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생명이 대형 보험사로는 처음으로 보험상품 제조와 판매 분리를 공식화했다.

여승주 한화생명 대표이사 사장은 노조의 반발을 넘고 전속설계사 관리에도 힘을 쏟아야 한다.
 
한화생명 제판분리 공식화, 여승주 처음 가는 길의 고단함 짊어져

여승주 한화생명 대표이사 사장.


한화생명은 18일 임시 이사회를 열고 영업조직을 물적 분할해 자회사형 법인보험대리점을 세우고 전속설계사를 이 자회사형 법인보험대리점으로 이동하도록 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새 자회사형 법인보험대리점은 한화생명의 100% 자회사로 설립된다.

자본금 규모는 6500억 원이다. 2021년 3월 주주총회를 거쳐 4월1일 출범이 목표다.

한화생명 관계자는 “영업 전문성 확보를 통한 경쟁력 강화를 위해 판매채널을 분리하는 것”이라며 “판매 전문회사 설립의 세부 전략과 분할에 따른 보완 및 개선사항을 현장 설명회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충분히 설명하고 지속적으로 의견을 수렴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판분리는 보험상품 개발과 판매조직을 분리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보다 보험시장이 선진화된 미국과 유럽 등을 중심으로 확대되는 추세를 보인다.

국내에서 제판분리를 공식화한 것은 미래에셋생명에 이어 한화생명이 두 번째다. 국내 대형보험사 3사 가운데는 처음이다.

다만 여승주 사장이 제판분리를 원활하게 추진하기 위해서는 노조의 반발을 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자회사로 이동하는 인력은 설계사 2만여 명 이외에 지점장을 비롯해 영업지원부서 등 1400명가량이다.

한화생명 노조는 직원들의 고용안정이 보장되지 않는다며 제판분리에 반발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 가운데 정규직 지점장의 사업가형 지점장 전환 가능성에 불안의 목소리가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업가형 지점장은 회사에서 연봉을 받는 정규직 관리자와 달리 영업성과에 따라 수익을 차지하는 형태다. 사실상 자영업자인 셈이다.

한화생명은 인위적 구조조정 없이 근로조건도 현재와 동일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한화생명 노조를 비롯해 보험업계에서는 사업가형 지점장 전환은 시간문제라고 바라본다.

비용절감을 위해 판매조직을 떼어내는 데 정규직 지점장을 그대로 유지할 리 없다는 것이다.

사업가형 지점장으로 전환되면 지점 관리 및 유지비, 설계사 모집 및 교육훈련비 등은 한화생명 또는 새로 설립되는 자회사형 보험대리점이 아닌 사업가형 지점장의 몫이 된다.

한화생명에 앞서 제판분리를 공식화한 미래에셋생명이 미리 지점장 전부를 사업가형 지점장으로 전환시켜둔 점은 이러한 전망에 무게를 더하고 있다.

지점장뿐만 아니라 일반영업관리직 직원들의 반발도 예상된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근로조건이 같다 하더라도 한화생명의 정규직 직원 신분에서 자회사로 이동하는 데 불안감이 클 수 있고 연차가 낮은 직원일수록 반발이 클 것으로 보인다”며 “이러한 문제 때문에 다른 대형사들이 제판분리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미래에셋생명은 사업가형 지점장 전환에 따른 분쟁요소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영업지원인력 100여 명의 이동과 관련해 노조의 반발에 직면해 있다.
 
한화생명 제판분리 공식화, 여승주 처음 가는 길의 고단함 짊어져

▲ 한화생명 63빌딩. <한화생명>


한화생명은 미래에셋생명보다 인원 이동규모가 큰 만큼 노조의 반발이 극심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한화생명 노조는 영업담당 직원들의 처우 악화를 우려해 산별노조인 사무금융노조연맹 소속으로 전환을 확정하고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실시해 파업 등 수위를 높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사업장을 기준으로 설립한 기업별 노조라면 소속이 자회사형 법인보험대리점으로 변경되면 조합원 자격이 없지만 산별노조라면 조합원 자격을 유지할 수 있다. 

사무금융연맹노조는 “한화생명 노조는 이미 합법적 쟁의권을 확보한 상태로 회사가 불법적 물적 분할을 일방적으로 시도하면 이를 저지할 모든 준비를 마쳤다”며 “상급단체인 사무금융노조연맹 역시 제판분리라는 가면을 쓰고 최근 보험사들이 앞다퉈 추진하고 있는 영업조직 아웃소싱을 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 사장은 노조 설득 이외에 설계사조직 관리에도 힘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전속 설계사들이 한화생명에서 자회사로 이동하면 한화생명 소속 설계사라는 소속감이 떨어지고 회사 차원의 관리나 교육에서 기존 수준에 못 미칠 가능성이 있다.

판매수당에 따라 다른 법인보험대리점으로 옮길 유인이 높아지는 것이다. 한화생명의 자회사형 보험대리점 소속이면 생명보험 상품은 한화생명의 보험만 판매할 수 있지만 다른 법인보험대리점에서는 한화생명뿐만 아니라 다른 생명보험사 상품도 판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화생명 관계자는 “수수료체계 개선을 통해 설계사 이탈을 막고 업계에서 우수 설계사를 영입하는 데 힘쓸 것”이라며 “최고 수준의 교육지원시스템도 한층 향상시켜 경쟁력을 강화하고 신인 설계사 선별 도입 및 육성 프로세스도 업계 최고 수준으로 차별화 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남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