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조선사들이 정부 차원의 통합계획 아래 몸을 합치고 있다.

한국 조선업계는 이를 큰 위협으로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의 기업결합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일본 정부 주도 조선사 통합, 한국조선해양 기업결합 반대명분 약해져

▲ 가삼현 한국조선해양 대표이사 사장.


23일 조선업계에서는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의 기업결합과 관련해 유럽연합 경쟁당국인 집행위원회의 심층심사에서 긍정적 결론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시선이 퍼지고 있다.

한국조선해양은 이를 두고 집행위원회의 기업결합심사에 성실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원론적 태도만을 보이고 있다.

집행위원회는 액체화물운반선(탱커)의 독점 우려는 해소됐으나 LNG(액화천연가스)운반선 등 가스선부문의 독점 우려가 해소되지 않았다는 중간심사결과를 통지했다.

조선업계는 한국조선해양이 선박 건조시장의 특수성을 들어 집행위원회를 설득하고 있을 것으로 바라본다.

선박 건조계약에서는 발주처인 선주사가 절대 우위에 있는 만큼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의 LNG운반선시장 합산 점유율이 50%를 넘더라도 선주사가 피해를 볼 일이 사실상 없다. 국내의 삼성중공업이나 중국의 후동중화조선 등 한국조선해양을 대신할 조선사도 있다.

게다가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이 이미 LNG운반선 건조능력의 한계치대로 선박을 건조하고 있는 만큼 선박 건조능력의 축소를 강제하는 조건부 승인은 오히려 발주처들의 경쟁을 심화시켜 선박 건조가격을 높이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조선업계 한 관계자는 “이미 유럽의 다수 선주사들이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의 기업결합을 완전하게 승인해야 한다는 의사를 집행위원회에 전한 것으로 안다”며 “코로나19로 심사 담당자들이 재택근무를 하고 있어 심사가 지연되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현대중공업그룹 관계자는 앞서 7월 열린 2분기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이미 '무조건 승인' 결정을 내린 카타르를 포함해 올해 안에 유럽연합, 한국, 중국, 싱가포르, 일본 등 남은 나라들의 무조건 승인 결정이 모두 나올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무조건 승인 결론을 내리면 한국은 물론이고 중국과 싱가포르도 유럽연합의 뒤를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에서는 이미 지난해 11월에 1위 조선그룹인 ‘남선(남쪽 조선그룹)’ 중국선박공업(CSSC)과 2위 조선그룹인 ‘북선’ 중국선박중공(CSIC)이 합병해 중국선박공업그룹(CSG)으로 출범했다. 중국초상국공업(CMIH), 중국국제해운컨테이너그룹(CIMC), 중국항공공업(AVIC) 등 중형조선사 3곳의 전략적 합병도 논의되고 있다.

싱가포르에서는 국영투자사 테마섹(Temasek)이 양대 조선사인 케펠(Keppel)과 셈코프마린(Sembcorp Marine)의 합병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과 싱가포르는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의 기업결합을 반대할 명분이 없는 셈이다. 그리고 일본에서도 한국조선해양의 기업결합을 반대할 명분이 사라져가고 있다.

일본 1위 조선사인 이마바리조선과 2위 JMU(재팬마린유나이티드)는 10월 합작조선사인 니혼조선소를 공식 출범한다.

4위 조선사인 츠네이시조선과 8위 미쓰이E&S조선도 합작조선사 설립을 논의하고 있다. 이 합작이 성사되면 가와사키중공업을 제치고 일본 3위 조선그룹이 탄생한다.

조선 전문매체 헬레닉시핑뉴스는 “합작조선소 설립을 위해 츠네이시가 미쓰이E&S조선의 소수 지분을 인수할 것”이라며 “올해 안에 합의부터 마친 뒤 투자 비율과 같은 세부 사항을 나중에 다룰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 밖에 미쓰비시조선이 나가사키의 고야기 야드를 오시마조선에 매각하고 상선부문을 통합하는 논의도 진행되고 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일본 조선사들의 통합작업을 일본 정부가 주도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 국토교통성은 일본 내 주요 15개 조선사를 모두 통합해 선박 수주영업이나 입찰부터 설계와 건조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서 공동으로 대응하도록 한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일본 조선사들이 더 이상 글로벌 선박시장에서 수주영업력이나 선박 설계능력 및 건조기술 등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세계 조선업계를 뜨겁게 달궜던 카타르 LNG운반선이 좋은 사례다.

지난해 3월 카타르페트롤리엄이 LNG운반선 확정물량 40척의 입찰을 시작할 당시 이마바리조선이나 미쓰이E&S조선 등 일본의 LNG운반선 건조 조선사들도 초청서를 받고 참여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그해 4월 사드 빈 셰리다 알 카비 카타르 에너지장관 및 카타르페트롤리엄 CEO가 언론 인터뷰를 통해 “LNG운반선을 모두 17만4천 m3급 이상의 멤브레인형(화물창이 선체와 일체화한 형태) 선박으로 확보하기를 원한다”고 밝히자 일본 조선사들은 모두 입찰을 중도에 포기했다.

일본 조선사들의 LNG운반선 설계능력은 1990년대에 주류였던 모스형(선체 위에 반구 모양의 화물창을 얹은 형태) 선박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모스형 선박은 멤브레인형 선박보다 화물 적재능력이 떨어져 현재는 소형 LNG운반선 외에는 건조되지 않는다.

그 결과 일본 조선사들은 앞서 6월 한국조선해양,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한국 조선3사가 카타르페트롤리엄으로부터 LNG운반선 100척 이상의 건조 슬롯을 예약받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 직후 열린 일본 국토교통성의 기자간담회에서 ‘일본 조선업의 가장 시급한 과제가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한 간부가 “각 조선사별이 아닌 공동연구를 통해 설계능력을 끌어올리고 수주에도 함께 대응해야 최소한 입찰에 참여라도 해볼 수 있는 게 일본 조선업의 현실”이라고 대답하기도 했다.

기술은 한국 조선업계에 밀리고 규모는 중국 조선업계에 밀리며 몰락해가는 것이 일본 조선업계의 현주소다. 일본 정부는 이런 현실을 극복하고자 정부가 앞장서 구조조정에 나선 것으로 파악된다.

한국 선업계는 일본 조선사들의 이런 통합 움직임에 긍정적 반응을 내놓고 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일본 조선사들의 선박 건조기술은 2000년대 초반, 설계능력은 1980년대 수준에 머물러 있다”며 "일본 경쟁당국이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의 기업결합을 반대할 명분이 사라지는 만큼 한국 조선업계로서는 규모의 경제를 갖춰 경쟁력을 더욱 강화할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강용규 기자]