앤씨는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 80여 명을 대상으로 31일 고용계약이 만료된다고 한 달 전 통보했다. 

그리고 백상기업은 기존 청소노동자들을 그대로 고용하는 대신 새 인력을 뽑고 있다. 

노조는 용역업체가 통상 신규고용을 오히려 부담스러워하기 때문에 사업장을 이어받으면서 기존 노동자를 고용승계하지 않는 것은 이례적이라고 설명했다. 

백상기업은 이전에 한국언론진흥재단, 수출입은행, 한국거래소 등의 청소용역을 맡으면서 기존 인원을 다시 고용하기도 했다.

용역업체가 바뀌고 계약 만료일이 다가오는 사이 노사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청소노동자들은 16일부터 LG트윈타워 로비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이날 행진을 하는 동안에도 사측이 농성 현장을 훼손할 가능성을 대비해 청소노동자들은 정해진 구간마다 인원을 교체하며 로비를 지켰다.
[현장]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이 한겨울에 길거리를 걷는 사연

▲ 30일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 행진이 마포대교를 지나고 있다.

LG트윈타워에서 3년여를 일한 정숙자(61)씨는 첫 3km를 걸은 뒤에야 “앞으로도 계속 일하고 싶다”고 입을 뗐다. 

그는 남편이 몸이 아파 대출을 받았다고 했다. 많지 않은 돈이라도 손에 쥘 수 있는 일자리가 절실했다.

하지만 청소노동자들과 사측의 갈등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노사는 해고 이유, 노사 교섭에 관한 태도 등을 두고 서로 전혀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노동자들은 지난해 10월 단체로 공공운수노조에 가입한 일이 용역업체 변경 및 전원 해고의 계기가 됐다고 주장한다. 이번 해고에는 ‘노조 와해’의 의도가 숨어있다는 것이다. 

반면 사측은 노동자와 계약을 종료하는 데 노조 활동을 고려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정년보다 더 오래 근무하게 해주고 있다고 반박한다.

지수아이앤씨는 입장문을 통해 “법적 정년은 60세지만 직원의 건강상태, 업무수행 능력을 고려해 65세까지 1년 단위로 계약을 연장해 근무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며 “원칙적으로 65세가 되는 직원들과 연말에 계약종료를 진행하고 있고 이는 노조 활동 여부와 무관하다”고 말했다.

지수아이앤씨는 “노조와 20여 차례의 교섭을 진행해 왔으나 노조 측이 정년 70세 연장 및 회사의 인사권, 경영권에 관해 수용 불가능한 항목을 요구해 협상이 타결되지 않고 있던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노조는 최근 용역업계에서 일하는 노동자 가운데 상당수가 이미 60세 이상의 고령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추세를 반영해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와 교섭하는 용역업체 대부분이 정년을 70세까지로 정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또 애초 사측이 공식 입장과 달리 노조와 교섭에 성실하게 나서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장]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이 한겨울에 길거리를 걷는 사연

▲ 23일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이 로비에 침낭을 깔고 농성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행진 현장에 있던 공공운수노조 관계자는 “지수아이앤씨는 노동자들의 노조 가입 이후 1년 동안 교섭에 제대로 임하지 않다가 최근에야 임금을 기존 최저임금에서 겨우 60원 인상하는 안을 제시했다”며 “그런데 지금은 해고 노동자에게 위로금 수백만 원을 주겠다고 하니 황당하다”고 말했다.

노동자 김정순(65)씨는 “11월까지만 해도 지수아이앤씨 간부 직원이 앞으로도 나이와 상관없이 일할 수 있다고 했었는데 한 달 사이 말이 바뀌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LG트윈타워 청소 8년차다. 남편이 10년 전 뇌출혈로 쓰러져 직접 생활비를 벌고 있다.

청소 노동자들의 말을 듣는 사이 행진은 한남동 한남더힐 앞에 도착했다. 

청소노동자들은 고용승계를 촉구하는 구호를 외친 뒤 해산했다. 농성을 이어가기 위해 LG트윈타워로 돌아가는 노동자들의 얼굴에는 그늘이 짙었다.

S&I코퍼레이션은 “내년부터 새롭게 청소용역을 담당하게 될 우선협상대상자에게 고용승계 및 재채용 의사 여부를 타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임한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