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총괄 수석부회장이 공정경제3법(공정거래법·상법·금융그룹감독법)의 국회 통과와 함께 지배구조 변경에 속도를 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현대차그룹이 2018년 5월 지배구조 개편안을 철회하고 재추진을 약속한 지 2년 넘게 지난 만큼 공정경제3법을 계기로 정 수석부회장이 결단을 내릴 가능성이 나온다.
 
정의선, 공정경제3법에 현대차 지배구조 개편 결단의 시간 다가오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총괄 수석부회장.


9일 증권업계 분석을 종합하면 공정경제3법은 현대차그룹을 비롯한 국내 대기업집단의 지배구조와 의사결정 구조에 큰 변화를 낳을 수 있다.

최관순 SK증권 연구원은 “공정경제3법 통과 때 지주회사 전환 요건 강화, 사익편취 규제 강화, 공익법인의 의결권 제한, 감사위원회위원 분리선출 등 대기업집단의 지배구조와 의사결정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고 바라봤다.

공정경제3법은 공정거래법 개정안과 상법 개정안, 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을 뜻하는데 현대차그룹은 특히 공정거래법 개정에 따라 지배구조가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사익편취 규제, 이른바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총수 일가가 지분 20% 이상 보유한 상장 계열사에 적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재 공정거래법은 상장사라면 총수 일가 지분이 30%를 넘을 때만 규제대상으로 삼는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정 수석부회장이 최대주주로 있는 현대글로비스가 또 다시 일감 몰아주기 논란에 휘말릴 수 있다.

현대글로비스는 현대차그룹의 물류물량을 몰아받아 성장했다는 시선을 받고 있는데 정 수석부회장과 정몽구 회장은 함께 현재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29.99% 보유하고 있다.

정 수석부회장과 정 회장은 2014년 말만해도 40% 넘게 보유하고 있던 지분을 사익편취 규제에 따라 2015년 29.99%로 줄였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규제 대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또 다시 10%의 지분을 처분할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시장에서는 정 수석부회장이 보유한 현대글로비스 지분이 지배구조 변경을 통한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유용하게 쓰일 것으로 본다.

공정거래법 개정안 통과에 따라 정 수석부회장이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추가로 매각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면 이를 시작으로 지배구조 변경에 속도를 낼 수 있는 셈이다.

현대글로비스 지분 10%(375만 주)의 가치는 8일 종가 15만2500원 기준 5719억 원에 이르러 적지 않은 규모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국회에서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정 수석부회장 등이 보유한 현대글로비스 지분의 일부 매각이 불가피할 것”이라며 “정 수석부회장의 지배력이 약한 만큼 이런 상황에서는 경영권 승계 관점에서 지배구조 변경도 불가피하다”고 바라봤다.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변경은 경영권 승계와 맞물려 정 수석부회장의 오랜 과제로 꼽힌다.

현대차그룹은 정 수석부회장체제가 본격화하기 전인 2018년 초 현대모비스를 분할한 뒤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하는 지배구조 변경안을 야심차게 추진했으나 합병비율에 반대하는 투자자를 설득해야 하는 부담 때문에 결국 그해 5월 지배구조 변경안을 철회했다.

현대차그룹은 당시 지배구조 변경 이유로 순환출자와 일감 몰아주기 해소를 꼽았는데 2년이 지난 지금도 당시와 비교해 크게 나아진 것이 없다.

공정거래위원회의 ‘공시대상기업집단 주식 소유 현황’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현재 4개의 순환출자 고리를 보유하고 있는데 30대 기업집단 가운데 순환출자 고리를 보유한 곳은 현대차그룹이 유일하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10대 기업집단을 포함한 대부분의 대기업집단이 순환출자고리를 없앴는데 현대차그룹은 이를 여전히 해소하지 못했다.

현대차그룹 일감 몰아주기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현대글로비스의 내부거래 비중도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공정거래법은 총수일가의 지배력이 일정 기준을 넘고 전체 매출에서 계열사 내부거래가 차지하는 비중이 12%를 넘으면 일감 몰아주기 규제대상으로 보는데 현대글로비스는 현재 내부거래 비중이 20%를 넘는다.

공정거래법은 내부거래 비중을 국내 계열사 사이 거래만 따지는데 해외 계열사까지 합치면 현대글로비스의 내부거래 매출비중은 60%도 넘는다.
 
정의선, 공정경제3법에 현대차 지배구조 개편 결단의 시간 다가오다

▲ 서울 양재동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사옥.


시장에서는 정 수석부회장이 주요 계열사가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을 정공법으로 매입하는 방안, 현대모비스를 사업회사와 투자회사로 분할한 뒤 지분교환을 통해 투자회사를 향한 지배력을 높이는 방안 등 지배구조 변경과 관련해 여러 시나리오가 나온다.

어떤 방식을 선택하든 정 수석부회장의 지배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만큼 지배구조 변경의 최대 수혜자인 정 수석부회장의 결단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정 수석부회장은 2018년 9월 총괄 수석부회장에 오르며 정의선체제를 본격화했지만 지분을 통한 지배력을 확보하기 위해 가야할 길은 아직 멀다.

정 수석부회장은 현대차그룹 지배력의 핵심 계열사인 현대차, 기아차, 현대모비스를 향한 보통주 지분율이 각각 2.62%, 1.74%, 0.32%에 그친다.

정 수석부회장이 지배구조 변경을 계속 뒤로 미룬다면 더불어민주당이 장악한 국회에서 더 강한 규제를 맞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공정경제3법은 정부가 발의한 법안인데 개별 의원이 발의한 상법 개정안 등에는 회사 분할 때 자사주에 신주 배정을 막도록 하는 법안 등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변경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내용들이 포함돼 있다.

현대차그룹 계열사 한 관계자는 “경영권 승계 문제도 맞물려 있어 지배구조 변경은 어떤 식으로든 이뤄질 수밖에 없다”며 “2018년에 한 번 무산된 만큼 적절한 방안과 시기를 찾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한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